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7호][칼럼] 무한도전의 ‘토토가’, 90년대 신보수주의 문화전쟁의 전리품(이동연)

무한도전의 ‘토토가’, 90년대 신보수주의 문화전쟁의 전리품

이동연(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작년 연말에서 시작해 신년 초까지 이어진 <무한도전>의 ‘토토가’(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 열풍은 90년대 향수주의 문화 부흥의 시작을 알렸다. ‘토토가’의 마지막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22.2%를 기록했고, 방송에 소개된 모든 곡들이 음원차트를 석권한데다, 방송 중 실시간 검색순위 1위부터 10위를 모두 차지했으니 이 프로그램에 대한 대중의 뜨거운 관심은 ‘조현아’, ‘정윤회’, ‘허니버터칩’ 보다 더하다. 90년대 인기가요를 들을 수 있는 앨범이 신속하게 제작되고, ‘토토가’에 출연한 가수들이 요즘 방송과 행사 섭외 1순위라니 그 열풍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렇다면 ‘토토가’는 90년대 가요를 소환하여 판에 박힌 아이돌 음악시장에 경종을 울린, 착하고 영리한 심지어는 대안적인 프로그램이었나? 내 대답은 ‘노’이다.

어느덧 성인세대들에게는 아련한 추억이 되어버린 90년대 스타 가수들의 히트곡 열창 무대, <무한도전>의 ‘토토가’는 대중의 정서 안에 내장된 문화향수의 유전자를 재빠르게 동시대 오락물로 전환시킨 신보수주의 문화전쟁의 전리품이다. ‘토토가’에서 재연된 90년대 댄스가요는 식상한 아이돌 음악을 대체하기보다는 그것을 가능케 한 원시적 축적물이자, 성인세대들에게 일종의 ‘추억의 몰핀’과도 같은 ‘감각의 물파스’, ‘마음의 보조식품’에 해당된다. 김현정, SES, 터보, 지뉴션, 엄정화, 조성모, 이정현, 그리고 김건모는 현재 가요계를 독점해 버린 아이돌 음악과 연예제작시스템의 공모자들이자 역으로 희생자들이다. ‘토토가’에서 재현된 90년대 댄스 가요는 추억의 상품으로는 아이돌의 대안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시장의 논리로는 연대기적 동질성을 갖는다. 이들도 그때는 가요계를 독점해 버린 아이돌이었기 때문이다.

90년대 댄스가요는 1980년대 정치적 민주화의 열망들이 자본주의 체제 안으로 흡수되면서 발생한 전형적인 신보수주의 문화형식이다. 이는 80년대 대처리즘의 체제 하에 진행된 영국 및 유럽의 신보수주의 문화 형식과 거의 일치한다. 신보수주의 문화는 문화의 정치적 급진성을 무장해제 시키고, 대중들에게 즐겁고 신나는 감각적인 오락물들을 선사했다. 문화의 시장 논리를 선언하고, 소비문화의 성장을 위해 규제를 완화하고, 유행형식을 표준화하여 문화의 독점을 강화했다. 90년대 댄스음악은 대중들의 정치적 감각을 무디게 하는 대신, 문화적 풍요로움의 감각을 활성화시켜 지금 아이돌 음악의 문화자본의 토대를 구축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말하자면 ‘토토가’는 지금의 아이돌 음악과 그 자본을 정당화시켜주면서 동시에 이들의 탐욕스러운 불공정 행위에 면죄부를 준 꼴이 된다. ‘토토가’의 추억의 상품들은 역설적이게도 그 추억을 죽여 절대강자가 된 현재의 지배적 아이돌 음악에게 바치는 피학적 헌사에 가깝다. 불행하게도 그 헌사는 “나는 너의 아버지다”라는 독백이다.

‘토토가’를 기획한 <무한도전>은 대중들에게 무한감동을 준 문화적 난세의 영웅으로 칭송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기획했던 모든 것들은 역사적 가요의 종다양성을 죽여 버린 신보수주 문화의 유령을 무덤에서 불러낸 것에 불과하다. 지금 행복한 향수의 추억은 곧 공기 속으로 사라지고, 무덤에서 소환된 신보수주의 문화의 유령은 역설적이게도 <무한도전>의 저승사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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