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7호][칼럼]팽목항에 가다

시간이 멈춘 곳, 팽목항에 가다

 

정원옥(중앙대학교 강사)

이미 마감을 수십 일 넘긴 <문화/과학> 원고를 꼬박 밤을 새워 넘기고서야 팽목항으로 향할 수 있었다. 먼 길이었다. 물리적인 거리가 아니라, 마음의 거리였다. 약속을 미루고, 휴식을 포기하며 팽목항으로 향하기까지 305일이나 걸렸다. 시간이 없었다는 건 핑계일 수 있다. 하지만4·16 이후에도 일상은 반복된다. 왠지 더 바빠지기만 하는 일상 속에서 틈을 내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그나마도 문화연대 활동가들과 동행하는 길이 아니었다면 버스에 몸을 실을 엄두가 나지 않았을 것이다. 낡은 관광버스, 딱딱한 의자, 어떻게 몸을 가누어도 잠을 청할 수 있는 자세가 나오지 않았지만 마음만은 편했다. 늘 가보고 싶었던 팽목항,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는 미안함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게 된 것이다.

1월 중순 무렵, 단원고 희생자 유가족들이 안산에서 팽목항까지 도보행진을 할 것이라는 소식을 접했을 때부터 마음이 불편했다. 지난여름엔 십자가를 짊어지고 그 먼 길을 걸어가더니 이번엔 엄동설한이다. 봄이 오면 싸워도 되련만 유가족들은 어쩌자고 이 추운 날씨에 또 그 먼 길을 걷겠다는 것인가! 유가족들의 마음이 짐작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특별법이 통과된 지 석 달이 다 되도록 조사위원회는 문을 열지도 못하고 있고, 정부여당은 돈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여차하면 세월호 인양을 포기할 태세다. 우리는 그저 추이를 지켜볼 뿐이지만, 유가족들은 그럴 수 없다. ‘온전한 세월호 인양과 실종자 수습 및 진상규명 촉구를 위한 도보행진’은 세월호가 인양되지 못하는 사태를 막아야만 하는 유가족들의 절박함과 다급함을 보여준다. 다가오는 봄에는 세월호를 인양하는 작업에 착수해야만 실종자 가족들을 집으로 돌아오게 하고, 4·16의 진실도 규명할 수 있을 것이다.

2월 14일은 19박 20일이라는 대장정을 마친 유가족들이 팽목항에 도착하는 날이었다. 이날 팽목항에서 열린 범국민대회는 도보행군을 마친 유가족을 맞이하고 세월호 인양을 촉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휴게소에서 문화연대 활동가들과 점심 식사를 한 시간 외에 나는 거의 잠에 취해 있었다. 눈을 뜨니 진도였고, 한참을 더 달리니 팽목항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인파를 따라 또 한참을 걸어들어가니 텔레비전과 사진을 통해 무수히 봐왔던 팽목항이 저 멀리 보였다. 등대로 이어지는 방파제, “기다리는 팽목항”이었다.

등대까지 2백 미터 남짓한 방파제에는 먼저 도착한 집회 참가자들의 순례가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유가족들이 오열하고 통곡했던 자리에 나도 섰다. 유가족들의 등 너머로 보였던 검은 바다는 무섭기만 했는데, 이 날 바다는 잔잔하고 아름답기조차 했다. 이 바다에서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304명의 생명을 수장시킨 세월호가 가라앉아 있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햇살도, 바람도, 바다도 4월 16일의 참혹했던 풍경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날 전국 곳곳에서 모인 시민들의 수는 3천 명에서 5천 명까지 추산된다. 1천 8백 개의 의자를 준비한 범국민대책위와 가족대책위는 예상을 뛰어넘는 많은 시민들이 모인 것에 놀라움과 감사의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세 시간 남짓 진행된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수천 명의 시민들이 이른 아침부터 관광버스를 대절하고, 배를 타고, 기차를 타고 팽목항으로 달려온 것이다. 자원봉사팀이 준비한 떡국을 나누어 먹은 뒤, 범국민대회가 시작되었다. 주최 측이 세심한 신경을 써서 하나하나 준비했을 문화행사를 감상하는 시민들의 표정은 차분하고 즐거워보였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남도의 이름도 몰랐던 작은 항구, 팽목항을 찾은 적이 있었을까. 팽목항이 들썩였다.

방파제가 바라보이는 넓은 공터에 조립식 건물 여남은 채가 눈에 띠었다. 실종자 가족들이 거주하고 있는 공간이라고 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다시 봄이 오도록 팽목항을 떠날 수 없는 사람들. 이영숙, 권재근, (권)혁규, 박영인, 허다윤, 남현철, 조은화, 고창석, 양승진의 가족들에게 팽목항에서의 하루하루를 견디는 일은 어떤 의미일까. 많은 유가족들이 4월 16일에서 시간이 멈추었다고 말하는데, 실종자 가족들에게 팽목항은 매일 매일이 4월 16일인 곳, 시간이 멈추어버린 구체적인 장소가 아닐까. 집회가 끝난 후, 팽목항 입구 주차장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분주했다. 달려온 만큼의 길을 되짚어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팽목항으로 내려올 때의 편안했던 마음과 달리, 떠나는 마음은 편치 않았다. 밀물처럼 몰려왔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버스의 행렬을 어디에선가 실종자 가족들이 쳐다보고 있을 것만 같아서였다.

4·16을 잊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팽목항의 아픔을 기억하는 일이 그 중 하나일 것이다.시간이 멈춘 그 곳, 팽목항에는 사랑하는 가족이 돌아오기를, 가족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유일한 희망이 된 실종자 가족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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