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7호][칼럼]90년대는 살아 있다(김성일)

90년대는 살아 있다
-2015년이 호출한 90년대, 90년대가 2015년에게 전하는 메시지-

김성일(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객원교수)

2015년 벽두부터 몰아닥친 ‘90년대 앓이’는 한 때의 유행에 끝나지 않고 올 한해 대중문화의 키워드이자 트렌드로 이어질 전망이다. 왜냐하면 ‘토토가’를 통해 봉인 해제된 ‘90년대’의 감수성과 스타일의 울림이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90년대 앓이’는 현재적 삶의 버거움에 대한 대중의 정서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이로부터 현 시기 복고 열풍은 단순히 향수의 정서로만 바라볼 수 없게 만든다. 즉, 신자유주의 재구조화로 인한 시장 원리의 전면화 및 그로부터 초래된 사회양극화는 대중의 삶을 크게 위협하고 있으며, 만성화된 경제적 추락에의 불안은 현재는 물론 미래에 대한 낙관적 기대를 저버리게 했다. 현재의 팍팍한 삶은 좋았던 과거에 대한 추억으로 대중의 의식을 회귀시킨다.
문제는 향수의 정서 안으로 현재적 삶의 모순과 미래에의 도전적 기획들이 융해되어 현실 도피로 귀결된다는 점이다. 90년대로의 타임머신 여행은 신변잡기적 퇴행이 아니라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설계하기 위한 발판이 될 때 의미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 문화의 르네상스로 지칭되는 1990년대가 갖는 특성은 무엇이며, 현 시점에서 대중문화 발전을 위해 어떠한 질료로서 활용될 수 있는가?
사실상 ‘토토가’는 ‘90년대’의 부활에 물꼬를 텄을 뿐, 그 징후는 이전부터 나타나고 있었다. 이미 영화 <건축학 개론>(2012)을 필두로 하여 90년대 정서와 스타일은 드라마(응답하라 1994ㆍ1997)를 통해 대중적 인기를 얻었으며, 작년을 기점으로 인기 정상을 달리던 가수들이 대거 컴백했다. 가령, ‘90년대’의 아이콘인 서태지가 새 노래로 돌아왔고, 재결합한 god는 관객 11만 명을 동원하며 콘서트를 성황리에 마쳤다. ‘동행’(6집)을 발표한 김동률과 고인이 된 신해철을 기리는 추모공연도 90년대의 부활을 알렸다. 이로부터 ‘90년대’는 상품으로서의 가치와 대중의 정서적 공감을 함께 얻으며 다음의 특성을 통해 지금까지도 그 효력이 유지되고 있다.
첫째, 1990년대는 대중문화가 문화로서 인정받게 된 인식의 전환이 있었다. 이전시기까지 대중문화는 ‘3S’(screenㆍsportsㆍsex) 정책으로 규정되어 싸구려ㆍ저질, 선정성ㆍ상업성 논란으로부터 몰매를 맞고 있었다. 이러한 인식 속에서 대중문화는 늘 비판 혹은 극복의 대상이거나 기껏해야 B급(3류) 문화로 규정될 뿐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에 오게 되면, 대중문화는 세계화 시대에서 새로운 부가가치 창출과 국가경쟁력 강화에 이바지할 대표적 영역으로 급부상한다. 이러한 인식의 전환에 영화 <쥬라기공원>(1993)의 세계적 흥행 성공이 있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에 국가는 검열ㆍ규제 일변도에서 진흥ㆍ육성으로의 문화정책을 실시하게 되었고, 전문 인력 양성을 위한 문화 관련 전공ㆍ강좌가 많은 대학에서 설립ㆍ편성되었다.

그러나 현 시기 한국의 문화지형은 위기에 처해 있다. 한미 FTA 체결 선결 조건으로 스크린쿼터 의무상영일수가 대폭 축소된 것은 문화의 가치와 의미에 대한 인식의 퇴행이 가져온 대표적 결과이다. 즉, 반도체와 휴대폰 수출이라는 경제적 논리가 문화 논리를 대체하며 과거 산업화시대의 마인드로 돌아간 것이다. 이는 ‘돈’이 되는 문화에 대한 문화산업계의 천착으로 이어졌고, 대기업과 거대 기획사의 문화독점 강화는 문화생태계를 크게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멀티플렉스 상영관이 블록버스터 인기영화만을 집중 상영한다거나 방송국이 시청률과 광고 수주에만 얽매여서 사회적 책임을 망각한 사례는 이러한 정황을 반영한다. 여전히 문화 중흥을 꿈꾼다면 문화에 대한 인식의 새로운 전환이 있었던 1990년대를 떠올릴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문화는 경제적 가치보다 사회적 가치가 우선시되는, 즉 모든 구성원이 향유 가능한 공공재임을 재차 확인할 필요가 있다.
둘째, 1990년대는 신세대를 통해 새로운 주체의 등장을 알림과 동시에 개인의 미시적이고 주관적인 감성과 영역이 새로운 형식으로 재현되었다. ‘X세대’로 지칭되는 신세대 등장은 민중ㆍ민족ㆍ계급이라는 1980년대의 집합적 주체에 대한 인식을 근본부터 바꿔놓았다. 수출 주도형으로부터 내수시장 확대로의 경제정책 전환이 주된 원인이었는데, 대중소비시장의 확장에 따른 음악ㆍ영화ㆍ광고ㆍ스포츠ㆍ만화 같은 장르의 급격한 분화 및 감각적 영상 기호와 시각 이미지의 과잉 연출, 멋스러움을 강조한 소비 공간의 창출은 신세대의 생활감각을 새롭게 형성시켰다. 이러한 신세대는 당시 주관적 취향과 정서에 초점이 맞춰진 개인으로 조명되었는데, 이는 총체성과 거대서사를 거부한 당시 포스트담론(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구조주의, 포스트맑스주의)의 영향에서 비롯되었다.
9년째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를 기록하며 삶(행복)의 만족도가 급격히 떨어진 한국사회에서 대중문화는 새 시대를 이끌어 갈 주체 조명에 힘써야 한다. 새로운 주체는 개인, 세대, 계급, 계층을 아우를 수 있는데, 특히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지속적 조명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 성공 후일담과 육아에 집중된 가정생활에 집중된 스타의 사생활 영상은 새로운 주체의 조명에 한계가 있다. 그렇다고 <인간극장> 같은 다큐멘터리를 많이 만들자는 얘기는 아니다. 예능이건 다큐건 간에, 삶의 한계지대로 추방당한 대중의 삶을 함께 공감할 수 있도록 매체의 사회적 책임과 윤리를 재차 물어야 할 시점에 있는 것이다. 1990년대에 신세대롤 조명한 대중문화는 적어도 당시의 변화된 삶과 그에 대한 다양한 반응들(환호와 혐오, 비판과 무관심)을 주저 없이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이로부터 과거로 회귀한 듯한 국가의 강화된 검열, 낙하산 인사로 파견된 윗분들의 월권행위, 수익에만 목멘 창작ㆍ유통 시스템으로부터 자유로울 방도와 용기를 90년대로부터 발견할 필요가 있다.
셋째, 1990년대는 인디문화의 ‘씬’(scene)이 만들어지면서 새로운 감수성과 스타일의 문화적 실험이 자유롭게 시도되었다. 일명 ‘홍대 앞’으로 상징되는 인디문화 혹은 언더그라운드문화의 융성은 1990년대가 낳은 대표적 산물이다. 문화산업이 급격히 팽창하던 당시에 홍대 앞 인디문화 씬은 현학적이고 상업성에 찌든 기성의 창작 방식에 반기를 들며 자신만의 작가정신으로 자율적 문화 진지를 쌓았다. 음악, 광고, 디자인, 문화기획 등의 영역에서 자신의 미적 코드를 스스로 만들고 대중과 소통하려 한 문화전사들이 있었기에, 한국 문화의 다양성은 그나마 확보될 수 있었던 것이다.
현 시기 문화독점이 초래한 문화생태계 위기에 대한 대응은 1990년대 인디문화의 씬을 계승ㆍ발전시키면서 이루어져야 한다. ‘돈’이 되는 작품만을 생산ㆍ유통시키는 작금의 시스템은 사회양극화 현상을 문화계에 그대로 이식시켰다. 이로부터 확실한 수익 확보 가능성에 따라 창작의 방향과 내용이 결정된다. 1990년대의 인디문화 씬은 이러한 작금의 문화 환경에 경종을 울리고 대안적 창작활동을 모색하는데 있어 유의미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인디정신이라 부를 만한 창작자로서의 자존감을 재발견하고, 활발히 전개 중인 대안문화운동(예술인 협동조합, 문화귀촌운동, 생태문화네트워크 등)의 정신적 동인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넷째, 1990년대는 문화개방과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문화의 세계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WTO체제 구축(1994)은 문화를 교류의 대상으로 설정함으로써 문화 개방 및 문화의 세계화를 본격적으로 이끌어냈다. 이전시기까지 문화는 일국적 차원에서 생산ㆍ유통되거나 기껏해야 미국과 일본의 대중문화만이 세계화되는 국면이었다. 그러나 WTO체제 이후 세계 각국의 문화는 실시간으로 확산ㆍ경험되고 있으며, 대중의 인식과 정체성 형성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가령, 1990년대 힙합을 수용한 한국의 대중가요는 음악뿐 아니라 말투, 제스처, 패션에 이르기까지 생활양식의 전반적 변화를 주도했다. 또한 1990년대 말부터 동아시아를 필두로 한 한국대중문화의 수용은 ‘한류’라는 문화현상을 낳으며 세계 대중문화산업지형에서 확고한 입지를 구축케 했다.
현 시기 한류는 더 이상 사회적 이슈가 안 될 정도로 일상화되었다. 이제는 기획단계에서부터 해외시장을 고려할 정도로 창작 환경이 크게 바뀌었다. 그러나 한류의 ‘그늘’이라 할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먼저 업계 종사자나 정책 실무자들은 한류를 경제주의적 방식으로 한정해 인식하고 있다. 즉, 한류를 한국의 브랜드 이미지 강화에 활용하여 수출 증대에 힘쓰려 한다. 이러한 발상과 행태는 대만을 비롯한 한류 붐을 일으켰던 나라로부터 문화제국주의라는 비판을 듣게 했다. 또한 몇몇 스타에게 집중된 지원으로 인해 다양한 장르 및 예술가들이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되었다. 1990년대에 이루어진 진흥ㆍ육성으로의 문화정책 전환과 각급 교육현장에서의 전문 인력 양성은 현재 수준의 수익성 모델로부터 어느 정도 거리가 있었다. 한류가 여전히 지속되고 발전하려면 상호주의적 입장과 함께 다양한 장르 및 예술가에 대한 공평한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역사란 죽은 과거가 아닌 현재에도 그 영향이 미치고 있음”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영화 <박물관은 살아있다>의 제작 동기를 유추할 수 있다. 현 시기 ‘90년대 앓이’ 역시 좋았던 과거에 대한 낭만적 향수를 넘어 한국의 대중문화가 처한 현실을 성찰하고 발전 방안을 모색할 수 있는 건실한 과거로의 여행이 되어야 한다. 실로 1990년대에는 (현재와 비교할 때) 돈과 권위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만의 미적 실험들이 자유롭게 시도되었다. 이러한 도전 정신과 자유로움이 있었기에 다양한 양식의 질 높은 문화생산물들이 1990년대에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신자유주의 전횡이 극에 달해 문화생태계가 크게 훼손된 현 상황에서 ‘90년대 정신’이 다시금 요청되는 것은 위의 이유 때문이다.

이 글은 월간<방송작가> 3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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