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22호][편집위원칼럼] ‘블랙리스트’라는 공작정치 / 이동연

‘블랙리스트’라는 공작정치

 

이동연(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블랙리스트는 한국 근현대사에서 가장 끔찍한 공작정치이다. 지난 10월 30일 국정원개혁위원회가 밝혀낸 사실에 따르면, 국정원은 ‘문예계 내 좌 성향 세력 현황 및 고려사항’이라는 보고서를 만들어 15개 문화예술 단체와 249명의 문제 인물들을 작성하여 청와대에 보고했다고 한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검찰은 국정원이 박근혜의 문고리 3인방인 이재만, 안봉근에게 매월 현찰로 1억 원을 상납했고, 조윤선, 현기환 전 정무수석에게는 500만원을 상납했다는 사실을 언론에 공개했다. 이재만, 안봉근은 상납 받은 돈으로 지난 4.13 총선 동향을 파악하는 비공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고 한다. 이 돈이 모두 전직 국정원장의 특수 활동비였다.

 

국정원이 작성한 15개 단체에 속한 문화연대 집행위원장이자, 특별관리 대상 249명에 속한 당사자로서 국정원이 주도적으로 개입한 블랙리스트를 남한 최대의 공작정치로 보는 이유는 명확하다. 국정원은 블랙리스트를 자신의 세력 확장의 수단으로 보았으며, 이 일련의 과정에서 청와대에 돈으로 로비를 했으며, 예술가들을 공작정치의 희생양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청와대와 국정원은 블랙리스트라는 고리로 예술가들을 조롱하고, 그들의 영혼을 짓밟았으며, 자신들의 정치적 재생산과 세력 확장을 위해 이용했다. 예술가들이 청와대와 국정원의 공작정치에 놀아난 것이다.

 

청와대와 국정원의 이해관계는 좌파예술가 색출과 퇴출을 위해 상호협조라는 명분에 기초하지만, 실제로 이 명분은 가설효과에 불과하다. 이 모든 게 나라를 위해 한 것이라는 이들의 공감대는 공작정치의 명분을 만들기 위한 가상의 신념에 기초한다. 그들은 이 신념을 동맹의 원천으로 생각하며 권력의 재생산을 위해 블랙리스트를 만들었다. 블랙리스트는 그러한 공작정치의 동맹을 작동시키고, 생성케 하는 중요한 매개 고리가 된다. 블랙리스트는 어떤 점에서 그들이 고안해 낸 공작정치의 훌륭한 신상품이며, 정치권력과 정보권력의 동맹을 확인시켜주는 일종의 리트머스 종이와 같다. 청와대와 국정원은 구국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블랙리스트를 만든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서로를 이용하고, 각자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이기적 집단들이다. 국정원은 청와대에 돈을 상납하여, 부패한 공작정치에 면죄부를 받고자 했으며, 청와대는 국정원을 이용해 본인들이 해야 하는 정보공작의 임무를 부여했다.

 

김기춘이 작동시킨 블랙리스트는 유신 공안검사의 습관적 망상증의 결과이며, 이는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의 망상증과 유사하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그가 권력의 정점에서 고영주와는 다르게 공작정치의 판을 크게 벌였다는 점이다. 블랙리스트가 공작정치가 되기 위해서는 국정원의 도움이 절실했다. 그들은 방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고, 예술가 개인을 사찰할 수 있으며, 블랙리스트를 그럴듯한 구국의 미션으로 부풀릴 수 있다. 김기춘은 블랙리스트 작성의 정당성을 국정원의 공작 파일을 통해 얻고자 했고, 국정원은 청와대의 미션을 수행하면서 공작정치의 영역을 넓히는 수단으로 삼았다.

 

블랙리스트는 원래 인터넷에서 떠돌던 데이터베이스였다. 문재인, 박원순을 지지하고, 세월호 시행령 폐기를 촉구하는 문화예술인들의 명단이었다. 그런데 이 명단이 김기춘, 국정원을 거치면서 블랙리스트가 되었다. 김기춘은 블랙리스트가 정책적 결정일 뿐 검열이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국정원이 작성한 블랙리스트는 정치적 성향과 활동을 기준으로 배제와 퇴출을 적시한 명단이라는 점에서 검열이며, 청와대가 요청하고 국정원이 보고했다는 점에서 공작정치이다. 블랙리스트의 전달체계에서 수행 주체로 가담한 문체부의 전직 장차관들, 고위공무원들, 그리고 산하기관들의 간부들의 부역행위는 이러한 공작정치로서의 블랙리스트의 의미를 충분하게 간파할 때, 그 구조적 작동원리를 이해할 수 있다. ‘블랙리스트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가 총력을 기울여 블랙리스트 사태에 대한 실체적 진상규명이 필요한 것은 바로 최고의 두 권력 기관이 동맹해서 만든 공작정치가 돈과 정보와 권력으로 예술가들을 우롱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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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22호][편집위원칼럼] 자신을 해방시키는 것은 결국 자신이다 / 서동진

자신을 해방시키는 것은 결국 자신이다

 

서동진(계원예술대 융합예술학과 교수)

 

촛불집회로 부패하고 타락한 정권을 교체한 시민의 힘을 기특하게 여기는 세상은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의 6월 시민항쟁을 흐뭇하고 느긋이 기억하곤 한다. 군사독재정권을 끝내고 마침내 국민이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를 이룩했다는 이야기는 오늘의 대표적인 신화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국민들의 투표를 통해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대의제 민주주의가 뭐 그리 대단한 것이었는지 묻는 일은 드물다. 6월 시민항쟁이 민주주의를 위한 싸움이었음을 입증해주는 결정적인 계기가 그 뒤를 이은 석달의 노동자 대투쟁이라는 주장은 점차 흐릿해져가는 눈치이다. 6월항쟁만 남는다면 그 민주주의란 민주주의가 정착하도록 이끈 것이 아니라 거꾸로 그것을 제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반성하는 목소리는 점차 듣기 어려워져가고 있다.

얼마 전 노동자 대투쟁 30주년을 기념하는 작은 모임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 홍대 앞의 어느 술집을 겸한 작은 공연장에서 몇명이 모였다. 오늘날 노동자의 삶과 투쟁을 대할 때마다 항시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김진숙씨를 초대하여 이야기를 듣는 자리였다. 부산에서 올라온 그녀는 거푸 물잔에 손을 뻗어 목을 축이며 카랑한 목소리로 파란만장한 삶의 역사를 들려주었다. 익숙한 이야기였음에도 다들 숨소리를 멈춘 채 그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이따금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지만 분위기는 시종 숙연했다. 왜 아니겠는가. 외환위기를 전후해 태어나 젊음을 보내고 있는 대다수의 청중은 그녀가 증언한 고통과 투쟁의 이야기 앞에서 몸 둘 바를 모르는 눈치였다. 모르긴 몰라도 왠지 모를 죄책감과 경외감이 들쑤셨을 것이다.

6월은 여전히 빛나지만 그 뒤를 이은 노동자 대투쟁이 빛이 바래게 되었다는 것은 민주주의 없는 민주주의를 우리가 가지게 되었음을 말해준다. 뜨거운 여름, 지게차를 앞세우고 거리로 뛰쳐나온 노동자들은 이른바 직선제 쟁취만으로는 민주주의를 이룩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일깨웠다. 6월항쟁은 그런 점에서 민주주의로 향하는 출발점이었다. 노동자 대투쟁은 자신들의 삶의 처지를 개선하는 것이 자신들의 손에 달려 있음을 알리는 전환이었다. 노동자 대투쟁의 핵심은 노동자가 자신의 삶을 변화시킬 주체라는 점을 알린 데 있다. 이는 대의제 민주주의를 얻었으니 이제 싸움은 끝났다는 이들의 주장을 거부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87년에 두 개의 민주주의가 경합을 벌이고 있었다고 말해야 옳다.

민주주의란 것이 인권과 시민권에 따른 정치체제를 가리킨다면 이는 누구의 인권, 시민권인지 묻지 않을 수 없도록 한다. 고쳐 말하면 이는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은 자신의 일임을 깨닫고 싸울 수 있어야 민주주의란 것이다. 그것은 전문가들이 나서서 누군가의 삶을 분석하고 대변하는 것도 아니고 인권의 대변인이라고 하는 이들이 고통받는 이들의 불행을 대신해 호소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 까닭에 노동자가 자신을 대표하겠다고 나설 때 가진 자들은 ‘혼란이다, 무질서다’라고 비명을 지른다. 그것은 가진 자들이 못 가진 자들을 대의할 수 없음을 폭로하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에 이르러서야 마침내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물으며 민주주의가 민주화된다는 것을 부정하면서 말이다. 오늘날 노동자는 불행하게도 오직 피해자의 모습으로만 등장한다. 그들은 자신의 삶을 바꾸겠다고 싸우는 무시무시한 투사이기보다는 처량한 약자들의 명단 속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그들의 민주주의를 위해 우리의 민주주의는 숨죽이는 것, 이런 게 민주주의의 역사 30년이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20612.html#csidxb075869e078e2bdb7faf44511a9782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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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22호][편집위원칼럼] 마흔살 비혼주의자가 외치는 성평등 / 손희정

마흔살 비혼주의자가 외치는 성평등

 

손희정(문화평론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결혼 생각이 없었다. ‘비혼주의’라는 말을 모를 때에도 이미 비혼주의자였던 셈이다.

시작은 어린 소녀들이 흔히 느낄 법한 ‘성관계에 대한 막연한 혐오’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이유는 조금씩 달라졌다. 좋아하는 사람을 놓고 마음이 갈대처럼 변하던 10대 후반에는 “한 남자랑 어떻게 평생을 살아”라는 마음이었고, 20대 중반에는 여성에게 유독 불리한 결혼제도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싫었다.

20대 후반이 되어서는 “동성결혼이 합법화되지 않는다면 결혼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인류 문명 대대로 마치 ‘자연’인 것처럼 군림하는 문화가 동등한 시민을 차별하는 제도로 기능한다면 응당 반대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게 구실은 계속 바뀌었지만 비혼 결심만은 변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였다. 나의 비혼주의를 믿지 않았던 죽마고우가 “웃기지 마라. 네가 결혼을 안 할 리가 없다. 내기하자”고 도발(!)해 왔다. 나는 스스로에게 확신이 있었으므로 흔쾌히 그에 응했다.

내기의 내용은 이랬다. “손희정이 마흔이 될 때까지 미혼이라면, 내가 세계여행을 시켜준다.”

그리고 2017년. 나는 드디어 만으로 마흔이 되었다. 여전히 미혼이며, 결혼을 시도해 본 적 역시 전혀 없다. 내기에 이긴 것이다.

하지만 그가 내기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누구나 어렸을 때 실없는 내기를 하고 나이 들면 잊어버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법조인’으로 성장한 나의 친구는 서류 한 장 남기지 않은 그 약속을 지키겠다고 나섰다. 다만 내기의 내용은 살짝 변경됐다. 세계여행은 너무 과하므로, 같이 여행을 가게 되면 항공권을 끊어주겠노라고. 그리하여 내년 2월에 우리는 싱가포르에 놀러간다.

나이 마흔에 맞이하는 전문직 비혼 여성의 삶은 꽤 재미있고 스펙터클하다. 하지만 사회적 통념상 잘 포착되지 않는 존재이기 때문에 적잖이 불안한 것도 사실이다. 얼마 전 화제가 되었던 ‘영포티’와 ‘나비남’의 등장은 나의 주변부적인 위치를 잘 보여주는 현상이었다.

X세대 출신, 90년대 학번, 직장에서 중간 관리자의 자리에 올랐고, 이제 후배들을 위해 지갑을 열 수 있는 세련된 중년이라는 의미의 영포티. 이 말이 지시하는 남자들은 내 또래다. 한국 사회는 그 세대를 영포티라고 부르면서 높이 받들고, 심지어 드라마와 영화에서는 이들을 20대 여성들과 엮어주려고 안달이 났다. 하지만 함께 나이 들어 온 여자인 나를 호명해주는 이름은 어디에도 없다. 유행이 지난 ‘골드미스’도 30대 여성을 지칭하는 것으로 내 또래는 열외다.

나는 국가가 그토록 싫어하는 “하향결혼을 하지 않아 국가 저출산을 초래한 고스펙 여성”이고, 그나마도 대한민국 출산지도에도 포착되지 않는 나이인 탓에 내년부터는 아예 관심 밖으로 밀려난다.

그러므로 복지의 대상이 아닌 것은 물론이다. 농담처럼 하는 말이지만, ‘영포티’들은 40대까지 자유롭게 살다가 50대에 독거남이 되면 나라에서 ‘나비남’이라 부르며 그들을 위한 영화제도 개최하고 돌봄 노동도 제공한다는데, 과연 나는 무엇이 될까? 결국 나에게 남겨진 선택지는 어떻게든 홀로 고군분투하며 생존하는 것인가?

그래서 성평등 개헌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이진옥 젠더정치연구소 대표에 따르면 성평등 개헌의 핵심 목표는 “대기업 정규직 남성 중심으로 짜여 있는 복지 체제에 편입되지 못해 국가로부터 마땅한 기본권을 받지 못하는 절대다수 인구의 인권을 보장할 수 있도록 취약한 복지 기반을 확장하는 헌법적 토대”를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 우파에서 이를 막아서고 나섰다. ‘성평등’이라는 용어가 ‘양성평등에 기초한 가족제도를 위협한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는 국가가 책임져야 할 복지를 이성애 중심 핵가족에게 전가하겠다는 뜻 외에 다른 말이 아니다.

나는 양성평등 개헌이 아닌 성평등 개헌을 지지할 수밖에 없다. ‘일 가정 양립으로 과로하는 독거 포티’인 나에게는 자격 조건을 따지지 않고 국민으로서 응당히 누려야 할 기본권을 보장해줄 개헌이 필요하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11272118005&code=990100#csidxb940ce527a05f8c88fc5747f2a909c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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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22호][보도자료] 문화과학 92호를 발간하며

 

 

 

92호를 발간하며/ 김상민 ․ 강신규

특집: 플랫폼 자본주의
「자본주의 종착역으로서 ‘플랫폼 자본주의’에 관한 비판적 소묘」․ 이광석(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
「플랫폼 자본주의의 정치경제학: 사회적 삶의 상품화와 노동의 미래」․ 최철웅(홍익대학교 박사후연구원)
「플랫폼 노동, 새로운 위험사회를 알리는 징후」․ 김영선(노동시간센터 연구위원)
「플랫폼과 ‘소중’: 생산과 소비의 경합이라는 낡은 신화의 한계상황」․ 김성윤(『문화/과학』 편집위원)
「플랫폼 위에 놓인 자본주의 이후의 삶」․ 김상민(서울과학기술대학교 강사)

기획: 서드 라이프
「서드 라이프, 테크놀로지, 예술의 미래」․ 이동연(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현실로 들어온 놀이: 서드 라이프 시대의 디지털 게임」․ 강신규(『문화/과학』 편집위원)
「모바일 인터페이스의 확장과 엔터테인먼트 콘텐츠의 미래」․ 이종임(고려대학교 강사)

제21회 북클럽
손희정, 『페미니즘 리부트』(나무연필, 2017)․ 손희정(연세대학교 젠더연구소), 박자영(협성대학교 교수), 박차민정(이화여자대학교 강사), 정원옥(『문화/과학』 편집위원)

서평
「‘포스트사회주의’ 중국을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임춘성, 『포스트사회주의 중국의 문화정체성과 문화정치』, 문화과학사, 2017) ․ 김정구(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문화현실 분석
「역사를 넘어서는 장르적 상상력의 한계: 와 」․ 하승우(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아이돌 육성 프로그램, 아이돌 그룹의 ‘공정한’ 선발을 위한 모험」․ 김수아(서울대학교 교수)

이론의 재구성
「발리바르의 ‘스피노자-맑스주의를 위한 열한 가지 테제들’ 해제」․ 배세진(파리 7대학 박사과정)
「‘가족의 위기’ 시대, 가족 이데올로기의 재구성: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을 중심으로」․ 전주희(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
「영화적 미메시스와 이데올로기: 브레히트적 영화와 알튀세르 이데올로기론의 현행화를 중심으로」․ 심광현(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특집 주제: (책임편집: 김상민・강신규 편집위원)
올해는 1917년 러시아혁명이 100주년 되는 해이기도 하고 1987년 한국의 6월혁명과 뒤이은 7・8・9월 노동자대투쟁이 30년을 맞는 해이기도 하다. 그런가하면, 1997년의 외환위기 이래 2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97년 이후 대부분의 사람들은 97년체제라는 자본의 새로운 축적체제, 신자유주의라는 통치 이념의 굴레를 지고 한걸음도 물러설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당시 우후죽순 생겨나던 피시방에서 스타크래프트에 빠져 있던 백수들이 중년을 넘기는 동안, 온 국민이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 스크린을 들여다보며 카카오톡과 페이스북에 몰두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외환위기와 신자유주의 20년의 세월이 지난 이 시점에 우리 모두는 플랫폼이라는 매우 기묘한 디지털 도구이자 비즈니스 모델이면서 조직 운영원리를 손안에 가지게 되었다. 터치 한번으로 어디서건 택시를 부르거나 음식을 배달시키고 전혀 알지 못하는 이들과 자원을 공유하고 수동적 소비자에서 열광적 문화 생산자로 거듭난다. 촛불도 플랫폼 덕분에 타올랐을 것이고, 심지어 촛불이 플랫폼일지도 모른다. 어느새 플랫폼의 사용자도, 플랫폼 노동자도, 플랫폼 업자도 모두 행복한 세상이 온 것만 같다. 기술 혁신은 언제나 그렇듯이 유토피아를 열어주는 듯하다. 그러나 노동과 일상, 거래와 교환, 소통과 금융에 이르기까지 플랫폼은 유연화와 민주주의 그리고 취향과 창의력을 앞세워 어느덧 보이지 않는 새로운 가치 포획장치로 우리를 감싸고 있다. 이 플랫폼의 생태계 안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알고리즘과 인공지능 덕분에 우리는 심지어 아무 것도 알 필요도 판단할 이유도 없어졌다. 매끄럽고 편리한 플랫폼 아래에 놓인 불안정한 삶과 취약한 노동은 파괴적 기술혁신과 거대한 전환이라는 전 지구적 자본주의의 빛나는 미래상의 이면에 가려져 있다.
『문화/과학』 92호의 특집은 “플랫폼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그 이면을 들여다본다. 작년 2016년 가을 『문화/과학』 87호는 “데이터 사회”라는 주제를 특집으로 다루었다. 데이터가 현대 자본주의 가치생산의 핵심 원료이자 추동력이 되는 것을 넘어 일상을 조직하고 나아가 하나의 통치 기반을 형성하게 되는 물적 조건들을 탐색하고자 했다. 그런데 1년여의 간격을 두고 “플랫폼 자본주의”라는 화두를 들고 나왔다. 이는 데이터 사회가 작동하는 원리에 대한 보다 미세하고 다면화된 분석과 이해에 대한 요청에서 비롯되었다. 데이터 사회에 대한 관점이 플랫폼 자본주의의 문제로 확장되는 동시에 집중된다. 이런 취지에서 이번 특집은 플랫폼 자본주의를 바라보는 다섯 가지 관점을 제공한다. 플랫폼 자본주의의 주요 테제, 플랫폼 자본주의의 정치경제학, 플랫폼 노동의 특성과 새로운 위험성, 플랫폼이 일으키는 문화산업의 변화, 플랫폼을 통한 새로운 경험과 삶의 방식을 다룬다.

이광석, 「자본주의 종착역으로서 ‘플랫폼 자본주의’에 관한 비판적 소묘」
특집의 총론 격인 이 글은 플랫폼이라는 용어의 정의, 구성 요소, 주요 특징을 정리함으로써 플랫폼 자본주의라는 생소한 개념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필자는 플랫폼이라는 용어가 사용되는 여러 맥락들을 짚어보면서 플랫폼은 외형적으로는 컴퓨터 기술이 적용되고 건축적으로 축조된 구조물인 동시에 내적으로는 특정 목적 달성을 위한 논리적 작동 방식이며 따라서 정치적 함의가 내포될 수밖에 없는 매우 복합적인 사회적 구성물이라고 본다. 또한 (빅)데이터, 브로커(매개자), 알고리즘을 플랫폼의 핵심적인 구성 요소로 간주하면서, 플랫폼 자본주의의 여섯 가지 주요 테제를 제출하는데, 이를 통해 보면 플랫폼 자본주의는 플랫폼과 알고리즘이라는 기술적 요소를 통해 노동 및 고용관계를 변화시키고 생산의 외연을 확장하는 “신흥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으로서 “후기자본주의적 사유화의 최종 종착역”이라고 판단된다. 필자는 국내에서의 플랫폼 지대를 통한 노동 및 자원의 수탈 수준이 심각하다고 진단하면서, 이용자 데이터 활동이 플랫폼에 포획되지 않는 민주적 플랫폼과 같은 대안적 혹은 대항적 플랫폼의 사회적 확장을 요청한다.

최철웅, 「플랫폼 자본주의의 정치경제학: 사회적 삶의 상품화와 노동의 미래」
이 글은 플랫폼이라는 사회-기술적 장치가 기술예찬론자들의 “플랫폼 혁명”의 전파와 일상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통해 어떻게 경제성장과 새로운 사회적 관계에 대한 일련의 기대를 낳게 되었는지를 분석한다. 필자는 필수적인 자원을 소유하지 않고 기존의 사업 영역에 뛰어들어 단기간에 시장지배력을 확보해 온 페이스북, 에어비앤비, 우버 등의 플랫폼 기업들의 사례를 살펴보고 플랫폼 비즈니스 모델이 작동하는 방식을 분석함으로써, 플랫폼의 정치경제학적인 맥락을 살핀다. 현재 플랫폼은 하나의 지배적인 축적 전략이 되는데, 이러한 플랫폼을 통한 새로운 종류의 이윤 수취는 맑스가 언급한 ‘본원적 착취’와 ‘이차적 착취’의 결합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곧 플랫폼 기업에 의한 공유자원과 사회적 부의 독점으로 이어진다. 이에 필자는 시민에 의한 플랫폼 구축이나 사회적 부의 사회적 전유를 통해 플랫폼의 집단화, 나아가 빼앗긴 시간과 노동의 회복을 위한 “전면적인 사회적 관계의 변형”이 필요하다고 진단한다.

김영선, 「플랫폼 노동, 새로운 위험사회를 알리는 징후」
디지털 플랫폼, 소셜미디어, 혹은 4차 산업혁명과 같은 기술적 진보와 유토피아적 전망은 고된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은커녕 실상 새로운 방식의 노동관리로 이어진다. 카카오톡을 통한 업무지시나 태블릿을 활용해 회사 밖에서의 업무를 가능하게 하는 플랫폼 기술로 인해, 업무의 일상 침투와 여가 침식의 가속화가 일어나고 이는 자본에 의한 더욱 촘촘한 착취와 노동자성의 제거라는 효과를 발생시킨다. 위험과 착취를 비가시화하는 기술들을 가시화하하기 위한 방법으로 필자는 연결되지 않을 권리, 새로운 보장체계 구축, 대항 담론의 발명을 우선적으로 제시한다.

김성윤, 「플랫폼과 ‘소중’: 생산과 소비의 경합이라는 낡은 신화의 한계상황」
이 글은 플랫폼이 (실은 분화된 소중문화라고 불러야 할)대중문화 그리고 일상에서의 문화 생산과 소비의 지형 변화 및 재편에 얼마나 깊숙이 개입되어 있는지 들여다본다. 오늘날의 플랫폼은 전통적인 대중의 형태를 해체하고 각자(소중)의 취향에 따라 문화를 선택적으로 소비하거나(알고리즘을 통한 큐레이션), 문화의 순환 내에서 누구도 위계적 권력 관계에 얽매이지 않는 능동적인 활동을 할 수 있도록(참여민주주의) 한다. TV예능이나 드라마,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대중문화 영역은 소비자들의 참여에 개방되고 또 그들의 참여를 내부화하는 플랫폼으로 진화하는데(“수용자와 텍스트의 공진화”), 누구든 소비자도 생산자도 될 수 있는 이 플랫폼 공간에서는 일종의 문화 민주주의가 활짝 열린 것 같은 효능이 발생한다. 이에 맞서 필자는 오늘날의 문화연구는 생산과 소비가 경합하는 혹은 지배와 저항이 대립하는 낡은 신화가 마주한 한계 상황에서 “문화비판” 즉 “자본의 동학을 읽어내면서 사회적인 것과 문화적인 것을 삼켜버리는 시장권력을 비판하는 기획”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상민, 「플랫폼 위에 놓인 자본주의 이후의 삶」
이 글은 온갖 종류의 플랫폼과 플랫폼의 도구들이 세상의 모든 영역을 지배하게 된 상황에서 파편화된 주체가 마주하게 되는 삶의 조건에 대해 탐색한다. 필자는 우리가 플랫폼에 기꺼이 우리의 모든 것을 공개하고 공유하고 교환하면서 왜 스스로 그 속으로 들어가고 점점 더 의존하게 되는지, 그 플랫폼 참여의 과정에서 무엇을 경험하고 나아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살펴본다. 그는 플랫폼에서의 활동과 노동이 일종의 역할 수행이라고 이해한다. 플랫폼 자본주의라는 생태계 내에서 인간의 노동 나아가 인간의 존재 자체가 잘게 나누어져 매개되고 데이터로 치환되어 가치로 환원되는 “기이한 보편주의”를 다시 뒤집을 수 있기 위해서는 플랫폼 아래에 실재하는 인간노동의 가치를 끊임없이 되새겨야 한다고 말한다.
92호의 기획 란에는 제3의 삶이라는 의미의 ‘서드 라이프’를 주제로 세 편의 글을 실었다. 특집의 플랫폼 자본주의가 소위 4차 산업혁명이나 공유경제를 신봉하고 강변하는 주류의 장밋빛 기술・산업・경제・노동・문화 담론에 대한 비판적 이해라면, 서드 라이프는 기술 및 경제결정론적 4차 산업혁명론에 갇혀 있지 않은 미래 사회의 삶의 모습, 즉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를 새로운 미디어 기술인 예술・엔터테인먼트・게임 등에서 발견하려는 뛰어난 시도다.

이동연, 「서드 라이프, 테크놀로지, 예술의 미래」
이 글에서 이동연은 ‘서드 라이프’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제안하여 학술적으로 사용하는데, 기술 혁신이 우리의 일상은 물론이며 나아가 (융합을 통해) 예술의 새로운 형식을 생성해 내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 현실공간에서의 퍼스트 라이프와 가상공간에서의 세컨드 라이프를 넘어서, 현실과 가상의 공간이 중첩되는 서드 라이프의 시대에는 홀로그램, 증강현실, 3D프린터와 같은 기술과 놀이 콘텐츠를 활용한 새로운 문화 환경이 열릴 것이라고 본다. 필자는 “인간과 기계, 감성과 공학, 현실공간과 가상공간이 서로 융합해서 기존과는 차원이 다른 라이프스타일이 도래”하고, 나아가 예술과 테크놀로지의 융합인 ‘제3의 예술’이 예술보다 더 예술적인 것으로 등장하게 되리라 본다.

강신규, 「현실로 들어온 놀이: 서드 라이프 시대의 디지털 게임」
필자는 같은 증강현실 게임의 인기를 필두로 가상현실・증강현실・혼합현실 기술의 산업적・경제적 효과에 대한 낙관적 기대는 넘치지만, 실제 디지털 게임에서 그러한 기술이 게임의 의미나 플레이어의 신체・감각・정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서드 라이프 시대 게임 플레이는 더 강력한 원격현전감을 제공하고 나아가 가상세계를 위해 현실이 동원되는 단계로까지 나아간다. 필자는 이러한 게임적 특성을 ‘메타게임’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하면서 게임의 바깥인 현실과 게임 내부의 플레이가 플레이어에 의해 능동적으로 중첩되고 상호작용한다고 본다. 이는 서드 라이프 시대 게임 플레이가 “게임의 안과 밖에서 대안적 문화를 만들 가능성”을 지닐 수 있는 이유가 된다.

이종임, 「모바일 인터페이스의 확장과 엔터테인먼트 콘텐츠의 미래」
이 글은 서드 라이프 시대 미디어와 콘텐츠 산업의 전망을 논의한다. 필자는 미디어 이용자의 라이프스타일이 특히 모바일 인터페이스가 구현하는 미디어 생태계를 향유하면서 변화하는 모습과 그 의미에 주목해야 한다고 본다. 이용자의 연결과 체험의 확장을 가능하게 하는 모바일 인터페이스는 단지 기계 작동을 위한 접속면이라는 도구 이상으로 의미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인터페이스를 통해 인간의 인식의 변화를 가져온다는 점이다. 모바일 인터페이스는 그 투명성으로 인해 이용자의 몰입감을 극대화하고 감각적 즐거움을 제공하며 나아가 공간에 대한 인식을 재구성하게 된다. 페이스북, 모바일 헬스케어, 구글의 VR, 스냅챗 뉴스 서비스 같은 소셜 미디어 플랫폼은 이러한 모바일 인터페이스의 몰입감 증대 기술이 다양하게 활용된 사례이다. 필자는 모바일 중심의 미디어 생태계는 계속 그 영향력이 커질 것이며 이후 모바일 환경이 일상화된 이후에 우리의 라이프스타일과 그로 인한 새로운 인식 체계의 구축에 대한 더 다양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손희정, 『페미니즘 리부트: 혐오의 시대를 뚫고 나온 목소리들』
제21회 『문화/과학』북클럽은 손희정의 『페미니즘 리부트』(나무연필, 2017)에 대해, 박자영이 사회를 보고 박차민정과 정원옥이 토론을 맡았다. 손희정은 한국의 사회경제적 변화 속에서 혐오가 어떻게 지배적 정동으로 등장하고, 그것이 성별화된 정체성 형성과정에 어떤 방식으로 개입하는지를 ‘감정의 인클로저’라는 자신이 창안한 개념을 통해 풀어냈다. 토론자들은 혐오라는 정동이 부상하게 된 맥락과 계기에서부터 혐오 담론을 확장하거나 넘어서 어떤 논의가 가능할지에 이르기까지 날카로운 지적과 질문들을 쏟아냈다.
김정구, 「‘포스트사회주의’ 중국을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이번 서평 란에서는 임춘성의 『포스트사회주의 중국의 문화정체성과 문화정치』(문화과학사, 2017)를 다룬다. 글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 필자는 임춘성의 책이 복잡다단한 역사적 궤적 속에서 착종된 현대 중국의 정체성을 ‘포스트사회주의’ 개념을 통해 안내한다고 본다. 포스트사회주의는 사회주의의 종결이 아니라 그것을 새롭게 성찰하는 틀거리다. 포스트사회주의를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이 아닌,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사회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개념으로 간주함으로써 현대 중국 사회를 이해하기 위한 다양한 가능성이 열린다.
하승우, 「역사를 넘어서는 장르적 상상력의 한계: 와 」
이 글은 각자의 방식으로 역사를 말하는 두 영화 중 한 편은 장르적 상상력이 남용되었다는 이유로, 다른 한 편은 진부하고 정형화된 인물묘사로 비판받고 있음에 주목한다. 그는 역사 기술이 독단적이지 않을 뿐 아니라 하나의 해석에만 개방되어 있지도 않다고 지적하면서, 역사를 이야기하는 다양한 방식이 존재하며 각각의 방식을 경쟁시킬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김수아, 「아이돌 육성 프로그램, 아이돌 그룹의 ‘공정한’ 선발을 위한 모험」
이 글을 통해 필자는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중요한 형식으로 자리 잡은 아이돌 육성 프로그램이 아이돌을 기획사의 상품에서 시청자 맞춤형 상품으로 옮겨 오는 과정의 중심에 있음을 지적하면서, 프로그램의 공정성을 위한 팬들의 노력, 경쟁에 작용하는 젠더 스테레오 타입, 문제적 상황에 놓인 아이돌의 감정/노동, 팬덤의 노동과 팬덤 간 경쟁 등 아이돌 육성 프로그램을 둘러싼 여러 이슈들을 살핀다.
배세진, 「발리바르의 ‘스피노자-맑스주의를 위한 열한 가지 테제들’ 해제」
발리바르가 1987년 철학박사학위 취득을 위한 업적 발표에서 심사위원들에게 제출한 테제를 해제한 글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가장 독창적인 시기였다 할 수 있는 ‘중기’ 발리바르의 스피노자・알튀세르・맑스주의에 대한 통찰을 만날 수 있다.

전주희, 「‘가족의 위기’ 시대, 가족 이데올로기의 재구성: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을 중심으로」
이 글에서 필자는 우리 사회의 가족 위기 이데올로기가 정상적인 가족 형태를 전제하기 때문에 가족 이데올로기 강화로 귀결됨을 지적하면서,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 이론을 통해 가족의 위기 시대 가족 이데올로기의 효과를 분석한다.

심광현, 「영화적 미메시스와 이데올로기: 브레히트적 영화와 알튀세르 이데올로기론의 현행화를 중심으로」
이 글은 70년대 영화연구에서 영화와 이데올로기 간 관계를 규명했던 이론들의 성과와 한계를 살피고, 둘 간의 관계를 다층적으로 분석하기 위한 방법론이 무엇인지를 가다듬어 보고자 한다.

『문화/과학』 전화: 02-335-0461 / 팩스: 031-902-0920 e-mail: moong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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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21호][발표문] 라캉 또는 X: 한국 프랑스철학회 2017년 여름 학술대회 발표문

최원의 [저자와의 대화] 라캉 또는 X: 한국 프랑스철학회 2017년 여름 학술대회 발표문.

원문 링크: http://experimentor.adcomm.kr/bbs/board.php?bo_table=b0503&wr_id=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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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된 지 1년이 지난 책, 그것도 상업적으로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던 책에 대해 많은 선생님들과 이런 토론의 자리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저로서는 너무나 영광스러운 일이자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자리를 만들어주신 한국 프랑스 철학회 황수영 회장님과 회원 여러분, 그리고 특히 이 토론회를 제안해주시고 조직해주신 김은주 선생님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또 바쁘신 와중에도 저의 책에 대한 논평과 토론을 흔쾌히 맡아 주신 진태원, 이성민, 한보희 선생님께도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의 책 『라캉 또는 알튀세르』에서 제가 하려고 했던 것은 알튀세르를 가장 완강한 구조주의자로 보면서 라캉을 그에 대한 발본적인 비판자로 제시했던 지젝의 해석을 반박하고 라캉-알튀세르 논쟁에 대한 대안적인 해석을 제시하는 것이었다고 말씀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젝은 주로 라캉의 욕망 그래프 안에 설치된 두 층(수준) 사이의 차이에 준거해 알튀세르-라캉 논쟁을 분석합니다. 요컨대 지젝은 욕망 그래프의 아래층(1층)이 상징계의 확립을 설명한다면, 위층(2층)은 그런 상징계가 어떻게 실재에 의해 관통되는지, 구멍 뚫리게 되는지 보여준다고 주장합니다. 알튀세르가 상징계 안에서 주체의 ‘소외’가 일어나는 아래층에 논의를 한정하는 반면, 라캉은 그 위에 한 층을 더 추가해 실재(주이상스)의 차원을 도입하고 상징 그 자체로부터 주체의 ‘분리’가 어떻게 가능해지는지 보여준다는 식입니다.

  저는 지젝의 이런 해석에 동의하지 않으며, 욕망 그래프의 아래층이 (상징계가 아닌) 상상계를 도식화하고 위층이야말로 상징계를 도식화한다고 주장하면서, 지젝의 오해는 라캉이 모든 주의를 기울여 구분한 두 종류의 상징을 혼동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곧 상상적 시기에 ‘미리 도착해 있는 상징’(아래층에 도입되는 모성적인 상징적 질서)과 ‘고유한 의미의 상징’(위층에서 상상으로부터 분리되어 나오는 순수 상징으로서의 부성적인 상징적 질서). 이 둘을 혼동함으로써 지젝은, 라캉의 ‘분리’라는 개념이 단지 대타자 어머니로부터의 분리를 의미하며 이런 분리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주체가 아버지의 은유에 절대적으로 의존해야 된다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놓치게 되는데, 결국 지젝의 이런 체계적인 오해야말로 상징의 절대적 필연성을 주장했던 라캉의 구조주의에 대한 알튀세르의 비판을 인지 불가능하게 만든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라캉과 알튀세르의 텍스트 안으로 실제로 들어가서 검토해보면 두 사람 사이의 진정한 쟁점은 주체가 구조에서 분리될 수 있는가 없는가가 아니라, 사회적 실천으로서의 주체의 이데올로기적 형성이 경제나 정치 같은 다른 사회적 실천들과 어떤 관계를 맺는가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곧 그들은 주체와 구조 중 어디에 우위(또는 강조점)를 둘 것인가 하는 이론적으로 불모적인 질문을 묻는 대신, 상이한 사회적 심급 간의 접합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질문에 초점을 맞췄던 것이지요. 이 문제를 검토하면서 저는 제 책에서 당시 구조주의를 옹호했던 것은 여전히 라캉이었음을 보여줬는데, 라캉은 상이한 사회적 실천들 간의 관계를 ‘구조적 상동성’의 논리에 따라 이해하고 각 학문분과의 종별성을 언어학의 부당 전제된 일반성으로 환원함으로써 구조주의를 옹호했다면, 오히려 알튀세르는 언어학과 정신분석학을 모두 국지적 이론들로 바라보면서 국지적 이론의 대상들이 서로에 대해 맺는 미분적 관계가 분절될 수 있도록 허락하는 일반 이론을 구축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알튀세르에 따르면, 라캉이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는 자신의 유명한 주장에서 시작해 점점 더 언어학이나 “언어학과 연대한” 정신분석학이 모든 인문과학들에 대한 ‘모체-학문’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믿게 된 것은 이런 일반 이론의 부재 때문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알튀세르가 저항과 해방의 정치의 논리를 이해하는 데 라캉보다 좀 더 도움을 줄 수 있는 이론가라고 주장합니다. 반면 라캉은 혁명주의자가 아니라 극단적 폭력의 쟁점과 대결한 시민공존(civilité)의 이론가였다고 생각합니다. ‘아버지-의-이름’에 대한 라캉의 유명한 정식화는 극단적 폭력을 감축하는 헤게모니적 이데올로기의 긍정적 차원을 인식하려는 이론적 노력으로 볼 수 있으며, 이런 이데올로기의 역할은 혁명 정치가 쉽게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라캉 또는 알튀세르』는 그 제목이 시사하듯이 라캉과 알튀세르의 수렴과 발산의 지점들을 모두 최대한 정확하고 풍부하게 파악하면서, 그 속에서 하나의 단일한 논리로는 환원될 수 없는 정치의 다면성을 그들의 이론과 함께 사유해보고자 한 시도였다고 말씀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상이 제 책의 문제의식에 대한 요약이었고요…….

그런데 사실 저는 이 토론회의 준비 과정에서 특별한 주문을 받았습니다. 바로 ‘작년에 계간 <문화과학>지 주최로 열린 북클럽 토론회에서는 주로 알튀세르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으니 이번 토론회에서는 라캉에 초점을 맞춰 발표문을 준비해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미 출판이 1년이나 지난 시점에서 알튀세르건 라캉이건 간에 책에 이미 제가 써놓은 내용을 이 자리에서 단순히 반복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라캉에 초점을 맞추되 제가 해석한 라캉이 알튀세르 뿐 아니라 또 다른 프랑스 현대 철학자, 특히 데리다나 들뢰즈와는 어떻게 관련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중심으로 제가 요즘 하고 있는 생각을 조금 말씀드려볼까 합니다. 따라서 오늘 말씀드릴 내용은 매우 가설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 대해 먼저 여러분께 양해를 구해야 할 것 같습니다.

더불어 오늘은 일본의 철학자들도 몇몇 거론할 예정인데, 저는 사실 요즘 일본 철학자들의 작업들을 기회가 될 때마다 매우 흥미롭게, 그리고 약간의 부러움을 갖고, 읽어보고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프랑스 철학자들의 관계들을 과감하게 재구성함으로써 그들 철학의 잘 보이지 않던 면들을 드러내고 있는데, 그 해석 자체에 동의하건 그렇지 않건 간에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물론 저 또한 그런 작업을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지적 자극을 받게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일본의 철학자 사토 요시유키는 발리바르의 지도 하에 쓴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을 책으로 출판한 『권력과 저항』에서 1960~70년대에 구조주의를 둘러싸고 프랑스에서 일어났던 논쟁의 구도를 묘사하면서, 알튀세르, (후기) 푸코, 들뢰즈, 데리다의 철학적 작업들은 모두 라캉의 구조주의적 입장에 대한 반발 내지 비판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저도 제 책 서문에서 이런 사토의 해석을 언급하며 일정하게 공감을 표한바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는 동시에, 라캉에 대한 이들의 비판이 외재적인 비판이 아니라 내재적인 비판이었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들은 라캉의 단순한 외부에 진을 치고 원거리 포격을 해 댔던 사람들이 아니라 라캉의 진지 안으로 들어가 근거리 육탄전을 벌이거나 게릴라전을 펼쳤던 사람들이라는 말이지요. 바꿔 말해서 이들은 라캉의 이론으로부터 이미 많은 것을 가지고 온 후에 그 지반 위에서 전투를 개시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라캉은 어쩌면 공공연한 라캉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비-라캉주의자 또는 심지어 반-라캉주의자 안에도 어느새 이미 들어와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프랑스 철학을 하고 있는 우리는 예외 없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약간의 라캉주의를 비밀처럼 가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제 책의 제목 ‘라캉 또는 알튀세르’가 사실은 ‘라캉 또는 데리다’, ‘라캉 또는 들뢰즈’와 같은 ‘라캉 또는 X’의 환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저는 최근에 또 다른 일본의 철학자인 아즈마 히로키가 스물여섯이 되던 해에 쓴 『존재론적, 우편적』이라는 책에 대한 세미나를 해방촌에 위치해 있는 ‘우리 실험자들’이라는 연구공간에서 조직했습니다. 그렇게 젊은 나이에 그런 책을 쓸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인상적인 그 책은 데리다에 대한 아즈마의 해석을 담고 있는 책이지만 저는 그 책을 읽으면서 데리다 뿐만 아니라 라캉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즈마의 해석에 따르면 데리다는 전기 데리다와 중‧후기 데리다로 나뉠 수 있는데, 전기 데리다가 어떤 형이상학적 시스템이 갖는 메타 레벨과 오브젝트 레벨의 단락(court-circuite)으로 인해 그 시스템이 자괴되는 지점을 보여주는 괴델적 탈구축(또는 존재론적 탈구축)을 행하고 있다고 한다면, 중‧후기 데리다는 오히려 모든 각각의 낱말이 필연적으로 갖고 있는 에크리튀르적 차원 때문에 그것이 잘못 배달될 수 있는 가능성(오배 가능성)에 주목하는 우편적 탈구축을 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아즈마는 사실상 전기 데리다의 괴델적 탈구축을 행하는 가장 전형적이고 대표적인 이론가로 라캉을 꼽고 거기에 후기 데리다를 대립시키지요. 아즈마에 따르면, 라캉은 시스템의 불완전성 또는 불가능성이 드러나는 지점(자괴점)으로서의 ‘실재’에 주목하면서, 그것은 ‘어떠한 목적지에도 도착하지 않는다’는 목적지에 도착하기 때문에 반드시 자신의 목적지에 도착하게 된다는 역설적 주장을 펼치는 데에서 정확히 멈춥니다. 저는 이런 아즈마의 해석은 사실 몇 가지 점에서 중대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전기 데리다의 탈구축과 후기 데리다의 탈구축을 이와 같이 구분할 수 있는지에 대해 저는 충분한 동의를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오늘 제 논의의 초점인 라캉과 관련해서도, 과연 라캉이 ‘실재’를 그런 것으로 사고했는가, 더 나아가서 과연 라캉과 데리다 사이의 쟁점이 언어의 에크리튀르적 차원에 주목했는지 여부에 있는가 자문해 보게 되는데, 이에 대한 답은 저의 견해로는 명백한 ‘그렇지 않다’입니다.

외려 저는 언어의 에크리튀르적 차원에 가장 먼저 주목했던 것은 데리다가 아니라 라캉이라고 거꾸로 주장하고 싶습니다. 「‘도난당한 편지’에 대한 세미나」(1956)와 「무의식에서의 문자의 심급」(1957)이라는 논문에서 볼 수 있듯이 라캉은 누구보다도 먼저, 그리고 데리다보다 적어도 10년을 앞서서, 언어의 문자적/우편적 차원, 곧 lettre의 차원에 대한 이론화를 시도했고, 그 위에 자신의 정신분석학적 담론 전체를 구축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라캉이 이런 에크리튀르의 차원에 대한 분명한 이론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을 보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고려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 같습니다.

  아즈마에 따르면, 데리다의 산종(dissémination) 개념은 전통적으로 인정되어온 다의성(polysémie)과 구분된다는 점에서 그 개념적 독자성이 평가되어야 합니다. 단적으로 말해서, 다의성은 환원 가능하고 소진 가능한 다양성으로서 텍스트의 저변에 있는 어떤 콘텍스트(들)의 풍부함을 근거로 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산종은 환원 불가능하고 소진 불가능한 다양성으로 오히려 에크리튀르가 그 모든 콘텍스트들로부터 스스로를 분리할 수 있기 때문에 생겨나는 풍부함입니다. 예컨대 셰익스피어의 『햄릿』이라는 작품이 원래 너무나 풍부하고 다양한 의미들(콘텍스트들)을 그 안에 담고 있기 때문에 그 이후에 그 작품에 대한 다양한 의미가 나올 수 있었다고 파악한다면, 이는 다의성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반면 셰익스피어의 『햄릿』의 텍스트는 그 자체로는 아무 것도 아닌 하나의 에크리튀르이며, 이 에크리튀르가 그 후에 오는 다양한 콘텍스트들과 마주침으로써 다양한 의미가 나올 수 있게 된다고 파악한다면, 이는 산종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만일 다의성의 모델을 따라 우리가 사고한다면, 『햄릿』 안에는 아무리 풍부하다고 할지라도 어떤 한정된 숫자의 다양성이 있을 것이며, 그것을 하나하나 이끌어내는 작업은 아무리 오래 지속된다고 할지라도 언젠가는 끝이 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다의성은 환원 가능하고 소진 가능한 다양성이 되는 거지요. 그러나 만일 산종의 모델을 따라 우리가 사고한다면, <햄릿>이라는 기록은 도래할 그 모든 무한수의 콘텍스트들과 마주침을 멈추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환원 불가능하고 소진 불가능한 다양한 의미를 갖게 될 것입니다. 결국 다의성과 달리 산종은 어떤 기록이 콘텍스트를 만나 비틀어지는 현상을 일컫고, 그러므로 언제나 사후적인 방식으로만 생산되는 효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산종이 먼저 있는 것이 아니라 에크리튀르의 단수성이 먼저 있고 그것이 산종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런 의미에서의 산종은 라캉이 환유적 누빔점(point de capiton)에 대해서 설명한 것과 정확히 동일하지 않습니까? 라캉에 따르면, 우리는 어떤 기표의 연쇄를 들을 때, 그 기표의 기의를 처음에, 그리고 듣는 순서대로 확정하지 못하고, 오직 어떤 누빔점이 형성되었을 때에만 회고적인 방식으로 확정할 수 있습니다. ‘나는 배가 고프다’라는 문장의 첫 번째 기표인 ‘나는’은 처음에 그것을 들었을 때는 그 기의가 일인칭 주어를 뜻하는지, 아니면 ‘날아가는’의 의미를 갖는지, 그도 아니면 ‘나라는 글자는’인지 의미를 결정할 수 없습니다. 오직 문장을 다 듣고 난 후에야 우리는 ‘나는’의 기의를 확정할 수 있지요. 그러나 라캉이 동시에 강조하는 것은 바로 이렇게 형성된 통시적 성격의 환유적 누빔점은 또 다른 기표들의 도착으로 인해 언제든 다시 해체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배가 고프다’에 이어 ‘바로 지식에 굶주려 있다는 뜻이다’라는 기표사슬이 도착하게 되면 첫 번째 문장은 ‘나는 뭘 좀 먹고 싶다’가 아니라 ‘나는 뭘 좀 배우고 싶다’로 둔갑해 버리듯이 말입니다. 이런 환유적 누빔점의 형성과 해체가 가능한 이유는 애초에 라캉에게 있어서 기표가 기의로부터 분리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소쉬르에게 있어서 ‘기호=기표+기의’이며 따라서 그의 기표 개념은 항상 기의와 결합되어 있지요. 그는 그 두 가지를 종이의 앞뒷면이라고 부르면서 우리는 종이의 앞면은 놔둔 채 뒷면만 자를 수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라캉은 기의로부터 분리되는 기표의 차원, 기의 없는 기표의 차원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이로 인해 기표와 기의가 서로 미끄러진다는 것을 보여주었지요. 바꿔 말해서 라캉에게서 기표는 기의 또는 의미의 질서로 환원될 수 없는 어떤 물질적인 또는 심지어 물리적인 차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라캉이 das Ding(사물)이라고 불렀던 것은 바로 이런 사물로서의 언어의 차원지요. 예컨대 ‘나무’라는 기표는 나무의 관념을 기의로 갖지만, 그것과 별도로 단순히 ‘나’라는 음소를 통해 ‘나비’, ‘나병’, ‘나체’ 등의 다른 기표와 연관을 맺을 가능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라캉에 따르면, 우리의 무의식은 바로 이런 기의 없는 기표의 차원에서 조직됩니다. 무의식은 의식처럼 의미를 따라, 의미의 논리를 따라 운동하지 않고, 기표의 차원, 다시 말해서 의미 없는 음향적 차원이나 더 나아가 소리 없는 문자의 (비)논리를 따라 운동하며, 그렇기 때문에 프로이트가 말했듯이 “무의식은 모순을 모른다”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게다가 심지어 만일 우리가 다국어를 구사할 수 있다면, 꿈속에 등장하는 어떤 단어는 그 자체로 두 가지 국적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 때 그 단어는 소리의 차원을 사실상 넘어가게 됩니다. 아즈마 자신이 지적하듯이, 제임스 조이스의 ‘He war’라는 문장에서 war는 ‘전쟁’이라는 뜻의 영어 단어일 수도 있지만 ‘존재했다’라는 뜻의 독일어 단어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저 war는 소리 내어 읽을 수 없는 에크리튀르의 차원을 보여주며, 에크리튀르가 갖는 소리에 대한 우선성을 보여주는데, 라캉은 바로 이 에크리튀르의 차원을 ‘무의식에서의 문자의 심급’이라고 불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저는 (라캉적이건 프로이트적이건 간에) 정신분석학에 대해 사람들이 갖는 흔한 오해에 대해 한 마디 하고 싶습니다. 사람들은 정신분석학적 임상치료란 결국 내담자 또는 환자가 들려주는 이러저런 사적이고 내밀한 이야기들을 오이디푸스 삼각형의 도식으로 환원시켜서 ‘넌 엄마를 사랑하고 아빠를 미워하거나 죽이고 싶어 하는 것이며, 그런 생각을 고쳐먹어야 해’라고 말해주는 것으로 끝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정신분석학에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갖는 중요성을 부인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프로이트뿐만 아니라 라캉도 오이디푸스의 중요성에 대해 누누이 강조했으니까요.

  그러나 정신분석학이 만일 저런 도식으로 모든 이야기를 환원하는 실천에 불과하다면, 사실 내담자는 정신분석가를 찾아갈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사실 그건 그리 어려운 이야기도 아니지 않습니까? 정신분석학에 대한 작은 안내책자를 한 권 만들어 모두들 사 보게 만드는 것이 아마 훨씬 빠르고 경제적인 방법일 것입니다. 사실 많은 내담자들은 정신분석학을 나름대로 공부하여 분석가와 만난 자리에서 자신의 꿈이나 개인적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그것을 스스로 분석하고 ‘이게 이런 뜻 아니겠냐, 저런 뜻 아니겠냐’고 분석가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이때 만일 정신분석가가 그 해석을 긍정하거나 또는 반대로 부정한다면 그는 전혀 정신분석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맞는 해석’이라고 말하는 것은 곧 내담자의 나르시시즘을 강화할 것이며, ‘틀린 해석’이라고 말하는 것은 내담자의 저항을 강화할 것이기 때문이지요(그리고 이 또한 나르시시즘적 저항이겠지요).

  분석가는 그런 식의 의미 찾기(herméneutique)에 몰두해서는 안 됩니다. 그는 스스로를 완전히 다른 수준에 위치시켜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내담자의 이야기의 의미가 아니라 그 의미의 실패의 수준에서 작업해야 하는 것이지요. 내담자가 말실수 하는 곳, 당황해 하는 곳, 침묵하려고 애쓰는 곳이 어디인지를 봐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분석가는 무엇을 발견해야 하는 걸까요? 바로 ‘기표’입니다. 기의 없는 기표, 무의식 안에 억압되어 있는 의미를 갖지 않은 기표를 발견해서 그것을 꺼내오고 그것을 다른 기표들과 연결하여 (특히 시적인 은유의 메커니즘을 통해) 의미화하는 것이 바로 정신분석적 해석(Auslegung)이 목표로 하는 것이지요. 이 기표는 의미의 논리를 따라서 운동하지 않고 음향적 차원이나 문자적 차원에서 운동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구체적으로 발견하는 일이란 매우 힘들고 시간이 걸리는 일입니다. 이는 단지 라캉적 정신분석에서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예컨대 데리다와 매우 친화적인 니콜라스 아브라함과 마리아 토록의 비밀어(cryptonimie)에 대한 논의는 그 핵심 메커니즘에 있어서 라캉적 기표 분석, 문자 분석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문자의 차원에 집중한다면 왜 정신분석학은 대화 치료법을 채택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확실히 모순이 아닐까요?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대화 치료의 다음과 같은 면들을 고려해야 합니다. 먼저 대화 치료는 분명 음성언어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음성중심주의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 수 있으며, 오히려 음성언어를 일반화된 에크리튀르의 차원에서 다루는 것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뤼스 이리가레는 어디선가 정신분석 클리닉에 등장하는 기이한 배치를 강조한 바 있지요. 내담자는 분석을 받기 위해 분석실에 들어오게 되면 긴 소파에 비스듬한 자세로 눕게 되는데, 그것도 분석가를 등지고 그렇게 눕게 됩니다. 이것은 정상적인 대화의 배치가 아니지요. 이런 배치는 무엇을 위한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내담자를 일상적인 현전(présence)의 모드에서 빼내기 위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대화를 할 때, 우리는 우리의 영혼 속에서 말하고자 하는 의미가 음성언어를 통해 어떤 오염도 없이 그대로, 그리고 매우 즉각적으로 상대편의 영혼 안으로 전달되고 있다는 현전의 환상을 갖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음성중심주의에 연결되어 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는 것이겠지요. 정신분석 치료의 기이한 배치는 바로 이것을 교란시키고 방해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일까요? 바로 의미로 환원되지 않는 언어의 에크리튀르의 차원을 드러내기 위해서가 아닐까요? 제가 미국에서 유학하던 시절 데리다 번역자로도 유명한 정신분석가 앨런 배스 선생님의 강의를 두 학기 정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배스 선생님은 자신의 분석이 실패했던 사례를 하나 들려 주셨습니다. 어떤 내담자와 아주 오랜 기간 동안 정신분석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선생님은 내담자가 옆에 놓여 있는 티슈를 담아 둔 실버 커버를 통해 분석가인 자신을 계속 살피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그는 그 즉시 분석을 중단하고 그 내담자를 다른 분석가에게 보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지요. 배스 선생님은 이 때 그 실버 커버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하나의 페티시를 형성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것을 현전의 페티시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어찌 되었건, 이제 우리는 라캉적 정신분석학이 괴델적 탈구축을 하는 데에 머물고 있다는 아즈마 히로키의 주장을 충분히 반박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라캉적 정신분석학은 시스템이 자괴되고 있는 곳에 놓여 있는 텅 빈 대상으로서의 대상 a를 단순히 지적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뒤에 은폐되어 있는 ‘실재’로서의 구체적인 기표 또는 문자를 발견하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pur-loin-ed letter, lettre en souffrance, 배달이 지연되고 있고 고통받고 있는 편지/문자를 다시 배달하기 위한 작업이 정신분석학적 치료인 것이지요.

  그렇다면 결국 이는 라캉이나 데리다나 똑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는 말일까요? 글쎄요.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합니다. 적어도 한 가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라캉과 데리다 사이의 논쟁은 아즈마가 말하듯이 에크리튀르의 차원에 주목했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관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라캉에 대한 데리다의 1975년 비판(「진리의 배달부」)은 아즈마가 말하듯이 괴델적 불가능성만 강조하는 라캉 정신분석학의 부정신학적인 성격을 향한 것이 아니라 그것의 팔루스-로고스중심주의를 향한 것이었습니다. 특히 데리다는 부성적 상징법칙 또는 아버지의-이름이 편지를 ‘반드시 목적지에 도착’하게 만든다는 라캉의 관점을 비판했던 것입니다. 물론 저는 제 책에서, 라캉이 사실 1973~74년 세미나인 『앙코르』에서 부성적 상징법칙의 필연성을 스스로 포기하고, 따라서 ‘편지는 자신의 목적지에 반드시 도착한다’라는 자신의 중심 테제 또한 포기했다는 것을 논증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라캉의 정신분석학은 이때 더 이상 ‘과학’이 아닌 ‘노하우’로서의 포스트-정신분석학으로 이행한다고 평가했지요. 그의 스물세 번째 세미나에 등장하는 생톰(sinthome)에 대한 논의는 이런 관점에서 부성적 은유로 한정될 수 없는 수많은 상이한 은유들의 폭발적인 과잉생산이라는 조이스적 실천에 주목하는데, 이는 사실상 데리다의 철학과 상당히 수렴하는 것이라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어쨌든 우리가 통상 믿는 것과는 달리 데리다는 라캉과 전혀 다른 곳에서 작업했던 것이 아니라, 푸코 또는 오히려 발리바르 식으로 말한다면 라캉이 만들어 놓은 바로 그 에피스테메 안에서 이단점(point d’hérésie)을 형성하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좀 더 사실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게다가 저는 심지어 라캉의 아버지의-이름이라는 개념조차 쉽게 기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 책의 마지막 부분은 폭력이라는 쟁점을 다루고 있는데, 거기에서 저는 라캉의 아버지의-이름을, 데리다 식으로 표현하자면, ‘의사-초월론’적인 방식으로 다룰 필요성에 주목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마키아벨리적인 방식으로 좀 더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양태를 갖는 복수의 초월적인 것에 대해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때 데리다의 논의는 매우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우리가 초월적인 것을 단순히 부정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면 라캉이 말한 아버지의-이름이라는 것도 단순히 부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라캉은 은유 또한 환유와 마찬가지로 기의 없는 기표나 문자의 수준에서 이론화 했지요. 물론 그다지 없는 의미를 생산하는 환유와 달리 라캉에게서 은유라는 것은 의미의 생산으로 파악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라캉은 이런 의미의 생산은 의미와는 상관없는 차원에서, 곧 기표 또는 기표보다도 더 심층에 놓여 있는 음소(phonéme)나 문자의 차원에서 발발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은유를 pas-de-sens라고 불렀습니다. 여기서 pas는 아마도 중의적인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것은 의미 아님 또는 의미 없음을 지시하기도 하지만, 의미의 비의미적 디딤돌 또는 비의미에서 의미로 나아가는 첫 걸음을 지시하기도 하는 것이지요.

이와 관련하여 저는 이번에는 라캉을 들뢰즈와 접근시켜 보고 싶습니다. 과연 들뢰즈는 많은 이들이 말하듯이 라캉의 완전한 대척점에서 작업했던 것일까요? 들뢰즈의 초월론적 경험론은 무엇보다도 의미의 생성에 대한 발생론적인 추적의 시도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어떻게 물질적이고 경험적인 질료가 그 자체의 역량만으로 비물질적인 의미를 발생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 물으면서, 의미의 발생 또는 단적으로 의미 자체를 바로 ‘사건’이라고 명명했지요. 그런데 들뢰즈가 질료로부터의 의미의 이런 발생을 설명하기 위해 의존하는 이론은 바로 라캉의 정신분석학이었습니다. 적어도 『의미의 논리』에서 들뢰즈의 설명은 제가 보기엔 라캉적 인식의 장을 전혀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들뢰즈는 비물질적이거나 이념적인 의미를 발생시키는 사건으로서의 특이점을 설명하기 위해 두 계열(기표와 기의의 계열)에 동시에 속하는 역설적 심급에 대해서 논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 역설적인 심급의 특징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이 심급은 두 계열 안에서 끊임없이 순환한다. 놀랍게도 이 순환이 [두 계열의] 소통을 가능하게 한다. 그것……은 기표 계열과 기의 계열 양자 모두에게서 나타나는 두 얼굴의 심급이다. 그것은 거울이다. 또한 그것은 동시에 말이자 사물이며, 이름이자 대상이며, 의미이자 지시된 것이며, 표현이자 지시 작용이다. 그래서 그것은 그것이 돌아다니는 두 계열의 수렴을 보장한다(물론 이는 그들을 끊임없이 발산하게 만든다는 조건하에서이다). (『의미의 논리』, 이정우 역, 한길사, 104쪽, 강조는 인용자)

저는 제 책의 앞에 삽입한 용어해설에서 라캉의 ‘억압’ 개념에 대해 설명하면서 라캉에게 있어서 억압이란 다름 아닌 기표의 억압이며 어떤 특정 기표가 막대 아래의 기의의 영역으로 눌려 내려가 그곳에서 기의의 역할을 떠맡게 되는 현상을 지시한다고 말했습니다. 기표의 영역에는 따라서 하나의 결여(공백)가 생겨나게 되고 기의의 영역에는 하나의 과잉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지요. 들뢰즈는 정확히 이렇게 두 계열이 단락되는 지점에 놓여 있는 심급을 역설적 심급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또 다른 구절을 인용해보지요. 들뢰즈는 이렇게 말합니다.

구조주의의 문학적 짝은 카뮈가 아니라 캐럴이다. 왜냐하면 부조리의 철학에 있어 무의미란 단순히 의미와 대립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반대로 구조주의의 관점에서 볼 때 언제나 너무나 많은 의미가 존재한다. 과잉은 자체 결핍으로서의 무의미에 의해 생산되고 과잉 생산된다. 야콥슨이 정의한 제로 음소, 즉 어떤 규정된 음운학적 값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음소와 대립하기보다는 음소의 부재에 대립하는 음소처럼, 무의미는 어떤 특정한 의미도 지니고 있지 않지만, 그 생산물과 우리가 원하는 단순한 배제의 관계를 맺지 않음으로써, 그것이 과잉생산하는 의미에보다는 의미의 부재에 대립한다. 무의미란 의미를 지니지 않은 것이기도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의미 줌을 수행함으로써 의미의 부재에 대립한다. 이것이 우리가 무의미(non-sense)라는 말에 의해 이해해야 할 바의 것이다.(150, 강조는 인용자)

  여기서 우리는 들뢰즈가 의미의 발생을 설명하기 위해서 바로 라캉의 은유 개념에 의존하고 있음을 어떤 모호함도 없이 볼 수 있습니다. 들뢰즈는 특히 여기서 가방어(portemanteau), 다시 말해서 합성어 형성의 메커니즘을 통해 의미의 생산을 설명하려고 시도하는데, 이는 사실 제 책의 제1장 마지막 절에서 제가 보여드린 것처럼 라캉이 1957~58년 세미나, 곧 다섯 번째 세미나에서 이미 풍부한 방식으로 설명한 것이지요. 1969년에 나온 들뢰즈의 『의미의 논리』는 확실히 라캉의 논리를 그대로 반복하거나 기껏해야 변주하고 있을 뿐입니다.

  물론 제가 이렇게 말하면 곧바로 예상 가능한 반론은, 들뢰즈의 이런 논의는 ‘정적 발생’에 한정된 것이며 ‘동적 발생’은 이런 라캉적 논의 틀을 넘어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라캉은 캐럴의 수준에 멈추어 있다면 들뢰즈는 아르토의 수준으로까지 나아가고 있다는 반론이 가능하겠지요. 그러나 정말 그럴까요? 라캉에게 있어서 은유는 확실히 캐럴적인 “표피적 수준”에서 진행되고 있으며 아르토적인 “심층적 수준”과 무관한 것까진 아닐지라도 그 수준에 머물러 있으려고 하진 않는다는 점에서 확실히 정적 발생에 연관되어 있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라캉에게 사물로서의 언어는 단지 은유나 또는 환유에만 속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말하는 존재(parlêtre)로서의 대타자(모성적 대타자)와의 첫 마주침에서 주체가 경험하는 ‘기의 저편’의 차원을 가리킵니다. 무엇보다도 이는 아직 환유도 은유도 형성되기 전에 어떤 의미도 아직 경험하지 못한 주체가 자신의 목구멍에 숟가락으로 억지로 쑤셔 넣어지고 있는 사물로서의 기표, 기의 없는 기표를 간신히 삼킬 때 체험하는 차원인 것이지요. 목구멍이 긁히는 소리 없는 소리, 그 비명의 차원 말입니다.

  그러나 들뢰즈와 라캉이 정확히 일치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하면 그것은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가장 중요하게는 이런 ‘기관 없는 신체’로서의 질료적인 기표의 수준에서의 경험을 진정 하나의 ‘발생’으로 봐야 하는가 하는 쟁점이 있습니다. 분명히 여기서 들뢰즈와 라캉은 다른 길을 걷고 있는 것 같습니다. 들뢰즈는 발생론적인 관점에서 초월성(곧 의미)을 생성시키는 경험적인 것으로서의 질료적 기표나 기표의 조각들을 말하고 있지만, 라캉은 그런 사물로서의 기표라는 것은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대타자에 의해 강제되거나 부과된다고 보기 때문이지요. 여기서 우리는 벤베니스트가 소쉬르 이전의 19세기 언어학과 소쉬르 이후의 언어학을 대조하면서 전소쉬르적인 언어학은 언어의 기원, 언어의 발생이라는 질문에 의해 지배되었다고 한다면, 포스트소쉬르적인 구조주의 언어학은 언어의 기원이라는 질문에 대한 과감한 거부로 특징지어진다고 말했던 것을 기억하게 됩니다(지나가는 길에 제가 책에서 말했듯이 알튀세르는 이 점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도 언급해 두고 싶습니다). 확실히 들뢰즈는 그런 면에서 볼 때 그가 구조주의적 논리를 차용해 올 때조차도 전-구조주의 또는 반-구조주의(포스트-구조주의가 아니라)의 입장을 취하고 있던 것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물론 또 다른 일본의 철학자인 고쿠분 고이치로가 『들뢰즈 제대로 읽기』에서 말했듯이 들뢰즈는 『의미의 논리』 이후 과타리와의 공동 작업에 돌입함으로써 어떤 심대한 변화를 겪는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변화를 통해 그가 완전히 라캉의 틀을 벗어나는 논의를 시작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요. 저는 솔직히 말해서 이런 주장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에 대해 아직 이렇다 할 확신이 없는 상황이긴 합니다. 말하자면 저의 앞으로의 연구 주제인 셈이지요. 다만 이 자리에서는 제가 가진 소박한 문제의식을 여러분과 공유하는 것에 만족하고 싶습니다.

  『천 개의 고원』에 등장하는 리좀적인 것과 수목적인 것의 대립 및 리좀적인 것의 특권화가 있기에 앞서, 『안티 오이디푸스』에는 이미 그런 리좀적인 것을 예상하는 논의가 나오고 있지요. 많이 인용되는 그 책의 첫 구절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것(ça)은 도처에서 기능한다. 때론 멈춤 없이, 때론 단속적으로, 그것은 숨쉬고, 열내고, 먹는다. 그것은 똥 싸고 씹한다. 이드(le ça)라고 불러 버린 것은 얼마나 큰 오류더냐?”(김재인 역, 민음사, 23쪽) 오래 전에 김재인 선생은 여기서 “그것”은 입이라고 볼 수도 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 것으로 기억합니다. 말하자면, 입은 말할 때는 말하는 기계이지만, 키스할 때는 키스하는 기계이고, 성기를 애무할 때는 씹하는 기계이며, 숨 쉴 때는 호흡하는 기계라는 것이지요. 사실 들뢰즈와 과타리가 『천 개의 고원』에서 리좀적인 것을 설명하기 위해 드는 유명한 예인 말벌과 서양란(오르키데) 사이의 관계도 그런 것이라고 볼 수 있지요. 전혀 상이한 두 개체가 서로 접속하면서 서로의 본질을 전혀 다른 맥락으로 탈영토화시키는/재영토화하는 관계 말입니다.

  그런데 라캉주의자의 눈으로 본다면, 이는 정확히 앞서 설명한 환유적 누빔점의 형성이 아닐까요? 입이라는 기표, 말벌이라는 기표, 서양란이라는 기표는 각각 자신의 본래의 기의를 갖는 것이 아니며 오직 그 옆에 오는 (누빔점의 역할을 하는) 또 다른 기표에 의해 그 본질을 부여받을 뿐이라고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만일 그렇다면, 리좀적인 것이란 사실 환유를 의미하며, 수목적인 것이란 사실 은유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는 과연 라캉을 벗어나고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라캉이 마련해 놓은 바로 그 지반 위에서 내적인 전투를 벌이고 있는 것일까요? 저는 아직 확실히 이렇다 하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시점에서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라캉은 생각보다 훨씬 더 우리 가까이에 와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우리 등 뒤에 이미 와 서 있으며, 우리 등 뒤에서 그 약간은 음탕해 보이고 약간은 재는 듯한 허스키한 목소리로 낮게 읊조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거지요. 다른 분들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만큼은 그런 의미에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 허락된다면, 저 자신이 ‘라캉-또는-X주의자’임을 인정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설익은 생각을 끝까지 참고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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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문화/과학』 뉴스레터 2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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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21호][신간안내] 오창은 평론집 『나눔의 그늘에 스며들다』 (문화다북스, 2017)

 『나눔의 그늘에 스며들다』 (문화다북스, 2017)

문학평론가 오창은의 세 번째 평론집. 저자는 200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에서 당선된 이후 계간 「실천문학」의 편집위원을 역임했다. 2017년 현재 계간 「문화/과학」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고, 중앙대 다빈치교양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오창은 문학평론가는 당대 시대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면서 삶과 결합된 평론을 줄곧 써왔다. 시대를 외면하지 않고 시대의 중심에 들어가 올곧은 평론을 쓰려는 저자의 태도는 이번 평론집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다. 문학이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끌어안아야 한다는 저자의 생각은 글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저자는 문학을 나눔과 스밈의 식사자리라고 말한다. 문학은 낯선 것을 배제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있고, 급하게 다그치지 않는 여유가 있으며, 깊이 음미하고 공감하려는 윤리가 있다는 것이다. 저자가 평론집의 제목을 ‘나눔의 그늘에 스며들다’로 정한 것은, 한국사회의 아픔을 되새겨 보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문학 비평이 나의 이야기이면서, 누군가의 이야기이고, 모두의 이야기가 되는 나눔이기를 희망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저자는 자신의 비평이 시대의 어둠과 그림자, 아픔과 상처에도 눈길이 가는 글쓰기였다고 말한다. 문학 텍스트를 통해 작가는 독자에게, 비평가는 작가와 독자에게, 독자는 모두의 삶의 저변에 스며듦으로써, 삶에 대한 스스로의 질문에 흠뻑 젖어드는 나눔의 경험이 공유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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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21호][정책자료] 새정부문화정책토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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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21호][정책자료] 예술인 종사실태를 고려한 고용보험 적용방안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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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21호][정책자료] 예술인고용보험 적용을 위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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