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21호][칼럼] 지방 포르노그래피와 향토의 맛 (권명아)

[한겨레 칼럼]

지방 포르노그래피와 향토의 맛

권명아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유머 게시판에 캡처된 사진이 올라왔다. 사진 설명에는 ‘○○대게 조형물’과 ‘△△인삼 동상’이라고 적혀 있다. 캡처된 사진과 캡션만으로 조롱과 희화화가 넘쳐났다. 캡처된 이미지만으로 대상을 폄훼하는 방식은 혐오발화와 다르지 않고 전시되는 방식은 포르노그래피를 닮았다. 여성 신체가 절취되어 전시되듯 지방은 ‘향토’라는 신체로 절취된다. 지방 포르노그래피에서 향토는 ‘야만적’일수록 맛있고, 맛있어야 할 뿐이다.

조롱거리로 전시된 지역 조형물이 지역-토산물의 조합인 건 향토에 대해 입맛을 다시는(taste) 근대적 지배의 전형이다. 향토를 자원화하는 데 매달릴 수밖에 없는 지역에서 토산물은 ‘토템’과 다르지 않다. 그 지역을 지켜주고 삶을 이어나갈 절대적 기반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관료주의적인 지방정부의 전시행정은 거대한 기념물과 조형물을 양산한다. 그 결과 토템처럼 신성하지도 않으나 거대하고, 지역 주민의 문화 향유와 아무 관계도 없고 관광객 유치에도 도움이 되지 않고, 결국 캡처당해 조롱되는 무수한 조형물이 생산되는 것이다.

향토를 자원화해온 결과다. 그래서 저 거대한 조형물에는 지방의 경제와 문화와 삶을 둘러싼 총체적 비애가 담겨 있다. 먹방으로 넘쳐나는 온라인 네트워크는 향토에 대한 ‘입맛 다심’이 테크놀로지를 통해 다시 절취되는 경지와 지경이다. 약탈적 지리정보시스템은 지역의 정보를 전달하는 게 아니라, 대규모 자본과 특정 정보 중심으로 지역의 생태계를 포획하고 재구축한다. 뜬금없는 가야사 논쟁은 이런 맥락에서 ‘향토 먹방’의 실시간 생중계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약탈과 포획의 지도를 찢어버리고 새로운 지도를 그려낼 날을 기다리고 있는 지방 주민들에게 가야사 논쟁이나 사이비 역사 논쟁은 포르노그래피보다도 더 선정적이고 비현실적인 이야기다. 조롱거리로 전시되는 ‘토템’을 이고 살아야 하는 지방의 현실에서 고대사 지도 따위를 새로 그려서 어쩌자는 건가. 실상 가야사든 근대사든 역사적 심상 지리를 지방 정체성의 준거로 삼는 건 지방을 향토로 자원화해온 오랜 관성의 반복일 뿐이다. 향토를 자원화해온 지방의 삶과 존엄이 어떤 지경인지는 먹방과 조롱의 지방 포르노그래피가 잘 보여준다. 고대사가 ‘향토 먹방’의 새 스토리가 된다고 지방 포르노그래피가 바뀔 전망은 전혀 없다.

그러나 자신들의 미래가 걸린 새로운 권역 상상과 담론에 막상 지역의 여러 주체는 ‘향토’의 판매자거나 구경꾼의 자리에 할당되기를 반복한다. 지방이 개발독재 시대의 향토정치와 단절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심상 지리를 준거로 하는 것과는 다른 길을 가야 한다. 지난 정권에서 지방은 4대강과 문화창조융합벨트와 같은 국가 스케일의 지리지에 포획되었다. 국가 스케일 단위의 권역 배치에서 지방은 낡은 산업자본주의적 배치와 할당에 포획되어 재산업화의 기반을 상실했다. 탈냉전의 기조로 가능할 수도 있었던 중국, 일본, 동남아시아 인접 지역과 새로운 연결은 신냉전 기조로 막혀버렸다. 포르노그래피와 약탈적 지리지가 반복되는 것은 사회 내부의 지역혐오와 신냉전의 스케일이 결합된 결과다.

새로운 권역 구상에 대한 논의에 지역 주체의 자리는 사라지고 역사 연구의 진짜 주체에 대한 논의가 무성한 것은 ‘지방 영토’와 ‘원주민’이 영토분쟁에서 그저 포획의 대상으로 배제된 오랜 역사의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지방 포르노그래피와 약탈적인 지리지와 단절하기 위해서도 새로운 권역 구상에 대한 논의는 ‘역사 논쟁’이 아닌 지역 정치 차원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98031.html#csidxd497dd8402cef13b81e262c8f8cd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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