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1호][칼럼] 한국 대중문화 속에 그려지는 외국인들의 어제와 오늘(이윤종)

한국 대중문화 속에 그려지는 외국인들의 어제와 오늘

 

이윤종

 

한반도는 고대부터 크고 작은 수많은 외세 침탈의 역사를 겪어왔다. 그러나 조선 시대 후기까지 한반도에 있어 “외국”이란 언제나 중국 아니면 일본일 수밖에 없었다. 이웃나라인 중국이 아시아 대륙에서 물리적, 심리적으로 차지하는 크기가 워낙 큰 데다, 한반도가 서구의 시각에서 소위 “극동(Far East)”이라 불리는 동아시아의 맨 끝에 위치한 것도 모자라 북, 남미 대륙 혹은 유럽과의 연결 통로인 태평양마저도 러시아부터 동남아 지역까지 이르는 기다란 일본 열도에 가로막혀 있는, 고립된 지리적, 혹은 지정학적 위치 때문이다. 게다가 남북 분단의 상태까지 반백년 이상 지속되면서, 일제 강점기에 한국 독립 운동의 근거지였던 러시아의 연해주와 지금은 중국 연변 지역인 간도와의 접근성마저도 북에 가로막혀 차단되면서, 남한은 더더욱 외국 혹은 외국인과의 교류가 드문 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 이래 전략적으로 고도성장한 경제력을 기반으로 김영삼 정부의 국가정책적인 “세계화” 추진 이후, 대한민국도 서서히 전지구화(globalization)의 물결 속에 편입하면서 서울은 이제 제법 다인종, 다문화가 자연스러운 코스모폴리스(cosmopolis)가 되었다.이러한 역사적 흐름 속에서 이 글은 6.25 전쟁 이후부터 21세기에 이르기까지 급변해온 한국 사회의 문화적, 인종적 인식이 한국의 대중문화에 어떻게 반영되는지를 중심으로 그 속에서 그려지거나 비쳐지는 외국인에 대한 시선의 변화를 짚어 보고자 한다.

 

우선 한국 대중문화가 본격적인 꽃을 피우기 시작한 것은 6.25 사변 이후인 1950년대부터라는 전제 하에서 이 글을 시작하려고 한다. 물론 일제 강점기에도 만화, 영화, 대중음악, 잡지 등의 다양한 매체를 통해 대중문화가 존재하고 사랑받았고 이를 중점적으로 파고드는 연구자들도 있다. 그러나 영화 전문가로서 필자가 영화 분야에 관해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일제 시대의 영화 중 필름이 현재까지 남아있는 것은 몇 편 없고, 현존하거나 복원한 영화들 속의 외국인도 시대적 특성 상 일본인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나운규 등의 영화인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일제 치하 초기의 민족주의적 영화 제작 풍토 하에서 일본인은 대부분 부정적으로 묘사되었지만, 메타 영화라고 할 수 있는1941년 작 <반도의 봄 (이병일)>의 영화 속 영화인 조선 영화 <성춘향>의 일본인 제작자처럼 다른 조선인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보통의 중립적인 인물로서 표현되기도 했다.

 

해방 전 한반도의 외국인이 주로 일본인일 수 밖 에 없었다면, 해방 후 6.25 전쟁을 전후한 냉전 시대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 대한민국 영토 내에서 한국인들이 접할 수 있었던 외국인이란 주로 미군 부대 주변의 미국인들과 일본인 관광객이나 비즈니스맨이 거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특히 냉전 시대에 미국 혹은 미국인은 한국이 생각할 수 있는 서구와 서양인의 모든 것을 상징하는 제유적인 존재였다. 이웃나라이긴 하지만 당시 동구권의 중심국들로서 각각 중공이라 불리던 중국이나, 소련이라 불리던 러시아와의 교류가 남한 사회에서 미국이라는 정치, 경제적 초강대국이자 거대 서방 세계 우방국에 의해 완전히 차단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시 한국의 영화나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외국인의 절대 다수 또한 미군이었고 드물게 일본인이 등장하곤 했다. 특히 미군들은 다수의 한국 영화 속에서 “양공주”라 불리던 미군 기지촌 주변의 한국인 직업여성들의 고객 혹은 연인으로 자주 등장하곤 했다. 그들은 가끔은 진정한 사랑에 빠져 그녀들을 가난하고 비참한 현실에서 구원해 “아름다운 나라”인 미국으로 데리고 가는 남성 구세주의 역할도 맡았지만, 대부분 그녀들을 홀대하고 학대하거나 무책임하게 임신시킨 채 홀로 미국으로 돌아가 버리는 매정한 남성들로 그려졌다. <지옥화 (1957, 신상옥)>, <오발탄 (1961, 유현목)>, <돌아오지 않는 해병 (1963, 이만희)>, <육체의 고백 (1964, 조긍하)> 등의 한국영화의 수작으로 꼽히는 작품들 속에서 미군들은 주로 후자로 묘사되었다.

 

미군이나 미국인에 대한 한국인의 양가적인 인식, 즉 정치, 경제적 구원자/원조자인 동시에 정신적, 문화적 착취자/수탈자라는 인식은 7, 80년대를 거쳐 90년대까지 계속 되었다. 특히 1980년대에는 미국이 1980년 광주 사태를 방관했다는 거센 비판과 함께 영화 속에도 반미주의적 흐름이 강하게 드러나, 굳이 미군이 아니더라도 한국이나 미국에 있는 일반 미국인 남성들도 한국 여성을 성적으로 유린함으로써 정신적인 타격을 주는 민족적 위협을 상징하는 서사적 장치로 자주 동원되었다. <무릎과 무릎 사이 (1984, 이장호)>, <깊고 푸른 밤 (1985, 배창호)>, <여왕벌 (1986, 이원세)>, <LA 용팔이 (1986, 설태호)>, <아메리카 아메리카 (1988, 장길수)>,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1990, 장길수)> 등의 영화들이 그러한 서사 장치를 잘 활용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보다 조금 더 나아가, 스웨덴 입양아인 수잔 브링크의 실화가 텔레비전 프로그램 <인간극장>을 통해 소개된 후 영화화된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 (1991, 장길수)>에서는 스웨덴 백인 남성들이 미국인을 대신한 서사 장치로서 (외국에서 성장한) 한국 여성에게 정신적, 육체적 상처를 주는 외국 남성으로 활용되었다.

 

미군이나 백인 남성에 대한 보다 복합적인 시선은 2000년대 들어 등장한다. 김기덕 감독은 <수취인 불명 (2001)>과 <해안선 (2002)>등의 영화에서 단순한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도로서만 미국/미국인과 한국/한국인의 관계를 설정하지 않고 미군 병사나 그 한국인 혼혈 후예에 대한 복합적이고 다각도적인 접근을 꾀했다. 봉준호 감독도 그의 천만 관객 흥행작 <괴물 (2006)>에서 한강에 유독 물질을 방류해 의도치 않게 대형 유전자 변이 괴물을 제조하는 도덕적 결함을 지닌 미군 장교 뿐 아니라 그 괴물에 맞서 싸우는 미군 병사를 이후에 병치시킴으로써 미국과 미국인/미군에 대한 한국인의 복합적인 심리 상태를 표출했다.

 

1980년대 후반까지 미국인/미군들로 대표되던 외국인은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정부의 세계화 정책과 함께 한국의 대중문화 속에서 보다 다양하게 세분화되기 시작한다.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프랑스 출신 방송인 이다 도시와 최근에 한국관광공사 사장까지 역임했던 독일 출신 사업가이자 방송인인 이한우/이참은 1990년대 초중반부터 다양한 텔레비전 오락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유명세를 탔고 귀화 한국인으로서의 정착 기반을 닦을 수 있었다. 특히 이참은1994년 KBS 드라마 <딸 부잣집>에서 한국 문화를 사랑하는 외국인 사위로 등장해 한국 드라마 속 외국인 배우의 포문을 열었고 이후로도 SBS의 <천국의 계단 (2003)>, <러브 스토리 인 하버드(2004)> 및 MBC의 <제 5 공화국 (2005)> 등의 드라마에도 꾸준히 출연해 한국에 거주하는 다수의 유럽 혹은 미주 출신 (재연) 배우 지망생들에게 꿈을 불어넣어 주는 역할을 톡톡히 하기도 했다. 2000년대 이후로 이러한 유럽계 외국인들의 방송 출연 빈도는 매우 높아져서 KBS의 예능 프로인<잘 먹고 잘 사는 법 (2002- )>의 “팔도유랑기”라는 코너에 출연했던 벨기에 출신의 줄리안, 프랑스 출신의 티에리, 한국계 프랑스 입양아 출신인 필립을 비롯해 MBC 드라마 <탐나는 도다 (2009)>에 주연급으로 출연한 프랑스 출신 황찬빈 (피에르 데포르트) 등도 다양한 한국인 시청자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

 

2000년대 이후 다문화 가정의 증가와 함께 시행된 한국 정부의 다문화 정책은 백인에 국한되었던 한국 대중문화 속 외국인의 인종적, 문화적 스펙트럼을 점차 넓히기 시작했다. 2000년대 후반 KBS의 예능 프로그램 <미녀들의 수다>는 유럽과 미주 뿐만 아니라 아시아 각국의 한국어가 능숙한 미녀들을 게스트로 섭외해 다문화주의에 대한 다양한 토크를 유도하며 유익한 인기 프로그램으로 자리를 굳히기도 했다. 물론 포맷의 식상함은 <미녀들의 수다>를 장수 프로그램으로 안착시키지는 못 했지만, 인기 프로그램은 아니더라도 다문화 가정을 재조명하려는 노력으로 KBS에서 10년 가까이 지속적으로 방송하는 <러브 인 아시아> 등의 프로그램과 함께 한국 내 비백인 외국인들에 대한 편견을 어느 정도는 불식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었다. 또한 베트남전에 참전한 한국인 아버지와 베트남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라이따이한 여성이 한국으로 시집와 행복을 찾는다는 소재로 성공한 SBS 드라마 <황금신부 (2007-8)> 이후로 공중파 일일 드라마들은 점차 자연스럽게 한국에 거주하는 동남 아시아계 신부들을 긍정적으로 묘사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들이 혹은 이들의 자손들이 한국의 인종주의에 의해 고통 받는 불행한 일상을 영화 속에서는 보다 현실적으로 그리기도 하는데, <의형제 (2009, 장훈)>, <완득이 (2011, 이한)> 등의 50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들이 특히 그러했다.

 

2010년대 중반을 향해 달려가는 현재, 영화나 TV 드라마뿐 아니라 가요계에서도 외국인들은 이제 심심치 않게 보인다. KBS의 최장수 프로그램 <전국노래자랑>을 통해 스타가 된 방글라데시 출신 가수 방대한은 영화나 드라마에도 자주 출연해 한국인들에게 익숙한 연예인이 되었다. 특히 한류를 의식해 중국과 동남아 시장을 겨냥한 한국 아이돌 그룹 속에는 닉쿤 (2PM), 빅토리아 (F(X)), 페이 (미쓰에이) 등의 한국인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은 아시아계 스타들이 포진해 있다. 물론 닉쿤은 음주 운전 사고로 물의를 빚은 후 예전에 비해 한국 내에서의 인기가 상당히 주춤하고, 한 때 상당한 인기를 끌었던 슈퍼주니어의 한경도 그룹에서 탈퇴하는 소동이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물론 이들이 한국에서 인기를 끌었던 외국인 가수의 시초는 아니다. 1999년 데뷔한 남성 트리오 Y2K의 일본인 형제도 한국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었었다. 또한 2012년 슈퍼스타 K를 통해 혜성같이 등장한 락 그룹 버스커 버스커의 드러머는 아시아계가 아닌 백인 미국인인 브래드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한국의 대중문화 속 외국인들은 이제 미국과 일본, 중국이라는 과거의 제한적이었던 국적의 고리를 풀고 다양한 나라 출신들로 확대되었다. MBC 군대 체험 예능 프로그램인 <진짜 사나이>를 통해 스타 개그맨으로 자리를 굳힌 샘 헤밍턴이 호주 출신인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아직도 무언가 석연치 않은 느낌이 있다. 2014년 현재 다양한 분야의 한국 대중문화 속에서 백인 뿐 만 아니라 아시아계나 아프리카 출신 외국인들도 상당히 긍정적으로 그려지기 시작했지만, 한국인들의 비백인 외국인에 대한 편견이 여전하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기 때문일 것이다. 단일 민족주의라는 환상 하에서 오랫동안 타인종이나 외국인에 대한 공포와 경멸을 품고 살아왔기 때문이기도 하고, 미국의 정치, 경제적 지원 하의 한국 현대사 속에서 백인 미국인 이외의 외국인에 대해 양가적이라고 해도 어느 정도 우호적인 감정을 품을 틈도 없이 한국인들이 바삐 살아와서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 보다 열린 시선과 자세로 한국에 방문하거나 거주하는 다양한 인종과 국적의 외국인들을 진정으로 포용할 시기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외국에 나가 차별과 편견의 시선을 감내하고 싶지 않다면, 내가 먼저 외국인에 대한 그러한 시선을 폐기하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와 그들을 구분 짓고 차별의 차이를 만드는 시선부터 먼저 거두는 연습이 필요할 것이다.

 

월간 <미술>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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