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 19호][연구자료] 박근혜 퇴진 국면에서 본 문화정책의 현재성 (이원재, 예술인소셜유니온+광장토론회 포럼 발제문)

[예술인소셜유니온+광장토론회 포럼 발제문]

박근혜 퇴진 국면에서 본 문화정책의 현재성

이원재 (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 소장)

1. 

역설적이게도 가장 “국가”와 “애국심”을 강조했던 자들의 손에서 “국가의 사유화”가 자행되었다. 대부분의 “국가주의자”들에게 국가란 자신과 동일한 것(이라는 착각)이며, 자신은 철저한 이권의 살덩어리였기 때문이다. 어쩌면 역설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결말이다. 국가주의자들이 늘 거품 물고 침 튀기며 “꽥꽥-”거리는 국가는 공공성과는 관련이 없다. 최소한의 개인적 윤리와 공공적 철학(미학)도 없는 자들의 국가행정(국가폭력)이 한국 문화행정의 몰락을 가져왔다.

지금은 문제 지점을 명확하게 확인하는 것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문화정책과 문화행정의 전환을 위해서는 “모든 것이 다 문제다”가 아니라 “이것부터 해결하자”라는 입장과 토론(공론장) 그리고 사회적 실천(연대)가 필요한 때다.

2.

“박근혜 게이트” 혹은 최순실을 비롯한 비선 실세들의 국정 농단이 “문화행정”,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화부)의 영토에서 전면화 되었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먼저 문화행정, 문화정책, 문화사업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사람들이 전제하고 있는 좁은 의미의 영역(“문화예술계”)를 넘어 국정 운용 전반에 걸쳐 매우 광범위하고 중요하게 활용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다시 말해 문화는 문화융성이나 창조경제 등에서 수 없이 도용되었듯이 현대 자본주의 국가에 있어 문화적, 경제적, 정치적 범용성(확장성)을 획득해 왔다. (예를 들어 새누리당 집권 이후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서 진행 된 대규모 토건 사업들은 대부분 문화의 옷을 입고 있다.)

또한 문화를 둘러 싼 국가 문화행정의 확장이나 심화에도 불구하고 문화는 여전히 정치 및 경제적 필요에 의해 언제든지 좌지우지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번 박근혜 게이트 사태는 확인시켜 주었다. 최순실을 비롯한 비선 실세들이 아무렇지 않게 문화행정에 개입할 수 있었던 것은 문화행정이 (다른 국가 행정에 비해 상대적으로) 여전히 전문성, 독립성의 최소 기준도 없이 비전문적인 권력 집단에 의해 도구화될 수 있는 구조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아직 한국 사회는 문화정책이나 문화행정에 대한 사회적 합의 구조, 그 합의를 “상식”, “제도”라는 수준에서조차 운용할 사회적 시스템이 부재하다. 심지어 국가 중앙부처인 문화부가 몇몇 비상식적이고 불법적인 개인들에게 수년간 놀아나도 그것을 견제하거나 조정할 수 있는 최소한의 행정적 안전장치, 공직자들의 직업윤리, 전문가들의 사회적 통제 능력 등이 실종된 상태이다.

3.

문화부의 몰락은 사실 이명박 정권 때부터 예상되었던 흐름이다. 문화부는 문화예술계에서 늘 언급되었던 바와 같이 2000년대 중반의 <창의한국>, 다시 말해 시민사회와 문화예술 현장의 전문성에 기반하여 수립되었던 “한국 문화정책의 근대화” 또는 “정상화” 이후 실질적인 문화정책과 행정의 전문성을 축적하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이명박, 박근혜 정권 이후 <창의한국>의 구조 속에서 개별 사업만을 이름 바꾸기 식으로 추진(심지어 그 정책적 취지도 이해하지 못한 채 훼손, 왜곡)하는 것에 머물고 있었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 모두 문화비전의 수립에 철저하게 실패하였고, 대부분의 공력을 “문화예술계 내부의 좌파 적출”,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작성 및 통제”, “비상식적인 낙하산 인사와 나눠주기식 문화예산 배분”에 사용하였다.

이번 박근혜 게이트의 참혹함은 최순실을 비롯한 “우주의 기운”으로 무장된 비선 실세들의 부패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기저에는 문화부가 지난 10년 동안 축적해 온 비상식적이고 비전문적이며 무능력한 행적 구조가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4.

문화부의 몰락과 관련해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또 다른 지점이 있다. 바로 문화부가 문화정책을 다루는 부처가 아니라 국가 홍보를 다루는, 적확하게 말하면 집권세력의 국정 홍보를 담당하는 전근대적 행정부(공보처)로 퇴행했다는 점이다. 새누리당 집권 이후 가속화된 이러한 경향성은 철저한 중앙집권적 국가권력 사회를 지향하는 박근혜 정권에서 전면화 되었다. 문화예술전문기관들의 독립성과 자율성 훼손, 지방자치단체들에 대한 일방적 전달 체계, 개별 예술가들에 대한 검열 등 시대착오적인 국가 문화행정의 원인이 여기에 있다. 한국은 물론 지구적으로 일반화된 협치(거버넌스), 지역화, 시민력 등의 새로운 가치들은 새누리당 집권 이후 중앙정부의 정책과 행정에서 실종되었다. 그리고 문화부는 지방자치단체들의 정책을 표절하거나 흉내 내는 것을 반복하는 수준으로 전락했다. 지구적, 한국적 차원에서 국가 주무부처, 중앙정부 기관들의 핵심적인 행정 기능이 사회적 협력을 모아내고 지원하는 패러다임으로 전환되었으나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문화부는 그러한 문화정책의 현재성에서 이탈한 채 고립과 퇴행을 자초해 온 셈이다.

5.

최근 박근혜 게이트의 출발점이자 이미 박근혜 정권 집권 기간 동안 반복되어 온 예술 검열, 블랙리스트 작성 및 운용이 이러한 구조 속에서 자행되었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그것은 단순한 “이데올로기 공세”가 아니라 국가 단위 문화, 문화정책, 문화행정에 대한 철저한 국가 폭력의 과정이었고, 철저한 정치경제적 실익과 사유와를 위한 과정이었다. 이명박, 박근혜와 같이 잘못된 국가관을 가진 국가 통치자뿐만이 아니라 그것에 적극적으로, 문화행정을 사유화하면서까지 동조했던 부패세력들, 그러한 거대한 세력과 구조를 무비판적으로 어떠한 공직 윤리와 책임 없이 수행했던 부역자들, 권력의 동향에 따라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기회주의자들을 포괄하는 “국가 문화행정의 부패한 카르텔” 혹은 “문화정책의 옷을 입은 국가 폭력의 가해자들”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단절이 필요한 때다.

6. 

박근혜가 탄핵되었다. 그리고 “이제 안정적인 국정을 위해 시민들은 일상으로”와 “탄핵은 시작일뿐 이번에는 반드시 한국 사회를 바꿔야”의 힘겨루기가 시작되었다. 1987년 민주화 투쟁, 시민 혁명의 결과에 노태우가 있었음을 상기해야 한다. 새로운 권력, 더 많은 민주주의는 여의도가 아니라 광장에서 나온다. 더 많이 토론하고 조금 더 행동하자. 불과 한 달 전에, 그 누가 이런 결말을 예측했던가. 우리는, 광장은, 시민은 언제나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위대하다.

마지막으로 문화정책의 관점에서 박근혜 탄핵 국면에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을 제안해 보면 다음과 같다.

■ 박근혜의 즉각적인 퇴진을 위한 예술행동과 광장정치

■ 조윤선을 비롯하여 박근혜 게이트 관계자들의 즉각적인 직무정지와 구속수사 활동

■ 김기춘, 조윤선 등 박근혜 정권에서 문화예술 검열과 블랙리스트 운용을 주도했던 부역자들에 대한 조사와 처벌

■ 문화정책과 문화행정을 둘러 싼 다양하고 혁신적인 사회적 토론 플랫폼 형성

■ 문화부 해체 혹은 재구성을 비롯하여 향후 문화정책 운용의 행정 시스템 대안 제시

 - 국가 문화정책의 협치 구조 마련과 문화부 해체 (또는 최소한의 기획조정 기능 부여)

 - 문화정책의 전면적인 지역화 정책과 제도 마련

 - 문화부의 직접 사업 금지 조치와 문화예술전문기관의 혁신적인 자율성과 독립성 보장 제도화

 - 문화예술인 지원 정책과 제도의 혁신 : 문화예술인 기본 소득 제도 도입 등 지원 사업구조를 통한 창작 검열 및 통제 구조 무력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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