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 15호][칼럼] ‘지는 싸움’을 ‘하는’ 이유(권명아)

한겨레 기고문

 

[야! 한국사회] ‘지는 싸움’을 ‘하는’ 이유

 

 

권명아 (동아대 국문과 교수)

 

선거는 ‘이기는 싸움’일 때만 의미가 있을까? 이번 선거에서 녹색당이나 노동당에 쏟아진 ‘걱정’은 한마디로 어차피 지는 싸움에 표를 ‘낭비’한다는 것이다. 어차피 ‘지는 싸움’이라면 그저 무시하면 될 터인데 왜 그리 걱정하고 말리지 못해 안달일까? 생각해보니 선거에서만이 아니라, 일상의 여러 문제에서 이른바 ‘지는 싸움’을 ‘계속하는’ 사람이나 집단이 부대끼는 문제는 참으로 유사하다. 어차피 질 싸움에 왜 소모적으로 인생을 낭비하느냐는 점잖은 훈계와 조언, 현실을 좀 알라는 계몽적 충고, 비현실적인 태도를 수정하라는 질책, 결국 이 모든 일이 뭔가 ‘현실적인 싸움’에 방해가 된다는 짜증, 그리고 경멸적인 비아냥거림과 근거 없는 모욕. 이런 부대낌은 차례로 나타나기도 하고 뒤섞여서 나타나기도 한다. 그런데 어차피 ‘지는 싸움’이라면 무시하면 될 터인데 왜 이 싸움을 계속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이런 식의 복잡한 반응들이 나타나는 것일까?

선거에 국한하지 않아도 ‘지는 싸움’에 휘말려 인생을 건 결단에 내몰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런 결단에 내몰리지 않아 본 사람들은 한국 사회에서 정말로 혜택받은 사람이다. 변화되지 않는 제도와 권력 앞에서 아주 작은 것이라도 문제를 제기하려면 ‘지는 싸움’의 덫에 빠져 인생을 소진하게 된다. 그래서 기성세대나 안전지대에 서 있는 이들은 젊은 세대나 소수자들이 이런 싸움에서 소진되지 않도록 배려하고, 경계해야 할 책임을 강하게 느낄 수 있다. 싸워서 아무것도 변화될 가능성이 없는 싸움에 휘말리는 일은 그 자체로 존재를 뒤흔드는 공포이다. 하여 사람들이 이런 공포 속에 인생을 소진하지 않도록 경계할 필요가 있고, 또 이런 싸움을 ‘낭만적으로’ 독려하는 것이 무책임한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밀양 투쟁, 반원전 투쟁의 경험에서도 알 수 있듯이 ‘지는 싸움’이라고 어떤 싸움을 미리 규정하는 일은 그런 걱정을 하는 이들의 선의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싸움의 가치를 미리 앞당겨 재단하는 일이기도 했다. ‘지는 싸움’이라는 규정은 싸우기도 전에 패배의 전조와 환멸과 불안을 예고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그런 점에서 ‘지는 싸움’이라는 규정은 지금 현재의 인식 지평에 제한된 시각으로 아직 알 수 없는 미래의 결과를 앞당겨 예측하는 행위이다. 물론 이런 예측이 지성의 산물이라고 자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예측에서 미래는 현재의 연장일 뿐이다. 미래에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알 수 없는 싸움을 이미, ‘지는 싸움’이라고 단정하는 태도는 실상 미래가 현재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의 산물이다. ‘지는 싸움’을 계속하는 이유는 역설적이지만, 이런 걱정의 이유 속에 담겨 있다. ‘지는 싸움’을 계속하는 사람에 대해 ‘이기는 싸움’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짜증과 훈계를 멈출 수 없는 것은 사실 이 싸움이 ‘이기는 싸움’만 하는 사람들이 경험해본 적도, 상상할 수도 없는 어떤 미래를 자꾸만 불러들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지는 싸움, 그만해!”라는 명령에도 불구하고, 계속 싸우는 사람은 그런 점에서 “우리는 이길 수 있어!”라고 답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그런 미래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말을 돌려주고 있다. 그래서 ‘지는 싸움’을 계속하는 일은 이기는 싸움만 하는 사람들이 경험해보지도, 상상해보지도 못한 미래를 도입하려는 싸움이다. ‘지는 싸움’을 ‘계속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이미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미래는 이미 변하였다. 오늘의 선거가 비록 ‘지는 싸움’이었을지 모르지만, ‘계속 싸우는 일’을 멈추지 않았기에, 미래는 이미 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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