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7호][칼럼]열정은 어떻게 작품이 되는가(문강형준)

열정은 어떻게 작품이 되는가

문강형준

김형주 감독의 영화 <망원동 인공위성>은 망원동 한 건물의 지하 작업실에서 송호준 작가의 개인 인공위성 프로젝트가 추진되는 과정을 따라가는 다큐멘터리다. 티셔츠 만 장을 만 명에게 팔아 1억 원을 마련해서 개인이 인공위성을 우주에 쏘아 올린다는 야심찬 프로젝트는 ‘세계 최초’였다. 한 작업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이를 다시 영상 작업으로 만든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프로젝트의 프로젝트라는 이중적 성격을 가진다. ‘인간극장’류였다면 우여곡절 끝에 꿈과 희망을 일구는 개인의 성공담으로 마무리되었을 공산이 크다. <망원동 인공위성>은 다르다. ‘세계최초로 인공위성을 쏘아올린 개인’이라는 포장하기 좋은 메시지가 아니라 ‘꿈과 희망의 작업’처럼 보이는 일의 이면에 존재하는 고통과 외로움을 강조하는 것이다. 영화의 메인 카피(“이것은 꿈과 희망을 전파하는 일입니다”)를 아이러니로 받아들여야 할 이유다.
아무리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 해도, 일단 그것이 하나의 ‘프로젝트’가, ‘서사’가 된 이상 서사의 법칙에 종속되기 마련이다. 프랭크 커모드가 『종말 의식과 인간적 시간』에서 말하듯, 인간은 ‘시작-중간-끝’이라는 서사의 법칙 속에서 시간과 역사를 인식한다. ‘똑’이 있으면 ‘딱’이 있어야 하듯, 창조가 있으면 종말이 있어야 한다. 처음에 즐겁게 시작한 이야기도 결국 ‘데드라인’이라는 이름의 끝으로 가고, 그러다보면 끝의 압박은 처음의 이야기를 잡아먹곤 한다. 여기서 빠져나오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티셔츠가 팔리지 않고, 발사일이 연기되고, 본체 제작이 어려움에 빠지면서 개인들의 참여를 통해 과학을 예술로 만들어낸다는 흥미로운 발상에서 시작한 인공위성 프로젝트는 압박으로 변한다. “내가 왜 이걸 시작했지?”라는 물음이 빈번히 등장하며, 나중엔 무조건 데드라인을 맞추기 위해 모든 것을 거는 프리랜서의 광기마저도 드러난다. ‘꿈과 희망의 전파’는 실제 작업 과정에는 없다.
인공위성 프로젝트가 ‘예술’을 지향했음을 떠올린다면, 이 예술을 마지막까지 가능하게 만든 것은 사실 지난한 ‘노동’이었던 것이다. 영어에서 예술(art)과 장인(artisan)이 동일한 어원에서 나왔듯 예술과 기술은 다르지 않고, 예술의 상위범주인 문화를 가리키는 영어인 ‘culture’는 밭을 가는 쟁기질(cultivate)에서 기원했다. 예술과 문화는 하늘에 떠 있는 고상한 작품으로 독립된 것이 아니라 땅을 파헤치는 수고를 수반하는 노동과 결합되어 있다.
예술에서 노동의 흔적을 제거할 때, 상황은 꼬이기 시작한다. 노동에게 ‘창의력, 즐거움, 열정, 아이디어, 새로움’을 강조하는, 곧 노동을 예술화하는 우리 시대의 이데올로기가 겉으로는 멋져 보이나 실상은 착취로 귀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즐거움과 열정을 강조하며 노동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회피할 때, 즐거움과 열정은 기피대상이 되기 시작한다. 자연스럽게 우러나와야 할 열정이 상품화되는 바로 그 순간(신자유주의), 열정 자체가 없어지는 이들(사토리 세대)도 등장하는 것이다. 한 편에서는 열정이 광고되고, 다른 한 편에서는 무기력한 잉여가 넘쳐나는 이 모순이 우리 시대를 규정한다. 핫식스와 우울증은 서로를 요청한다.
<망원동 인공위성>은 예술과 열정이 노동을 기반으로 함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자본의 상술과 어긋나는 과정도 함께 보여준다. 주인공의 프로젝트는 결국 성공하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망원동 작업실에 홀로 앉아 허공을 멍하게 쳐다본다. ‘성공적인 상품’이 되지 않은 열정은 이 고통과 허무를 받아 안을 줄 알고, 그 속에서 새로운 창조가 다시 솟아날 수 있을 것이다. ‘열정’이 ‘페이’와, ‘창조’가 ‘경제’와 결합되지 않고 그 자체로 남아있을 때, 노동(work)은 작품(work)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겨레> 2015.2.28.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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