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21호][칼럼] 지식생산의 민주화 (강내희)

한겨레 칼럼

지식생산의 민주화

강내희
지식순환협동조합 대안대학 학장

오늘 칼럼 쓰는 데 참고하고자 발터 베냐민의 ‘내 장서를 풀며’라는 글을 다시 읽어 보려고 서재에서 책을 찾다가 결국 못 찾고 말았다. 그 글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프랑스 작가 아나톨 프랑스가 누가 자기 장서를 보고 “선생은 이 책들을 다 읽었을 것 아니냐”고 하자 십분의 일도 못 읽었다며 집에 도자기 그릇이 있다고 매일 사용하느냐고 반문했다고 하는 대목이다. 프랑스가 한 말은 사실이라고 본다. 나도 읽지 않은 무수히 많은 책을 서가에 보관하고 있다.

  베냐민은 책 모으는 일이 꼭 읽기 위함인 것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내용 때문보다는 흥미로운 물건이라는 점 때문에 책을 수집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책은 그 생김새나 냄새, 또는 그것을 구한 장소나 관련된 어떤 사연 때문에 소중할 수 있다. 이럴 때 그것은 지식의 보고이기 전에 소유의 대상이다. 아니 책이 소유의 주체가 될 때도 있다. 책 ‘안’에서 살아가는 ‘책벌레’, 서가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애서가, 마음에 들면 꼭 사고 마는 사람에게 책은 이미 그의 주인이다. 이처럼 책은 꼭 읽을 대상으로만 그치진 않는다.

  하지만 책 수집은 이제 먼 옛날이야기다. 책 수집가가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라는 것은 베냐민도 자기 시대에 인정한 바다. 물론 그는 책 수집 현상이 사라지는 것을 기꺼워하지는 않았다. 그런 관행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퇴색해가는 그것의 모습도 소중하게 관찰해야 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도 책의 시대는 전성기가 끝났고, 책 수집도 이제는 거의 사라졌으며, 화면 읽기가 보편적이 되면서 ‘독서’라는 표현도 시대착오적일 정도가 되었다.

  사실 오늘 아침 베냐민의 책을 찾지 못했어도 나는 별로 걱정을 하지 않았다. 피디에프 파일로 된 그의 글을 인터넷으로 바로 찾아낼 수 있음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개인적으로 글을 쓸 때 필요한 자료를 찾기 위해 인터넷에 의존하기 시작한 것이 10년은 족히 넘은 것 같다. 근년에 출간한 단행본 두 권을 준비할 때도 ‘구글링’을 자주 사용했던 편이다. 개인 장서를 소장하고 있는 서재는 여전히 소중한 공간이지만, 컴퓨터 화면으로 글을 읽는 일이 잦아진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와서는 자료 구하는 일이 쉽지 않아졌다. 현직에 있을 때는 학교 도서관에 접속해 그곳과 연결된 다른 도서관 자료까지 검색해 내려받을 수 있었으나 정년 뒤에는 그러지 못한다. 주변에서 알아보니 비정규직이나 독립 연구자의 경우 비슷한 불편을 겪는 사례가 많았다. 얼마 전 참석한 한 토론회에서 듣기로는 국내 대학 도서관 가운데는 학술지 등의 구독료로 연 100억원대 예산을 쓰는 곳도 있다고 한다. 엄청난 규모이긴 하지만, 그런 대학에 적을 둔 학생과 교원, 연구자는 세계 유수의 도서관 자료를 쉽게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누리는 셈이다.

  반면에 내가 학장으로 있는 곳에서는 외국 자료 구입이란 상상도 못한다. 재정이 열악한 대안대학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학생들이 있고, 교수들이 있는 곳인데, 학술자료를 아예 접할 수 없다는 것은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대학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 한국에는 독립 연구자도 많다. 이들 대부분은 대학 도서관 자료를 사용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학술자료 검색을 원활하게 할 수 없는 연구자는 연구 등 지식생산을 제대로 하기 어렵다. 한국의 지식생산은 다른 열악한 점도 많지만, 학술자료에 접속하기 어려운 연구자들이 있는 만큼의 장애도 갖고 있는 셈이다.

  요즘 연구자는 책 수집이 별로 필요하지 않다. 전자책이 제법 많이 보급되었고 기존의 책도 피디에프 파일로 전환되어 있거나 특히 학술자료가 인터넷에 많이 올라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질 높은 자료를 읽으려면 너무 많은 비용이 드는 것이 문제다. 대학에 적을 두지 않은 연구자도 학술자료를 쉽게 검색할 수 있게끔 해줘야 한다고 본다. 그래야 더 많은 사람들이 지식생산에 참여해 사회적 창의성을 높일 수 있다. 연구자들이 필요한 자료를 쉽게 구하게 되면 지식생산의 수준도 높아질 것이다. 그러려면 대학 도서관을 통하지 않고도 좋은 자료를 볼 수 있게 적어도 공공도서관 한 곳에서는 외국 학술지를 포함한 자료를 확보하고 연구자 대중이 큰 비용 들이지 않고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지식생산도 민주화될 수 있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00161.html#csidx46d01fdfa4182e7b0946e1d2891b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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