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 14호] 창동 사운드를 꿈꾸며 (이동연)

경향신문 기고문

 

창동 사운드를 꿈꾸며 

 

이동연(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1960년대 초 영국 록 음악, 이른바 브리티시 록의 성지가 된 곳은 다름 아닌 리버풀이었다. 영국의 대표적인 항구도시 리버풀은 뉴욕, 샌프란시스코, 함부르크, 상하이가 그렇듯 새로운 유행을 가장 먼저 받아들이고 전파하는 문화 예술의 해방구 역할을 했다. 리버풀 출신 폴 매카트니, 존 래넌, 조지 해리슨, 링고스타가 1962년에 결성한 ‘비틀즈’는 영국은 물론 유럽과 북미에 ‘비틀매니아’ 신드롬을 불러일으키며 리버풀을 일약 세계적인 대중음악 도시로 만들었다. 비틀즈와 함께 한 시대를 풍미했던 록 밴드 ‘롤링 스톤즈’, ‘애니멀스’가 가세하여 언제부턴가 이들의 새로운 밴드음악을 리버풀 사운드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반 리버풀 근처에 위치한 맨체스터에는 이전의 록음악과는 다른 스타일을 추구하는 밴드들이 모여들었다. 이들은 하드록과 일렉트로닉을 결합한 ‘애시드 하우스’라는 장르를 탄생시켰다. 언더그라운드 클럽음악을 지향하는 ‘애시드 하우스’는 1970년대의 하드록과 1990년대의 브릿 팝을 연결하는 매우 중요한 음악스타일로 ‘스톤 로지스’, ‘더 스미스’, ‘뉴 오더’ 같은 밴드가 중심이 되었다. 사람들은 이 음악적 스타일을 일컬어 맨체스터 사운드라고 불렀다.

 

도시와 음악스타일을 접목하는 사례들은 이밖에도 매우 많다. 예컨대 ‘앨리 스 인 체인’, ‘사운드가든’, ‘너바나’, ‘펄잼’ 등이 주축이 되어 얼터너티브록 신을 선언했던 시애틀 사운드, ‘닐 앤 이라이자’, ‘판타스틱 플라스틱 머신’과 같은 밴드가 중심이 되어 레게, 보사노바, 라운지, 일렉트로닉이 혼합된 일본 식 클럽음악을 완성시킨 시부야 사운드, ‘브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으로 라틴 음악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한 하바나 사운드, 그리고 ‘크라잉 넛’, ‘노브레인’을 탄생시킨 한국 인디음악의 해방구 홍대 사운드가 대표적이다.

 

음악은 도시를 기반으로 발전한다. 클래식, 재즈, 록, 힙합 등 모든 음악 장르들은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성장한다. 그래서 2106년 봄에 한국 대중음악의 새로운 기원을 만들고자 창동 사운드를 꿈꾸는 것은 완전히 허무맹랑한 상상은 아니다. 서울 동북권에 위치한 창동은 음악의 불모지이다. 이곳은 노원, 상계와 더불어 1980년대 조성된 베드타운 집적지로서 이렇다할만한 음악 관련 문화시설도, 클럽도, 레이블도 없다. 대중음악과 관련해선 거의 황무지와 같은 이곳에 창동 사운드를 운운하는 것은 이전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런데 박원순 서울시장이 작년 2월 초에 일본 사이타마 슈퍼아레나 현지에서 창동에 2만석 규모의 국내 최초로 대중음악 전용 공연장을 건립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창동은 이제 새로운 대중음악 거점 공간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가칭 서울아레나는 지금의 창동 체육시설 부지에 2020년에 건립될 예정이다. 민간투자자가 작년 말에 사업제안서를 제출했고, 현재 공공기관으로부터 타당성 심사를 받고 있는 중이다. 서울시는 서울아레나의 붐업 사업으로 창동역 주변에 ‘플랫폼창동61’를 조성하여 음악, 푸드, 라이프스타일이 결합된 문화공간을 4월 말에 개관할 예정이다. 중요한 것은 이 플랫폼창동61 공간에 개성이 강한 장르음악 뮤지션들이 입주할 예정이라는 점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기타리스트 신대철이 음악 감독으로 참여하고, ‘잠비나이’, ‘숨’, ‘아시안 체어샷’, ‘엠씨 메타’ 등의 스튜디오 입주 밴드와 ‘갤럭시 익스프레스’, ‘킹스턴 루디스카’, ‘클렌체크’, ‘이디오테잎’, ‘앙상블 시나위‘ 등이 협력 뮤지션으로, 그리고 ’루비 레코드‘, ’사운드 홀릭‘, ’러브락 컴퍼니‘ 등이 협력 레이블로 참여한다.

 

4월말 개관 기념공연을 시작으로, 록, 국악, 라틴, 일렉트로닉, 힙합 등 장르음악을 중심으로 한 시리즈 페스티벌, 입주 뮤지션들과 협력뮤지션, 협력 레이블이 펼치는 콘서트, 그리고 ‘시나위 앤 래그타임’이란 이름의 즉흥 음악 이벤트 등이 플랫폼창동61 내에 위치한 컨테이너로 만들어진 국내 최초의 클럽 공연장, ‘레드박스’에서 열린다. 음악의 불모지 창동은 개성이 강한 장르음악이 만개하는 새로운 음악 신을 탄생시킬 것이고, 곧이어 창동 사운드라는 칭호를 받을 것이다. 물론 창동 사운드는 대형 공연장 조성만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뮤지션들과 기획자의 헌신과 내실 있는 창작 역량에 달려있다.

 

홍대 사운드는 살벌한 홍대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해 인디음악의 정체성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 밴드 음악 리이브 클럽도 갈수록 줄어들고, 관객들의 발길도 뜸하다. 여전히 수백 팀의 인디밴드들이 모여 있는 곳이지만, 음악적 판도를 바꿀만한 대안적 사운드가 생산되지 못하고 있다. 한때 홍대 사운드의 상업화에 맞서 관악 사운드라는 이름이 불린 적이 있지만, 곧 자취를 감추었다. 홍대 사운드의 대안으로 창동 사운드가 과연 성공할지는 아직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금이 새로운 음악적 사운드를 위한 장소 실험이 필요한 시점이고, 새로운 대안적 장르음악을 추구하는 창동 사운드는 그러한 실험을 위한 대안적인 실천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의 총괄 예술감독으로서 적어도 10년 후에는 창동 사운드가 자연스러운 이름이 되길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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