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1호][칼럼]세월호 참사와 청소년의 권리(천정환)

세월호 참사와 청소년의 권리

 

천정환

 

우리가 놓치고 있는 점 하나가 있다.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 태안 해병대캠프 참사, 경주 마우나리조트 사고, 그리고 최근의 세월호 참사 등 대형 인명사고의 공통점은, 학생들과 그 단체활동을 상대로 장사해 사는 업자들이 저지른 일이라는 사실이다. 이 업자들은 ‘어른’들을 상대하는 것보다 더 무책임하게 장사하며 더 손쉽게 돈을 벌어왔을 것이다.

학생들은 학교와 업자라는 ’어른’들만 믿고 안전을 저당 잡힌 돈벌이의 객체였다. 특히 세월호 사건에서 나타난바, 학생들은 목숨이 걸린 상황 자체에 대한 최소한의 제대로 된 정보도 듣지 못했다. 대신 그들은 ‘가만히 있으라’는 명령만 듣다 희생됐다. ‘가만히 있으라’는 권위주의는 ‘(어린) 니들은 몰라도 된다’는 무시와 이어져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나쁜 업자들만 가진 관점이나 의식이 아니다. 가장 평범한 학교나 가정에서도 그런 관점은 언제나 작동한다. 청소년들이 그저 ‘몰라도 되고’ 보호만 받아야 할 어리고 미숙한 존재이고, 따라서 정책과 정보의 객체일 뿐이라는 관점은 상식으로 통용된다. 단원고 학생들을 ‘아이’라고 부르며 희생을 안타까워하는 ‘어른’들의 슬픔과 죄의식 속에도 혹 그런 의식이 은연중에 끼어 있지 않은지?

 

참극을 겪은 우리는 이제 ‘말 잘 듣는 사람보다 의심할 줄 아는 사람을 더 높이 평가하는 문화로 바꾸자’고 하고, ‘가만히 있지 않는 사람이 되겠다’고 공공연히 선언하기도 한다. 다 옳은 말이다. 굴종을 요구하는 문화에 맞서야 하고, 청소년들이 스스로 사고하고 행동할 수 있는 주체적인 존재가 되도록 도와야 한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과연 어떻게? 토론 수업을 더 도입할까?

청소년들은 이미 스스로 사고하고 행동할 수 있는 주체적 존재이며, 민주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어른’들과 입시몰입 교육과, 또 잘못된 정치가 그들이 그런 주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거나 감추고 있는 것 아닌가? 청소년들이 세월호에서처럼 당하지 않고 정당하게 인권과 사회권을 누리게 해야 한다면 첩경이 있다. 그들을 ‘인간’으로 즉,‘아이’가 아니라 책임 있고 동등한 사회구성원으로 대접하는 일이다. 이를 위한 확실한 장치도 있다.

바로 선거권 제한연령을 낮추어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를 법으로 보장하는 일이다. 선거권을 18세 혹은 그 이하로 낮춰야 한다. 피선거권의 연령제한도 낮춰야 한다. 이 방법의 정치적ㆍ사회적 효력은 작지 않을 것이다.청소년들의 무권리 상태와 노동현장에서의 착취를 해결할 계기가 될 것이며, 그들은 스스로의 안전과 미래를 위해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할 것이다.

이는 초고령화가 진행중인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병든 한국의 대의민주주의는 미래를 살 사람들의 정치적 의사를 더 많이 반영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균형을 맞추어 ‘(부자) 노인을 위한 나라’를 ‘모두를 위한 나라’로 바꿔가야 한다.

 

그런데 사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수백 명의 청소년이 ‘가만히 있으라’는 명령 때문에 물속에 잠겨 있던 지난 4월 28일, 헌법재판소가 청소년들은 계속 가만히 있는 게 좋겠다는 취지의 판결 하나를 했다. 18세 청소년은 “독자적인 정치적 판단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정신적ㆍ신체적 자율성 충분치 않다”며 선거권ㆍ선거운동ㆍ정당가입 제한이 합헌이라는 판결을 냈다.판결이 죽음의 명령인 ‘가만히 있으라’와 똑같지는 않다 해도, 보수적인 기득권층의 생각을 대변한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세계 232개국 중 215개국, OECD 34개국 중 32개국이 18세를 선거권 행사 연령 기준으로 정하고 있다. 우리 청소년들의 지력이나 판단력이 세계 꼴찌 수준인가? 세월호 참사는 청소년 권리 후진국에서 일어난 일이다.

인권과 정치적 권리는 함께 커간다. 다시 18세, 아니 17세 선거권을 주장한다. 미래의 한국을 위해 이 땅에서 오래 살아갈 청소년들에게 선거권을 주라. 헌재와 여야는 기득권세력과 노인들 뒤에 숨지 말고, 젊은이들 앞에 당당히 서서 그들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한국일보 : 삶과 문화] 2014.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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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1호][칼럼] 한국 대중문화 속에 그려지는 외국인들의 어제와 오늘(이윤종)

한국 대중문화 속에 그려지는 외국인들의 어제와 오늘

 

이윤종

 

한반도는 고대부터 크고 작은 수많은 외세 침탈의 역사를 겪어왔다. 그러나 조선 시대 후기까지 한반도에 있어 “외국”이란 언제나 중국 아니면 일본일 수밖에 없었다. 이웃나라인 중국이 아시아 대륙에서 물리적, 심리적으로 차지하는 크기가 워낙 큰 데다, 한반도가 서구의 시각에서 소위 “극동(Far East)”이라 불리는 동아시아의 맨 끝에 위치한 것도 모자라 북, 남미 대륙 혹은 유럽과의 연결 통로인 태평양마저도 러시아부터 동남아 지역까지 이르는 기다란 일본 열도에 가로막혀 있는, 고립된 지리적, 혹은 지정학적 위치 때문이다. 게다가 남북 분단의 상태까지 반백년 이상 지속되면서, 일제 강점기에 한국 독립 운동의 근거지였던 러시아의 연해주와 지금은 중국 연변 지역인 간도와의 접근성마저도 북에 가로막혀 차단되면서, 남한은 더더욱 외국 혹은 외국인과의 교류가 드문 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 이래 전략적으로 고도성장한 경제력을 기반으로 김영삼 정부의 국가정책적인 “세계화” 추진 이후, 대한민국도 서서히 전지구화(globalization)의 물결 속에 편입하면서 서울은 이제 제법 다인종, 다문화가 자연스러운 코스모폴리스(cosmopolis)가 되었다.이러한 역사적 흐름 속에서 이 글은 6.25 전쟁 이후부터 21세기에 이르기까지 급변해온 한국 사회의 문화적, 인종적 인식이 한국의 대중문화에 어떻게 반영되는지를 중심으로 그 속에서 그려지거나 비쳐지는 외국인에 대한 시선의 변화를 짚어 보고자 한다.

 

우선 한국 대중문화가 본격적인 꽃을 피우기 시작한 것은 6.25 사변 이후인 1950년대부터라는 전제 하에서 이 글을 시작하려고 한다. 물론 일제 강점기에도 만화, 영화, 대중음악, 잡지 등의 다양한 매체를 통해 대중문화가 존재하고 사랑받았고 이를 중점적으로 파고드는 연구자들도 있다. 그러나 영화 전문가로서 필자가 영화 분야에 관해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일제 시대의 영화 중 필름이 현재까지 남아있는 것은 몇 편 없고, 현존하거나 복원한 영화들 속의 외국인도 시대적 특성 상 일본인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나운규 등의 영화인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일제 치하 초기의 민족주의적 영화 제작 풍토 하에서 일본인은 대부분 부정적으로 묘사되었지만, 메타 영화라고 할 수 있는1941년 작 <반도의 봄 (이병일)>의 영화 속 영화인 조선 영화 <성춘향>의 일본인 제작자처럼 다른 조선인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보통의 중립적인 인물로서 표현되기도 했다.

 

해방 전 한반도의 외국인이 주로 일본인일 수 밖 에 없었다면, 해방 후 6.25 전쟁을 전후한 냉전 시대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 대한민국 영토 내에서 한국인들이 접할 수 있었던 외국인이란 주로 미군 부대 주변의 미국인들과 일본인 관광객이나 비즈니스맨이 거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특히 냉전 시대에 미국 혹은 미국인은 한국이 생각할 수 있는 서구와 서양인의 모든 것을 상징하는 제유적인 존재였다. 이웃나라이긴 하지만 당시 동구권의 중심국들로서 각각 중공이라 불리던 중국이나, 소련이라 불리던 러시아와의 교류가 남한 사회에서 미국이라는 정치, 경제적 초강대국이자 거대 서방 세계 우방국에 의해 완전히 차단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시 한국의 영화나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외국인의 절대 다수 또한 미군이었고 드물게 일본인이 등장하곤 했다. 특히 미군들은 다수의 한국 영화 속에서 “양공주”라 불리던 미군 기지촌 주변의 한국인 직업여성들의 고객 혹은 연인으로 자주 등장하곤 했다. 그들은 가끔은 진정한 사랑에 빠져 그녀들을 가난하고 비참한 현실에서 구원해 “아름다운 나라”인 미국으로 데리고 가는 남성 구세주의 역할도 맡았지만, 대부분 그녀들을 홀대하고 학대하거나 무책임하게 임신시킨 채 홀로 미국으로 돌아가 버리는 매정한 남성들로 그려졌다. <지옥화 (1957, 신상옥)>, <오발탄 (1961, 유현목)>, <돌아오지 않는 해병 (1963, 이만희)>, <육체의 고백 (1964, 조긍하)> 등의 한국영화의 수작으로 꼽히는 작품들 속에서 미군들은 주로 후자로 묘사되었다.

 

미군이나 미국인에 대한 한국인의 양가적인 인식, 즉 정치, 경제적 구원자/원조자인 동시에 정신적, 문화적 착취자/수탈자라는 인식은 7, 80년대를 거쳐 90년대까지 계속 되었다. 특히 1980년대에는 미국이 1980년 광주 사태를 방관했다는 거센 비판과 함께 영화 속에도 반미주의적 흐름이 강하게 드러나, 굳이 미군이 아니더라도 한국이나 미국에 있는 일반 미국인 남성들도 한국 여성을 성적으로 유린함으로써 정신적인 타격을 주는 민족적 위협을 상징하는 서사적 장치로 자주 동원되었다. <무릎과 무릎 사이 (1984, 이장호)>, <깊고 푸른 밤 (1985, 배창호)>, <여왕벌 (1986, 이원세)>, <LA 용팔이 (1986, 설태호)>, <아메리카 아메리카 (1988, 장길수)>,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1990, 장길수)> 등의 영화들이 그러한 서사 장치를 잘 활용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보다 조금 더 나아가, 스웨덴 입양아인 수잔 브링크의 실화가 텔레비전 프로그램 <인간극장>을 통해 소개된 후 영화화된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 (1991, 장길수)>에서는 스웨덴 백인 남성들이 미국인을 대신한 서사 장치로서 (외국에서 성장한) 한국 여성에게 정신적, 육체적 상처를 주는 외국 남성으로 활용되었다.

 

미군이나 백인 남성에 대한 보다 복합적인 시선은 2000년대 들어 등장한다. 김기덕 감독은 <수취인 불명 (2001)>과 <해안선 (2002)>등의 영화에서 단순한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도로서만 미국/미국인과 한국/한국인의 관계를 설정하지 않고 미군 병사나 그 한국인 혼혈 후예에 대한 복합적이고 다각도적인 접근을 꾀했다. 봉준호 감독도 그의 천만 관객 흥행작 <괴물 (2006)>에서 한강에 유독 물질을 방류해 의도치 않게 대형 유전자 변이 괴물을 제조하는 도덕적 결함을 지닌 미군 장교 뿐 아니라 그 괴물에 맞서 싸우는 미군 병사를 이후에 병치시킴으로써 미국과 미국인/미군에 대한 한국인의 복합적인 심리 상태를 표출했다.

 

1980년대 후반까지 미국인/미군들로 대표되던 외국인은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정부의 세계화 정책과 함께 한국의 대중문화 속에서 보다 다양하게 세분화되기 시작한다.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프랑스 출신 방송인 이다 도시와 최근에 한국관광공사 사장까지 역임했던 독일 출신 사업가이자 방송인인 이한우/이참은 1990년대 초중반부터 다양한 텔레비전 오락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유명세를 탔고 귀화 한국인으로서의 정착 기반을 닦을 수 있었다. 특히 이참은1994년 KBS 드라마 <딸 부잣집>에서 한국 문화를 사랑하는 외국인 사위로 등장해 한국 드라마 속 외국인 배우의 포문을 열었고 이후로도 SBS의 <천국의 계단 (2003)>, <러브 스토리 인 하버드(2004)> 및 MBC의 <제 5 공화국 (2005)> 등의 드라마에도 꾸준히 출연해 한국에 거주하는 다수의 유럽 혹은 미주 출신 (재연) 배우 지망생들에게 꿈을 불어넣어 주는 역할을 톡톡히 하기도 했다. 2000년대 이후로 이러한 유럽계 외국인들의 방송 출연 빈도는 매우 높아져서 KBS의 예능 프로인<잘 먹고 잘 사는 법 (2002- )>의 “팔도유랑기”라는 코너에 출연했던 벨기에 출신의 줄리안, 프랑스 출신의 티에리, 한국계 프랑스 입양아 출신인 필립을 비롯해 MBC 드라마 <탐나는 도다 (2009)>에 주연급으로 출연한 프랑스 출신 황찬빈 (피에르 데포르트) 등도 다양한 한국인 시청자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

 

2000년대 이후 다문화 가정의 증가와 함께 시행된 한국 정부의 다문화 정책은 백인에 국한되었던 한국 대중문화 속 외국인의 인종적, 문화적 스펙트럼을 점차 넓히기 시작했다. 2000년대 후반 KBS의 예능 프로그램 <미녀들의 수다>는 유럽과 미주 뿐만 아니라 아시아 각국의 한국어가 능숙한 미녀들을 게스트로 섭외해 다문화주의에 대한 다양한 토크를 유도하며 유익한 인기 프로그램으로 자리를 굳히기도 했다. 물론 포맷의 식상함은 <미녀들의 수다>를 장수 프로그램으로 안착시키지는 못 했지만, 인기 프로그램은 아니더라도 다문화 가정을 재조명하려는 노력으로 KBS에서 10년 가까이 지속적으로 방송하는 <러브 인 아시아> 등의 프로그램과 함께 한국 내 비백인 외국인들에 대한 편견을 어느 정도는 불식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었다. 또한 베트남전에 참전한 한국인 아버지와 베트남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라이따이한 여성이 한국으로 시집와 행복을 찾는다는 소재로 성공한 SBS 드라마 <황금신부 (2007-8)> 이후로 공중파 일일 드라마들은 점차 자연스럽게 한국에 거주하는 동남 아시아계 신부들을 긍정적으로 묘사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들이 혹은 이들의 자손들이 한국의 인종주의에 의해 고통 받는 불행한 일상을 영화 속에서는 보다 현실적으로 그리기도 하는데, <의형제 (2009, 장훈)>, <완득이 (2011, 이한)> 등의 50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들이 특히 그러했다.

 

2010년대 중반을 향해 달려가는 현재, 영화나 TV 드라마뿐 아니라 가요계에서도 외국인들은 이제 심심치 않게 보인다. KBS의 최장수 프로그램 <전국노래자랑>을 통해 스타가 된 방글라데시 출신 가수 방대한은 영화나 드라마에도 자주 출연해 한국인들에게 익숙한 연예인이 되었다. 특히 한류를 의식해 중국과 동남아 시장을 겨냥한 한국 아이돌 그룹 속에는 닉쿤 (2PM), 빅토리아 (F(X)), 페이 (미쓰에이) 등의 한국인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은 아시아계 스타들이 포진해 있다. 물론 닉쿤은 음주 운전 사고로 물의를 빚은 후 예전에 비해 한국 내에서의 인기가 상당히 주춤하고, 한 때 상당한 인기를 끌었던 슈퍼주니어의 한경도 그룹에서 탈퇴하는 소동이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물론 이들이 한국에서 인기를 끌었던 외국인 가수의 시초는 아니다. 1999년 데뷔한 남성 트리오 Y2K의 일본인 형제도 한국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었었다. 또한 2012년 슈퍼스타 K를 통해 혜성같이 등장한 락 그룹 버스커 버스커의 드러머는 아시아계가 아닌 백인 미국인인 브래드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한국의 대중문화 속 외국인들은 이제 미국과 일본, 중국이라는 과거의 제한적이었던 국적의 고리를 풀고 다양한 나라 출신들로 확대되었다. MBC 군대 체험 예능 프로그램인 <진짜 사나이>를 통해 스타 개그맨으로 자리를 굳힌 샘 헤밍턴이 호주 출신인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아직도 무언가 석연치 않은 느낌이 있다. 2014년 현재 다양한 분야의 한국 대중문화 속에서 백인 뿐 만 아니라 아시아계나 아프리카 출신 외국인들도 상당히 긍정적으로 그려지기 시작했지만, 한국인들의 비백인 외국인에 대한 편견이 여전하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기 때문일 것이다. 단일 민족주의라는 환상 하에서 오랫동안 타인종이나 외국인에 대한 공포와 경멸을 품고 살아왔기 때문이기도 하고, 미국의 정치, 경제적 지원 하의 한국 현대사 속에서 백인 미국인 이외의 외국인에 대해 양가적이라고 해도 어느 정도 우호적인 감정을 품을 틈도 없이 한국인들이 바삐 살아와서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 보다 열린 시선과 자세로 한국에 방문하거나 거주하는 다양한 인종과 국적의 외국인들을 진정으로 포용할 시기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외국에 나가 차별과 편견의 시선을 감내하고 싶지 않다면, 내가 먼저 외국인에 대한 그러한 시선을 폐기하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와 그들을 구분 짓고 차별의 차이를 만드는 시선부터 먼저 거두는 연습이 필요할 것이다.

 

월간 <미술>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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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1호][연구자료]일본레코드협회 2011년 음악산업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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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1호][동정]2014년 6-7월

[동정]2014년 6-7월

 

김성일 편집위원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을 바탕으로 『대중의 계보학』(이매진, 2014)이란 제목의 신간을 출간. 자세한 내용은 뉴스레터 신간소개를 참고하기 바랍니다.

 

서동진 편집위원

제21회 영상예술학회 ’1990년대 벨에포크(Belle Epoque)?’라는 주제의 춘계학술대회에서 <플래시백 1990년대: 반기억의 역사와 이미지>란 주제로 발표.

(2014년, 6월 14일,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

 

오창은 편집위원

한국근대문학회  ’<419 세대>와 한국문학’이란 주제의 춘계 학술대회에서 <419혁명과 염상섭> 논문 발표

(2014년 6월 14일 광운대학교)

 

 

이광석 편집위원

과학기술학, 정보사회학, 문화연구, 뉴미디어연구, 자작문화 등 국내 이론지형 소개와 언더그라운드 디지털 문화분석의 성과를 담아 <오늘날, 기술/정보 문화연구를 묻다>(논형)란 책으로 묶어 다음 달 7월 출간 예정임. 이 책은 지난 해 ’기술/정보문화연구와 분석의 지층들”이라는 콜로키움을 발전시킨 프로젝트. 원용진(서강대교수), 김상민(조지메이슨대 문화연구), 이길호(서울대 인류학과 박사과정), 이영준(기계평론가), 임태훈(미디어연구자), 조동원(문화과학 편집위원), 최빛나/송수연(청개구리제작소)이 필자로 참여하였음.

 

이동연 편집인

6월 26일 숭실대학교에서 한국게임학회 주체 정기학술대회에서 <게임중독법의 문제>를 주제로 발표함.

7월 5일 4시에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싱가포르 국립대학 대학원 한국대중문화연구팀 필드트립 행사에서 <한국의 독립/하위문화>를 주제로 강연할 예정임.

 

천정환 편집위원

스포츠문화연구소, 체육시민연대 주최 집담회 <세월호 참사와 월드컵, 그리고 한국사회>에 토론자 참여

(2014년 6월 9일 휴머니스트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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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문화/과학 월 후원회원을 모집합니다.

 

계간 『문화/과학』후원회원을 모집합니다

 

 

 

 

국내 최초, 국내 유일의 문화이론 전문지 계간 『문화/과학』의 후원회원을 모집합니다.

1992년 창간된 계간 『문화/과학』은 지금까지 77호를 발간하면서 우리 사회 문화운동의 이론적 실천과 한국적 문화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과학적 문화론, 문화공학, 문화사회, 사회미학, 문화행동 등 계간 『문화/과학』이 그동안 심혈을 기울였던 많은 문화 개념들은 한국사회 문화현실을 이해하고 새로운 문화실천의 공간을 창출하는 데 중요한 이론적 실천을 맡아왔습니다.

 

계간 『문화/과학』은 71호부터 인문사회과학 분야에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젊은 편집위원들을 영입하고, 새로운 편집체제로 독자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2014년부터는 실질적인 도약을 위해 독자들의 외연의 폭을 넓히려는 대중적인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계간 『문화/과학』은 정기구독제도에서 월 후원제도로 전환하여 출판 재정을 안정화하고 다양한 독자 서비스 활동을 벌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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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과학 뉴스레터 1호(2014. 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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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1호][안내]문화사회연구소에서 진행하는 세미나

문화사회연구소의 세미나

 

(사)문화사회연구소는 문화 속의 사회, 사회 속의 문화를 학제적으로 연구하면서 문화의 민주화와 사회의 문화화를 모색하는 연구기관입니다. 즉, 시민의 문화적 삶의 가치를 함양하고 정부 문화정책의 공공성을 강화하며 대중문화산업의 투명성을 확보할 담론 생산 및 실천을 전개하는 제3섹터의 문화연구자 집단입니다. 문화사회연구소에서는 현재 다양한 연구 모임들을 진행하고 있으며, <문화과학>의 편집위원들도 이 모임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문화사회연구소의 세미나

 

1. 푸코 연구(2013년 3월부터): 푸코 전작을 읽고 푸코에 대한 연구 단행본 발간을 목표로 진행하는 장기 세미나

 

2. 한국 문화운동의 계보학(2013년 6월부터): 한국문화운동을 역사적으로 재구성한 단행본 발간을 목표로 진행하는 장기 프로젝트 세미나

 

3. 『공통체』 읽기(2014년 5월부터):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의 『공통체』 를 함께 읽는 세미나

 

세미나 문의: 이메일 cultures21@naver.com / 홈페이지 kcc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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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상하이 국제 세미나 – 정보자본주의와 정보문화의 현재와 미래

현대 정보자본주의 시회 속에서 우리는 예기치 못할 정도의 디지털 물결의 범람을 매 순간 경험하고 있습니다. 서울과 상하이란 두 메트로폴리탄 도시 속 삶의 물질적 조건들이 서로 다른 것 같이 보여도 실제 우리는 자본주의의 새로운 단계로의 변화 과정에서 자본주의 시스템적 위기의 공통의 정서를 나누고 있습니다. 이번 국제 컨퍼런스에서 우리는 이 두 도시의 디지털 문화를 상호 비교하는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이번 국제 학술행사에서 ‘디지털 문화’의 대안적 삶을 가로막는 측면들, 예컨대, 소셜 웹 시대 대기업들의 새로운 욕망, 정부의 초-법적인 사회적 통제 시도, 온라인 삶의 위기 상황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더불어 온라인 행동주의의 부상과 디지털 온라인 문화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양 국가의 사회, 문화적 쟁점들을 밝히고자 합니다.

일시: 2013년 6월 28일(금) 오전 10시-오후 6시
장소: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어학원 1층 컨퍼런스 룸
주최: 서울과학기술대학교 SSK 위험정보사회 연구팀, 계간 <문화/과학> 편집위원회
후원: 한국연구재단

시간

프로그램

발표 및 토론

10:00-10:10

등록

10:00-10:20

축사 및 인사말

- 조현석 (SSK 위험정보사회팀 연구책임자,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

- 왕샤오밍 (상하이대학교 교수)

10:20-11:00

기조 강연

한국 정보자본주의의 전개와 비판

- 백욱인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

1

11:00-12:30

사회: 조형근
(<
문화/과학> 편집위원)

정보자본주의에서 이용자 주체의 포섭

- 발표: 조동원 (<문화/과학> 편집위원)

- 토론: 왕샤오밍 (상하이대학교 교수)

새로운 인간을 부르짖다: 교육과정개혁과 정보기술교육

- 발표: 뤄사오밍 (상하이대학교 교수)

- 토론: 박자영 (협성대학교 교수)

12:30-13:30

점심 식사

2

13:30-15:00

사회: 주은우

(중앙대 교수)

국내 지배양식의 변화와 빅데이터 감시사회의 도래

- 발표: 이광석 (SSK 위험정보사회 연구팀 공동연구,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

- 토론: 저우자난 (상하이대학교 교수)

들여다보기·보지 않기: 변화하는 중국 미디어의 수사정치학 — 중국 CCTV <들여다보기(看見; Insight)>의 “원저우 아동 학대 사건”에 대한 보도를 중심으로

- 발표: 동리민 (상하이대학교 교수)

- 토론: 이기형 (경희대학교 교수)

15:00-15:20

휴식

3

15:20-16:50

사회: 왕샤오밍

(상하이대학교 교수)

정보자본주의에 대한 사회운동의 대응

- 발표: 오병일·장여경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

- 토론: 뤄샤오밍 (상하이대학교 교수)

내부의 외부화, 외부의 내부화: 중국의 미래를 위한 분투 속 초국적 담론 연합의 형성
-
발표: 우창창 (상하이 사회과학 아카데미 언론학 연구소 연구원)

- 토론: 조현석 (SSK 위험정보사회팀 연구책임자,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

종합토론

16:50-18:00

사회:심광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참석자 모두

 

서울상하이국제세미나(2013) – 정보자본주의 자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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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과학 74호(2013여름) – 자살과 죽음

74호를 발간하며ㆍ이동연

 

│특 집│ 자살과 죽음

021   돌볼 필요가 없는 생명, 살 가치가 없는 생명 ―자살의 사회적 차원과 자본-권력의 동맹체ㆍ정정훈

040   그가 아닌 우리들의 죽음 ― 자살의 사회적 의미와 원인ㆍ김성일

059   소통방식으로서의 자살ㆍ박형민

087   열사의 정치학과 그 전환: 2000년대 노동자의 죽음을 중심으로ㆍ천정환

139   자살 권하는 사회: 청소년과 연예인 자살의 의미계열ㆍ이동연

 

│논쟁_제4회 문화/과학 북클럽논쟁 │

209   1960년을 묻다               ㆍ천정환(사회) / 권보드래 / 김 항 / 조태성

 

│근대성과 문화연구│

313   박정희 시대 대중음악의 매개(mediation)와 정치적 규제ㆍ신현준

 

│주제서평│

375   중국 근현대문학사 쓰기의 새로움과 낡음ㆍ이재현

 

│표지 이미지│

임흥순_ 철탑농성 / 컬러 프린트 / 2013

 

│이미지 에세이│

조  습_ 동백꽃, 피그먼트 프린트, 2013 / 청보리, 피그먼트 프린트, 2013
갈대, 피그먼트 프린트, 2013 / 대나무, 피그먼트 프린트, 2013

김기수_ 삼촌1, 피그먼트 프린트, 2004 / 삼촌2, 피그먼트 프린트, 2004
삼촌3, 피그먼트 프린트, 2004 / 삼촌4, 피그먼트 프린트, 2004

 

│문화현실분석│

239   2000년대 후반 한국영화의 잔혹성에 대한 윤리적 비판ㆍ강정석

263   파산의 기술ㆍ전주희

284   일상의 금융화와 탈정치화의 정치ㆍ최철웅

 

│해외문화연구 동향│

351   ‘섬세한 혁명’: 생활세계의 재구성과 생활정치의 재가동ㆍ장롄훙(張練紅)/김소영 역

 

│기획: 다문화의 정치학│

165   ‘다문화’의 이론적 재구성을 위한 소고ㆍ이용재

188   낯선 결혼이주여성을 다루는 익숙한 시선, KBS <러브 인 아시아>ㆍ권금상

 

│인물비평│

337   조용필, 변방과 중심의 음악 전략ㆍ서정민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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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과학 74호(2013여름)를 펴내며

노동은 부자들을 위해서는 기적을 생산하지만, 노동자를 위해서는 궁핍을 생산한다. 노동은 궁전을 생산하지만, 노동자를 위해서는 지옥을 생산한다. 노동은 미를 생산하지만 노동자를 위해서는 기형성을 생산한다. 노동은 기계를 통해 노동을 보충하지만, 그 반면에 일부의 노동자들을 야만적인 노동으로 몰고 가며, 또 다른 일부의 노동자들을 기계로 만든다. 노동은 정신을 생산하지만, 노동자를 위해서는 곧 백지상태를 생산한다.

―칼 맑스,  [경제학 철학 수고] 중에서

두산중공업, 한진중공업, 쌍용자동차, 기아자동차, 유성기업, 호남고속, 한국외국어대학교용인캠퍼스, 도시철도공사, 삼성전자…. 이명박 정부 이후 정리해고를 비롯해 가공할 만한 탄압이 자행되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노동자들이 근무하던 곳들이다. 대기업, 중소기업, 하청기업에 대학교, 운수회사, 공공기업, 그리고 일용직 근로현장에 이르기까지 지금 한국의 노동자들이 일하는 어느 곳이든, 어느 시간이든 노동과 노동자를 분리하는 지옥 같은 사건들이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다. 회사의 정리해고와 노조의 장기투쟁은 그 끝을 모른 채 반복되고 있고, 그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하나둘씩 죽어가고 있다. 거의 대부분 자살로 생을 마감한 24명의 쌍용자동차 노동자와 그 가족들은 우리 시대의 노동자 자살이 사회적 타살이라는 것을 가장 비극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가슴 아픈 사연들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정리해고와 해고철회 투쟁이라는 간단한 도식으로 설명될 수 없는, 우리가 사실상 거의 알지 못하는 그 경계에서 벌어진 신체적, 정신적 고통의 강도를 그대로 대변해 준다.

한국사회에서 자살은 비단 고통 받는 노동자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이의 문제이다. 그것은 사회 생태계의 건강함의 여부를 가늠하는 척도이다. 2012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1년 자살에 의한 사망자수는 총 15,906명에 이른다. 이 통계 수치는 1일 평균 43.6명이, 약 33분에 1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노동자 자살률, 청소년 자살률, 노인 자살률 모두 OECD 국가에서 1위를 기록했다. 이 객관적인 통계 자료는 한 사회의 중요한 지표라 할 수 있는 노동, 교육, 복지 모든 면에서 우리 사회가 개인을 보호하지 않고 벼랑으로 내몰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청소년과 노인의 자살이 심각한 수준으로 늘어나고, 노동자의 자살과 연예인의 자살도 끊이지 않고 지속되고 있다는 점은 우리 사회에서 자살이 생애주기 전체의 문제이며, 육체와 감정 노동 모두의 문제임을 짐작케 한다.

[문화/과학]이 74호의 특집 주제로 ‘자살과 죽음’을 선택한 것도 최근에 잇따르고 있는 노동자와 청소년 자살의 사회적 심각성에 대한 인식 때문이다. 지금 이 시대의 자살의 국면은 어찌 보면 1990년대 분신 정국과는 다른 맥락을 가지고 있고, 그 당시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삶의 문제를 안고 있다. 지금의 자살 국면은 자본가-노동자, 독재자-민중의 선명한 이분법을 표상하는 이념적 대립과 갈등의 수준을 넘어서 개인의 일상적 삶 안에 깊게 파고들어간 신자유주의의 극한의 통치술에 기인한다. 지금의 자살국면은 선택과 배제로 사회적 잉여인간들을 관리하는 인구통계학적 통치술의 장치가, 신용과 부채의 교묘한 기법으로 개인의 삶을 끝까지 절단내버리는 일상적 금융화의 장치가, 감정의 소통과 교환을 절단시킨 채, 그것의 회복을 상품으로 소비하라고 강요하는 소비자본의 장치가 심화시킨 것이다. 자살은 그런 점에서 그 고통과 갈등의 순간이 심화되고 있다는 것의 강력한 표현수단이며, 역으로 간절하게 살고 싶다는 역설적인 메타포인 것이다.

이번 74호 특집에 실린 5편의 원고들은 ‘자살과 죽음’의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상관성을 관찰, 분석하고 있다. 먼저 이 특집의 총론격인 정정훈의 글(「볼 필요가 없는 생명, 살 가치가 없는 생명―자살의 사회적 차원과 자본-권력의 동맹체」)은 자살의 문제를 생명-권력의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공공장소에서 자살의 의지표명으로 삶의 문제를 함께 고민해보려는 과거와 달리 혼자 조용하게 쓸쓸하게 죽음을 선택하는 지금의 자살 사태는 우리에게 생명과 권력의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정정훈은 푸코의 생명권력의 이론을 언급하면서 “우리 사회에서 빈번히 발생하는 자살의 문제와 오늘날 한국사회의 통치권력이 작동하는 방식 사이에는 중요한 연관이 있음”을 강조한다. 생명권력이 특정한 인구집단에서 죽음을 강요하는 방식, 이것이 한국사회 자살 국면의 핵심 요인이다. 그는 글의 말미에 “그들을 죽느니만 못한 삶을 살아가도록 몰고가는 자본과 국가의 동맹체, 죽음의 고통을 삶의 고통보다 더 적다고 느끼도록 몰아붙이는 자본과 국가의 동맹체야말로 우리 모두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가장 치명적인 사이코패스가 아닐까?”라는 말로 현재 자살의 국면이 극단으로 내몰린 잉여적 인간들에 대한 권력 관리 장치술의 폭력성을 역설한다.

자살의 사회이론적 관점을 정리한 김성일의 글(「그가 아닌 우리들의 죽음―자살의 사회적 의미와 원인」)과 한국사회의 자살의 유형을 체계적으로 분석한 박형민의 글(「소통방식으로서의 자살」)은 자살의 권리 혹은 그것의 타당성에 대한 이론적, 실제적 관점을 제시해 준다. 김성일은 현 시기 자살의 급증은 사회구조적 압력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극심한 사회양극화로 인한 빈곤 심화 및 살인적 무한 경쟁이 유발한 삶의 불안과 피로는 죽음보다 더한 비참한 현실을 만들고” 있고, “열정을 쏟을 미래에의 희망이 불투명해지고 경제적 추락에의 불안이 만성화된 상황에서, 자살의 선택은 보다 만족스런 삶을 위한 최선의 선택은 아니었을까?” 하고 반문할 수 있다. 그는 “정치적 측면에서의 치안정치, 경제적 측면에서의 무한경쟁, 사회적 측면에서의 성과주의”라는 죽음의 트라이앵글이 개인을 자살로 내모는 실체라는 점을 강조한다.

자살을 소통의 방식으로 해석하고자 하는 박형민의 글은 먼저 “실업률이 높아지고 사회적 양극화가 진행되어 국민의 삶의 질이 저하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자살이 급증하고 있는 사회적인 배경”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유서의 분석을 통해 소통적 자살을 8가지 유형을 분류하면서 그가 언급하고자 하는 것은 “자살은 실패와 좌절 속에서 자신의 삶을 전적으로 포기해버리는 회피적인 행위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향한 의도를 가진 적극적인 행위”라는 점이다.

2000년대 이후 노동자의 죽음을 분석하면서 열사의 정치학에 대한 인식론적 전환을 시도하는 천정환의 글(「열사의 정치학과 그 전환: 2000년대 노동자의 죽음을 중심으로」)은 이번 특집의 주제인 ‘자살과 죽음’이라는 두 개념의 인과론이 어떻게 역설적으로 전도되고 있는가를 가장 잘 보여준다. 다른 4개의 특집 글의 분량과 거의 맞먹는 엄청난 분량으로 노동자 죽음의 사례들을 아주 꼼꼼하게 분석한 이 글의 목적은 사회적 타살로 정의할 수 있는 노동자들의 자살과 그 죽음을 표상하는 ‘열사’라는 의미에 대한 자명한 인식을 내파시키는 것이다. “1970년대에 배태되고 1980년대 민주노조운동 과정에서 본격화”된 노동자 열사의 정치학은 2000년대 들어서는 그 의미화가 다르게 구성되었음을 주목한다. 노동자들의 죽음을 ‘열사’의 ‘숭고미’로 의미화하기 이전에 그 자체가 “심각한 위기에 처한 노동운동의 상황을 반영”한다는 점을 직시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박근혜 정권 출범 이후에도 이어지고 있는 노동자의 죽음은 집합적 연대와 조직운동이 어려워진 절망 상태와 노동정치와 진보정치의 전반적인 하강적 국면 전환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른바 열사의 정치학이 불가능해진 이 시대에 노동자의 죽음은 우리에게 무엇을 생각하게 할까? 열사의 정치학의 불가능성과 그것의 불가피함의 경계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시급하게 노동운동 말살을 저지하고 노동자-다중의 주체 재구성에 나서야” 하는 것밖에 없음을 이 글은 강조하고 있다.

청소년과 연예인의 자살을 통해서 우리 사회가 개인들을 얼마나 잔인하게 죽음으로 내모는가를 분석한 이동연의 글(「자살 권하는 사회: 청소년과 연예인 자살의 의미계열」)은 서로 다른 두 주체들의 자살의 맥락이 놀랍게도 유사한 점을 발견하면서 이 두 주체들의 자살에 관통하는 행복과 불행의 양가성에 주목하고자 한다. 청소년과 연예인의 자살을 각각 ‘사회적 타살’과 ‘사회적 질병’으로 정의하면서 이 글은 자살할 권리와 자살당할 운명 사이에 놓여 있는 주체들의 상황을 적극적으로 해석할 것을 요청한다. “청소년과 연예인의 자살은 인권의 마지막 선택과 결정으로서의 자살의 고유성과 사회적 존재로서 개인이 당해야 하는 수많은 모순들의 희생자로서의 운명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동시대 삶의 비극적 알레고리”인 것이다.

이번 호의 기획은 다문화를 주제로 다루었다. 이용재의 글(「‘다문화’의 이론적 재구성을 위한 소고」)과 권금상의 글(「낯선 결혼이주여성을 다루는 익숙한 시선, KBS <러브 인 아시아>」)은 다문화의 이론적 재구성의 필요성과 다문화의 미디어 재현에 대한 내밀한 분석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이용재는 먼저 다문화주의의 개념에 대한 사회적 합의조차 없이 현재까지 진행된 다문화논의가 오히려 다문화 논의의 초점을 흐리는 결과를 가져왔고, 현재까지도 ‘다문화’가 무엇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을 지적한다. 다문화의 정의에 대한 이론적 불편함은 여기에서 야기한다. 따라서 이 글은 다문화에 대한 그간의 이론적 논의를 정리하면서 외부로부터의 낙인찍기가 아니라 내부적 드러남으로서의 다문화에 대한 정의를 주장한다.

KBS의 대표적인 다문화 프로그램인 <러브 인 아시아>를 분석한 권금상의 글은 “대중매체가 결혼이주여성을 재현함에 있어 ‘한국적 이주여성상’이라는 일정한 상으로 귀결되는 결과는 이들에 대한 이미지를 미리 정하고 일정한 틀 속에 맞추어 이주여성들의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음을 비판하고 있다.

[문화/과학] 제4회 북클럽은 천정환 교수와 권보드래 교수가 함께 쓴 [1960년을 묻다](천년의상상, 2012)를 선정하였다.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의 김항 교수와 서울신문사 조태성 기자가 패널로 참석하여 열띤 토론을 벌인 북클럽은 1960년대 시대사를 규정하는 4.19 혁명과 5.16 군사쿠데타의 반동의 사건의 의미를 주목하면서 그 혁명과 반동의 대립적 시공간에 살았던 주체들의 의미를 주목하였다. 특히 박근혜 정부의 출범으로 현재의 시간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 1960년대는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가 궁금하다면 독자들의 일독을 권한다.

문화현실분석 란에는 세 편의 원고를 실었다. 먼저 최근 한국 영화 창작 스타일의 한 축을 형성한 사이코패스 영화들을 분석한 강정석의 글(「2000년대 후반 한국영화의 잔혹성에 대한 윤리적 비판」)은 이들 영화에서 발견되는 영화감독의 전제적 위치와 폭력의 스펙터클로서의 재현장치들은 영화적 윤리에서 심각한 문제를 야기시킨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하에서 파산이 어떻게 개인의 영역으로 확장되는가를 분석하는 전주희의 글(「파산의 기술」)은 “파산이 개인의 무능력에 따른 경제행위의 결과가 아니라, 신자유주의적 질서 재편의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고려된 통치기술의 한 요소로 작동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최철웅의 글(「일상의 금융화와 탈정치화의 정치」)은 금융의 지배를 받는 일상의 논리들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일상의 금융화는 대중들이 소비자신용과 채무를 통해 금융시장에 연루되었다는 경제적 현실만을 지시하는 데 그치지 않으며, 훨씬 더 광범위한 사회문화적 변형을 함축한다”고 주장하는 이 글은 결국 금융화의 논리가 개인의 일상을 탈정치화시키는 또 다른 정치적 논리임을 간파한다. 앞선 전주희의 글과 함께 읽으면 더욱 유익할 것이다.

이번 호의 근대성과 문화연구는 박정희 시대에 음악이 어떤 방식으로 대중들에게 매개되었는지를 흥미롭게 분석한 신현준의 글(「박정희 시대 대중음악의 매개와 정치적 규제」)을 실었다. ‘무대’, ‘음반’, ‘방송’이라는 세 가지 대중음악의 매개(mediation) 장치들은 당시 박정희 정권의 정치적 조절의 산물임을 이 글은 강조하고 있다.

인물비평은 요즘 19집 음반으로 싸이 못지않게 주목을 받고 있는 가왕 조용필을 다루었다. 서정민갑의 글(「조용필, 변방과 중심의 음악 전략」)은 가수 조용필의 과거와 현재를 연대기적으로 추적하면서 그의 음악에 내재한 혁신적 사운드와 보수적 사운드의 경합을 주목한다.

이번 해외 문화연구 동향은 인민의 생활 세계 속에서 섬세한 혁명을 발견하길 원하는 장롄훙(張練紅)의 글(「‘섬세한 혁명’: 생활세계의 재구성과 생활정치의 재가동」)은 중국의 비판적 지식인들의 현재적 고민을 담고 있다. 이 글의 마지막 문장이 그러한 고민을 압축하고 있다. “민중을 정말 행복하게 할 좋은 정치는 사실 보통사람들과 밀접하게 관련된 생활세계로부터 에너지를 끌어낼 수 있으면서 또한 조용히 지속되는 일상실천을 통해 사회의 진보적 소망과 행동을 촉진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실로 오랜만에 [문화/과학]에 기고한 문화평론가 이재현의 글(「중국 근현대문학사 쓰기의 새로움과 낡음」)은 목포대학교 임춘성 교수의 새 책인 [중국 근현대문학사 담론과 타자화](문학동네, 2013)에 대한 서평이다. 이 책을 “중국 근현대문학사 연구라는 정파와 문화연구라는 사파를 아우르면서 개최한 무림대회”라고 재치있게 정의한 이재현의 서평은 통상 주례사비평에 가깝거나 진지하지만 재미없는 글쓰기가 거의 전부인 기존의 서평의 기술과는 다른 문법과 다른 수사를 동원한다. 임춘성 교수가 대답할 게 아주 많은 서평이다. 기회가 되면 다음 호에 이재현의 서평에 화답하는 글을 써주었으면 한다.

[문화/과학]이 새로운 편집진을 구성해서 책을 만든 지 이제 1년이 지났다. 모두들 나름 열심히 책을 만들고 있지만 아직도 이론적 부족함을 많이 느낀다. 새로운 편집진들이 지금보다 더 열심히 [문화/과학]을 만들다보면 함께 공부하고 연대하고 지속할 수 있는 이론적, 실천적 지점들이 공유될 것이라고 믿는다. [문화/과학] 편집위원회는 앞으로 [문화/과학]의 장기지속을 위해 함께 머리를 맞대고 가능한 많은 대안들을 찾아나갈 것이다. 독자들의 아낌없는 성원과 질책을 바란다.

2013년 5월

편집인 이동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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