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문화과학 84호 특집주제인 <예술노동>이 노동당이 주관하는 레드어워즈 2015년 비평부문을 수상했습니다. 편집위원과 필자, 그리고 응원해주신 독자님께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더 좋은 진보적 기획과 글로 보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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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지역의 청년문화” 국제 학술 토론회 후기
2015. 11. 29(일)
강신규
2015년 10월 30일(금)부터 31일(토)까지 양일 간 중국 상하이대학교에서 “동아시아 지역의 청년문화” 국제 학술 토론회가 열렸다. 이번 토론회는 상하이대학교 085 공정 “뉴미디어와 청년문화” 공동 연구 플랫폼, 상하이대학교 상하이영화학원, 와세다대학교, 그리고 계간 <문화/과학>이 공동 주최했다. 세부 주제는 “뉴미디어와 청년문화”, 그리고 “아시아 서브컬처”의 두 가지였다. 동아시아의 청년들이 뉴미디어 및 서브컬처와 어떻게 관계 맺고 있는지 살피고, 나아가 동아시아 문화연구 네트워크를 상상하는 것이 토론회 개최의 주된 목적이었다.
첫 날, 제1세션인 “뉴미디어와 청년문화”에서 총 10팀(중국 4팀, 일본 2팀, 한국 4팀)의 학술 발표가 이뤄졌다. 임춘성 <문화/과학> 자문위원이 “동아시아에서 문화 횡단과 문화 번역”, 이광석 편집위원이 “청년 프리카리아트의 모바일 노동 문화: 서울의 경우”, 김일림 편집위원이 “세운상가와 아키하바라의 공간학”, 강신규 편집위원이 “텔레비전 리얼 버라이어티 쇼의 게임화”를 발표했고, 정정훈, 이윤종 편집위원이 중국 발표자들에 대한 토론자로 참여했다. 오전 8시 30분부터 저녁 6시가 넘는 시간까지 점심시간 30분을 제외하고는 쉬지 않고 일정이 진행됐음에도, 한·중·일 문화연구자들의 치열한 토론은 멈출 줄 몰랐다. 열정적인 발표와 적극적인 질문, 논평이 함께 이뤄져, 각국에서 유사하면서도 다르게 펼쳐지고 있는 뉴미디어 청년 문화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도모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둘째 날, 제2세션에서는 “아시아의 서브컬처”를 주제로 총 4팀(중국 2팀, 한국 2팀)이 발표를 했다. 이동연 편집인이 “친구, 젠트리피케이션, 라운드테이블: ‘서브컬처-성난젊음’ 전시를 통한 홍익대학교 독립문화 지형도”, 손희정 편집위원이 “‘부녀자’ 문화정치학: 신자유주의, 젠더, 한국영화”를 발표했고, 중국 발표자들에 대한 토론자로 정원옥, 문강형준 편집위원이 나섰다. 전날의 열기가 그대로 이어졌다. 참여인원은 전날만큼 많지 않았음에도 전날보다 더 날선 질문과 논평이 오감에 따라, 폭넓게 동아시아 서브컬처가 처해 있는 상황을 공유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자리가 될 수 있었다.
이렇듯 수준 높은 토론회가 가능했던 것은 철저한 사전기획 덕분이었다. 토론회가 열리기 약 3개월 전부터 발표자와 발표주제가 확정되고, 원고 작성을 위한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다. 완성된 원고에 대해서는 상호번역(한국어↔중국어)이 이뤄졌다. 토론회에서는 완벽하게 2개 언어로 번역된 발표문이 배포됐다. 각국의 언어로 발표와 토론이 이뤄지고, 통역을 통해 토론내용을 모든 참가자가 공유했다. 이 모든 일은 임춘성 자문위원의 따뜻한 배려와 깊은 관심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는 사전기획 단계에서 중국과 한국 간 커뮤니케이션을 전담했고, 토론회 현장에서 인사말, 발표, 사회의 1인 3역을 소화했으며, 이후 한국에 도착해서는 후속작업을 위한 진행까지 하고 있다. 그 밖에 숙소에서의 커뮤니케이션, 세미나 이후 현지 안내 등 편집위원들이 체크인하는 순간부터 체크아웃하는 순간까지 항상 동행해주었다. 지면을 빌려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토론회 이후 임춘성 자문위원, 목포대학교의 홍석준 교수, 오장근 교수와 함께 보낸 즐거운 시간 또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매일 저녁마다 한국에서는 접하기 힘든 중국술과 음식들을 다양하게 접하는 것은 너무나 즐거운 일이었다. 그들은 피곤한 일정에도 단 한 번 힘든 내색 않고 편집위원들에게 웃음을 주었다. 진행하고 있는 연구에 대해 따뜻한 조언을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덕분에 상하이에서 행복한 경험을 했고, 토론회장 안과 밖에서 정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상하이에서의 3박 4일이 뜻 깊게 빛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그들 덕분이다.
마지막으로 <문화/과학> 편집위원들을 초대해 아낌없는 환대로 맞아준 상하이대학교 인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모쪼록 이번 국제 학술 토론회가 단발적인 이벤트에 그치지 않고, 보다 확장된 주제를 이야기하는 자리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덧글 1. 국제 학술 토론회 내용이 중국 <탐색과 쟁명>이라는 학술간행물에 요약돼 실렸다. 국제 토론회에서 발표된 글들은 이후 중국 내 저널 게재 및 단행본 작업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http://mp.weixin.qq.com/s?__biz=MzA4MjcxMDEwNQ%3D%3D&mid=400278073&idx=2&sn=a231506a8bd6957608444459db011a15&scene=2&srcid=11068U5hdKmnIe603frEGdsZ&from=timeline&isappinstalled=0#rd)
덧글 2. 국제 토론회 세부 일정표를 별첨했다.
○ 주제: 동아시아 지역의 청년 문화
○ 일정: 2015년 10월 30일(금)~31일(토)
○ 장소: 상하이대학교 출판빌딩 225 회의실
○ 주최: 상하이대학교 085 공정 “뉴미디어와 청년문화” 공동 연구 플랫폼, 상하이대학교 상하이영화학원, 한국 계간 <문화/과학>, 와세다대학교 중문과
○ 후원: <상하이대학교 학보>, <영상문화>, <신작영화>
○ 지원: 상하이고교 085 공정 “도시사회발전과 지혜도시건설”, 중국 고등교육 영상학회 청년 연구소
제1세션 뉴미디어와 청년문화2015년 10월 30일(금) | ||||
시간 | 발표 주제 | 발표자 | 토론자 | 사회자 |
09:00~09:40 | 동아시아 현대문화의 전환과 일본 당대 청년 문화 | 센노 타쿠마사(와세다대학교) | 마오시안(중국문예평론가협회) | 둥리민(상하이대학교) |
09:40~10:20 | 청년 프리카리아트의 모바일 노동 문화: 서울의 경우 | 이광석(서울과학기술대학교) | 리톈둬(대만실천대학교) | |
10:00~11:00 | “신노동자”가 “드림쇼”를 만났을 때: 문화 연구의 대중 매체 분석 | 궈춘린(상하이대학교) | 정정훈(한국예술종합학교) | |
11:00~11:40 | 동아시아에서 문화 횡단과 문화 번역 | 임춘성(목포대학교) | 녜웨이(상하이대학교) | |
11:40~12:00 | 교류 및 토론 | |||
12:00 | 휴식, 단체사진 촬영 | |||
12:00~13:00 | 오찬 | |||
13:00~13:40 | 실시간 댓글 제작과 시청의 영향 | 양쥔샤오(와세다대학교) | 순지아산(중국예술연구원) | 센노 타쿠마사(와세다대학교) |
13:40~14:20 | 중국 자막조와 또 다른 청년 문화 | 장빈(상하이대학교) | 이동연(한국예술종합학교) | |
14:20~15:00 | 세운상가와 아키하바라의 공간학 | 김일림(한국예술종합학교) | 리샤오디(상하이대학교 학보) | |
15:00~15:20 | 교류 및 토론 | |||
15:20~15:30 | 휴식 | |||
15:30~16:10 | 텔레비전 리얼 버라이어티 쇼의 게임화: SBS <런닝맨>의 게임적 리얼리즘과 데이터베이스 수용 | 강신규(서강대학교) | 샤오링(문회보) | 임춘성(한국목포대학교) |
16:10~16:50 | “실종” 그러나 어디에나 있는: 신세기 이후 중국 청년 문화와 청년 영화 연구 | 자오이(상하이사범대학교) | 이윤종(동아대학교) | |
16:50~17:30 | 중국 영화에서의 “사마터” 현상 | 녜웨이(상하이대학교) | 홍석준(목포대학교) | |
17:30~17:50 | 교류 및 토론 | |||
18:00~ | 휴식, 만찬 |
제2세션 아시아의 서브컬처 연구2015년 10월 31일(토) | ||||
시간 | 발표 주제 | 발표자 | 토론자 | 사회자 |
09:00~09:40 | 친구, 젠트리피케이션, 라운드테이블: “서브컬처-성난 젊음” 전시 리뷰를 통한 홍익대학교 독립문화 지형도 | 이동연(한국예술종합학교) | 천샤오다(상하이대학교) | 홍석준(목표대학교) |
09:40~10:20 | 농촌 문화 교육과 향촌 문화 네트워크 | 주산제(상하이대학교) | 정원옥(중앙대학교) | |
10:20~10:40 | 교류 및 토론 | |||
10:40~11:20 | “부녀자” 문화정치학: 신자유주의, 젠더, 한국영화 | 손희정(중앙대학교) | 자오정양(중국영화예술연구중심) | 녜웨이(상해대학교) |
11:20~12:00 | 성별의 “정치화”: “시민사회”로 나아가는가? | 둥리민(상하이대학교) | 문형준(중앙대학교) | |
12:00~12:20 | 교류 및 토론 | |||
12:20~13:00 | 휴식, 오찬 |
한겨레 기고문
[야 한국사회] 시위와 ‘국제’ 세습 권력
권명아(동아대 국문과 교수)
11월14일 ‘민중 총궐기’ 이후, 시민들은 시위를 둘러싼 공방전과 과잉 진압으로 인한 치명적 인명 피해 사건을 접하며 ‘과거의 망령’과 다시 대면하고 있다. 오랜 군사독재의 역사 속에서 시위는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한 대중적 저항의 한 형식이었다. 한국의 근현대사는 시위의 역사 없이 기술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가까운 일본과 비교해 봐도 한국 사회에서 시위는 익숙한 ‘반복적 현상’으로 치부되는 경향이 있다. 민중 총궐기 이후의 상황을 보아도 시위를 평가하는 해석 방식은 다소 반복적이다. 시위가 끝난 이후 이에 대해 의미 부여를 하고, 시위에서 제안된 쟁점을 확산해나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해석 방식을 만들어야 한다.
대형 미디어를 매개로 이어지던 ‘폭력 시위’ 매도나 원색적인 이념 몰이는 이제 테러라는 쟁점까지 이어 나가고 있다. 이런 반지성적 선전에 대항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해석이라는 지적 작업이다. 시위란 하나의 의사 표현 행위이기에 해석과 의미 부여를 통해, 단지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 계속 재생산되는 의미 작용이 된다. 일본의 역사학자인 오구마 에이지는 최근 일본 사회에서 발생한 시위를 기록하고 재구성한 <수상관저 앞에서>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였다. 영화 작업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역사학자이지만 역사 자료를 기록하고 해석하듯이 시위를 또 다른 역사 자료로서 기록하고 해석했다. 이런 해석을 통해 시위는 익숙한 기정사실이 아니라, 읽고 해석하고 소통하는 상호작용이 된다. 이 상호작용이야말로 민주주의적 과정 그 자체이다.
국제적 테러의 위협을 국내의 치안 강화를 위해 활용하는 것은 어쩌면 국제적 현상이다. 그러나 ‘민중 총궐기’라는 조금은 오래된 이름의 이 시위가 국제적 맥락에 이어지는 것은 전혀 다른 지점이다. ‘한국의 시위와 아시아에서의 최근 몇 년간의 저항’이라는 영문 비평에서 대만(타이완)의 젊은 문화연구자인 추치신은 한국의 민중 총궐기를 홍콩, 대만, 일본과 비교하고, 공통성을 추출한다. 추치신은 먼저 홍콩의 ‘우산혁명’과 대만에서 2014년 일어난 시위가 모두 “교과서 개정에 대한 항의”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또 한국, 대만, 홍콩, 일본에서 ‘과거를 왜곡하는 교과서 개정’이 동시적으로 몇 년에 걸쳐 나타난 것은 이 지역에서 시차를 두고 ‘오래된 세습 정치권력이 재등장’하게 된 결과라고 분석한다.
약간의 시차를 두고 대만, 한국, 일본은 모두 ‘오래된 세습 정치권력’이 다시 돌아와서, 이 세습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한 ‘역사 바꾸기’ 작업을 추진하는 유사한 길을 걸어가고 있다. 그런 점에서 서로 달라 보이는 대만, 홍콩, 일본, 한국에서의 시위는 ‘오래된 세습 권력의 재등장’과 이로 인한 아시아 지역 민주주의의 위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런 해석을 통해 볼 때 결코 ‘민중 총궐기’는 익숙한 반복으로 치부될 수 없다. 오히려 이런 익숙함의 감각이 해석을 위한 자리를 가려버린다. 국제적 맥락에서 민중 총궐기는 테러보다는 아시아 지역에서 ‘오래된 세습 정치권력이 재등장’한 신냉전 질서와 밀접히 연루되어 있다.
탈냉전도 민주주의도 채 이룩하지 못하고, 다시금 미국과 중국 중심의 신냉전 질서로 급속하게 재편되는 세계 체제 속에서 아시아 지역의 민주주의는 후퇴를 거듭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후퇴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대중의 의문과 저항이 시차를 두고 홍콩, 대만, 일본, 한국에서 차례차례 대규모 시위로 나타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민중 총궐기야말로 국제적 문제이다. 시위는 끝났지만, 해석은 이제 시작되어야 한다.
인권오름 기고문
’4.16 인권선언’, 세월호라는 사건을 다시 사건으로 만드는 과정
정정훈(’4.16 인권선언’ 제정위원)
세월호,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건
사건이란 평온하게 흐르던 시간의 연속성에 어떤 균열을 만들어낸다. 동일한 것이 반복되는 시간의 연속적 흐름 안에서도 많은 일이 일어나지만 그 일들이 시간의 동질적 질서를 바꾸지는 않는다. 일상이란 그러한 동질적 일들의 반복으로 채워져 있다. 사건은 일상적 시간의 동질성을 파괴한다. 사건이 발생한 이후 시간은 더 이상 그 이전의 질서에 지배를 받지 않는다. 그래서 사건은 이전과 이후를 나눈다.
그런 의미에서 4.16은 사건의 기호이다. 2014년 4월 16일에 일어난 일을 가리키는 이 기호는 바로 그 일이 일상적 시간을 지배하던 질서의 이전과 이후를 나눈 사건임을 뜻한다. 다시 말해 많은 사람들에게 4.16은 그 이전의 삶과 그 이후의 삶이 달라진다는 것을, 전혀 다른 시간의 질서를 살아가야 함을 의미한다. 세월호가 침몰한 사건 그리고 승객들이 아무도 구조되지 못했다는 사건 이후의 시간을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당연하게도 4.16이라는 사건은 일어나지 말아야 했다. 세월호는 그렇게 침몰해서는 안 되었다. 승객들은 그렇게 죽어 가면 안 되는 것이었다. 세월호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사건이었다. 결코 재발되어서는 안 되는 참혹한 사건, 세월호는 그야말로 참사였다.
세월호라는 사건과 비사건화하는 힘
그래서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이후 모든 시민들은 슬퍼했고 분노했으며, 대통령과 여당을 비롯한 국정 책임자들은 이러한 참사가 발생한 원인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며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다짐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가 발발한 지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상황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가? 세월호는 ‘국민적’ 관심사로부터 멀어지고 있으며, 정부 여당 역시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아니 정부 여당은 미온적이라기보다는 체계적으로 이 참사의 진상규명을 저지하고 있다는 인상을 줄 정도의 작태를 보이고 있다.
세월호 참사가 교통사고에 불과하다고 운운하는 여당 국회의원의 발언이 상징적으로 보여주듯이 지배세력은 그동안 한국사회를 규정해온 질서의 틀 안에 세월호 참사를 가두어 두려고 하며, 세월호 이후에도 그 질서를 유지하려고 하고 있다. 이들은 말로는 한국사회의 역사가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라고 하지만, 행동으로는 세월호 사건을 그저 상시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일상적 사고의 하나로 만들고 있다. 사건을 사건이 아닌 것으로 만들려는 힘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4.16 인권선언’과 사건의 사건화
나는 올 초부터 ’4.16 인권선언’ 제정위원으로 활동하며 이 선언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 지금은 초안을 기초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여기에 참여하면서 나는 세월호라는 사건과 그 사건을 사건이 아닌 것으로 만들려는 힘이 ’4.16 인권선언’이 놓여있는 구체적인 맥락을 규정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였다. 한국사회가 더 이상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작동해서는 안 된다는 절박한 요구를 세월호 참사는 담고 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이 작동하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기득권을 누려온 이들은 그 사건에 담긴 요구를 무화(無化)하려 한다. 세월호는 “지금까지와는 다르게”를 우리 사회에 요구하나, 기득권 세력은 “지금과 똑같이”를 세월호에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4.16 인권선언’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4.16인권선언’은 비사건화 되고 있는 세월호 참사를 다시 사건화 하려는 시도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세월호 참사는 그러한 사건이 결코 반복되어서는 안 됨을 명령하는 사건이다. 다시 말해 세월호 참사를 불러온 한국사회의 작동 시스템이 철저하게 변혁되어야 함을 요구하는 사건이다. 이 사건의 요구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우선 이 사건을 비사건화 하려는 힘, 이 사건을 기존의 질서 안에 은폐하려는 힘을 뚫고 나갈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그래야 4.16은 한국사회에서 그 이전과 이후를 나누는 사건의 이름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4.16 인권선언’은 그 힘을 모으기 위한 하나의 출발점이 아닐까?
이는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4.16 인권선언’ 초안을 기초하는 모임에서는 매우 조심스럽게 그러나 또한 강도 높게 세월호 참사의 의미를 토론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의 사회 구조적 성격은 어떤 것인지, 세월호 참사는 국가와 동료 시민들에게 어떤 책임의 문제를 제기하는지, 안전이란 어떤 성격의 권리이며 어떻게 보장해야 하는지, 재난이란 무엇이며 재난의 구호 과정에서 인권의 원칙은 무엇인지, 세월호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시민들의 연대는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등등 다양한 쟁점들을 토론하며 이러한 쟁점들을 정리하는데 필요한 여러 자료들을 함께 검토하고 있다.
4.16, 동일한 사건의 반복을 막는 사건의 이름
‘4.16 인권선언’의 제정 과정에 참여하면서 이 선언에서 중요한 것은 그 내용 못지않게 이 선언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 ’4.16 인권선언’의 초안을 만들기 위한 모임이 하고 있는 고민, 여기서 이루어지는 토론이 세월호라는 사건의 의미를 모두 담아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세월호라는 사건의 의미와 그 요구에 응답하려는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고민하고 토론할 때 이 선언은 4.16이 한국사회를 변화시키는 사건의 이름이 되는 계기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다가올 4월에 발표될 ’4.16 인권선언’은 결코 완성된 선언문이 아니다. 이후 ’4.16 인권선언’ 초안을 놓고 우리 사회 곳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생각을 주고받고 고민을 공유하는 시간들을 가지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함께 응답하는 과정 속에서 ’4.16 인권선언’은 제정될 것이다.
세월호 사건은 그와 동일한 사건의 반복을 막는 사건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힘은 세월호가 제기한 문제에 응답하려는 사람들로부터 나올 것이다. ’4.16 인권선언’의 제정 과정은 그러한 응답들이 집결하는 과정이지 않을까? 그러한 응답하는 힘을 통해 세월호 참사를 만들어낸 한국사회의 일상을 지배해온 질서를 중지시키는 과정이지 않을까? ’4.16 인권선언’은 그 제정의 과정이 바로 그 선언의 과정인 것이 아닐까?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세월호 사건은 그와 동일한 참사를 막는 사건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경향신문 기고문
예술가가 검열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이유
이동연(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우리는 지금 정신의 감옥살이를 하고 있다. 5년간의 징역살이. 가슴이 답답하고, 울분으로 오한이 나지만, 앞으로도 많은 시간을 견뎌야 한다.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노동자, 장애인, 학생, 교사, 농민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절망의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아마도 예술가만큼 마음의 상처에 치를 떠는 사람들도 없을 것이다. 예술가들은 지금 나쁜 권력으로부터 유례없는 검열의 광풍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 문화예술계에 자행되는 검열과 배제의 사건들은 실로 전방위적이다. 2013년 9월부터 지금까지 대략 2년 동안 문화예술계에서 벌어진 검열과 배제의 사례들만 해도 20여건이 넘는다. 2년간의 기간임을 감안하면 월 1회 정도 예술 검열과 관련된 논란이 불거진 셈이다. 소위 <월간 검열>이란 잡지도 낼 수 있을 정도다.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 매가박스 개봉 중단, 박정희 유신 정권을 부정적으로 묘사했다는 이유로 월간『현대문학』이 이제하 등 소설가의 연재 중단, 세월호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다이빙 벨> 멀티플렉스 상영 거부, <다이빙 벨> 상영을 이유로 부산국제영화제 예산 삭감 의혹과 이용관 집행위원장 사퇴종용, 제35회 서울연극제의 아르코 예술극장 사용대관 심의 탈락, 박근혜 정권을 패러디한 <경국지색> 전단지를 배포한 윤철면씨에 대한 자택 압수수색, 박근혜 대통령을 풍자한 그림을 살포한 이하 작가 연행, <모든 군인을 불쌍하다>를 연출한 박근형 교수의 ‘창작산실’ 사업 선정 작품 강제 제외, 한국문화예술위 산하 한국공연예술센터에서 세월호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연극 <이 아이> 공연을 방해, 그리고 가장 최근에 국립국악원 ‘금요공감’ 프로그램에 출연한 ‘앙상블 시나위’의 <소월산천> 공연에서 박근형 연출가의 연극 부분을 제외할 것을 요구.
이런 검열과 배제의 사례들은 대체로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첫째 유형은 천안함, 세월호 등 시국사건이나 사회적 재난을 예술작품으로 재현하는 것에 대한 검열로 이는 이들 작품의 대중적 유포를 차단하려는 의도를 가진다. 두 번째는 박근혜 대통령과 그의 부친 박정희를 비판하거나 풍자하는 작품을 검열하는 것으로, 통치자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일체의 행위에 대한 통제이다. 세 번째는 현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활동에 참여한 예술가 개인과 단체들에 대한 검열로 각종 지원 사업에서 배제하거나 공식적인 행사에 필요한 공공지원을 차단한다. 마지막으로는 정부여당의 반대편에서 야당을 지지하는 예술가들에 대한 검열로 이는 예술의 진보적 가치에 대한 부정과 진보정치의 역사적 기억을 지워버리려는 의도를 갖는다. 전체적인 검열의 사례들을 분석했을 때, 시국사건이나 사회적 재난에 대한 표현물의 검열보다는 박근혜 통치자를 비판하고 풍자하는 표현물에 대한 검열이 더 많다. 이는 최근 검열이 전제 군주적, 혹은 근대 파시즘적 성향이 강하다는 점을 알게 해준다. 어떤 예술가도 통치자의 심기를 불편하게 해서는 안 된다.
검열의 방식 역시 매우 구체적이고 집요하다. 전시, 상영, 게제, 공연을 삭제하거나 강제로 중단시킨다. 작가 및 작품을 고소 고발하거나 체포하고, 공공지원 플랫폼에서 비판적 예술가들을 배제하고, 예산을 삭감한다. 검열의 주체 역시 위계적이다. 국가권력의 통치성을 기획 조정하는 권력의 상층부에서 검열을 주도한 흔적이 엿보이며, 문화예술의 지원기구들 내부의 자체 검열도 만연되어 있다. 이들은 검열의 주체이자 대리자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기관들은 스스로 검열의 주체가 되면서도 위로부터의 검열의 요구를 충실히 따르는 대리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 아니 통치자에 대한 충성경쟁으로 스스로 알아서 검열하여 든다. 예술가와 예술단체들의 자기검열도 심각하다. 공공지원을 받기 위해 검열이란 센서를 통과할 수 있는 작품을 사전에 기획한다든지, 참혹한 현실에 대한 비판과 풍자의 표현들을 스스로 자제하려 든다. 예술계 내부의 자기 검열은 결국 예술가들의 자존감을 무너뜨린다. 예술가들이 지금 매우 우울한 것은 권력의 검열에 대한 분노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자기검열의 두려움과 그로 인한 정신의 무기력증에 대한 공황 상태 때문이다. 검열의 과잉으로 집약되는 지금 권력의 상징폭력은 어쩌면 자기 정체성의 실체가 드러날 것에 대한 공포심의 극단적인 반응일 수 있다. 통치자는 검열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정당화하고, 허구로 구성된 자기 정체성의 폭로의 두려움을 제거하려든다.
그러니 검열로 인해 예술가가 두려워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오히려 검열은 지금의 권력, 지금의 통치자 자신의 두려움을 심화시킨다. 검열은 통치자가 자기 정체성에 대한 두려움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국립국악원 사태에 맞서 당당하게 행동하는 안무가 정영두가 페이스북에 올린 자기 고백을 우리는 경청해야 한다. “제가 두려운 것은 없습니다. 제가 무언가 두려워할까봐 그것이 두려울 뿐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마침내 예술가들을 겁쟁이로 만드는 것이 두려울 뿐입니다.” 예술가가 두려워하면 지는 것이다. 예술가가 당당하면 오히려 통치자가 두려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