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4호][칼럼]홋카이도 대학과 안양교도소의 점심식사(오창은)

<칼럼> 마음으로 쓰는 편지

 

홋카이도 대학과 안양교도소의 점심식사

 

 

일본 북해도의 홋카이도 대학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한국의 문학연구자들과 더불어 ‘식민주의와 문학’을 연구하기 위해 어렵게 떠난 답사여행이었습니다. 이 대학은 생물학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문대학입니다. 명성과 더불어 과거의 악명도 함께 지니고 있지요. 일본제국주의 시절, ‘인종학 연구’은 이 대학의 전신인 삿포로 농업학교였습니다. ‘식민주의 인종학’은 일본이 우월하기에 조선과 같은 열등한 민족을 지배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지요.

나는 이 대학 후생관에 먹은 점심식사가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한 참 식사를 하고 있는데, 두 명의 일본 남학생들이 우리를 손가락질하며 자기들끼리 웃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나 뿐만 아니라 우리 일행 모두가 그 장면을 목격했지요.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타인에 대한 배려를 찾을 수 없는 노골적인 비웃음을 그들의 얼굴에서 발견했으니까요. 일본 학생들의 무례함에 기분이 상했고, 한편으로는 우리들의 어떤 모습이 그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는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와세다 대학 박사과정 유학생으로 우리 일행의 통역을 맡아주었던 곽형덕 선생이 그 상황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일본 사람들은 식사 때 숟가락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카레와 같은 국물이 있는 덮밥류는 예외이지만, 어린아이를 제외하고는 모두 젓가락으로 식사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때 숟가락을 사용해 밥을 먹고 있었지요. 그 모습을 처음 본 일본인 대학생들이 우리를 놀린 것입니다. 한국인들은 마치 어린아이처럼 식사를 한다고요.

그 때의 장면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점심식사로 뇌리에 남아있습니다. 홋카이도 대학 점심식사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논산 훈련소에서 훈련병 시절의 점심식사가 충격적인 기억으로 남아있었지요. 입소 첫날 점심식사 시간에 5분만에 식사를 끝내라고 조교가 다그쳤습니다. 그리고는 5분도 채 안 되는 시간에 식사 종료 명령을 내린 것입니다. 밥을 반도 먹지 못한 상태였기에,식판을 들고서 음식을 버리러가면서까지 허겁지겁 입에 밥을 밀어 넣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았던 참혹했던 시절이었지요. 그 때의 모욕감 못지 않은 감정 상태를 홋카이도 대학에서 겪었기에 못내 개운치 않았습니다.

두 일본 학생은 타인을 이해하려는 태도가 없는 사람의 경멸어린 시선을 맨 얼굴로 드러냈습니다. 자기에게 익숙한 것만이 우월한 것은 아닙니다. 일본의 두 대학생은 숟가락으로 식사를 하는 한국인들을 우스갯거리로 삼았지만, 자신들의 식사법만이 우월하다고 생각을 드러냄으로써 스스로 얼마나 협소한 세상을 살고 있는가를 드러낸 셈이지요.

또 다른 점심식사에 대한 기억도 있습니다.

2008년 7월 14일, 안양교도소에서 먹었던 점심식사는 뜨거운 경험으로 간직하고 있습니다.벌써 6년 전의 일이지만, 그 때 함께 식사를 했던 안양교도소 조동주 교도관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늦게나마 전하고 싶습니다.

저는 그 때 교도소에서 진행하는 평화인문학 강의를 하기 위해 강사들을 섭외하고, 프로그램을 짜고, 연락하는 업무를 맡아 분주했었습니다. 게다가, 첫 강의인 ‘마음을 다스리는 시읽기와 글쓰기’를 두차례에 걸쳐 제가 진행해야 했기에 무척 긴장한 상태이기도 했습니다. 조동주 교도관은 미리 안양교도소로 와서 함께 식사를 하자고 연락을 해왔습니다. 당황스러운 제안이었지만, 왠지 거절하기 어려운 초대였습니다.

아마 교도관들은 상상하기 힘들겁니다. 일반인들에게 교도소의 점심식사가 어떤 반응을 불러일으킬지에 대해서요. 도대체 어떤 공간에서 식사를 할까 하는 호기심, 그 다음은 메뉴는 무엇일까 하는 기대감, 그리고 마지막에는 어떤 분위기일까하는 궁금증이 어우려져 사람을 위축시킵니다.

모든 것은 예상 밖이었습니다. 복잡한 정문 출입 절차를 거쳐 구내 식당에 들어섰을 때, 나도 모르게 안도감을 느꼈으니까요. 너무도 익숙한 구내 식당의 모습이 그곳에 펼쳐 있었습니다. 정복과 사복을 입은 교도관들이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고, 자연스럽게 일상적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상상했던 긴장감은 감지되지 않았지요. 나는 낯선 곳에서 식사한다는 것에 대해 기대를 하고 있었지만, 익숙한 공간적 분위기와 식당메뉴, 그리고 자연스러운 대화들에 오히려 충격을 받은 것이지요. ‘아, 이곳은 그냥 사람들이 생활하는 곳이구나’, ‘특별한 곳이 아니라 격리된 곳일 뿐이구나’하는 깨달음 같은 것을 얻었습니다. 교도소야말로 진지한 인문학적 성찰의 공간인 셈었던 것이지요.

철학자 박이문 선생은 『통합의 인문학』에서 “인문학은 인간성을 이해하려는 학문인데 인간성에 대한 탐구와 이해는 결국 인간의 반성적 성찰의 표현”이라고 했습니다. 교도소야말로 인간이 자신을 깊이 반성하고 성찰하는 곳이겠지요. 그 성찰을 도와주는 것이 바로 문학작품들이고, 예술작품들이며, 역사적·종교적·철학적·인문학적 책들일 것입니다. 저는 여기에 덧붙여 인문학은 ‘인간에 대해 묻는 학문’이라고 봅니다. 그것은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한 물음이면서, 스스로의 존재 가치에 대해 질문하는 것이기도 하지요. 인문학은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조동주 교도관과 그 짧은 점심시간에 나눴던 대화야말로 진정 인문학적인 대화였습니다.

조동주 교도관은 제게 진지한 어조로 ‘우리나라 형사사법체제의 여러 문제’에 관해 이야기했습니다. 교도소에서 수용자를 대상으로 ‘인문학 강의를 기획’하면서 부딪친 어려움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지요. 저는 교도관의 생활에 대한 충분한 사전 지식이 없었음에도 교도소내 구내식당의 분위기와 식사하는 교도관들의 모습으로 인해 너무 쉽게 그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교도관들의 상황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었고,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다른 세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세상을 이해하는 것, 그 뜨거운 경험 때문에 2008년 7월 15일 안양교도소의 구내식당에서의 점심식사를 잊지 못합니다.

 

 

 

오창은  (중앙대 교양학부대학 교수, 문학평론가)  200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문학평론에 당선하여 글을 쓰고, 대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문학평론집 『비평의 모험』(2005)와 『모욕당한 자들을 위한 사유』(2011), 인문비평서 『절망의 인문학』(2013)을 간행했다.

 

<월간 교정> 2014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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