[뉴스레터8호][칼럼]성적 수치심과 혐오의 프로파간다(손희정)

성적 수치심과 혐오의 프로파간다

 

글. 손희정

웹진 글로컬포인트 기고문

(http://blog.jinbo.net/glocalpoint)

 

인터넷은 다양한 입장들이 부딪치고 대결하면서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해서 투쟁하는 문화적 전쟁터다. 이런 전장에서 동성애와 관련된 검색어를 넣으면 온갖 혐오발화들이 튀어오른다. 그 중에는 성적으로 자극적인 내용을 통해 동성애자를 혐오스럽게 그리는 내용이 압도적으로 많다. 대표적으로는 2010년 신문 광고로 실렸던 한 ‘탈(脫)게이(?)’의 ‘양심 고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과거 게이로서의 삶을 회개하고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동성애자의 ‘더러운 성생활’을 ‘폭로’한다. 예컨대 찜방에 대한 묘사라던가, ‘식’으로 말해지는 취향 중심의 연애 행각, 항문성교와 AIDS에 대한 공포 조장 등이 그 내용을 채우고 있다.

동성애에 대한 부정적이고 선정적인 내용은 불쾌와 혐오를 통해 오히려 독자를 매혹시킨다. 그리고 그런 ‘불쾌의 매혹’ 속에서 동성애자를 혐오의 대상으로 구성하며, 동성애자 당사자에게 모멸감을 주고 수치심을 느끼게 한다. 이런 혐오발화는 지나치게 파편화되었거나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고 왜곡되었거나 편향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내면서 동성애자 개개인의 삶을 제도적, 실존적인 위기로 내몬다. 뿐만 아니라, 다양성이 공존할 수 있는 사회로의 변화를 막고 그런 변화를 추동할 수 있는 가능성의 주체들을 무기력하게 만든다는 점에서도 문제적이다.

그런데 이처럼 ‘혐오의 프로파간다’에 기대는 반동성애/반게이 운동의 중심에 한국 개신교 우파가 있다. 이 글은 한국의 정치, 경제, 문화적 상황과 깊게 연루되어 있는 한국 개신교 우파가 성적 수치심을 경유해서 동성애에 대한 혐오를 재/생산하고 영향력을 행사해 온 것에 대해 주목하면서, 어째서 그들이 혐오와 수치심이라는 가장 인간적인 정동을 자신들의 권력 유지를 위한 방법론으로 취하게 되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한국 개신교 우파는 성경의 문자적 해석에 기반한 원리주의적이고 극단적인 교리해석을 선보이면서도, 동시에 완벽하게 세속화된 방식으로 정·경과의 유착을 통해 거대한 시장을 형성해 왔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로마로 가서 제도가 되었고, 유럽으로 가서 문화가 되었고, 마침내 미국으로 가서 기업이 되었다. 그리고, 한국으로 와서 대기업이 되었다.” 다큐멘터리 <쿼바디스>에 등장하는 이 말은 과장이 아니다. 한국 개신교 우파의 동성애 혐오발화는 단순히 종교적 믿음이라는 개인적 차원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한국 교회라는 제도 자체와 한국 사회를 사로잡고 있는 혐오의 정동 자체의 문제다.

 

‘증오의 프로파간다’와 헤게모닉 남성성

개신교 우파가 해방 이후 교세를 확장하고 한국 사회의 기득권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기대고 있었던 어떤 정동의 구조와 지금 개신교 우파의 반동성애/반게이 운동을 추동하고 있는 정동의 구조가 매우 흡사하다는 것은 흥미롭다.

김진호는 해방을 전후해서 반공주의와 발전주의의 조우 속에서 한국 교회가 성장할 때 공산주의와 북한체제에 대한 ‘증오’가 중요한 역할을 했음에 주목한다. 그에 따르면 증오는 개신교 우파의 ‘마음의 제도’였다. 이때 1950-1960년대에는 반공에 기댄 ‘파괴적 증오’였던 것이 1960년대에서 1987년에 걸치는 기간에는 발전주의에 기댄 ‘생산적 증오’로 전환된 것은 한국 교회의 성장과 한국의 근대화 과정이 함께 진동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파괴’에서 ‘생산’으로의 전환은, 해방 후 한국 정부가 반공주의와 일민주의에 기대어 국가 정체성을 세우는데 집중하고, 군사정권 이후 ‘희망과 발전’이라는 긍정의 수사에 기대어 전일적인 산업화, 서구화를 추구했던 것과 정확히 그 궤를 함께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증오라는 마음의 제도를 추동하고 그 성격을 규정한 문화적 바탕은 성별 이분법에 기반한 남녀의 성역할 구분이라는 가부장제적 성별 구조였다. 김진호는 이처럼 젠더화된 교회의 성격을 ‘과잉 남성성’이라 설명하고(김진호, 111), 김나미는 ‘과잉 남성적 개발주의’의 ‘헤게모니적 남성성’으로 설명한다(김나미, 282). 전통적인 이성애중심주의와 남성중심주의, 그리고 성차별주의가 한국 개신교 우파의 조직 성격과 작동 체계를 결정짓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셈이고, 한국 사회의 발전주의가 전일적인 근대화를 추동했던 방식도 마찬가지였다. 강력한 남성 지도자와 헌신적인 여성 내조자를 바탕으로 기업과 교회, 정치권력이 성장하였다. 그리고 그렇게 성장한 기업과 교회와 정권이, 세습된다. 정·경·교의 닮은꼴은 우연적인 유비가 아니라, 필연적인 유비인 셈이다.

이렇게 헤게모닉 남성성을 중심으로 하는 ‘증오’의 정동에 기대고 있던 한국 개신교 우파는1990년대 “민주화와 소비사회화”에 영향을 받게 된다. 권위주의적 독재정권의 체제와 “너무나 닮은 개신교의 제도와 담론은 민주화 이후 청산의 대상으로 지목되었고, 타인의 취향과 신념에 대한 배타적인 일방주의는 소비사회적 주체가 된 자존성 강한 시민들에게 지체된 공간으로 여겨졌다.” 그리고 이는 개신교 우파의 성장 둔화와 감소로 이어지게 된다(김진호, 122). 동시에 교회의 시장화와 함께 개신교 내에서의 신자 유치를 위한 무한경쟁이 시작되면서 파이를 키워야 한다는 절체절명의 과제가 떨어지게 되는데, 이런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서 개신교 우파는 ‘외부의 적’을 필요로 하게 된다. 그리하여 개발해내는 것이 전통적인 반공주의로부터 게으르게 되살려 낸 ‘종북’이었으며, 여기에 그 외의 다양한 소수자들, 특히 (성적자기결정권을 가진) 여성, (성적 규제를 벗어난) 10대, 그리고 (무조건 성으로 환원되는) 동성애자와 같은 ‘성적으로 문란한 소수자들’이 덧붙여졌다. ‘외부의 적’이라는 수사는 “상실감에 빠진 개신교 신자에게 목표 의식과 생기를 불어넣어주었다.” 그리고 이는 “여러 극우 기독교 베이스의 인터넷 미디어, 그리고 온오프라인의 극우 네트워크 조직이 탄생”으로 이어진다(김진호, 127-128).

이때 ‘종북’과 견줄 수 있을 정도로 핵심적인 적대의 대상으로 성적 소수자들, 특히 남성 동성애자가 등장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개신교를 지탱하고 있었던 헤게모닉 남성성이 위기를 맞이했기 때문이었다. 헤게모닉 남성성은 1980년대에서 1990년대에 이르는 여성주의 운동을 비롯한 다양한 신사회 운동의 성과와 더불어 1990년대 후반 한국 사회를 강타한 경제위기 등을 이유로 풍전등화와 같은 상태에 놓인다. 이 시기와 맞물려 등장한 “동성애자 인권 운동, 혹은 이반 운동이라고도 불리는 운동을 주도했던 LGBT 조직들”은 “헤게모닉 남성성에 대한 진보적인 저항”의 주체가 되었다(김나미, 287). 개신교 우파는 이런 헤게모닉 남성성의 위기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고 우려했는데, 이런 위기는 곧 기존의 성별위계와 성규범에 변화가 온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이는 개신교 우파가 기대고 있었던 효율적인 성별체계를 뒤흔들 뿐만 아니라, 교회의 정체성 혼란마저 불러오는 것이었다.

이런 맥락 안에서 한국 개신교 우파는 가장 교란적이고 위협적인 존재로서 ‘성소수자’ 특히 헤게모닉 남성성의 허상을 폭로하는 존재로서 ‘남성 동성애자’에 대한 전면전을 선포하게 된다. 여기에서 증오의 프로파간다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미묘하게 그 결을 달리하는 혐오의 프로파간다가 등장한다. 그리고 그 전면전은 모멸감을 주고 수치심을 강요하는 방식으로 수행된다. 그야말로 ‘수치스럽게 하기’가 혐오를 생산하는 공격적이고 부정적인 방식의 문화적 실천이 되는 것이다.

 

관습과 도덕을 전달하는 그릇이자 자아 파괴의 정동, 수치심

그렇다면 왜 수치심일까? 수치심은 그 어떤 것보다도 가장 인간적이고 고유한 정동affect이라고 이해되어 왔다. 분노하거나 울거나 웃거나 행복해 하는 동물은 많지만, 부끄러움으로 얼굴을 붉히는 동물은 인간 외에는 없다. 그러나 그렇게 매우 ‘인간적’이라는 의미에서, 수치심은 또 한편으로 개인의 정신적이고 감정적인 차원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라 그가 다른 이들과 맺는 관계의 문제이며, 동시에 문화적이고 사회적인 차원의 문제이기도 하다. 리즈 콘스타블은 이처럼 수치심이 개인적, 간주체적, 사회적으로 작동하는 복잡한 상태를 “상관적 문법relational grammar”이라고 규정한다. 예컨대 2014년에 한국에서 사회적으로 공분을 불러일으켰던 ‘12세 어린이 성폭행 3년 구형’ 사건에서도 이런 상관적 문법이 작동하고 있다. 피해자는 성폭행을 ‘공포’로 경험했지만, 어머니가 그 사실을 듣고 음독하는 순간 이것은 그저 공포스러운 일이 아니라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수치스러운 일’로 각인된다. 그리고 3년 구형의 원인인 ‘충분히 저항하지 않았음’은 한국 사회의 가부장제적 성관념이라는 사회적, 문화적 맥락 안에서 피해자에게 ‘수치심’을 강요한다. 이처럼 상관적 문법 안에서 피해자의 공포는 수치와 중첩되거나 혹은 수치로 전환된다. 그리고 사회는 다시 그런 수치심을 ‘성’에 대한 인식을 구성하고 그를 둘러싼 도덕과 규범들을 공고히 하는데 이용한다. 상관적 문법과 그 악순환의 고리는 수치심을 사회의 관습과 도덕을 전달하는 일종의 그릇으로서 작동하게 한다. 수치심이라는 정동이 성이라는 문제 있어 “사회적 상호작용의 핵심적인 규제담당자”(Johnsohn&Moran, 8)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수치심은, 만회할 수 있는 행위로부터 비롯되는 ‘죄책감’과 달리, 개인의 정체성에 달라붙어 돌이킬 수 없는 근본적인 고통을 주는 정동이다. 사회의 성적 규범은 ‘온전한 성’, 즉 ‘인종적으로 주류인 이성애 비장애인 남성의 성’으로부터 변별해 낸 차이에 기반한 몸, 섹슈얼리티, 성적 정체성을 수치심의 공간으로 구성하고, 그에 기대어 제도적 규범을 견고하게 만들고 영속시킨다. (이때 ‘차이’란 오직 규범적인 성이 그것을 ‘차이’로 인식하기 때문에 유의미한 특성으로 부각된다.) 개인들은 자신이 여자라서, 동성애자라서, 트랜스젠더라서, 장애인이거나 혹은 이인종이라서, 수치심을 느끼게 된다. 수치심은 “한 인간의 자기 존재에 대한 감각에 깊이 자리잡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쉽게 용서될 수도 없다”(Johnsohn&Moran, 2). 그렇게 수치심은 사회의 규범적인 성을 유지하는 데 가장 강력한 기제가 되는 것이다.

게다가 수치심의 효과는 치명적일 뿐만 아니라 악성이다. “그 자리에서 콱 죽어버리고 싶었다,바닥으로 꺼지고 싶었다,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와 같은 수치심에 대한 은유들이 보여주듯이 수치심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자기 삭제 혹은 자기 파괴적인 성격을 띈다.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것은 세계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탐구하고자 하는 개인의 욕망을 손상”시키며, 그/녀로 하여금 자신은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으며 무가치하다고 느끼게 한다. 수치심은 개인을 “깊은 수동의 상태(Wurmser, 78)”로 몰아넣고, 이런 수동의 상태는 또 다른 수치심을 낳는다.

수치심은 그 효과가 오랜 시간에 걸쳐 증명되어 온 방법론이자 가장 파괴적인 방법론 중 하나다. 그리하여 개신교 우파는 대중이 선고하는 ‘명예형’이라고 할 수 있는 집단적 혐오발화를 수행한다. 그것은 때로는 직접적으로 수치심을 이식하는 것이 아니라 모멸감을 주는 방식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이런 식의 모욕은 모멸감 주기에 머물지 않는다. 그런 모멸감은 기실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것을 그 목표로 한다. 모멸감은 부당하다는 인식과 억울함의 정서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수치심보다 훨씬 더 적극적인 성격을 띈다. 그리하여 모멸감은 분노의 정동을 생산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분노하라!’라는 요청이 보여주는 것처럼, 분노는 행동을 가능하게 하는 에너지다. 모멸이 수치로 전환되어야만 하는 이유다. 여기에서 개신교 우파가 혐오발화를 장기전으로 끌고가는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만성적인 ‘망신주기’는 점차로 개인으로 하여금 타인이 강요하는 수치심에 굴복하게 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결점있고 더러운 것으로 인식하게 한다. 원죄와 수치의 수사가 지니고 있는 자기 파괴적 속성의 효과에 익숙한 개신교 우파는 스스로 ‘포비아’라는 ‘만성적인 질병’이 되고자 한다. 견고한 성별위계에 균열을 내는 성소수자들이 펼쳐보이는 전복의 에너지를 견제하기 위해, 그들은 혐오를 필요로 한다.

한 가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우리가 단순히 ‘이건 수치스럽게 여길 일이 아니다’라고 수치의 수사를 무시한다고 해서 그것이 쉽게 극복되거나 폐기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혐오와 수치는 실체가 없는 이미지에 기대고 있는 환상이지만, 명백하게 실효를 발휘하고 있는 환상이다.수치심은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상관적 문법 안에서 작동하기 때문에, 개인이 수치심을 느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주위에서 그것을 수치스러운 일로 받아들이고 개인에게도 강제함으로써 수치심의 거미줄을 친다. 이 거미줄은 쉽게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다양한 삶의 조건 속에서 촘촘하게 그/녀의 삶을 옥죄어 온다.

 

혐오, 그리고 모멸의 문화

혐오는 증오보다 그 실체를 포착하기 힘든 정동이다. 스튜어트 월턴은 혐오를 설명하면서 “혐오의 촉발이 침, 콧물, 가래, 귀지, 오줌, 똥, 정액, 피(특히 생리혈) 같은 고약한 신체 분비물이나 썩거나 곪는 생물학적 과정의 구체적인 예에 뿌리를 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을 모른척 할 수는 없다”(월턴, 141)고 말한다. 즉 혐오는 깨끗하고 안전한 주체의 견고한 경계를 위협하는 더럽고 천한 것(정신분석학적 용어로 하자면 비체적인 것)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일견 정확한 설명인데, 우리는 ‘똥’을 혐오하지만 증오하지는 않는다. 이것은 혐오의 대상이 실제로 나에게 어떤 위협을 가하거나 혹은 나를 위험에 빠트리지는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만 그(것)들은 안정적인 정체성의 감각을 유지하는데 위협이 되기 때문에 배제되고 타자화될 필요가 있는 어떤 것일 뿐이다. 내가 단정하고 깨끗한 존재이기 위해서, 내 몸 안에서 나온 똥은 더러운 것이 되어 보이지 않는 곳으로 즉각적으로 처치되어야 한다. 그러나 똥이 우리에게 도대체 무엇을 했단 말인가?

이처럼 실질적이거나 물질적으로 나에게 해를 끼치는 존재가 아니라, 인식론적 차원에서 위험한 것, 불쾌한 것, 제거되어야 할 불순물로서 여겨지는 것들이 혐오의 대상이 된다. 그렇다면 혐오란 우리 시대에 점차로 불안정해지고 있는 정체성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는 정동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즉, 혐오란 냉전시대의 반공주의가 선보였던 것과 같은 강력하고 절대적인 적대가 제거된 시대에 어떤 집단적 정체성을 견고하게 유지하기 위해서 등장하게 되는 타자화의 정동인 셈이다. 다시 한 번 반복하고, 그렇게 강조하지만, 성적 소수자성이란 그 자체로 이성애 남성 한민족을 중심으로 상상되는 낡은 정체성에 균열을 내겠다고 위협하기 때문에, 그리고 그런 성소수자의 시민권을 의제로 내건 운동들은 그에 적극적으로 균열을 내고 있기 때문에, 혐오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염려스럽게도 혐오는 개신교 우파만의 정동의 구조가 아니다. 그것은 모든 총체성이 사라지고 거대한 담론이 죽어버린 시대에, 그리고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라는 오랜 목표가 달성되었다고 상상되지만 기실은 경제적, 정치적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시대에, 반동적인 방식으로 정체성의 불안을 극복하고 복고적으로 견고한 정체성을 회복하려는 움직임 자체의 정동이 되어버린 것 같다.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것처럼 교회에서 뿐만 아니라 다양한 공간에서 혐오의 정동이 꿈틀거린다. 이는 정치적 입장이나 종교적 믿음, 개인이 가지고 있는 신념의 성격을 가리지 않고 나와 다른 타인을 배제하고 공격하는 수단이 된다.

여기에서 다시 한 번 “만성적인 망신주기”, “만성적인 혐오발화”가 어떻게 개인으로 하여금 수치심에 굴복하게 하는가를 떠올리게 된다. 이런 ‘혐오-만성적인 망신주기-수치심’의 삼각형은 다양한 인터넷 공간에서 타인에게 모멸감을 주는 ‘모멸의 문화’가 지배적이 되고 있는 것과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개신교 우파의 혐오발화가 모멸감을 주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처럼, 일베에서의 여성 혐오, 호남 혐오, 이방인 혐오 역시 모멸감을 주는 것에 집중되어 있다. 그리고 이런 디지털 시대의 ‘모멸의 문화’는 과거 공동체에서 ‘공개적으로 망신주기public shaming’가 그러했던 것처럼 배타적인 공동체성을 구축하고 그 공동체의 내부 규범을 강화시킨다. 이것이 개신교 우파의 혐오발화를 특정 종교의 문제, 혹은 특정 종교인의 문제로만 국한시켜 이해할 수 없는 이유일 것이다. 우리는 이로부터 좀 더 광범위하게 한국 사회를 사로잡고 있는 반동적 복고주의와 모멸의 문화를 고민해야 한다.

 

 

 

참고문헌

김나미, 「한국 개신교 우파의 젠더화된 동성애 반대 운동」, 『말과 활』 7호, 일곱번째숲, 2015.

김진호, 「한국 개신교 반공주의와 ‘증오의 정치학’」, 『모멘툼』 vol.01, 자음과 모음, 2014.

김찬호, 『모멸감』, 문학과 지성사, 2014.

스튜어트 월턴, 『인간다움의 조건』, 이희재 역, 사이언스 북스, 2012.

 

Erica L. Johnson·Patricia Moran eds., The Female Face of Shame, Indiana University Press, 2013.

Léon Wurmser, The Mask of Shame, Baltimore: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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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8호][연구자료] 공공부문 문화예술 비정규직 노동실태와 개선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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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비정규직 노동실태와 개선방향
- 연극뮤지컬, 무용발레, 양악, 국악, 학예사, 전문직 -

 

- 첫째, 문화예술 종사자의 노동시장 실태 관련 탐색적 차원의 첫 조사 결과, 일의 형태와 업무 특성상 이질성이 높음에도 문화예술 영역에서 노동시장이 형성되어 있는 것 확인. 공공부문 문화예술 6개 직종의 임금실태 분석 결과 직종별 동질성도 확인되나, 고용형태별 임금 및 노동조건 차이 존재

- 둘째, 지난 8년간(2004년-2012년) 공공부문 문화예술 피보험자는 약 11,786명 증가했으나, 피보험 신규 취득자(217명)에 비해 상실자(584명) 수가 두 배가 넘고 있음. 2012년 기준 피보험자 취득자(670명)보다 상실자(828명)가 더 많은 상황

- 셋째, 공공부문 문화예술 6개 직종 인력은 3,268명(중앙 43.6%, 1,425명 / 지방 56.4%, 1,843명)인데, 27.2%는 비정규직(11.3%)과 무기계약직(15.9%). 비정규직 다수는 중앙정부(19.3%)에, 무기계약직 다수는 광역 지자체(25.8%)에 고용

- 넷째, 공공부문 문화예술 종사자 직종별, 고용형태별 임금 격차 심각. 2014년 1년차 정규직(총액 219.1만원, 기본급 163.9만원), 무기계약직(총액 155.8만원, 기본급 87.7만원), 비정규직(총액 183.2만원, 기본급 169.3만원) 격차 존재

- 다섯째, 문화예술 종사자 휴일휴가 및 이직 상황을 보면, 정규직(연차 14.9일, 병가 5.6일, 이직 2.5명), 무기계약직(연차 10.6일, 병가 3.3일, 이직 3.5명), 비정규직(연차 8.4일, 병가 2.9일, 이직 8.1명) 순으로 고용이 불안정할수록 노동조건 열악

- 끝으로, 문화예술 종사자도 노동자이기에 근로의 권리와 노동권이 보편적 노동인권차원에서 검토 필요. 특히 공공부문 문화예술 종사자의 고용정책은 동일 노동을 수행하고 있기에 무기계약의 단계적 정규직 전환과 노동 성격을 반영한 임금제도 수립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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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8호][칼럼]개인의 정체성과 폭력(김정한)

개인의 정체성과 폭력

 

김정한(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HK 연구교수)

 

정치적 장의 약화와 폭력의 증가

 

이슬람과 서구의 갈등과 전쟁이라는 ‘문명의 충돌’을 성급하게 말하기 전에 고려해야 하는 것은 이슬람도 서구도 하나의 유기적인 통일체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슬람과 서구 내부의 균열,모순, 차이가 존재하고, 그것은 계급적, 인종적, 종교적이기도 하며 성적 차이와 지적 차이를 동반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이 함의하는 것은 단지 표현의 자유라는 쟁점에 국한될 수 없다.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무엇보다 개인의 정체성이 어떤 증오 및 폭력과도 결합하지 않도록 하는 정치적 장의 약화 내지 붕괴이다.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 시대에 국민국가의 합법적 폭력, 자본주의의 초과착취, 그리고 개인의 정체성을 직접적인 공격 대상으로 삼는 상징적 폭력은 더욱 만연해져 있고, 이와 같은 구조적 폭력들을 완화하거나 제어할 수 있는 정치적 장치들은 점차 해체되어왔다. 이것이 국민국가의 위기, 민주주의의 후퇴, 차별과 배제의 확산 등으로 표현되고 있을 뿐이다.

 

증오와 폭력을 감축할 수 있는 정치적 장이 적절히 작동하지 않을 때 미셸 비비오르카가 명명하듯이 “폭력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출현한다. 한편으로 그것은 정치적 의미를 상실한 정치이하적(infrapolitical) 폭력의 증가이다. 어떤 정치적 의미나 효력이 없는 폭력들, 예컨대 무기판매,마약거래, 인신매매 등이 특정한 조직이나 집단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자행되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정치를 초월한 가치들을 위한 정치상위적(metapolitical) 폭력의 전면화이다.세속적인 정치를 넘어서는 종교, 이데올로기, 도덕 등의 이름으로 일상적인 폭력과 테러가 나타나는 것이다. 물론 정치이하적인 의미-부재의 폭력과 정치상위적인 의미-과잉의 폭력은 서로 융합하는 경향을 갖는다. “폭력의 새로운 패러다임”에 따르면, 샤를리 에브도 테러는 정치상위적 폭력에 해당할 것이지만, 또한 자신이 속한 집단의 경제적 이익이라는 정치이하적 폭력의 성격도 간과될 수는 없다.

 

정체성의 위기는 폭력과 어떻게 결합하는가

 

  하지만 종교적 신념에 따라서 타인에 대한 테러를 행사하고, 동시에 더 나아가 자기 자신에 대한 자기 파괴적인 테러를 표출하는 근원에는 왜 개인들이 그와 같은 선택을 하는가의 문제가 결부되어 있다. 그러나 이를 개인의 사적인 이력이나 어떤 정신적 증상으로 환원시키기에 앞서,개인의 정체성(identity)을 위기로 몰아넣는 제도들의 붕괴를 사유할 필요가 있다. 개인의 정체성은 그 자체로 관개체적(transindividual)이기 때문이다. 개인이 온전히 스스로, 고립적으로 구성하는 정체성이란 것은 없다. 에티엔 발리바르에 따르면, 개인의 정체화(identification)에 관여하는 그/녀의 소속과 결속에는 네 가지 차원이 있다. 첫째 일차적인 소속으로써 선택의 여지가 없는 가족, 둘째 직업이나 종교와 같은 선택의 가능성이 있는 매개적 제도들, 셋째 헤게모니적인 공동체로서 국민, 넷째 국민을 넘어서는 지평으로서 상상적이면서 상징적인 보편적 존재(인류, 인간, 세계시민 등)가 그것이다. 이와 같은 정체화의 차원들이 혼합되어 붕괴할 때, 예를 들어 가족과 국민이 혼합됨으로써 국가의 안보를 지키고 국민적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가족을 보호하고 혈통을 보존해야 한다는 강박적 담론이 형성될 때 나타나는 것이 파시즘이며 그에 대한 개인들의 헌신이다. 샤를리 에브도 사건은 개인의 정체화에서 이슬람 종교라는 매개적 제도가 우위에 있다는 것을 선명하게 보여주지만, 또한 무엇보다 가족과 집단의 생명(또는 생계)이라는 차원과 특히 국민적 정체성의 상실이라는 차원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고 여겨진다.

 

사실 국민국가는 일차적 정체성(계급, 지역, 언어, 종교, 가족, 성적 정체성)을 이차적 정체성(국민-시민적 정체성)으로 전환하고 포섭함으로써 자신의 민족-국민적 헤게모니를 구성한다.일차적 정체성을 이차적 정체성으로 통합하는 과정은, 한편으로는 일차적 정체성에 기초한 다양한 개인성들을 억압, 해체, 배제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이차적 동일성에 입각하여 정상적 규범과 규칙을 규율화함으로써 일차적 정체성을 재구성하는 것이다. 그 자체로 상징적 폭력이라고 부를 수도 있는 이런 해체와 재구성의 효과로 개인은 국민-시민이라는 정체성을 정립하고 ‘비정상적’이지 않은, ‘정상적인’ 태도와 행위를 내면화할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이 이차적 정체성을 중심으로 일차적 정체성들간의 경쟁과 갈등을 조정하는 국민국가의 헤게모니적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개인의 정체성은 일의적으로 고착되거나(예컨대 전체주의), 다양하게 유동하게 된다(예컨대 포스트모더니즘). 이를테면 하나의 정체성에 붙들려 있는 개인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의 정치적‧사회적 역할만을 고집할 것이며, 반면에 하나의 정체성에서 다른 정체성으로 끊임없이 이동하는 개인은 어떤 정치적‧사회적 역할도 떠맡지 못할 것이다. 이 두 가지 상황에서 개인은 스스로 고립되어 자기-파괴적이 되거나, 자신이 소속될 만한 보상적인 공동체(때로는 종교적이거나 인종적인)에 휘말리기 쉽다. 바로 이 지점에서 개인의 정체성은 증오를 이상화하는 폭력과 결합한다.

 

폭력의 해법: 정치적 장의 가능성 사유하기

 

  ‘고착된 정체성’의 위험에 대해서는 아마르티아 센의 논의를 참조할 수 있는데, 그는 한 개인이 갖고 있는 다양한 정체성들(아시아인, 인도인, 경제학자, 남성, 이성애자 등등) 가운데 단 하나의 분류 범주에 따라 독보적인 정체성을 추출해내서 그 단일한 정체성 속으로 개인들을 밀어 넣을 때 폭력이 발생한다고 지적한다. 이에 대한 센의 해법은 수많은 정체성들간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 그리고 개인의 이성적 추론, 의지적 선택과 책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반면에 ‘유동하는 정체성’의 위험에 대해서는 슬라보예 지젝의 논의를 참조할 수 있는데, 그는 한곳에 정착하지 않고 끊임없이 이동하며 자신을 새롭게 계발하고 재창조하는 계속적인 변신이라는 것은 후기자본주의 체제의 작동 논리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이에 대한 지젝의 해법은 체제 작동을 정지시키는 반자본주의적이고 공산주의적인 계급투쟁이다.

 

하지만 개인의 이성과 의지를 강조하거나 구조적 체제 변혁을 요청하는 이와 같은 해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는 개인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매개적 제도들의 재확립과, 무엇보다도 일차적 정체성과 이차적 정체성의 관계를 조율하는 공동체(반드시 국민국가는 아닐지라도)의 복원이라는 과제가 제기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이와 관련해 발리바르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지하드주의자들의 네트워크에 의한 이슬람의 악용에 대해─세계 곳곳과 유럽 자체에서 주요 희생자들이 무슬림들임을 잊지 말자─신학적 비판과 궁극적으로는 종교의 ‘상식’의 개혁 말고는 달리 응답할 수가 없다. 이것이 신자들의 눈에 지하드주의자를 사기로 보이게 할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모두 테러리즘의 치명적인 틀에 사로잡혀 옴짝달싹하지 못할 것이다.”(‘월간 오늘 보다’, 2015년 2월호, 42쪽) 말하자면, 이슬람 내부의 갈등과 위계, 모순과 차이를 드러내는 내재적 비판이 또한 필수적이며, 이것이 궁극적으로는 이슬람과 서구 모두의 공통된 문명을 재창안하는 새로운 문명화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내가 샤를리다”라는 구호는 희생당한 타자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연대의 표현이다. 이와 같은 구호의 여러 변주들은 세계 곳곳에서, 그리고 한국사회에서도 그동안 수차례 반복되어왔다. 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또 다른 비극을 막아내지는 못했다. 그렇다면 이제는 타자의 희생과 고통에 대처하는 ‘내가 여기 있어요’라는 윤리의 한계에 대해서도 다시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 지젝이 말하듯이 “격정에 가득 차서 ‘우리는 모두 무젤만들이다!’라고 외치는 것은 역겨운 일”이 될 수도 있다. “내가 샤를리다”라거나 “나는 샤를리가 아니다”라는 논쟁은, 오늘날 증오와 폭력을 제어하는 정치의 장이 어떻게 다시 가능할 수 있는가라는 보다 근본적인 사유로 전환되어야 한다.

 

 

(『대학원신문』317,http://gspress.cauon.net/news/articleView.html?idxno=21042. 20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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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8호][연구자료]함께서울포럼 문화관광분과 포럼 자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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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서울포럼
“ 함께서울포럼”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로 이루어진 분과를 통하여 서울시 정책을 제안하는 연구모임이자 시정에 대한 분야별 진단 및 평가를 수행하는 개방형 연구플랫폼입니다.

현재 안전교통, 경제일자리, 복지건강, 도시재생, 여성, 교육청소년, 문화관광, 환경녹지, 재정, 9개 분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분과위원장을 중심으로 분야별 전문가들의 자발적인 연구와 토론을 중심으로 연구 세미나가 진행되고 있으며, 서울시 주요 현안에 대한 연구도 진행될 계획입니다. 또한, 분기별 정기포럼을 개최하여 분과별 연구결과를 발표하고 서울시정을 함께 논의하는 자리를 가지며 서울시 정책 제언과 발전을 도모하고자 합니다.

 

<함께서울포럼> 문화관광 분과 포럼

▎목적

○ <함께서울포럼> 문화관광분과의 ‘예술인들을 위한 서울플랜’ 포럼 개최

○ “예술인 창작환경 및 생존 위기에 대한 해법 찾기” 주제로 발표 및

토론 실시

- 대학로극장 및 삼일로 창고극장 등 폐관확정에 따른 서울시

창작공간 확대 필요

- 예술가의 복지정책 현황과 실행 방향 검토

▎진행 순서

시간 주제

사회 : 이원재(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 소장)

 

2:00~ 2:20

등록 및 인사말

 

2:20~ 3:20

주제발표

예술인들을 위한 서울플랜 : 예술, 노동, 창작권리를 위한 연대모색

이동연(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함께서울포럼 문화관광분과위원장)

 

3:20~ 3:30

휴 식

 

3:30~ 4:40

지정토론

김현(예술인소셜유니온 정책위원, 세종문화회관 노동조합 위원장),

나도삼(서울연구원 연구위원), 박장렬(서울연극협회 회장),

이규석(서울문화재단 본부장), 임근혜(서울시립미술관 전시과장)

정문식(홍대앞에서시작해서우주로뻗어나갈문화예술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정헌재(서울시 문화정책과 과장)

 

4:40~ 6:00

종합토론 포럼 참여자와 청중들

▎주관 : 서울연구원, 함께서울포럼 문화관광분과, 문화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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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문화/과학』 뉴스레터 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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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7호][좌담회후기]인문장치를 발명하자!―비정규 대학구성원 좌담회(아프꼼)

인문장치를 발명하자!―비정규 대학구성원 좌담회

연구모임 아프꼼

 

*2014년 2월 27일, 도쿄 신주쿠의 한 귀퉁이 <일레귤러 어사일럼>이라는 아나키즘과 관련된 활동을 하는 공간에서 ‘인문장치를 발명하자-비정규직 대학구성원 좌담회’가 시작되었다. 1시가 조금 넘자, 메일로 겨우 연락하고, 섭외했던 분들이 그 모습을 드러내셨다.

<일레귤러 어사일럼>을 운영하는 나리타 씨는 역시 아나키즘과 관련된 공간답게, 검은 천으로 매장과 좌담회장을 장식해 주었다. 덕분에 좌담회 참석자들이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마련되었다.

페이스북에 늘 활기찬 포스팅을 해 주시는 김태식 선생님과도 처음 만나는 자리, 재일코리안이시라 한국어로 인사했다. 일본어의 존경어/겸양어를 서툴게 사용해서 공손하지 않게 썼을 메일에 늘 존경어/겸양어로 환대해주시는 메일을 보내주셔서 감사했던 후루카와 타카코 선생님도 처음 만나게 되었다. 아프꼼이 지금까지 해 온 것처럼 몸을 직접 움직여 획득(!)하게 된 만남들은 늘 처음부터 이렇게 알 수 없는 에너지로 넘쳐난다.

서울에서 오신 참석자 공임순 선생님과 허윤 선생님은 신주쿠에 있는 <모색사>에 갔다오셨다. <모색사>는 신주쿠에 있는 사회과학 전문서점인데 <일레귤러 어사일럼>과 가까운 곳에 있다. 한번 들어가면 갖고 있는 돈을 책 사는 데 다 탕진하게 되는 불가사의한 곳이다.

도쿄에서 공부하고 있는 윤인로 선생님, 고은미 선생님, 류충희 선생님도 오시고, 후루카와 타카코 선생님과 함께 오다와라 린 선생님도 오시고, 송연옥 선생님도 참석해 주셔서 좋은 말씀을 더해 주셨다.

한국인과 한국어를 모르시는 일본인 선생님들을 위한 통역은 오타쿠의 본고장에서 오타쿠를 연구하면서 일본어 공부를 하고 있던 아프꼼의 신현아 선생님이 활약해 주셨다. 허윤 선생님과 김태식 선생님, 류충희 선생님도 통역과 발언을 셀프로 전환하시면서 좌담회 진행에 도움을 주셨다.

 

만남이 무엇인가를 초래한다. 그것이 아프꼼이 부산과 광주와 한국과 일본을 오고가며 알게 된 것 중의 하나다.2014년 2월 27일의 좌담회 내용은 『문화/과학』 여름호에 개재될 예정이다. 개봉박두!

 

*좌담회 스케치

좌담회는 늘 예상을 벗어나고, 예상을 벗어날 수 있어야만 좌담회라고 부를 수 있다. 만약, 좌담회가 이미 규정된 언어만을 반복하고자 한다면, 굳이 좌담의 형식을 갖출 필요가 없을뿐더러 그럴 거라면 홀로 원고를 쓰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이번 좌담회에는 원래 예상된 사람들보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좌담회에 참여함으로써, 다양한 말이 교차할 수 있도록 배치되었으며 각자가 맡은 역할이나 자리를 지속적으로 바꾸고 변동하도록 조성되었다. 물론 이러한 조성 자체도 기획자 측에서 섬세하게 배려한 결과가 아니라, 이 좌담이 요청하는 주제가 바로 자신이 굳이 맡지 않아도 될 말까지 보태고 덧대면서 이루어진 (‘완전히’라고 말할 수는 없더라도) 자율적으로 흘러간 방식이었다. 모두가 조금씩은 더듬거리면서 한국어와 일본어를, 자신이 구사하고 있는 말을 외국어로 인지하면서 한 단어를 떼는 것, 걷는 것 그러니까 신체-인문학적 실천을 시도하고 있었다고 여겨진다(물론 사전에 충분히 자료와 질문을 어느 정도 작성해서 회람을 요청했고, 이러한 좌담의 경험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는 점에서도 그와 다른 이야기를 전개할 수 있었다고 여겨진다).

참여자들이 예상 밖에서 올 수 있는 것처럼, 좌담의 내용 역시 ‘비정규직’이라는 조건에서만 온 것은 아니었다. 오늘날 인문학이 대학에서 구조조정이라는 현실에 놓여 있는 것은 단순히 ‘경제적인 것’에 의해서만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운 탓이다. 오히려 인지되지 않았던, 이해와 인식의 저편에서 갑자기 출현한 문제들도 가시화되었고 시각화되었다. 더듬거림은 바로 이러한 차원에서 전개된 말이기도 해서, ‘형상’으로 그려낼 수 없는 것을 그려야만 하는 곤혹과 같은 문제로부터 연원한 것이기도 하다. 가령, 일교조(일본교직원노동조합)에 대한 일본의 총리가 취하는 태도와 한국의 전교조에 대한 한국의 보수 정치인들이 취하는 태도는 거의 유사한 측면이 없지 않다. 이러한 진보적, 비판적 교직원 협동조합에 대한 전면적인 공격은 파시즘이 출현했던 역사적 시기 교육의 다양한 방식을 혐오하거나 비난하고 부정하는 것으로 이어진 사례와 무척 닮아 있는 것이다. 대학에서 인문학의 폐지는 동아시아적 대응을 요구하는 아주 중차대한 사안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1945년 이후 대학의 (재)성립과 그에 따라 이루어진 지식의 냉전적 재배치가 도달한 절망적인 지점은 (국민국가적 단위체로서) 리저널과 글로벌 사이에서 기업의 전략에 동참하는 것 외에 달리 도리가 없다고, 그래서, 대학에서 인문학을 폐기하고 지방대학의 수를 줄이는 것으로 정리하고자 한다. 물론 학령인구의 감소도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은 인문학 폐지나 대학 구조조정의 실질적인 원인이 아니다. 오히려 상식적으로 훨씬 교육환경이 더 좋아져야 하지만, 인구 감소 이전과 양적으로 같은 수준을 요구하는 방식을 선택하고 있는 중이다. 즉 대학의 인문적 기능화나 폐지에 맞설 수 있는 방식은 대학으로부터 인문학이 완전히 이탈해야 하는 게 아니라, 대학과 그것을 지탱하는 국가에게 더 나은 방식에의 요구가 절실하다. 대학에서의 인문학 제도의 유지와 더불어 대학 내에서만 아니라 인문학이 삶에서 직접적으로 대면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드는 게 무척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서 인문학의 자생과 자립을 사고하면서,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님으로써, 장치의 발명의 계기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도쿄의 <일레귤러 어사일럼>에 모인 사람들 그리고 좌담회를 마치고 속속 모여든 사람들의 발걸음은 현재 대학이나 인문학의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자산이자 밑천임을 증명해주는 것인지 모른다. 이런 번잡한 일에도 발걸음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 덕택에 비록 미약하지만, 서둘러 미리 포기하지 않아도 좋은지 모른다. 생각해보면, 역사적으로 너무 빨리 모든 것을 재빨리 버리는 데에 익숙해져 그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놓쳐 버리는 듯하다. 자연의 然이 불태움이라는 의미라는 것, 그것이 고기를 익혀 먹는 육식의 형식이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큰 듯하다. 평화와 평등이 도래할 수 있는 말의 아궁이가 대학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 비록 이런 주장이 현재로선 매우 낭만적이고 식상하겠지만, 이런 식상한 판타지에서 대학이 자리를 잡아야 하는 것 아닐까?

좌담회를 마치고 : 왼쪽 아래부터 차가영, 권명아, 장수희, 공임순, 신현아/ 가운데 고은미, 허윤, 송영옥, 오다와라 린, 후루카와 다카코, 김태식/ 뒷줄 류충희, 윤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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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7호][칼럼]#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손희정)

#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

글.손희정
(여성신문 기고문)

시대를 풍미하는 여성혐오와 반동적 복고주의
페미니스트 혐오는 무엇보다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여성혐오와 직접 연결되어 있다. 그것은 페미니스트가 뭘 잘하고 못 하고에 선행하는 문제다.
가부장제 사회는 그 사회가 만들어 온 여성성에 대한 고정관념 및 강박적 이상과 판타지에 부합하는 여성들은 숭배의 대상으로, 그렇지 않은 여성들은 혐오의 대상으로 구성한다. “창녀 vs 성녀”의 이분법적 도식이다. 이런 구분은 여성에 대한 남성의 지배를 정당화하고, 여성으로 하여금 억압적인 성 역할을 내면화하게 함으로써 자율성을 단속하며, 여성 공동체를 분리해서 지배하는 영리한 통치술이다. 조강지처 vs 신여성, 현모양처 vs 여권주의자, 여성 노동자 vs 부르주아 페미니스트, 개념녀 vs 된장녀… 이런 예를 들자면 끝도 없다. ‘신여성, 여권주의자, 부르주아 페미니스트, 된장녀’ 등 혐오의 자리에 놓여있는 ‘여성/여성 이미지’는 언제든지 ‘페미니스트’라는 이름으로 대체될 수 있다. 실제로 페미니스트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김태훈의 글은 이를 잘 보여준다. 페미니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도 그에 대해 아무 말이나 할 수 있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통적인 형태의 여성혐오는 여성을 무시하는 태도인 여성멸시와 다르지 않았다. 흥미로운 것은 2000년대 이후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여성을 싫어하고 폄하하는 태도는 멸시라기보다는 혐오phobia의 형태로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어느 정도 여성에 대한 사회적 ‘두려움’이나 ‘위협감’을 동반한다는 의미다. 김태훈은 ‘무뇌아적 페미니스트’들은 “남성을 공격해 현재의 위치에서 끌어내리면 그 자리를 여성이 차지할 거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하면서, 그런 여성들의 사고방식과 행동이 남성들에게 “생존의 위협을 느끼게 한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남성들은 “살아야 한다는 동물적 본능”에 따라 ‘무뇌아적 페미니스트’들에게 강력하게 저항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러 지표는 2000년대 이후 여성들의 삶의 질이 개선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여성혐오는 여성들의 공적 영역 진출이 약진했던 1990년대보다, IMF 후 여성들이 더 열악한 노동 조건으로 내몰렸을 때 오히려 더 심해졌다. 이는 여성혐오가 여성들의 ‘개선된 현실’에 근거한다기보다 사회의 전반적인 정치, 경제적인 상황과 연관되어 있음을 뜻한다. 기득권으로서 정치적, 경제적 주체였던 남성들이 경제적 안정은 보장받지 못하고 정치적 발언은 전혀 힘을 쓰지 못하며, 그러한 권리들을 박탈당했을 때도 보수적인 문화 안에서 여전히 전통적인 남성의 역할을 강요당할 때, 그들은 여성을 비롯한 다양한 사회적 약자들을 ‘밥그릇 쟁탈전’의 라이벌로 인식하고 공격한다. 과거를 향수하는 반동적 복고주의의 도래다.

페미니즘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백래쉬(backlash, 반발)

페미니스트 혐오가 여성혐오만으로 충분히 설명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 사회는 “누구를 페미니스트로 상상하게 되었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자. 1990년대 말에는 오한숙희나 구성애, 전여옥, 공지영, 유지나, 변영주 등을 떠올렸다. 2010년대의 ‘페미니스트’는 누구일까? 김미경 같은 자기 계발 멘토나 곽정은 같은 섹스 칼럼니스트, 혹은 자수성가형 CEO이자 ‘퀸메이커’ 김성주 같은 여성들이 아닐까?
경제력과 성적 자기결정권을 가진 소비주체로서의 여성의 등장이 페미니즘의 완성이고, <섹스 앤 더 시티>가 대표적인 페미니스트 텍스트로 독해되는 ‘포스트-페미니즘’ 시대다. 페미니스트의 대표 이미지 역시 ‘엘리트 여성’들이다. 경제력, 성적자기결정권, 소비 주체는 페미니즘의 오랜 의제였다. 이들 목표가 달성됐다면 그 역시 페미니즘의 성과다. 문제는 모든 것을 상품화하는 신자유주의 시대다. 자본주의는 페미니즘의 의제조차 상품화해 시장의 영역으로 포섭해 버린다. 자기계발서는 나를 상품으로 만드는 수사다. 섹스 칼럼니스트의 연애 지침은 ‘결혼 시장’을 활성화하는 이성애 연애의 상품화와 다르지 않다. 김성주의 자수성가 스토리, 회비 한 번 내지 않고 대한적십자사의 총재가 된 모습이 우리 시대 페미니스트가 지향해야 할 바인가? 그것은 그저 무한경쟁 시대에 도덕은 사라지고 자신의 생존만이 지상 최대의 과제가 된 동물의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하지만 그들은 마이크를 쥐고 대중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몇 안 되는 여성들이기에 ‘페미니스트’의 대표가 된다. 여성의 목소리를 내는 게 페미니즘의 목표 중 하나지만, 목소리를 낸다고 모두 페미니스트는 아니다.
이렇게 묻고 싶다. 페미니즘의 상품화는 페미니즘의 성공이 아니라, 오히려 페미니즘이 얼마나 힘겨운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반증 아닌가? 이를 페미니즘을 교묘히 포섭하여 무력화시키는 신자유주의의 반격으로 이해하고, 또 정치적으로 그렇게 규정해야 하지 않을까.
년대 이후 급진적인 페미니스트 정치경제학은 자본주의와 국가주의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왔다. 자본주의, 국가주의는 가부장제와의 공모 없이는 등장도 유지도 불가능했음을 밝히고, 그 안에서 ‘약한 고리’를 찾아 세계의 지배적 체제를 전복시키는 데 관심을 기울여 왔다. 그 바탕에는 자본주의와 국가주의를 끝장내지 않는다면 여성해방은 물론 인간해방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자각이 있다. 페미니즘은 존재 그 자체로 근대적 지배 체제의 거대한 구멍과 역설을 드러낸다. 위협적인 철학이자 정치경제학이며, 윤리학이다.
하지만 신자유주의는 페미니즘의 일부분을 자신의 관심사로 끌어안아 페미니즘의 혁명성에 차폐막을 친다. 신자유주의에 동조하고 편승하는 여성들이 있다고 해서 이를 페미니즘의 한계라고 할 수 있는가? ‘그렇다’고 규정하고 페미니즘의 전복적인 상상력과 실천적인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이야말로 신자유주의적 지배체제가 원하는 바일 것이다.
이런 신자유주의적 백래쉬는 일부 여성들의 성공을 가시화하고 강조함으로써 여전히 존재하는 성차별과 공/사 구분에 기초한 성별분업체제를 가린다. 이 착시 효과는 남성들에게 불안과 분노를 느끼게 한다. 나아가 사회 전반의 불안과 분노로 연결돼, 문화적으로는 반동적 복고주의를 불러온다. 그 위에서 신자유주의적 지배체제는 생명을 보호하지 못하는 자신의 무능을 덮고 스스로 영속할 이데올로기적 바탕을 마련한다. ‘무뇌아적 페미니스트’와 ‘페미니즘으로 상상되는 상품’은 그 궤를 함께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 트위터에서 촉발된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 등으로 사람들이 페미니즘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 다양한 사람들의 다층적인 결, 긍정적 에너지 그리고 민우회 회원 증가 등이 유의미한 흐름이 될 수 있도록,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지 혹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적극적으로 사유하고 행동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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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7호][칼럼]열정은 어떻게 작품이 되는가(문강형준)

열정은 어떻게 작품이 되는가

문강형준

김형주 감독의 영화 <망원동 인공위성>은 망원동 한 건물의 지하 작업실에서 송호준 작가의 개인 인공위성 프로젝트가 추진되는 과정을 따라가는 다큐멘터리다. 티셔츠 만 장을 만 명에게 팔아 1억 원을 마련해서 개인이 인공위성을 우주에 쏘아 올린다는 야심찬 프로젝트는 ‘세계 최초’였다. 한 작업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이를 다시 영상 작업으로 만든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프로젝트의 프로젝트라는 이중적 성격을 가진다. ‘인간극장’류였다면 우여곡절 끝에 꿈과 희망을 일구는 개인의 성공담으로 마무리되었을 공산이 크다. <망원동 인공위성>은 다르다. ‘세계최초로 인공위성을 쏘아올린 개인’이라는 포장하기 좋은 메시지가 아니라 ‘꿈과 희망의 작업’처럼 보이는 일의 이면에 존재하는 고통과 외로움을 강조하는 것이다. 영화의 메인 카피(“이것은 꿈과 희망을 전파하는 일입니다”)를 아이러니로 받아들여야 할 이유다.
아무리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 해도, 일단 그것이 하나의 ‘프로젝트’가, ‘서사’가 된 이상 서사의 법칙에 종속되기 마련이다. 프랭크 커모드가 『종말 의식과 인간적 시간』에서 말하듯, 인간은 ‘시작-중간-끝’이라는 서사의 법칙 속에서 시간과 역사를 인식한다. ‘똑’이 있으면 ‘딱’이 있어야 하듯, 창조가 있으면 종말이 있어야 한다. 처음에 즐겁게 시작한 이야기도 결국 ‘데드라인’이라는 이름의 끝으로 가고, 그러다보면 끝의 압박은 처음의 이야기를 잡아먹곤 한다. 여기서 빠져나오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티셔츠가 팔리지 않고, 발사일이 연기되고, 본체 제작이 어려움에 빠지면서 개인들의 참여를 통해 과학을 예술로 만들어낸다는 흥미로운 발상에서 시작한 인공위성 프로젝트는 압박으로 변한다. “내가 왜 이걸 시작했지?”라는 물음이 빈번히 등장하며, 나중엔 무조건 데드라인을 맞추기 위해 모든 것을 거는 프리랜서의 광기마저도 드러난다. ‘꿈과 희망의 전파’는 실제 작업 과정에는 없다.
인공위성 프로젝트가 ‘예술’을 지향했음을 떠올린다면, 이 예술을 마지막까지 가능하게 만든 것은 사실 지난한 ‘노동’이었던 것이다. 영어에서 예술(art)과 장인(artisan)이 동일한 어원에서 나왔듯 예술과 기술은 다르지 않고, 예술의 상위범주인 문화를 가리키는 영어인 ‘culture’는 밭을 가는 쟁기질(cultivate)에서 기원했다. 예술과 문화는 하늘에 떠 있는 고상한 작품으로 독립된 것이 아니라 땅을 파헤치는 수고를 수반하는 노동과 결합되어 있다.
예술에서 노동의 흔적을 제거할 때, 상황은 꼬이기 시작한다. 노동에게 ‘창의력, 즐거움, 열정, 아이디어, 새로움’을 강조하는, 곧 노동을 예술화하는 우리 시대의 이데올로기가 겉으로는 멋져 보이나 실상은 착취로 귀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즐거움과 열정을 강조하며 노동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회피할 때, 즐거움과 열정은 기피대상이 되기 시작한다. 자연스럽게 우러나와야 할 열정이 상품화되는 바로 그 순간(신자유주의), 열정 자체가 없어지는 이들(사토리 세대)도 등장하는 것이다. 한 편에서는 열정이 광고되고, 다른 한 편에서는 무기력한 잉여가 넘쳐나는 이 모순이 우리 시대를 규정한다. 핫식스와 우울증은 서로를 요청한다.
<망원동 인공위성>은 예술과 열정이 노동을 기반으로 함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자본의 상술과 어긋나는 과정도 함께 보여준다. 주인공의 프로젝트는 결국 성공하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망원동 작업실에 홀로 앉아 허공을 멍하게 쳐다본다. ‘성공적인 상품’이 되지 않은 열정은 이 고통과 허무를 받아 안을 줄 알고, 그 속에서 새로운 창조가 다시 솟아날 수 있을 것이다. ‘열정’이 ‘페이’와, ‘창조’가 ‘경제’와 결합되지 않고 그 자체로 남아있을 때, 노동(work)은 작품(work)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겨레> 2015.2.28.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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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7호][칼럼] 무한도전의 ‘토토가’, 90년대 신보수주의 문화전쟁의 전리품(이동연)

무한도전의 ‘토토가’, 90년대 신보수주의 문화전쟁의 전리품

이동연(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작년 연말에서 시작해 신년 초까지 이어진 <무한도전>의 ‘토토가’(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 열풍은 90년대 향수주의 문화 부흥의 시작을 알렸다. ‘토토가’의 마지막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22.2%를 기록했고, 방송에 소개된 모든 곡들이 음원차트를 석권한데다, 방송 중 실시간 검색순위 1위부터 10위를 모두 차지했으니 이 프로그램에 대한 대중의 뜨거운 관심은 ‘조현아’, ‘정윤회’, ‘허니버터칩’ 보다 더하다. 90년대 인기가요를 들을 수 있는 앨범이 신속하게 제작되고, ‘토토가’에 출연한 가수들이 요즘 방송과 행사 섭외 1순위라니 그 열풍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렇다면 ‘토토가’는 90년대 가요를 소환하여 판에 박힌 아이돌 음악시장에 경종을 울린, 착하고 영리한 심지어는 대안적인 프로그램이었나? 내 대답은 ‘노’이다.

어느덧 성인세대들에게는 아련한 추억이 되어버린 90년대 스타 가수들의 히트곡 열창 무대, <무한도전>의 ‘토토가’는 대중의 정서 안에 내장된 문화향수의 유전자를 재빠르게 동시대 오락물로 전환시킨 신보수주의 문화전쟁의 전리품이다. ‘토토가’에서 재연된 90년대 댄스가요는 식상한 아이돌 음악을 대체하기보다는 그것을 가능케 한 원시적 축적물이자, 성인세대들에게 일종의 ‘추억의 몰핀’과도 같은 ‘감각의 물파스’, ‘마음의 보조식품’에 해당된다. 김현정, SES, 터보, 지뉴션, 엄정화, 조성모, 이정현, 그리고 김건모는 현재 가요계를 독점해 버린 아이돌 음악과 연예제작시스템의 공모자들이자 역으로 희생자들이다. ‘토토가’에서 재현된 90년대 댄스 가요는 추억의 상품으로는 아이돌의 대안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시장의 논리로는 연대기적 동질성을 갖는다. 이들도 그때는 가요계를 독점해 버린 아이돌이었기 때문이다.

90년대 댄스가요는 1980년대 정치적 민주화의 열망들이 자본주의 체제 안으로 흡수되면서 발생한 전형적인 신보수주의 문화형식이다. 이는 80년대 대처리즘의 체제 하에 진행된 영국 및 유럽의 신보수주의 문화 형식과 거의 일치한다. 신보수주의 문화는 문화의 정치적 급진성을 무장해제 시키고, 대중들에게 즐겁고 신나는 감각적인 오락물들을 선사했다. 문화의 시장 논리를 선언하고, 소비문화의 성장을 위해 규제를 완화하고, 유행형식을 표준화하여 문화의 독점을 강화했다. 90년대 댄스음악은 대중들의 정치적 감각을 무디게 하는 대신, 문화적 풍요로움의 감각을 활성화시켜 지금 아이돌 음악의 문화자본의 토대를 구축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말하자면 ‘토토가’는 지금의 아이돌 음악과 그 자본을 정당화시켜주면서 동시에 이들의 탐욕스러운 불공정 행위에 면죄부를 준 꼴이 된다. ‘토토가’의 추억의 상품들은 역설적이게도 그 추억을 죽여 절대강자가 된 현재의 지배적 아이돌 음악에게 바치는 피학적 헌사에 가깝다. 불행하게도 그 헌사는 “나는 너의 아버지다”라는 독백이다.

‘토토가’를 기획한 <무한도전>은 대중들에게 무한감동을 준 문화적 난세의 영웅으로 칭송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기획했던 모든 것들은 역사적 가요의 종다양성을 죽여 버린 신보수주 문화의 유령을 무덤에서 불러낸 것에 불과하다. 지금 행복한 향수의 추억은 곧 공기 속으로 사라지고, 무덤에서 소환된 신보수주의 문화의 유령은 역설적이게도 <무한도전>의 저승사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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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7호][칼럼]90년대는 살아 있다(김성일)

90년대는 살아 있다
-2015년이 호출한 90년대, 90년대가 2015년에게 전하는 메시지-

김성일(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객원교수)

2015년 벽두부터 몰아닥친 ‘90년대 앓이’는 한 때의 유행에 끝나지 않고 올 한해 대중문화의 키워드이자 트렌드로 이어질 전망이다. 왜냐하면 ‘토토가’를 통해 봉인 해제된 ‘90년대’의 감수성과 스타일의 울림이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90년대 앓이’는 현재적 삶의 버거움에 대한 대중의 정서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이로부터 현 시기 복고 열풍은 단순히 향수의 정서로만 바라볼 수 없게 만든다. 즉, 신자유주의 재구조화로 인한 시장 원리의 전면화 및 그로부터 초래된 사회양극화는 대중의 삶을 크게 위협하고 있으며, 만성화된 경제적 추락에의 불안은 현재는 물론 미래에 대한 낙관적 기대를 저버리게 했다. 현재의 팍팍한 삶은 좋았던 과거에 대한 추억으로 대중의 의식을 회귀시킨다.
문제는 향수의 정서 안으로 현재적 삶의 모순과 미래에의 도전적 기획들이 융해되어 현실 도피로 귀결된다는 점이다. 90년대로의 타임머신 여행은 신변잡기적 퇴행이 아니라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설계하기 위한 발판이 될 때 의미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 문화의 르네상스로 지칭되는 1990년대가 갖는 특성은 무엇이며, 현 시점에서 대중문화 발전을 위해 어떠한 질료로서 활용될 수 있는가?
사실상 ‘토토가’는 ‘90년대’의 부활에 물꼬를 텄을 뿐, 그 징후는 이전부터 나타나고 있었다. 이미 영화 <건축학 개론>(2012)을 필두로 하여 90년대 정서와 스타일은 드라마(응답하라 1994ㆍ1997)를 통해 대중적 인기를 얻었으며, 작년을 기점으로 인기 정상을 달리던 가수들이 대거 컴백했다. 가령, ‘90년대’의 아이콘인 서태지가 새 노래로 돌아왔고, 재결합한 god는 관객 11만 명을 동원하며 콘서트를 성황리에 마쳤다. ‘동행’(6집)을 발표한 김동률과 고인이 된 신해철을 기리는 추모공연도 90년대의 부활을 알렸다. 이로부터 ‘90년대’는 상품으로서의 가치와 대중의 정서적 공감을 함께 얻으며 다음의 특성을 통해 지금까지도 그 효력이 유지되고 있다.
첫째, 1990년대는 대중문화가 문화로서 인정받게 된 인식의 전환이 있었다. 이전시기까지 대중문화는 ‘3S’(screenㆍsportsㆍsex) 정책으로 규정되어 싸구려ㆍ저질, 선정성ㆍ상업성 논란으로부터 몰매를 맞고 있었다. 이러한 인식 속에서 대중문화는 늘 비판 혹은 극복의 대상이거나 기껏해야 B급(3류) 문화로 규정될 뿐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에 오게 되면, 대중문화는 세계화 시대에서 새로운 부가가치 창출과 국가경쟁력 강화에 이바지할 대표적 영역으로 급부상한다. 이러한 인식의 전환에 영화 <쥬라기공원>(1993)의 세계적 흥행 성공이 있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에 국가는 검열ㆍ규제 일변도에서 진흥ㆍ육성으로의 문화정책을 실시하게 되었고, 전문 인력 양성을 위한 문화 관련 전공ㆍ강좌가 많은 대학에서 설립ㆍ편성되었다.

그러나 현 시기 한국의 문화지형은 위기에 처해 있다. 한미 FTA 체결 선결 조건으로 스크린쿼터 의무상영일수가 대폭 축소된 것은 문화의 가치와 의미에 대한 인식의 퇴행이 가져온 대표적 결과이다. 즉, 반도체와 휴대폰 수출이라는 경제적 논리가 문화 논리를 대체하며 과거 산업화시대의 마인드로 돌아간 것이다. 이는 ‘돈’이 되는 문화에 대한 문화산업계의 천착으로 이어졌고, 대기업과 거대 기획사의 문화독점 강화는 문화생태계를 크게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멀티플렉스 상영관이 블록버스터 인기영화만을 집중 상영한다거나 방송국이 시청률과 광고 수주에만 얽매여서 사회적 책임을 망각한 사례는 이러한 정황을 반영한다. 여전히 문화 중흥을 꿈꾼다면 문화에 대한 인식의 새로운 전환이 있었던 1990년대를 떠올릴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문화는 경제적 가치보다 사회적 가치가 우선시되는, 즉 모든 구성원이 향유 가능한 공공재임을 재차 확인할 필요가 있다.
둘째, 1990년대는 신세대를 통해 새로운 주체의 등장을 알림과 동시에 개인의 미시적이고 주관적인 감성과 영역이 새로운 형식으로 재현되었다. ‘X세대’로 지칭되는 신세대 등장은 민중ㆍ민족ㆍ계급이라는 1980년대의 집합적 주체에 대한 인식을 근본부터 바꿔놓았다. 수출 주도형으로부터 내수시장 확대로의 경제정책 전환이 주된 원인이었는데, 대중소비시장의 확장에 따른 음악ㆍ영화ㆍ광고ㆍ스포츠ㆍ만화 같은 장르의 급격한 분화 및 감각적 영상 기호와 시각 이미지의 과잉 연출, 멋스러움을 강조한 소비 공간의 창출은 신세대의 생활감각을 새롭게 형성시켰다. 이러한 신세대는 당시 주관적 취향과 정서에 초점이 맞춰진 개인으로 조명되었는데, 이는 총체성과 거대서사를 거부한 당시 포스트담론(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구조주의, 포스트맑스주의)의 영향에서 비롯되었다.
9년째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를 기록하며 삶(행복)의 만족도가 급격히 떨어진 한국사회에서 대중문화는 새 시대를 이끌어 갈 주체 조명에 힘써야 한다. 새로운 주체는 개인, 세대, 계급, 계층을 아우를 수 있는데, 특히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지속적 조명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 성공 후일담과 육아에 집중된 가정생활에 집중된 스타의 사생활 영상은 새로운 주체의 조명에 한계가 있다. 그렇다고 <인간극장> 같은 다큐멘터리를 많이 만들자는 얘기는 아니다. 예능이건 다큐건 간에, 삶의 한계지대로 추방당한 대중의 삶을 함께 공감할 수 있도록 매체의 사회적 책임과 윤리를 재차 물어야 할 시점에 있는 것이다. 1990년대에 신세대롤 조명한 대중문화는 적어도 당시의 변화된 삶과 그에 대한 다양한 반응들(환호와 혐오, 비판과 무관심)을 주저 없이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이로부터 과거로 회귀한 듯한 국가의 강화된 검열, 낙하산 인사로 파견된 윗분들의 월권행위, 수익에만 목멘 창작ㆍ유통 시스템으로부터 자유로울 방도와 용기를 90년대로부터 발견할 필요가 있다.
셋째, 1990년대는 인디문화의 ‘씬’(scene)이 만들어지면서 새로운 감수성과 스타일의 문화적 실험이 자유롭게 시도되었다. 일명 ‘홍대 앞’으로 상징되는 인디문화 혹은 언더그라운드문화의 융성은 1990년대가 낳은 대표적 산물이다. 문화산업이 급격히 팽창하던 당시에 홍대 앞 인디문화 씬은 현학적이고 상업성에 찌든 기성의 창작 방식에 반기를 들며 자신만의 작가정신으로 자율적 문화 진지를 쌓았다. 음악, 광고, 디자인, 문화기획 등의 영역에서 자신의 미적 코드를 스스로 만들고 대중과 소통하려 한 문화전사들이 있었기에, 한국 문화의 다양성은 그나마 확보될 수 있었던 것이다.
현 시기 문화독점이 초래한 문화생태계 위기에 대한 대응은 1990년대 인디문화의 씬을 계승ㆍ발전시키면서 이루어져야 한다. ‘돈’이 되는 작품만을 생산ㆍ유통시키는 작금의 시스템은 사회양극화 현상을 문화계에 그대로 이식시켰다. 이로부터 확실한 수익 확보 가능성에 따라 창작의 방향과 내용이 결정된다. 1990년대의 인디문화 씬은 이러한 작금의 문화 환경에 경종을 울리고 대안적 창작활동을 모색하는데 있어 유의미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인디정신이라 부를 만한 창작자로서의 자존감을 재발견하고, 활발히 전개 중인 대안문화운동(예술인 협동조합, 문화귀촌운동, 생태문화네트워크 등)의 정신적 동인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넷째, 1990년대는 문화개방과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문화의 세계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WTO체제 구축(1994)은 문화를 교류의 대상으로 설정함으로써 문화 개방 및 문화의 세계화를 본격적으로 이끌어냈다. 이전시기까지 문화는 일국적 차원에서 생산ㆍ유통되거나 기껏해야 미국과 일본의 대중문화만이 세계화되는 국면이었다. 그러나 WTO체제 이후 세계 각국의 문화는 실시간으로 확산ㆍ경험되고 있으며, 대중의 인식과 정체성 형성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가령, 1990년대 힙합을 수용한 한국의 대중가요는 음악뿐 아니라 말투, 제스처, 패션에 이르기까지 생활양식의 전반적 변화를 주도했다. 또한 1990년대 말부터 동아시아를 필두로 한 한국대중문화의 수용은 ‘한류’라는 문화현상을 낳으며 세계 대중문화산업지형에서 확고한 입지를 구축케 했다.
현 시기 한류는 더 이상 사회적 이슈가 안 될 정도로 일상화되었다. 이제는 기획단계에서부터 해외시장을 고려할 정도로 창작 환경이 크게 바뀌었다. 그러나 한류의 ‘그늘’이라 할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먼저 업계 종사자나 정책 실무자들은 한류를 경제주의적 방식으로 한정해 인식하고 있다. 즉, 한류를 한국의 브랜드 이미지 강화에 활용하여 수출 증대에 힘쓰려 한다. 이러한 발상과 행태는 대만을 비롯한 한류 붐을 일으켰던 나라로부터 문화제국주의라는 비판을 듣게 했다. 또한 몇몇 스타에게 집중된 지원으로 인해 다양한 장르 및 예술가들이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되었다. 1990년대에 이루어진 진흥ㆍ육성으로의 문화정책 전환과 각급 교육현장에서의 전문 인력 양성은 현재 수준의 수익성 모델로부터 어느 정도 거리가 있었다. 한류가 여전히 지속되고 발전하려면 상호주의적 입장과 함께 다양한 장르 및 예술가에 대한 공평한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역사란 죽은 과거가 아닌 현재에도 그 영향이 미치고 있음”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영화 <박물관은 살아있다>의 제작 동기를 유추할 수 있다. 현 시기 ‘90년대 앓이’ 역시 좋았던 과거에 대한 낭만적 향수를 넘어 한국의 대중문화가 처한 현실을 성찰하고 발전 방안을 모색할 수 있는 건실한 과거로의 여행이 되어야 한다. 실로 1990년대에는 (현재와 비교할 때) 돈과 권위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만의 미적 실험들이 자유롭게 시도되었다. 이러한 도전 정신과 자유로움이 있었기에 다양한 양식의 질 높은 문화생산물들이 1990년대에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신자유주의 전횡이 극에 달해 문화생태계가 크게 훼손된 현 상황에서 ‘90년대 정신’이 다시금 요청되는 것은 위의 이유 때문이다.

이 글은 월간<방송작가> 3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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