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 15호][칼럼]선거 전야, 황정민 단상(손희정)

경향신문 기고문

 

선거 전야, 황정민 단상

 

손희정 (문화평론가)

 

 

노당당 하윤정 후보는 “아재정치 out”을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그는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가 과소대표되고 주류 남성이 과대대표되는 정치 현실을 ‘아재정치’라고 말한다. 하지만 비례대표 의석이 54석에서 47석으로 7석이나 감소하면서 여성, 장애인, 이주민, 청년 등 정치적 소수자들이 대표성을 얻을 수 있는 비율은 더욱 줄었으니, 20대 국회에서도 이런 상황은 나아질 것 같지 않다.

물론 아재정치는 여성을 통해서도 계속된다. “여성이 너무 똑똑한 척 하면 밉상”이라던 김을동이나 한기총에 찾아가 “차별금지법, 동성애법, 인권관련법, 이거 저희 다 반대한다”고 말한 박영선, 논문 표절 의혹에 변명이랍시고 ‘지방대 출신 제자’ 운운한 더민주 비례대표 1번 박경미 등을 떠올려보라. 그런 의미에서 아재정치란 한국 사회에 만연해 있는 구태정치의 다른 말이다. 혹은 대통령은 어떤가. 기실 아재정치의 정수에는 대통령이 있다. 한국 아재정치의 본질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아버지 정치’이기 때문이다.

아버지 정치가 계속되는 이유는 최근 한국영화 관객을 사로잡고 있는 ‘아버지 형상’에서 읽어볼 수 있다. 아버지 이야기를 중심으로 하는 부성멜로드라마의 인기가 새로운 현상은 아니지만, 그 형상을 통해 ‘컴백’하고 있는 정치적 무의식은 주목해 볼만하다. 예컨대 역대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명량>에서 이순신(최민식)은 한 나라의 장군이자 구국 영웅이면서 명백하게 아버지로 그려진다. 아버지의 ‘신의 한 수’를 이해하려고 발버둥치는 아들 이회(권율)가 영화 속 화자이기 때문이다. ‘장군=영웅=아버지’. 어쩐지 익숙하다.

그렇다면 박스오피스 2위 작품인 <국제시장>의 아버지 덕수(황정민)는 또 어떨까? 배우 황정민의 작품목록 변천사는 이런 맥락에서 흥미롭다.

황정민이 스크린에 등장한 것은 2000년대 초반이었다. 좋아하는 여자한테 고백 한 번 못하는 밴드 드러머(와이키키 브라더스), 노숙자로 세상을 떠도는 동성애자(로드무비), 바람 피느라 아들을 지키지 못한 변호사(바람난 가족), 실연으로 음독하는 ‘농촌 총각’(너는 내 운명), 그리고 트라우마 때문에 어른이 되지 못한 보험 사정원(검은집) 등이 김대중 정권 말-노무현 정권 기에 그가 연기한 ‘주변부 남성’이었다.

2009년, 그는 돈이라면 뭐든 하는 속물 탐정(그림자 살인)으로 돌아온다. 공무를 ‘사업(社業/私業)’으로 보았던 CEO 대통령 집권기의 일이었다. 이어서 황정민은 서울시장에 도전하는 서민을 연기한다(댄싱퀸). 그는 ‘민주투사 출신 인권변호사’ 타이틀을 통해 시장 후보가 되는데, 이는 전부 우연으로 얻어걸린 이미지다. 영화에서 민주화 운동의 가치는 농담거리가 되고, 그 농담은 ‘별 볼 일 없는 남자’를 정치 영웅으로 만드는 스토리텔링의 자원이 된다. 정치는 이미지이자 이야기일 뿐이라고,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 역시 마찬가지였다고, 영화는 강변한다. 안철수 열풍과 더불어 정치혐오가 대중적인 마음의 풍경이 되던 시기와 일치한다.

그리고 2014년. 그는 온갖 역경을 살아내고 기어이 이곳에 도착한 ‘아버지’(국제시장)가 되었다. 그 아버지는 그저 한 개인이 아니라 한국의 근대사 자체가 되어 아버지들이 이룩한 근대화의 영광을 지속시키지 못하는 ‘못난 자식들’에게 아득함과 죄의식을 함께 떠넘긴다. 대중은 황정민이 어정쩡한 아들에서 역사 그 자체인 아버지가 되는 과정을 지난 15년 간 꾸준히 지켜봐 온 셈이다.

황정민이 영화배우로 성장한 시기는 아버지와는 다른 가치를 가진 아들들의 정치가 펼쳐진 때와 겹쳐진다. 노무현은 탈권위의 정치를, 이명박은 탈대의의 정치를 선보였다. 그러나 그 정치는 결국 실패했고, 현실 정치에서의 세대교체 역시 미완의 과제로 남겨졌다. 새로운 정치, 새로운 세계에 대한 그림을 그리지 못했던 탓이다.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환상 속에 놓인 1인 남성 영웅의 정치서사는 필연적으로 실패를 노정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바로 그 남성 영웅’이 트라우마 혹은 향수로 여전히 존재하며, 우리는 그 아버지 정치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강력한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퇴행의 시대가 도래했다. 황정민이 그려내고 있는 노쇄한 영웅은 강력한 아버지의 거울상이다. 그리고 아버지가 되지 못한 나이든 아들들은 ‘아재’라는 이름으로 구태를 반복한다.

우리 시대의 정치혐오의 바탕에는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 아무런 감동도 주지 못하는 ‘아재정치’가 있다. 필리버스터를 둘러쌌던 열광은 이것이 정치 자체에 대한 혐오이기 이전에 특정한 정치, 즉 아재들의 구태정치에 대한 혐오임을 보여준다. 필리버스터 참여 의원 38명 중 17명이 여성이었다는 것, 김광진, 은수미 같은 정치인들이 특히 대중의 관심을 끌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정치가 스스로 정치임을 증명할 때에야 비로소 국민은 정치에 관심을 가진다. 총선 투표율은 떨어지는 반면 지방선거 투표율은 조금씩 오르고 있다는 점 역시 이의 방증일 터다. 이번 선거에서는 녹색당이나 노동당처럼 새로운 정치의 시도하는 정당들이 국회에 입성하는 변화가 일어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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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 15호][칼럼] ‘지는 싸움’을 ‘하는’ 이유(권명아)

한겨레 기고문

 

[야! 한국사회] ‘지는 싸움’을 ‘하는’ 이유

 

 

권명아 (동아대 국문과 교수)

 

선거는 ‘이기는 싸움’일 때만 의미가 있을까? 이번 선거에서 녹색당이나 노동당에 쏟아진 ‘걱정’은 한마디로 어차피 지는 싸움에 표를 ‘낭비’한다는 것이다. 어차피 ‘지는 싸움’이라면 그저 무시하면 될 터인데 왜 그리 걱정하고 말리지 못해 안달일까? 생각해보니 선거에서만이 아니라, 일상의 여러 문제에서 이른바 ‘지는 싸움’을 ‘계속하는’ 사람이나 집단이 부대끼는 문제는 참으로 유사하다. 어차피 질 싸움에 왜 소모적으로 인생을 낭비하느냐는 점잖은 훈계와 조언, 현실을 좀 알라는 계몽적 충고, 비현실적인 태도를 수정하라는 질책, 결국 이 모든 일이 뭔가 ‘현실적인 싸움’에 방해가 된다는 짜증, 그리고 경멸적인 비아냥거림과 근거 없는 모욕. 이런 부대낌은 차례로 나타나기도 하고 뒤섞여서 나타나기도 한다. 그런데 어차피 ‘지는 싸움’이라면 무시하면 될 터인데 왜 이 싸움을 계속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이런 식의 복잡한 반응들이 나타나는 것일까?

선거에 국한하지 않아도 ‘지는 싸움’에 휘말려 인생을 건 결단에 내몰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런 결단에 내몰리지 않아 본 사람들은 한국 사회에서 정말로 혜택받은 사람이다. 변화되지 않는 제도와 권력 앞에서 아주 작은 것이라도 문제를 제기하려면 ‘지는 싸움’의 덫에 빠져 인생을 소진하게 된다. 그래서 기성세대나 안전지대에 서 있는 이들은 젊은 세대나 소수자들이 이런 싸움에서 소진되지 않도록 배려하고, 경계해야 할 책임을 강하게 느낄 수 있다. 싸워서 아무것도 변화될 가능성이 없는 싸움에 휘말리는 일은 그 자체로 존재를 뒤흔드는 공포이다. 하여 사람들이 이런 공포 속에 인생을 소진하지 않도록 경계할 필요가 있고, 또 이런 싸움을 ‘낭만적으로’ 독려하는 것이 무책임한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밀양 투쟁, 반원전 투쟁의 경험에서도 알 수 있듯이 ‘지는 싸움’이라고 어떤 싸움을 미리 규정하는 일은 그런 걱정을 하는 이들의 선의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싸움의 가치를 미리 앞당겨 재단하는 일이기도 했다. ‘지는 싸움’이라는 규정은 싸우기도 전에 패배의 전조와 환멸과 불안을 예고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그런 점에서 ‘지는 싸움’이라는 규정은 지금 현재의 인식 지평에 제한된 시각으로 아직 알 수 없는 미래의 결과를 앞당겨 예측하는 행위이다. 물론 이런 예측이 지성의 산물이라고 자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예측에서 미래는 현재의 연장일 뿐이다. 미래에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알 수 없는 싸움을 이미, ‘지는 싸움’이라고 단정하는 태도는 실상 미래가 현재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의 산물이다. ‘지는 싸움’을 계속하는 이유는 역설적이지만, 이런 걱정의 이유 속에 담겨 있다. ‘지는 싸움’을 계속하는 사람에 대해 ‘이기는 싸움’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짜증과 훈계를 멈출 수 없는 것은 사실 이 싸움이 ‘이기는 싸움’만 하는 사람들이 경험해본 적도, 상상할 수도 없는 어떤 미래를 자꾸만 불러들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지는 싸움, 그만해!”라는 명령에도 불구하고, 계속 싸우는 사람은 그런 점에서 “우리는 이길 수 있어!”라고 답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그런 미래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말을 돌려주고 있다. 그래서 ‘지는 싸움’을 계속하는 일은 이기는 싸움만 하는 사람들이 경험해보지도, 상상해보지도 못한 미래를 도입하려는 싸움이다. ‘지는 싸움’을 ‘계속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이미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미래는 이미 변하였다. 오늘의 선거가 비록 ‘지는 싸움’이었을지 모르지만, ‘계속 싸우는 일’을 멈추지 않았기에, 미래는 이미 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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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 14호] 문화과학 편집회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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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 14호] [연구자료] 젠트리피케이션의 사회적 해결을 위한 포럼 자료집

[자료집] 젠트리피케이션의 사회적 해결을 위한 포럼 자료집

2016. 3. 11 국회토론회

테이크아웃드로잉대책위원회,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문화연대, 참여연대)

 

사회

이원재(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 소장)

오프닝 영상

정용택(파티51 다큐 감독)

기조 발제

▪ 한국 사회의 젠트리피케이션, 무엇이 문제인가? /신현방(런던 정경대 지리환경학과 교수)

발제 : 젠트리피케이션을 둘러싼 문화사회적 제안

▪ 한남포럼_비자발적 이주에 대항하는 언어_테이크아웃드로잉 / 최소연(테이크아웃드로잉 운영진)

▪ 바꾸자! 상가법! Change the Law!
- 2016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개정운동 및 사례

/ 최지원(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 연대국장)

▪ ‘제태크’를 넘어야 공간에 대한 권리가 보인다. – 젠트리피케이션 대책평가와 과제 -

/ 김상철(노동당 서울시당위원장)

토론

신현준(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교수) 이강훈(변호사,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실행위원) 전은호(협치서울추진단 기획 코디) 김남균(그문화갤러리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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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 14호] [연구자료] 20대 국회에 제안하는 문화정책 제안서

[학술자료] 20대 국회에 제안하는 문화정책 제안서

 

[머릿말]

제20대 대한민국 국회에서는‘문화의 사회적 가치’와 ‘예술의 상상력’이 존중되는 법제도 환경이 마련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종합과제]

01 문화 전문성과 민간 거버넌스 강화를 위한 문화정책 체계 수립이 필요합니다
02 지속가능한 문화예술 지원 및 문화 분권을 위한 문화예술 재원 안정화가 필요합니다
03 실효성 있는 국제경기대회 유치심사를 통해 무분별한 메가 스포츠이벤트 유치를 막아야 합니다
04 예술인에 대한 사회보장제도 확대와 예술인복지 정상화를 위한 법 제도의 정비가 필요합니다
05 예술의 사회적 권리 확대를 위한 공공기관의 운영을 개선해야 합니다
06 문화예술교육 정책의 정상화 및 예술 강사의 노동환경 보장을 위한 제도개선이 시급합니다
07 국립박물관을 비롯하여 국립문화시설의 난건립을 방지하기 위한 법 제도가 마련돼야 합니다
08 문화시설 운영의 공공성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합니다
09 문화권리의 관점에서 문화영향평가제도를 전면적으로 도입해야 합니다
10 문화콘텐츠 독점 및 유통 불공정 행위를 막고, 문화 다양성과 공정한 문화산업 생태계 조성을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지역과제]

01 지역 내 유휴공간(공개공지 포함)의 문화적 활용을 확대하고 공공 자산화해야 합니다
02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지역 문화환경 최소기준 설정 및 제도화가 필요합니다
03 지역에 문화예술의 일자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1,000개의 지역 문화예술 일자리 프로젝트)
04 지역 내, 지역 간 문화 격차 해소를 위한 지역 문화 환경 조성이 필요합니다
05 젠트리피케이션 문제 해소를 위한 문화 공존 정책이 필요합니다
06 생태 문화적 가치에 기반한 지역 내 공간 재생 및 활성화 정책이 필요합니다
07 콘텐츠 중심의 역사문화 환경 조성을 위한 문화유산 정책수립이 필요합니다
08 지역별로 자율적인 시민자치문화와 생활예술 생태계를 형성하기 위한 정책 구조를 마련해야 합니다
09 사회적 경제 활성화를 통해 문화예술인의 권리를 확대해야 합니다
10 청년 예술가들을 위한 창작 환경 개선을 통해 지역을 활성화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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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 14호] 창동 사운드를 꿈꾸며 (이동연)

경향신문 기고문

 

창동 사운드를 꿈꾸며 

 

이동연(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1960년대 초 영국 록 음악, 이른바 브리티시 록의 성지가 된 곳은 다름 아닌 리버풀이었다. 영국의 대표적인 항구도시 리버풀은 뉴욕, 샌프란시스코, 함부르크, 상하이가 그렇듯 새로운 유행을 가장 먼저 받아들이고 전파하는 문화 예술의 해방구 역할을 했다. 리버풀 출신 폴 매카트니, 존 래넌, 조지 해리슨, 링고스타가 1962년에 결성한 ‘비틀즈’는 영국은 물론 유럽과 북미에 ‘비틀매니아’ 신드롬을 불러일으키며 리버풀을 일약 세계적인 대중음악 도시로 만들었다. 비틀즈와 함께 한 시대를 풍미했던 록 밴드 ‘롤링 스톤즈’, ‘애니멀스’가 가세하여 언제부턴가 이들의 새로운 밴드음악을 리버풀 사운드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반 리버풀 근처에 위치한 맨체스터에는 이전의 록음악과는 다른 스타일을 추구하는 밴드들이 모여들었다. 이들은 하드록과 일렉트로닉을 결합한 ‘애시드 하우스’라는 장르를 탄생시켰다. 언더그라운드 클럽음악을 지향하는 ‘애시드 하우스’는 1970년대의 하드록과 1990년대의 브릿 팝을 연결하는 매우 중요한 음악스타일로 ‘스톤 로지스’, ‘더 스미스’, ‘뉴 오더’ 같은 밴드가 중심이 되었다. 사람들은 이 음악적 스타일을 일컬어 맨체스터 사운드라고 불렀다.

 

도시와 음악스타일을 접목하는 사례들은 이밖에도 매우 많다. 예컨대 ‘앨리 스 인 체인’, ‘사운드가든’, ‘너바나’, ‘펄잼’ 등이 주축이 되어 얼터너티브록 신을 선언했던 시애틀 사운드, ‘닐 앤 이라이자’, ‘판타스틱 플라스틱 머신’과 같은 밴드가 중심이 되어 레게, 보사노바, 라운지, 일렉트로닉이 혼합된 일본 식 클럽음악을 완성시킨 시부야 사운드, ‘브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으로 라틴 음악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한 하바나 사운드, 그리고 ‘크라잉 넛’, ‘노브레인’을 탄생시킨 한국 인디음악의 해방구 홍대 사운드가 대표적이다.

 

음악은 도시를 기반으로 발전한다. 클래식, 재즈, 록, 힙합 등 모든 음악 장르들은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성장한다. 그래서 2106년 봄에 한국 대중음악의 새로운 기원을 만들고자 창동 사운드를 꿈꾸는 것은 완전히 허무맹랑한 상상은 아니다. 서울 동북권에 위치한 창동은 음악의 불모지이다. 이곳은 노원, 상계와 더불어 1980년대 조성된 베드타운 집적지로서 이렇다할만한 음악 관련 문화시설도, 클럽도, 레이블도 없다. 대중음악과 관련해선 거의 황무지와 같은 이곳에 창동 사운드를 운운하는 것은 이전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런데 박원순 서울시장이 작년 2월 초에 일본 사이타마 슈퍼아레나 현지에서 창동에 2만석 규모의 국내 최초로 대중음악 전용 공연장을 건립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창동은 이제 새로운 대중음악 거점 공간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가칭 서울아레나는 지금의 창동 체육시설 부지에 2020년에 건립될 예정이다. 민간투자자가 작년 말에 사업제안서를 제출했고, 현재 공공기관으로부터 타당성 심사를 받고 있는 중이다. 서울시는 서울아레나의 붐업 사업으로 창동역 주변에 ‘플랫폼창동61’를 조성하여 음악, 푸드, 라이프스타일이 결합된 문화공간을 4월 말에 개관할 예정이다. 중요한 것은 이 플랫폼창동61 공간에 개성이 강한 장르음악 뮤지션들이 입주할 예정이라는 점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기타리스트 신대철이 음악 감독으로 참여하고, ‘잠비나이’, ‘숨’, ‘아시안 체어샷’, ‘엠씨 메타’ 등의 스튜디오 입주 밴드와 ‘갤럭시 익스프레스’, ‘킹스턴 루디스카’, ‘클렌체크’, ‘이디오테잎’, ‘앙상블 시나위‘ 등이 협력 뮤지션으로, 그리고 ’루비 레코드‘, ’사운드 홀릭‘, ’러브락 컴퍼니‘ 등이 협력 레이블로 참여한다.

 

4월말 개관 기념공연을 시작으로, 록, 국악, 라틴, 일렉트로닉, 힙합 등 장르음악을 중심으로 한 시리즈 페스티벌, 입주 뮤지션들과 협력뮤지션, 협력 레이블이 펼치는 콘서트, 그리고 ‘시나위 앤 래그타임’이란 이름의 즉흥 음악 이벤트 등이 플랫폼창동61 내에 위치한 컨테이너로 만들어진 국내 최초의 클럽 공연장, ‘레드박스’에서 열린다. 음악의 불모지 창동은 개성이 강한 장르음악이 만개하는 새로운 음악 신을 탄생시킬 것이고, 곧이어 창동 사운드라는 칭호를 받을 것이다. 물론 창동 사운드는 대형 공연장 조성만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뮤지션들과 기획자의 헌신과 내실 있는 창작 역량에 달려있다.

 

홍대 사운드는 살벌한 홍대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해 인디음악의 정체성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 밴드 음악 리이브 클럽도 갈수록 줄어들고, 관객들의 발길도 뜸하다. 여전히 수백 팀의 인디밴드들이 모여 있는 곳이지만, 음악적 판도를 바꿀만한 대안적 사운드가 생산되지 못하고 있다. 한때 홍대 사운드의 상업화에 맞서 관악 사운드라는 이름이 불린 적이 있지만, 곧 자취를 감추었다. 홍대 사운드의 대안으로 창동 사운드가 과연 성공할지는 아직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금이 새로운 음악적 사운드를 위한 장소 실험이 필요한 시점이고, 새로운 대안적 장르음악을 추구하는 창동 사운드는 그러한 실험을 위한 대안적인 실천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의 총괄 예술감독으로서 적어도 10년 후에는 창동 사운드가 자연스러운 이름이 되길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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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 14호] [2030 잠금해제] 정치언어의 품격과 ‘혐수막’들 (오혜진)

한겨레신문 기고문

 

[2030 잠금해제] 정치언어의 품격과 ‘혐수막’들

 

오혜진 (문화연구자)

 

 

가끔 피로할 때 공원을 산책한다. 잘 가꿔진 꽃나무들에 이름표가 빼곡히 달렸다. 그 수고스런 열정에 감복하다가도, 문득 이건 지나친 계몽강박이 아닌가 싶어 답답해진다. 그냥 이 식물들의 익명성을 조용히 음미하면 안 되나. 한번은 산에 갔더니 ‘한국의 명시’를 적은 플래카드들이 등산로 곳곳에 걸려 있었다. 아무리 시가 좋아도 단풍을 가릴 이유야 있었을까. 지하철 승강장에서도 스크린도어에 적힌 정체 모를 시들을 감상하게 되는데, 이게 진정 시민들의 정서 순화에 도움이 되나 싶다. 이쯤 되면 이 나라엔 빈 공간만 있으면 글자를 채워 넣어야 직성이 풀리는 문자강박이라도 있는 건가 의심스럽다.

 

그나마 꽃나무 이름표처럼 일말의 지시성과 정보성이라도 지닌 텍스트들은 좀 낫다. 요즘 거리를 걷다 보면 정보 전달이나 정서 순화와는 무관한 문자더미들을 무시로 만난다. 수년 전부터 유행이 된 듯한 정당들의 홍보 현수막이다. 1초면 달 수 있는 ‘인터넷 댓글 전성시대’에 한 번 쓰고 버릴 현수막들이 나붙는 광경은 꽤 흉하다. “김일성 주체사상을 우리 아이들이 배우고 있습니다” “광우병 천안함 이젠 테러방지법도 왜곡 ‘그들이 또’ 국민을 속이고 있습니다” 같은 새누리당의 문구들은 악명 높거니와, “박근혜 정부가 일 좀 하게 해주세요” “하늘이 감동할 때까지 새누리당의 노력은 계속됩니다” 같은 구호들은 처절하다. 현수막 정치의 장본인이 내건 “현수막 정치 지겹지도 않으십니까?”라는 현수막은 실소를 자아낸다.

 

내용과 디자인 양면에서 해로움과 촌스러움을 과시하는 이 현수막들을 보는 것은 괴롭다. ‘혐수막’이라는 말도 나온다. 맞춤법과 띄어쓰기 무시는 기본이며, 사실 왜곡 및 날조가 횡행한다. 이념과 정책은 실종되고 감정에 호소하는 문구들이 판친다. “국민 편이 하나쯤은 있어야지! 국민 편이 되겠습니다”(국민의당) “소녀상의 눈물 국민과 더불어민주당이 닦아드리겠습니다” 같은 야당의 구호들도 막연하긴 마찬가지다. 독재시절의 정치구호였던 “못 살겠다 갈아보자” “잘 살아보세” 수준으로 퇴화한 것 같다.

 

현수막 정치가 시각공해의 주범이며, 대중의 우매화 및 정치혐오를 부추기는 파시즘정치의 산물이라는 점은 익히 지적돼왔다. 구호가 아니라 정책으로 말하라는 주문도 먹히지 않는다. 물론 대중의 정동을 자극해 정치적 자원으로 삼는 것은 대중정치의 핵심이다. ‘정치구호’는 대중의 관심을 비교적 빠르게 집결시키기에 선호된다. 그러나 ‘구호’는 사태의 복잡성을 손쉽게 단순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아주 섬세하게 다뤄져야 한다.

 

해방 직후의 혼란상을 묘사한 이태준의 소설 <해방 전후>에는 의미심장한 장면이 있다. 좌익과 우익 사이에서 자신의 행보를 정하지 못한 주인공 ‘현’이 회관에 함부로 내걸린 광목 드림(현수막)을 보고는 “이들이 대중운동을 이처럼 경솔히 하는 줄은 정말 뜻밖이오”라며 비 맞은 드림을 끌어올리는 장면이다. 정치언어의 품격이야말로 선진정치의 지표라는 점을 더 강조할 필요가 있을까. 필리버스터가 잠시나마 시민들을 열광케 한 건, 막말과 욕설이 아니라 멀쩡하고 조리 있는 ‘조국’의 언어로 정치가 행해지는 광경을 목도한 기쁨이었다는 걸 잊지 말자. 성숙한 시민의 정치는 단말마적인 ‘정치구호’가 아니라, 논리적 설득과 성실한 토론, 그리고 실제 행해지는 참여와 연대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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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 14호] [청춘직설]‘피난하지 못하는 사람들’ (손희정)

경향신문 기고문

 

[청춘직설]‘피난하지 못하는 사람들’

 

 

손희정(연세대학교 젠더연구소)

 

동일본 대참사로부터 5년이 흘렀고, 한 달 후면 세월호 참사 2주기가 돌아온다. 우리는 여전히 재난의 영향 아래 살고 있다. 하지만 모두가 재난과 그 영향을 같은 방식으로 경험하는 것 같지는 않다. “재난은 평등하게 닥쳐온다”고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영화 <2012>는 인류를 집어삼킬 자연재해에 대비해 21세기형 노아의 방주가 만들어진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 방주에 올라탈 수 있는 자들은 정보를 독점한 권력층과 소수의 엘리트, 그리고 방주 제작에 투자한 ‘세계적 갑부’들이다. 영화는 범작이지만 그 상상력만큼은 예리하다. 기실 재난 앞에서 우리는 평등하지 않다. 돈과 힘을 가진 자에게는 비교적 안전한 삶이, 그렇지 않은 자에게는 더 많은 위험에 노출된 삶이 따라붙는다. 이는 닥쳐올 위험과 희생을 예측할 수 있으면서도 그것을 감수해버리는 이 세계의 속성을 잘 보여준다. 철학자 다카하시 데쓰야는 이를 ‘희생의 시스템’이라고 말한다.

 

희생의 시스템에서는 누군가의 이익이 다른 누군가의 “생활(생명·건강·일상)을 희생”시키면서 만들어지고 유지된다. 원자력 발전은 이 시스템의 섬뜩한 예다. 후쿠시마 원전 폭발이 보여주는 것처럼 원전이 건설되는 지역은 ‘핵폭탄’을 떠안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핵마피아, 발전주의를 지속시키려는 국가, 그리고 전기의 편리함을 누리는 도시인이 이 시스템의 수혜자들이다. 후쿠시마의 사람과 동물, 그리고 자연이 그 희생양이 된다.

 

물론 누군가는 질문할 것이다. 후쿠시마도 원전 유치로 경제적 이익을 얻지 않았는가? 하지만 자본과 인력이 대도시로 몰려들었던 근대화 과정에서 후쿠시마는 소외된 지역이었다. 그런 후쿠시마에 다른 선택지가 있었을까? 이는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원전 및 핵폐기물 처리장 유치를 두고 지역주민들 간에 분란이 생기는 것은 ‘위험한 사업’이 ‘발전의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월성 1호기 주변의 피폭 피해가 날로 증가하고 있듯, 이는 생명을 담보로 하는 지속 불가능한 개발에 불과하다. 희생의 시스템은 강요된 환상을 통해 유지된다.

 

결국 원전이 폭발했을 때 시스템은 아무런 책임도 지지 못했다. 삶의 기반을 버리고 온갖 비용을 감당하면서 피난을 떠날 것인가, 아니면 피폭의 두려움 속에서 삶의 터전을 지킬 것인가. 선택은 오롯이 개인의 몫이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후쿠시마 사람들은 ‘원자력 폐기물’ 취급을 당했다.(다카하시가 ‘희생의 시스템’에서 예로 들고 있는 “후쿠시마 현민들은 어디에다 버리지?”라는 인터넷 댓글은 인상적이다.) 이렇게 일본인은 혐오와 차별을 통해 후쿠시마와 자신을 분리함으로써 원전 자체의 위험으로부터 눈을 돌렸다. 한국인이 세월호 유가족을 타자화함으로써 세월호 참사를 서둘러 잊으려는 ‘외면의 체계’를 형성한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희생된 것은 후쿠시마만은 아니었다. 노동자 역시 그랬다. 원전 폭발 직후 현장을 지킨 것은 노동자였고, 그중에는 심각한 피폭으로 사망한 이도 있다. 여전히 방사능이 유출되고 있는 원전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는 하루 약 7000명이고, 지역 재건에 투입되는 제염노동자는 하루 3만~4만명에 달한다고 한다. 노동자들이 생명을 담보로 참사의 뒷감당을 하고 있을 때,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 책임자 중 처벌을 받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2020년 도쿄올림픽 개최를 향해 달려가는 상황에서 진상 규명은 물론 요원하다. 희생의 시스템은 문제를 현실적으로 해결하기보다는, 노동자들을 ‘후쿠시마 50인’ 등의 이름으로 부르며 영웅시하고 그 노동을 ‘귀중한 희생’으로 미화하면서 또 다른 희생에 기대려 할 뿐이다. 위험한 노동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의 삶의 조건을 생각하면 ‘탈핵’은 정확하게 계급과 노동의 문제인 것이다.

 

이처럼 위험이 분배되는 세계에선 ‘안전’의 의미도 배타적으로 구성된다. 다큐멘터리 <피난하지 못하는 사람들>(이이다 모토하루)에 따르면 대지진 당시 지역 장애인 중 2%가 사망했다. 비장애인 사망비율의 두 배에 달하는 숫자다. 안전에서의 장애인 배제와 차별은 원전 폭발 후에도 계속됐다. 정부는 “피난하라”고 지시했지만, 그 무책임한 알림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에게 같은 의미로 도달하지 않았다. 안전한 피난의 조건이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장애인과 그 가족은 자발적 혹은 비자발적으로 피난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 사회의 대형 참사에서 10대에서 20대 초반에 이르는 피해자가 특히 많다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간과할 수 없다.

 

이렇게 재난은 참사가 된다. 재난을 막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재난이 사람에 의해 참사가 되는 것은 막아야 하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재난의 경험이 남긴 질문과 교훈에 성실하게 응답해야 할 것이다. 오는 3월18일부터 시작되는 ‘4·16 씨네토크’는 이 응답을 위해 준비한 행사다. 다양한 영화를 보고 재난자본주의, 재난시대의 혐오, 진상규명, 공감과 연대 등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피난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상영작 중 한 편이다. 많은 사람이 함께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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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 14호] “근로기준법 준수하라” 온몸으로 불살라 쓰다 (김대성)

한국일보 기고문

 

“근로기준법 준수하라” 온몸으로 불살라 쓰다 

: 진격의 독학자<10>평화시장 재단사 전태일

 

 

김대성 (문학평론가ㆍ생활예술모임 곳간 공동대표)

 

 

불에 휩싸인 채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기 전, 전태일은 글을 썼다.

그가 남긴 대학노트 7권엔 일기와 어린 시절을 회상한 수기, 친구들에게 쓴 편지, 미완의 소설, 노동청에 보낼 진정서, 사업 계획서, 평화시장 노동자들의 근무 실태 조사를 위한 설문지 등이 빼곡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누군가에게 보이거나 글로써 어떤 효과를 낼 수 있을 거라는 기대 없이 그는 다만 썼고, 읽었다. 읽은 것들을 이해하기 위해 다시 썼으며 그렇게 알게 된 것을 평화시장의 동료 노동자들과 동생에게 열띠게 설명하고 가끔은 잠자고 있던 어머니를 깨워 다급하게 알렸다.

전태일의 분신이 한국 노동운동사의 결정적인 사건이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가 허락되지 않은 환경 속에서 읽고 쓰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던 노동자라는 사실에 대한 기억은 그리 선명하지 못하다. 전태일은 노동자들의 고통을 사회에 알리고 호소하는 데 전력했던 ‘투사’이기 전에 당대의 사회가 은폐하고 있던 구조를 노동 현장에서 예민하게 탐침하며 노동자의 언어로 구체화해 갔던 유례없는 ‘독학자’였다.

 

 

투사 이전에 독학자로서 전태일

전태일이 분신했던 1970년 11월 13일은 ‘노동자 전태일’이라는 이름이 한국 사회의 구성원 모두에게 지워지지 않는 그을음으로 남은 날이다. 그는 왜 ‘분신’이라는 결단을 내렸던 것일까. 열악하고 위험한 노동환경 개선 요구를 평화시장 업주들과 구청, 노동청에 수차례 했으나 번번이 묵살되는 경험 속에서 노동자의 말이 그 어디에도 가 닿을 수 없음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밤을 새워 일을 하다 피를 토하며 쓰러진 어린 여공들의 참상을 보며 스스로의 힘으로 이 열악한 노동조건을 바꾸어야겠다는 결심도 했을 것이며 노동자들이 인간답게 살 수 없다면 국가와 자본이 공모하고 있는 이 썩은 세상에 ‘육탄(肉彈)’으로라도 저항해야겠다는 단단한 결의도 품었을 것이다.

결정적으로 아버지로부터 노동자들의 권리가 법으로 보장되어 있다는 ‘근로기준법’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됐고 어머니가 이웃에 빚을 내어 사준 ‘근로기준법 해설서’를 닳도록 읽으며 새로운 희망과 확신도 가지게 됐을 것이다. 전태일의 분신은 이 모든 과정과 계획이 좌절되었기 때문에 행한 극단적인 선택이 아니라 ‘돌이킬 수 없이 알아 버렸기 때문’에 수행한 것이라고 해야 옳다.

 

 

돌이킬 수 없는 앎, 그것이 독학자의 운명

전태일의 ‘분신’은 ‘돌이킬 수 없는 앎’의 증언이다. 그동안 전태일의 분신을 당대 노동자들의 참상을 충격적인 방식으로 고발한 사건으로 기억해왔지만 스스로의 능력을 깨닫고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 ‘자기해방’으로 나아간 한 노동자의 앎의 궤적을 선명하게 각인시켰다는 점 또한 기억할 필요가 있다. 전태일에게 ‘노동운동가’의 자리만이 아니라 읽고 쓰는 행위 속에서 무언가를 ‘알아버렸기 때문에’ 그 행위를 멈출 수 없었던 ‘독학자’라는 자리 또한 마련해두어야 한다.

말하자면 전태일의 분신은 자신의 몸을 불태움으로써 평화시장의 노동자들에게 그 어떤 자리도 허락하지 않았던 이 세상에 돌이킬 수 없이 새긴, 그가 쓴 ‘마지막 문장’이기도 하다. 근로기준법과 함께 불태우면서 그가 썼던 것은 ‘인간 선언’이었다. 전태일의 인간 선언은 노동자들의 참혹한 실태를 고발하는 것에서 멈추었던 게 아니라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정당한 권리를 ‘요구’했다. 그건 기왕의 노동자에게 할애되었던 자리(몫)가 아닌 다른 자리에 대한 요구이면서 동시에 제한된 노동자의 정체성을 벗어나는 욕망을 표출하는 행위이기도 했다. 전태일의 분신이라는 발화점은 ‘평등이 도달해야 할 목표가 아니라 전제하고 입증해야 하는 출발점’(자크 랑시에르)임을 증명하는 것이었고 무엇보다 읽고 쓰는 행위 속에서 알아버렸기에 알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이가 스스로의 힘으로 편재(偏在)해 있던 세계의 질서를 다른 것으로 바꿔 쓰는 행위이기도 했다.

 

 

평화시장에서 길어 올린 문장들

전태일이 7권의 대학노트에 쓴 글에 주목해보자. 그가 남긴 글의 내용보다 더 눈에 띄는 것은 글의 종류가 다종하다는 데 있다. 전태일의 유서로 알려졌던 친구에게 보낸 편지는 1970년 4월 초에 썼던 소설 초안의 일부이며, 그의 노트엔 대통령과 근로감독관에게 썼지만 보내지 않은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진정서, 1967년부터 기록된 일기와 수기, 일기 속에 옮겨 적은 애송시와 직접 쓴 시, 사업 설립 계획서와 근로조건 실태조사 설문지와 평화시장 재단사 모임인 ‘바보회’의 회칙과 회의록 등이 꼼꼼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글의 완성도를 따지기 전에 전태일이 이토록 다양한 형식의 글을 썼던 이유에 대해 먼저 물어야 한다. 일관된 형식을 갖추지 못하고 두서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이 다종한 글들은 오랫동안 노동자들의 글쓰기를 규정해온 ‘미성숙함’ 때문이 아니라 전태일이 경험한 ‘앎의 지평’이 기존의 것과 달랐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영래가 쓴 ‘전태일 평전’에 의하면 전태일은 밤을 새워 근로기준법을 읽으며 현장에서 필요한 사항을 노트했고 그 때의 노트가 훗날 진정서와 근로조건에 관한 앙케이트 작업을 할 때 실질적인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여공의 각혈로 각인되어 있는 평화시장이라는 ‘노동현장’과 노동자들의 권리를 명문화한 ‘근로기준법’은 전태일의 앎의 지평 속에서 같은 선상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그에게 ‘앎’이란 ‘근로기준법’이라는 공식화된 활자를 이해하는 것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평화시장이라는 ‘삶’의 현장에도 편재(遍在)해 있었다. 바로 그 사실을 알아버렸기에 ‘앎’과 ‘삶’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현실의 장벽을 온몸으로 밀고 나가고자 했던 것이다.

 

 

‘대학생 친구’는 대화상대에 대한 강렬한 기대

많은 이들에게 부채감을 느끼게 했던 ‘대학생 친구 하나만 있으면 좋겠다’던 전태일의 바람 또한 자신보다 더 많이 배운 이로부터 도움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대화’할 수 있는 친구가 필요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앎이 위계화한 세상에서 그는 앎의 수평적 교류를 욕망했다. 전태일은 그 욕망을 “서로가 다 용해되어 있는 상태”라고 표현했다. ‘덩어리가 없다면 부스러기도 없을 것’이라는 친구 원섭에게 보낸 편지의 한 대목은 완고하게 구축되어 있는 앎과 무지, 우월한 지능과 열등한 지능,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의 분할에 대한 ‘부정이자 거부’의 의미를 가진다.

이와 함께 전태일이 스스로를 “그대들의 전체의 일부인 나”라고 명명했다는 점 또한 주목해야 한다. 그가 남긴 글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나의 전체의 일부인 너’, ‘너는 나의 나다’와 같은 표현은 서로가 서로의 일부로 교차되고 겹쳐 있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스스로의 힘으로 돌이킬 수 없는 앎의 영역으로 나아갔던 전태일의 지적 행보와 분신에 이르는 실천의 궤적은 ‘완전한 부정과 완전한 거부’(조영래)의 방식을 취하고 있었지만 그가 당도하고자 했던 곳은 세상과의 대립이 아닌 서로가 서로에게 연루된 상태로 기대어 있는 ‘함께-있음’의 자리였다.

 

 

온 몸으로 글을 쓰는 행위, 분신

전태일의 분신은 스스로의 능력으로 세계를 알아버린 이가 온몸으로 그 세계를 바꿔 쓰는 행위였다. 활자가 아닌 몸으로 쓴 문장은 이내 검게 타버렸지만 분신이라는 발화점에서 우리는 ‘전태일’의 이름만이 아니라 배제된 이들, 몫이 없던 ‘노동자’라는 이름 또한 구제되었음을 알고 있다. 불 탄 것은 전태일의 육신이 아니라 노동자들을 기계로 간주했던 국가와 자본에 독점되어왔던 앎의 구조였다.

전태일에 의해 성립된 문장을 여기에 옮겨 적는다. ‘독학자는 불타오르는 사람이다’. 체계적인 기록을 남길 수는 없을지라도 독학자는 ‘불’이 아닌 ‘타오름’이라는 ‘내재된 힘’을 발명하는 이다. 그런 이유로 독학자라는 이름엔 소유권이 없다. 분할된 몫의 자리를 불태우며 ‘서로가 용해되어 있는 상태’를 향해 나아가는 이. 독학자는 아무것도 아니면서 동시에 모든 것일 수 있는 익명의 자리로 향한다. 전태일의 ‘인간 선언’은 이름이 없는 이들의 이름으로부터 발화한 것이었다.

전태일이 몸을 불사르며 쓴 그을린 문장을 읽어버린 이들은 1970년 11월 13일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스스로의 힘으로 ‘타오름’이라는 내재된 힘을 발견한 이들에겐 전태일의 그을린 문장이 분신처럼 남아 있기 때문이다. 독학자 전태일은 아무도 아니면서 모두인 공통의 이름이다.

 

 

 

  • 기고문을 위한 김대성 편집위원의 메모

 

독학자 : ‘역사적’ 싸움꾼의 이름

1. 2015년 ‘독학자에 관한 기획’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오랫동안 머릿속에 넣어두었던 ‘싸움꾼’을 떠올렸다. <주먹이 운다-시즌 3>(XTM, 2014)를 보면서 거칠고 제어되지 않는 참가자들나 경기의 흐름을 읽기 힘들게 만드는 ‘막싸움’을 하는 참가자들조차 죄다 특정 체육관(GYM)에 소속되어 있는 이들임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싸움꾼의 종말’이라는 말을 속으로 뇌까리고 있었다. 이제는 모두가 알고 있는 것처럼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의 참가자들 또한 아마추어가 거의 없는 형편이다. 학술비평장은 어떤가? ‘무사(武士)는 한 순간의 실수로도 목숨을 잃을 수 있지만 문사(文士)는 영원히 죽지 않는 좀비 같다’고 했던가. 쏟아지는 정보의 숲에서 계속 써야 하고 더 많이 쓰되 그럴 듯하게 써야하며 뭐라도 써야 하는 문사들. 논쟁은 시작되려다가도 진영 싸움이나 뒷담화의 구조 아래에서 희석되어버리고, ‘적수가 …되지 않는 이에겐 칼을 뽑지 않는다’ 따위의 허깨비 무사 코스프레를 하며 문제제기를 묵살하거나 짐짓 모른 척 눙치기 일쑤이지 않은가.

 

2. ‘헬조선’에선 싸움을 멈출 수 없는데, 학술담론장엔 ‘말’과 ‘글’만 무성할 뿐 대결다운 대결이 없다. ‘제시’의 말마따나 “we are not a team. this is a competition!”이라 그럴듯하게 ‘스웩’을 뽐낸다 해도 그건 체제가 만들어놓은 룰 위에서 더 괜찮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일 뿐 ‘몫의 재분배’를 위한 ‘싸움’일 수는 없다. ‘맞짱’을 ‘뜨는 일’이 거의 불가능해졌다는 것은 싸우는 방법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결정적인 순간엔 절벽 앞의 새끼 독수리가 된 것처럼 도약하지 못하고 주춤거리기만 할 뿐이다. 아니 너무 쉽게 ‘도약’(비약)하되 밑에 그물망이 있는지, 안전장치의 유무 아래에서만 ‘멋지게, 그럴듯하게, 목청 좋게’ 외친다. 당면한 문제를 회피하는 지연을 가장 그럴 듯하게 만드는 방법은 체제 안의 문법을 익히는 일이다. 진영 싸움으로 만들어버리거나 뒷담화 구조 안으로 숨어버리는 일. 점잖은 척 묵살하고 눙치는 일. 수컷이 거대한 날개를 펴 자신의 덩치를 부풀리는 것처럼 논쟁하되 싸우지 않는다. 그런 논쟁 뒤에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건 진영 논리와 세(勢)의 크기 밖에 없다. 결국 그럴 줄 알았다는 냉소와 피로가 찌꺼기처럼 남아 있는 것이다. 비평담론장의 논쟁은 마치 ‘우리 집에 왜~ 왔니, 왜~ 왔니, 왜 왔니?’라는 놀이처럼 상대의 코앞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규칙만을 반복 하는 것 같다. 말하자면 ‘엄마’가 먼저 부르는 팀이 지는 것이다. 그러니 이긴다고 해도 정신승리이며 패배 또한 인정할 수 없다.

 

3. 오늘 싸우고 있는 이들은 몫이 없는 이들이며 배제된 이들뿐이다. 해고 노동자들, 유가족들, 쫓겨난 이들, 싸움 말고는 그 어떤 선택지도 남아 있지 않는 이들. 지금 싸우고 있는 이들은, 늘 지는 이들이기도 하다. 패배를 두려워하지 않는 이들이며, 패배할 것을 알면서도 싸우는 이들이다. 이들의 패배를 ‘지켜보면서’ 더 잘 패배하기를 ‘응원’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해도 좋은가. ‘의문의 1패’라는 말이 있다. 다각도로 분석 할만한 중요한 신조어인데, 여기서는 각설 하고, 지는 싸움을 하고 있는 이들의 패배와는 전혀 다른 것임을 지적해두는 선에서 이야기를 조금 더 이어가보자. 지금 기꺼이 싸우고 있는 배제된 이들의 패배는 ‘의문의 1패’가 아니라 ‘역사적 1패’다. 패배의 ‘전적(戰績)’을 쌓는다는 것은 또 질 것이라는 확률을 높이는 데이터가 아니라 같은 방식으로는 지지 않는다는 경험치의 축적이자 그렇게는 질 수 없다는 의지의 증표이기도 하다. 중요한 건 버티는 게 아니라 맷집이다. 같은 말이라고? 맷집은 버티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맷집이 하는 일은 몇 대 맞되 어떻게든 ‘한방 먹이는 데’ 있다. 물론 한방으로 상대가 쓰러지지 않을 수도 있다. ‘역사적 1패’엔 그 싸움에선 차마 다 이루지 못했다 해도, 없던 궤적의 펀치, 변칙 스텝, 변칙 공격의 이력이 남겨져 있다. 역사적 패배의 전적이 쌓인다 해도 오늘 다시 질 수도 있다. 그러나 오늘의 패배는 ‘의문의 1패’가 아닌 ‘역사적 1패’다. 누군가 기꺼이 싸워주었기 때문에 누군가가 싸움을 결심할 수 있고 그렇게 ‘역사적 싸움’이 다시 시작되고 또 이어갈 수 있다.

 

4. 우리가 오늘의 싸움을 시작할 수 있는 것은 ‘역사적 1패’라는 전적 때문이다. 시대의 ‘독학자’들이야말로 지는 싸움을 피하지 않았던 이들이며 ‘역사적 1패’라는 없던 페이지와 새로운 싸움의 역사를 시작한 이들이다. 그러니 ‘역사적 1패’를 안고 싸운다는 것은 독학자들의 역사를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제도 안에서나 통용되는 제식(制式)으로 그럴듯한 으름장을 놓는 것이 아닌 ‘웃통 까고’ 백그라운드 없이 싸우는 ‘맞짱’에서 패배의 전적은 좌절의 기록이 아니라 훈장이며 상처이자 희망이다. 물론 나부터 전성기 ‘타이슨’의 고언을 새겨야 할 것이다. “누구나 그럴 듯한 계획은 가지고 있지. 한방 맞기 전까지는 말이야.” 오늘 다시 진다고 해도 그 패배의 전적이 밑절미가 되어 누군가가 싸움을 이어갈 수 있다면, 그렇게 ‘역사적 1승’을 거둘 수 있다면 그건 혼자만의 승리가 아닐 것이다. 지금 우리에겐 그런 공통의 싸움과 공통의 패배, 공통의 승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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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 14호] [야! 한국사회] 식민주의, 파시즘, 법 (권명아)

한겨레신문 기고문

 

[야! 한국사회] 식민주의, 파시즘, 법

 

권명아 (동아대 국문과 교수)

 

 

‘위안부’ 문제에 대해 많은 논란이 분출하고 있다. ‘위안부’ 동원이라는 전시 성노예 동원 제도는 어느 날 갑자기 출몰한 게 아니다. 또 이른바 ‘보편적’인 근대 가부장 국가의 ‘보편적’ 차원의 연장도 아니다. 관련한 실명 비판도 필요하지만, 전략적 소모전에 말려들 필요는 없다. 소모전의 덫에서 벗어나, ‘위안부’ 동원을 식민주의와 파시즘 비판, 젠더 연구의 차원에서 더욱 심화시켜야 할 때이다.

 

‘위안부’ 동원은 성에 대한 일본의 식민주의적 관리가 전시 동원의 체제적 운영 방식으로 이어진 것이다. 일제강점기 성에 대한 ‘국가적’ 관리는 풍속 통제라는 더욱 넓은 법적 구조에서 이뤄졌다. ‘위안부’ 동원에 관한 연구가 모두 풍속 통제 연구로 해명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성에 대한 식민주의적 관리가 전시 동원 체제로 이어지고 여기서 법이 작용하는 과정을 살피는 것은 이른바 ‘자발성’과 강제에 대한 논의에서 매우 중요하다.

 

풍속 통제는 ‘선량한 풍속’과 이를 침해하는 ‘풍기 문란함’이라는 무규정적 규정을 통해 식민지 주민들을 끝없이 분류하고 위계화하고 배치하는 방식이었다. 벌 받고 모욕당해 마땅한 ‘문란한 여성’과 보호받아야 할 ‘선량한 여성’이라는 분류 체계는 이런 식민지 풍속 통제의 ‘법적 이념’에 의해 구성되고 재생산되었다. 풍속 통제의 법제는 이와 관련된 세부적 법 조항이 따로 존재하지 않고, 관련된 모든 법 조항을 무작위로 적용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이런 과정에서 법의 자의적 적용은 필연적이었고, 법을 집행하는 ‘말단’ 집행자의 자의성은 극대화되었다. 1926년 전후 독일법의 사례를 들며 조르조 아감벤은 풍속, 안녕질서, 문란, 선량함과 같이 법적 규정이 아닌 무규정적 규정이 법의 내부로 들어오는 과정을 근대적 생명정치가 죽음의 정치(파시즘)로 넘어가는 문턱이라고 분석했다. 법이 스스로 초법적이 되는 과정을 연구자들은 파시즘이라고 규정해왔다.

 

이른바 ‘보편적’인 근대적 맥락에서 선량함이나 풍속과 같은 영역은 도덕이나 규율, 감정판단의 영역에 속한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풍속 통제는 이런 영역을 법적 통제의 영역에 두었다. 선량한 시민이 되는 일은 ‘상식적’으로는 ‘자발적’이지만, 실제적으로는 법적 강제로 수행되었다. 이런 식으로 피식민자 내부를 분할하고 분류하고 적대적으로 대립시켜서 통치하는 방식은 풍속 통제에서 시작되어, 전시 동원 체제의 비국민에 대한 절멸로 고스란히 이어졌다. 전시 동원 시기 조선인과 대만인은 일본인이 되어야 했지만, 결코 그냥 일본인은 될 수 없었다. 대신 조선인과 대만인은 ‘좋은 일본인’이 되어야 했다. ‘좋은 일본인’이 되는 방법은 추상적이었지만, 대신 그 반대편에 있는 비국민의 분류는 무한하게 증식했다. 황민화 정책은 초법적인 법적 강제를 개인의 수행성으로까지 확대했다. 이를 황민화 정책의 존재론적 전도라고 한다. 윤리나 ‘자발성’이라는 인간 내적 차원까지를 강제적 통제에 포섭했고 이게 ‘국민 정신총동원’의 뜻이다.

 

일본의 경우 패전 직후 미 군정하에서 풍속 통제법은 대표적인 파시즘 법제로 폐지되었고, 성에 대한 관리에 한정해 축소되었다. 이 과정은 독일에서도 마찬가지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풍속 통제법은 한국 사회에 일제강점기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 분단 이후 독재정권은 풍속 통제법을 통치 수단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해왔다. 한국에서 식민주의 비판이 파시즘 비판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바로 이런 역사 때문이다. ‘위안부’ 동원에 대한 비판이 ‘민족주의 프레임’ 문제가 아니라 식민주의와 파시즘 비판의 일환인 것도 바로 이런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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