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 19호][칼럼] 주술과 퇴마 (이동연)

[경향신문 기고문]

주술과 퇴마

이동연(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지난 10월 31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충남 서산에서 목회를 하는 전기영 목사는 “최태민, 최순실은 주술가이자 무당”이라고 말했다. 1970년대 말 대한예수교장로회 종합총회 부총회장이었던 전 목사는 당시 총회장이던 최태민씨로부터 근화봉사단원을 이끌고 박근혜를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는 인터뷰에서 최태민이 죽은 육영수 여사의 표정과 음성을 재연하자 박대통령이 기절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고 전했다. 주술을 모르면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해석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것이 이른바 언론을 통해 알려진 박근혜 대통령의 ‘접신설, 주술론’의 실체이다. 언론에 알려진 최태민의 행적은 확연하지는 않지만, 그는 이런 저런 종교의 근 저리를 기웃거리면서 자기기만의 사이비 주술 세계를 완성했다. 방벽에 둥근 원을 그려놓고 “나무자비조화불”이라는 주문을 외우면서 원을 계속 주시하는 ‘영혼합일법’을 주술의 원리로 삼았다고 한다. 그는 영세교라는 사이비 종교를 창시하고 교주 노릇을 했다. 그와 함께 했던 신도는 많지 않았지만 그 중에 죽은 어머니를 대신해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던 박근혜가 있었다고 한다. 잡신과 주술의 가계를 일군 최태민의 자손 중 최순실이 아비의 주술의 영성을 물려받고 박근혜를 지척에서 보좌하며 지난 40여 년 가까이 주술과 정치가 합일을 이루는 ‘혼정 관계’를 완성시켰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의 순간은 대한민국이 고대 ‘제정일치’의 사회로 회귀하는 순간이었다.

정말 사이비 교주의 주술의 힘이 막강해서 그랬을까, 박근혜는 보수정당의 구원투수로 수차례 정치적 위기를 극복하고 마침내 국가원수로 등극했다. 이미 새누리당의 많은 정치인들은 정상적이지 않은 박근혜의 주술적 유산을 알고 있었지만, 권력을 잡기 위해 묵인하고 침묵했다. 그녀의 영적 주술사이자 피보다 진한 ‘혼’의 대리자 최순실은 전여옥 전의원의 말대로 “이제 말을 배우는 어린 아이 수준”의 국가 통치자를 아무런 견제와 제제 없이 조정했다.

최순실의 실체를 모르던 일반 국민들은 취임 후 박근혜의 입에서 나오는 이상한 말들에 의아해 했다. 2015년 5월 어린이날 봄나들이 행사에 박근혜는 “정말 간절하게 원하면 우주가 다 나서서 도와준다. 그래서 꿈이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2015년 10월에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에 대해 “자기 나라 역사를 모르면 혼이 없는 인간이 되는 것이고 바르게 역사를 배우지 못하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라고 말한다. 한 나라의 국가원수의 말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이지만, 그녀의 뒤에서 주술을 행하는 최순실의 실체를 아는 순간 모든 의문이 해소된다. 그것은 오래 동안 신체에 각인된 일종의 주술의 언어이다. 그 언어들은 그냥 실수로 내뱉은 말이 아니라 마치 무의식화 된 주문처럼 신체에 각인된 것들이다.

무당, 혹은 주술사 최순실은 박근혜에서 계속해서 ‘혼정 일치’의 주문을 외우면서 수많은 사익과 권력을 취했다. 이것이 사이비 주술의 정치적 커넥션이다. 최순실은 아무런 제제 없이 행정관의 차를 타고 수시로 청와대를 출입했고, 3천억 대의 평창올림픽 시설공사에 이권에 개입하고, 7천억 원대의 문화창조융합벨트 사업의 밑그림에 관여했다. 그다지 말 타는 실력이 없는 딸의 국가대표 승선과 이화여대 입학을 위해 막장 값 질을 행사하고 원칙을 지키려는 관련 고위 공무원 경질에 앞장섰다. 재벌들에게는 800억 원의 삥을 뜯어 미르재단, K스포츠 재단을 만들어 자신의 자금세탁 독일 법인인 ‘비덱’과 ‘더블루K’에 일감을 몰아주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것은 주술과 정치가 오래전부터 그 둘 사이에 합일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최순실 주술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지만, 정치와 권력의 등을 업고 수많은 사람들을 감염시켰다. 정치인들은 눈을 감아주었고, 관료들은 시중을 들어주었고, 경제인들은 굿판의 판돈을 냈다. 박근혜 지지자들은 주술의 악령에 감염되어 최순실의 작은 영매들이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주술의 약령이 정치를 파탄 낸, 지난 40여년의 시절은 유신 통치자에 대한 그들의 향수가 배어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어떤 점에서 한국적 근대화의 사이비 주술에 걸려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청와대를 향해, 혹은 그 안에서 주술의 굿판을 벌였던 최순실의 ‘검은 살’이 몰락의 길에 접어들었다. 이른바 최순실-박근혜의 주술 정치에 역살을 날리는 퇴마의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역살을 날리는 퇴마의 순간은 촛불로, 시국선언으로, 예술로 지속되고 있다. 퇴마의 순간은 주술사 최순실을 처벌하는 것으로 끝날 수 없다. 그것은 사이비 주술의 ‘혼정’ 실체를 밝히고, 그것의 정치적 숨통이 끊어질 때까지 계속되어야 한다. 퇴마의 순간은 언제나 오는 것이 아니다. 지금이 사이비 주술을 제압하고, 퇴마의 역살을 날릴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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