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과학 74호(2013여름)를 펴내며

노동은 부자들을 위해서는 기적을 생산하지만, 노동자를 위해서는 궁핍을 생산한다. 노동은 궁전을 생산하지만, 노동자를 위해서는 지옥을 생산한다. 노동은 미를 생산하지만 노동자를 위해서는 기형성을 생산한다. 노동은 기계를 통해 노동을 보충하지만, 그 반면에 일부의 노동자들을 야만적인 노동으로 몰고 가며, 또 다른 일부의 노동자들을 기계로 만든다. 노동은 정신을 생산하지만, 노동자를 위해서는 곧 백지상태를 생산한다.

―칼 맑스,  [경제학 철학 수고] 중에서

두산중공업, 한진중공업, 쌍용자동차, 기아자동차, 유성기업, 호남고속, 한국외국어대학교용인캠퍼스, 도시철도공사, 삼성전자…. 이명박 정부 이후 정리해고를 비롯해 가공할 만한 탄압이 자행되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노동자들이 근무하던 곳들이다. 대기업, 중소기업, 하청기업에 대학교, 운수회사, 공공기업, 그리고 일용직 근로현장에 이르기까지 지금 한국의 노동자들이 일하는 어느 곳이든, 어느 시간이든 노동과 노동자를 분리하는 지옥 같은 사건들이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다. 회사의 정리해고와 노조의 장기투쟁은 그 끝을 모른 채 반복되고 있고, 그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하나둘씩 죽어가고 있다. 거의 대부분 자살로 생을 마감한 24명의 쌍용자동차 노동자와 그 가족들은 우리 시대의 노동자 자살이 사회적 타살이라는 것을 가장 비극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가슴 아픈 사연들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정리해고와 해고철회 투쟁이라는 간단한 도식으로 설명될 수 없는, 우리가 사실상 거의 알지 못하는 그 경계에서 벌어진 신체적, 정신적 고통의 강도를 그대로 대변해 준다.

한국사회에서 자살은 비단 고통 받는 노동자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이의 문제이다. 그것은 사회 생태계의 건강함의 여부를 가늠하는 척도이다. 2012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1년 자살에 의한 사망자수는 총 15,906명에 이른다. 이 통계 수치는 1일 평균 43.6명이, 약 33분에 1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노동자 자살률, 청소년 자살률, 노인 자살률 모두 OECD 국가에서 1위를 기록했다. 이 객관적인 통계 자료는 한 사회의 중요한 지표라 할 수 있는 노동, 교육, 복지 모든 면에서 우리 사회가 개인을 보호하지 않고 벼랑으로 내몰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청소년과 노인의 자살이 심각한 수준으로 늘어나고, 노동자의 자살과 연예인의 자살도 끊이지 않고 지속되고 있다는 점은 우리 사회에서 자살이 생애주기 전체의 문제이며, 육체와 감정 노동 모두의 문제임을 짐작케 한다.

[문화/과학]이 74호의 특집 주제로 ‘자살과 죽음’을 선택한 것도 최근에 잇따르고 있는 노동자와 청소년 자살의 사회적 심각성에 대한 인식 때문이다. 지금 이 시대의 자살의 국면은 어찌 보면 1990년대 분신 정국과는 다른 맥락을 가지고 있고, 그 당시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삶의 문제를 안고 있다. 지금의 자살 국면은 자본가-노동자, 독재자-민중의 선명한 이분법을 표상하는 이념적 대립과 갈등의 수준을 넘어서 개인의 일상적 삶 안에 깊게 파고들어간 신자유주의의 극한의 통치술에 기인한다. 지금의 자살국면은 선택과 배제로 사회적 잉여인간들을 관리하는 인구통계학적 통치술의 장치가, 신용과 부채의 교묘한 기법으로 개인의 삶을 끝까지 절단내버리는 일상적 금융화의 장치가, 감정의 소통과 교환을 절단시킨 채, 그것의 회복을 상품으로 소비하라고 강요하는 소비자본의 장치가 심화시킨 것이다. 자살은 그런 점에서 그 고통과 갈등의 순간이 심화되고 있다는 것의 강력한 표현수단이며, 역으로 간절하게 살고 싶다는 역설적인 메타포인 것이다.

이번 74호 특집에 실린 5편의 원고들은 ‘자살과 죽음’의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상관성을 관찰, 분석하고 있다. 먼저 이 특집의 총론격인 정정훈의 글(「볼 필요가 없는 생명, 살 가치가 없는 생명―자살의 사회적 차원과 자본-권력의 동맹체」)은 자살의 문제를 생명-권력의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공공장소에서 자살의 의지표명으로 삶의 문제를 함께 고민해보려는 과거와 달리 혼자 조용하게 쓸쓸하게 죽음을 선택하는 지금의 자살 사태는 우리에게 생명과 권력의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정정훈은 푸코의 생명권력의 이론을 언급하면서 “우리 사회에서 빈번히 발생하는 자살의 문제와 오늘날 한국사회의 통치권력이 작동하는 방식 사이에는 중요한 연관이 있음”을 강조한다. 생명권력이 특정한 인구집단에서 죽음을 강요하는 방식, 이것이 한국사회 자살 국면의 핵심 요인이다. 그는 글의 말미에 “그들을 죽느니만 못한 삶을 살아가도록 몰고가는 자본과 국가의 동맹체, 죽음의 고통을 삶의 고통보다 더 적다고 느끼도록 몰아붙이는 자본과 국가의 동맹체야말로 우리 모두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가장 치명적인 사이코패스가 아닐까?”라는 말로 현재 자살의 국면이 극단으로 내몰린 잉여적 인간들에 대한 권력 관리 장치술의 폭력성을 역설한다.

자살의 사회이론적 관점을 정리한 김성일의 글(「그가 아닌 우리들의 죽음―자살의 사회적 의미와 원인」)과 한국사회의 자살의 유형을 체계적으로 분석한 박형민의 글(「소통방식으로서의 자살」)은 자살의 권리 혹은 그것의 타당성에 대한 이론적, 실제적 관점을 제시해 준다. 김성일은 현 시기 자살의 급증은 사회구조적 압력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극심한 사회양극화로 인한 빈곤 심화 및 살인적 무한 경쟁이 유발한 삶의 불안과 피로는 죽음보다 더한 비참한 현실을 만들고” 있고, “열정을 쏟을 미래에의 희망이 불투명해지고 경제적 추락에의 불안이 만성화된 상황에서, 자살의 선택은 보다 만족스런 삶을 위한 최선의 선택은 아니었을까?” 하고 반문할 수 있다. 그는 “정치적 측면에서의 치안정치, 경제적 측면에서의 무한경쟁, 사회적 측면에서의 성과주의”라는 죽음의 트라이앵글이 개인을 자살로 내모는 실체라는 점을 강조한다.

자살을 소통의 방식으로 해석하고자 하는 박형민의 글은 먼저 “실업률이 높아지고 사회적 양극화가 진행되어 국민의 삶의 질이 저하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자살이 급증하고 있는 사회적인 배경”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유서의 분석을 통해 소통적 자살을 8가지 유형을 분류하면서 그가 언급하고자 하는 것은 “자살은 실패와 좌절 속에서 자신의 삶을 전적으로 포기해버리는 회피적인 행위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향한 의도를 가진 적극적인 행위”라는 점이다.

2000년대 이후 노동자의 죽음을 분석하면서 열사의 정치학에 대한 인식론적 전환을 시도하는 천정환의 글(「열사의 정치학과 그 전환: 2000년대 노동자의 죽음을 중심으로」)은 이번 특집의 주제인 ‘자살과 죽음’이라는 두 개념의 인과론이 어떻게 역설적으로 전도되고 있는가를 가장 잘 보여준다. 다른 4개의 특집 글의 분량과 거의 맞먹는 엄청난 분량으로 노동자 죽음의 사례들을 아주 꼼꼼하게 분석한 이 글의 목적은 사회적 타살로 정의할 수 있는 노동자들의 자살과 그 죽음을 표상하는 ‘열사’라는 의미에 대한 자명한 인식을 내파시키는 것이다. “1970년대에 배태되고 1980년대 민주노조운동 과정에서 본격화”된 노동자 열사의 정치학은 2000년대 들어서는 그 의미화가 다르게 구성되었음을 주목한다. 노동자들의 죽음을 ‘열사’의 ‘숭고미’로 의미화하기 이전에 그 자체가 “심각한 위기에 처한 노동운동의 상황을 반영”한다는 점을 직시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박근혜 정권 출범 이후에도 이어지고 있는 노동자의 죽음은 집합적 연대와 조직운동이 어려워진 절망 상태와 노동정치와 진보정치의 전반적인 하강적 국면 전환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른바 열사의 정치학이 불가능해진 이 시대에 노동자의 죽음은 우리에게 무엇을 생각하게 할까? 열사의 정치학의 불가능성과 그것의 불가피함의 경계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시급하게 노동운동 말살을 저지하고 노동자-다중의 주체 재구성에 나서야” 하는 것밖에 없음을 이 글은 강조하고 있다.

청소년과 연예인의 자살을 통해서 우리 사회가 개인들을 얼마나 잔인하게 죽음으로 내모는가를 분석한 이동연의 글(「자살 권하는 사회: 청소년과 연예인 자살의 의미계열」)은 서로 다른 두 주체들의 자살의 맥락이 놀랍게도 유사한 점을 발견하면서 이 두 주체들의 자살에 관통하는 행복과 불행의 양가성에 주목하고자 한다. 청소년과 연예인의 자살을 각각 ‘사회적 타살’과 ‘사회적 질병’으로 정의하면서 이 글은 자살할 권리와 자살당할 운명 사이에 놓여 있는 주체들의 상황을 적극적으로 해석할 것을 요청한다. “청소년과 연예인의 자살은 인권의 마지막 선택과 결정으로서의 자살의 고유성과 사회적 존재로서 개인이 당해야 하는 수많은 모순들의 희생자로서의 운명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동시대 삶의 비극적 알레고리”인 것이다.

이번 호의 기획은 다문화를 주제로 다루었다. 이용재의 글(「‘다문화’의 이론적 재구성을 위한 소고」)과 권금상의 글(「낯선 결혼이주여성을 다루는 익숙한 시선, KBS <러브 인 아시아>」)은 다문화의 이론적 재구성의 필요성과 다문화의 미디어 재현에 대한 내밀한 분석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이용재는 먼저 다문화주의의 개념에 대한 사회적 합의조차 없이 현재까지 진행된 다문화논의가 오히려 다문화 논의의 초점을 흐리는 결과를 가져왔고, 현재까지도 ‘다문화’가 무엇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을 지적한다. 다문화의 정의에 대한 이론적 불편함은 여기에서 야기한다. 따라서 이 글은 다문화에 대한 그간의 이론적 논의를 정리하면서 외부로부터의 낙인찍기가 아니라 내부적 드러남으로서의 다문화에 대한 정의를 주장한다.

KBS의 대표적인 다문화 프로그램인 <러브 인 아시아>를 분석한 권금상의 글은 “대중매체가 결혼이주여성을 재현함에 있어 ‘한국적 이주여성상’이라는 일정한 상으로 귀결되는 결과는 이들에 대한 이미지를 미리 정하고 일정한 틀 속에 맞추어 이주여성들의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음을 비판하고 있다.

[문화/과학] 제4회 북클럽은 천정환 교수와 권보드래 교수가 함께 쓴 [1960년을 묻다](천년의상상, 2012)를 선정하였다.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의 김항 교수와 서울신문사 조태성 기자가 패널로 참석하여 열띤 토론을 벌인 북클럽은 1960년대 시대사를 규정하는 4.19 혁명과 5.16 군사쿠데타의 반동의 사건의 의미를 주목하면서 그 혁명과 반동의 대립적 시공간에 살았던 주체들의 의미를 주목하였다. 특히 박근혜 정부의 출범으로 현재의 시간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 1960년대는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가 궁금하다면 독자들의 일독을 권한다.

문화현실분석 란에는 세 편의 원고를 실었다. 먼저 최근 한국 영화 창작 스타일의 한 축을 형성한 사이코패스 영화들을 분석한 강정석의 글(「2000년대 후반 한국영화의 잔혹성에 대한 윤리적 비판」)은 이들 영화에서 발견되는 영화감독의 전제적 위치와 폭력의 스펙터클로서의 재현장치들은 영화적 윤리에서 심각한 문제를 야기시킨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하에서 파산이 어떻게 개인의 영역으로 확장되는가를 분석하는 전주희의 글(「파산의 기술」)은 “파산이 개인의 무능력에 따른 경제행위의 결과가 아니라, 신자유주의적 질서 재편의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고려된 통치기술의 한 요소로 작동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최철웅의 글(「일상의 금융화와 탈정치화의 정치」)은 금융의 지배를 받는 일상의 논리들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일상의 금융화는 대중들이 소비자신용과 채무를 통해 금융시장에 연루되었다는 경제적 현실만을 지시하는 데 그치지 않으며, 훨씬 더 광범위한 사회문화적 변형을 함축한다”고 주장하는 이 글은 결국 금융화의 논리가 개인의 일상을 탈정치화시키는 또 다른 정치적 논리임을 간파한다. 앞선 전주희의 글과 함께 읽으면 더욱 유익할 것이다.

이번 호의 근대성과 문화연구는 박정희 시대에 음악이 어떤 방식으로 대중들에게 매개되었는지를 흥미롭게 분석한 신현준의 글(「박정희 시대 대중음악의 매개와 정치적 규제」)을 실었다. ‘무대’, ‘음반’, ‘방송’이라는 세 가지 대중음악의 매개(mediation) 장치들은 당시 박정희 정권의 정치적 조절의 산물임을 이 글은 강조하고 있다.

인물비평은 요즘 19집 음반으로 싸이 못지않게 주목을 받고 있는 가왕 조용필을 다루었다. 서정민갑의 글(「조용필, 변방과 중심의 음악 전략」)은 가수 조용필의 과거와 현재를 연대기적으로 추적하면서 그의 음악에 내재한 혁신적 사운드와 보수적 사운드의 경합을 주목한다.

이번 해외 문화연구 동향은 인민의 생활 세계 속에서 섬세한 혁명을 발견하길 원하는 장롄훙(張練紅)의 글(「‘섬세한 혁명’: 생활세계의 재구성과 생활정치의 재가동」)은 중국의 비판적 지식인들의 현재적 고민을 담고 있다. 이 글의 마지막 문장이 그러한 고민을 압축하고 있다. “민중을 정말 행복하게 할 좋은 정치는 사실 보통사람들과 밀접하게 관련된 생활세계로부터 에너지를 끌어낼 수 있으면서 또한 조용히 지속되는 일상실천을 통해 사회의 진보적 소망과 행동을 촉진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실로 오랜만에 [문화/과학]에 기고한 문화평론가 이재현의 글(「중국 근현대문학사 쓰기의 새로움과 낡음」)은 목포대학교 임춘성 교수의 새 책인 [중국 근현대문학사 담론과 타자화](문학동네, 2013)에 대한 서평이다. 이 책을 “중국 근현대문학사 연구라는 정파와 문화연구라는 사파를 아우르면서 개최한 무림대회”라고 재치있게 정의한 이재현의 서평은 통상 주례사비평에 가깝거나 진지하지만 재미없는 글쓰기가 거의 전부인 기존의 서평의 기술과는 다른 문법과 다른 수사를 동원한다. 임춘성 교수가 대답할 게 아주 많은 서평이다. 기회가 되면 다음 호에 이재현의 서평에 화답하는 글을 써주었으면 한다.

[문화/과학]이 새로운 편집진을 구성해서 책을 만든 지 이제 1년이 지났다. 모두들 나름 열심히 책을 만들고 있지만 아직도 이론적 부족함을 많이 느낀다. 새로운 편집진들이 지금보다 더 열심히 [문화/과학]을 만들다보면 함께 공부하고 연대하고 지속할 수 있는 이론적, 실천적 지점들이 공유될 것이라고 믿는다. [문화/과학] 편집위원회는 앞으로 [문화/과학]의 장기지속을 위해 함께 머리를 맞대고 가능한 많은 대안들을 찾아나갈 것이다. 독자들의 아낌없는 성원과 질책을 바란다.

2013년 5월

편집인 이동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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