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7호][좌담회후기]인문장치를 발명하자!―비정규 대학구성원 좌담회(아프꼼)

인문장치를 발명하자!―비정규 대학구성원 좌담회

연구모임 아프꼼

 

*2014년 2월 27일, 도쿄 신주쿠의 한 귀퉁이 <일레귤러 어사일럼>이라는 아나키즘과 관련된 활동을 하는 공간에서 ‘인문장치를 발명하자-비정규직 대학구성원 좌담회’가 시작되었다. 1시가 조금 넘자, 메일로 겨우 연락하고, 섭외했던 분들이 그 모습을 드러내셨다.

<일레귤러 어사일럼>을 운영하는 나리타 씨는 역시 아나키즘과 관련된 공간답게, 검은 천으로 매장과 좌담회장을 장식해 주었다. 덕분에 좌담회 참석자들이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마련되었다.

페이스북에 늘 활기찬 포스팅을 해 주시는 김태식 선생님과도 처음 만나는 자리, 재일코리안이시라 한국어로 인사했다. 일본어의 존경어/겸양어를 서툴게 사용해서 공손하지 않게 썼을 메일에 늘 존경어/겸양어로 환대해주시는 메일을 보내주셔서 감사했던 후루카와 타카코 선생님도 처음 만나게 되었다. 아프꼼이 지금까지 해 온 것처럼 몸을 직접 움직여 획득(!)하게 된 만남들은 늘 처음부터 이렇게 알 수 없는 에너지로 넘쳐난다.

서울에서 오신 참석자 공임순 선생님과 허윤 선생님은 신주쿠에 있는 <모색사>에 갔다오셨다. <모색사>는 신주쿠에 있는 사회과학 전문서점인데 <일레귤러 어사일럼>과 가까운 곳에 있다. 한번 들어가면 갖고 있는 돈을 책 사는 데 다 탕진하게 되는 불가사의한 곳이다.

도쿄에서 공부하고 있는 윤인로 선생님, 고은미 선생님, 류충희 선생님도 오시고, 후루카와 타카코 선생님과 함께 오다와라 린 선생님도 오시고, 송연옥 선생님도 참석해 주셔서 좋은 말씀을 더해 주셨다.

한국인과 한국어를 모르시는 일본인 선생님들을 위한 통역은 오타쿠의 본고장에서 오타쿠를 연구하면서 일본어 공부를 하고 있던 아프꼼의 신현아 선생님이 활약해 주셨다. 허윤 선생님과 김태식 선생님, 류충희 선생님도 통역과 발언을 셀프로 전환하시면서 좌담회 진행에 도움을 주셨다.

 

만남이 무엇인가를 초래한다. 그것이 아프꼼이 부산과 광주와 한국과 일본을 오고가며 알게 된 것 중의 하나다.2014년 2월 27일의 좌담회 내용은 『문화/과학』 여름호에 개재될 예정이다. 개봉박두!

 

*좌담회 스케치

좌담회는 늘 예상을 벗어나고, 예상을 벗어날 수 있어야만 좌담회라고 부를 수 있다. 만약, 좌담회가 이미 규정된 언어만을 반복하고자 한다면, 굳이 좌담의 형식을 갖출 필요가 없을뿐더러 그럴 거라면 홀로 원고를 쓰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이번 좌담회에는 원래 예상된 사람들보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좌담회에 참여함으로써, 다양한 말이 교차할 수 있도록 배치되었으며 각자가 맡은 역할이나 자리를 지속적으로 바꾸고 변동하도록 조성되었다. 물론 이러한 조성 자체도 기획자 측에서 섬세하게 배려한 결과가 아니라, 이 좌담이 요청하는 주제가 바로 자신이 굳이 맡지 않아도 될 말까지 보태고 덧대면서 이루어진 (‘완전히’라고 말할 수는 없더라도) 자율적으로 흘러간 방식이었다. 모두가 조금씩은 더듬거리면서 한국어와 일본어를, 자신이 구사하고 있는 말을 외국어로 인지하면서 한 단어를 떼는 것, 걷는 것 그러니까 신체-인문학적 실천을 시도하고 있었다고 여겨진다(물론 사전에 충분히 자료와 질문을 어느 정도 작성해서 회람을 요청했고, 이러한 좌담의 경험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는 점에서도 그와 다른 이야기를 전개할 수 있었다고 여겨진다).

참여자들이 예상 밖에서 올 수 있는 것처럼, 좌담의 내용 역시 ‘비정규직’이라는 조건에서만 온 것은 아니었다. 오늘날 인문학이 대학에서 구조조정이라는 현실에 놓여 있는 것은 단순히 ‘경제적인 것’에 의해서만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운 탓이다. 오히려 인지되지 않았던, 이해와 인식의 저편에서 갑자기 출현한 문제들도 가시화되었고 시각화되었다. 더듬거림은 바로 이러한 차원에서 전개된 말이기도 해서, ‘형상’으로 그려낼 수 없는 것을 그려야만 하는 곤혹과 같은 문제로부터 연원한 것이기도 하다. 가령, 일교조(일본교직원노동조합)에 대한 일본의 총리가 취하는 태도와 한국의 전교조에 대한 한국의 보수 정치인들이 취하는 태도는 거의 유사한 측면이 없지 않다. 이러한 진보적, 비판적 교직원 협동조합에 대한 전면적인 공격은 파시즘이 출현했던 역사적 시기 교육의 다양한 방식을 혐오하거나 비난하고 부정하는 것으로 이어진 사례와 무척 닮아 있는 것이다. 대학에서 인문학의 폐지는 동아시아적 대응을 요구하는 아주 중차대한 사안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1945년 이후 대학의 (재)성립과 그에 따라 이루어진 지식의 냉전적 재배치가 도달한 절망적인 지점은 (국민국가적 단위체로서) 리저널과 글로벌 사이에서 기업의 전략에 동참하는 것 외에 달리 도리가 없다고, 그래서, 대학에서 인문학을 폐기하고 지방대학의 수를 줄이는 것으로 정리하고자 한다. 물론 학령인구의 감소도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은 인문학 폐지나 대학 구조조정의 실질적인 원인이 아니다. 오히려 상식적으로 훨씬 교육환경이 더 좋아져야 하지만, 인구 감소 이전과 양적으로 같은 수준을 요구하는 방식을 선택하고 있는 중이다. 즉 대학의 인문적 기능화나 폐지에 맞설 수 있는 방식은 대학으로부터 인문학이 완전히 이탈해야 하는 게 아니라, 대학과 그것을 지탱하는 국가에게 더 나은 방식에의 요구가 절실하다. 대학에서의 인문학 제도의 유지와 더불어 대학 내에서만 아니라 인문학이 삶에서 직접적으로 대면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드는 게 무척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서 인문학의 자생과 자립을 사고하면서,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님으로써, 장치의 발명의 계기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도쿄의 <일레귤러 어사일럼>에 모인 사람들 그리고 좌담회를 마치고 속속 모여든 사람들의 발걸음은 현재 대학이나 인문학의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자산이자 밑천임을 증명해주는 것인지 모른다. 이런 번잡한 일에도 발걸음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 덕택에 비록 미약하지만, 서둘러 미리 포기하지 않아도 좋은지 모른다. 생각해보면, 역사적으로 너무 빨리 모든 것을 재빨리 버리는 데에 익숙해져 그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놓쳐 버리는 듯하다. 자연의 然이 불태움이라는 의미라는 것, 그것이 고기를 익혀 먹는 육식의 형식이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큰 듯하다. 평화와 평등이 도래할 수 있는 말의 아궁이가 대학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 비록 이런 주장이 현재로선 매우 낭만적이고 식상하겠지만, 이런 식상한 판타지에서 대학이 자리를 잡아야 하는 것 아닐까?

좌담회를 마치고 : 왼쪽 아래부터 차가영, 권명아, 장수희, 공임순, 신현아/ 가운데 고은미, 허윤, 송영옥, 오다와라 린, 후루카와 다카코, 김태식/ 뒷줄 류충희, 윤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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