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3호][칼럼] 세월호 이후, 국가란 무엇인가(최철웅)

세월호 이후, 국가란 무엇인가

 

최철웅(중앙대 문화연구학과 박사수료)

 

 

세월호 참사가 벌어지고 네 달여가 훌쩍 지났다. 아직도 10명의 실종자가 우리 곁으로 돌아오지 못했고, 진상규명을 위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은 난항을 지속하고 있다. “유민 아빠” 김영오 씨가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46일간의 단식을 불사하는 동안에도 여야 지도부는 상대 진영으로 책임을 떠넘기기에 급급했다. 답답한 마음에 대통령을 찾아간 유가족들은 청와대 앞 한데서 비닐을 덮고 노숙하는 신세가 됐다.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과 민의를 대변하는 여야 국회의원 그 누구도 책임지고 진상을 밝히겠다는 대답을 내놓지 않자 시민들의 동조단식이 줄을 잇고 있다. 사태를 책임지고 수습해야 할 정부가 뒤로 멀찍이 물러서면서 유가족만이 전면에 나서는 형국이 되었고, 급기야 ‘질린다, 그만하라’며 유가족들을 비난하고 모욕하는 여론마저 횡행하고 있다.

불과 4개월 전, 모든 국민이 간절한 마음으로 실종자들의 생환을 빌고 유가족들의 비통한 심정을 위로할 때, 이윤만을 좇는 선박업체와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부기관들을 거세게 질타할 때, 수개월이 지나 유가족들이 이처럼 버려지고 내몰릴 것이라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대통령 이하 그간 쌓인 우리사회의 ‘적폐’를 해소하는 반성과 점검의 계기로 삼자던 다짐들은 지난 재·보궐선거가 끝나면서 함께 사그라진 것일까. 정부 여당은 철저한 진상규명을 위한 절차(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 부여)에 한사코 반대하고, 보수단체와 일부 시민들은 유가족들의 요구가 사법체계와 헌정질서를 뒤흔든다며 겁박하고 있다. 결국 저들은 세월호 참사가 우연한 ‘사고’에 불과하다고, 그러니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해결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유가족과 시민들은 세월호 참사가 우리사회에 근본적인  단절을 도입했으며, 그 이전의 질서와 시스템으로는 절대 돌아갈 수 없다고 말한다.

여기엔 일부 언론이 조장하는 것과 같이 해묵은 보수-진보 갈등을 넘어서는 매우 근본적인 대립,즉 이토록 무능한 국가란 대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둘러싼 환원불가능한 정치적 간극이 놓여 있다.

 

무능한 국가와 책임지지 않는 권력

 

세월호 참사를 통해 우리가 목격한 것은 자본과 국가권력이 결탁하여 촘촘하게 얽힌 비위와 부패, 탐욕과 무능의 결정체였다. 국가는 규제완화를 통해 민간 해운업체가 선박안전을 무시한 채 이윤을 챙길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줬고, 선박의 안전검사 및 운항허가를 담당한 것 역시 국가에 의해 권한을 위임받은 민간조직들이었다. 이들 민간조직은 공적인 업무를 위임받았지만 사실상 선사들의 이익단체에 불과했고, 따라서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감독 활동을 수행할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이러한 민간조직들의 임원 자리를 관련부처의 고위관료 출신자들이 차지하는 등, 국가기관과 민간조직은 인적으로 긴밀하게 결탁되어 있었다. 인명구조를 담당하는 해경 또한 구조 업무를 일찌감치 민간업체에 위임하고 있었고, 구조경험이나 장비가 없다며 무능을 자백할 뿐이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배가 침몰한 이후로 기이할 정도로 무능한 괴물 같은 시스템과 마주쳐야만 했다. 숱한 정부기관과 민간조직들이 사태와 연루된 것으로 드러났지만, 그 누구도 결코 책임을 떠맡지 않았다. 분명 일정한 규칙과 위계적인 명령 구조에 따라 작동하는 시스템이었지만, 아무리 조직의 상부구조를 따라 올라가도 명령의 주체는 찾을 수 없었다. 다들 자신은 주어진 규칙을 적용하고 명령을 실행했을 뿐이라고 항변했다. 이런 이유로 실종자 가족들은 최고책임자를 찾아가 해명을 요구하고,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간청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 최고책임자 또한 공허한 약속만을 남긴 채 몇 달 뒤 다시 찾아가니 차갑게 얼굴을 돌릴 따름이었다.     이 익명적이고 무책임한 권력의 시스템은 시민의 안전을 지키는 데에는 철저하게 무능했지만, 절대적인 기능부전 상태에 빠진 것은 아니었다. 명령과 규칙의 체계를 작동시킴으로써 누군가에게 권력과 특혜를 주는 기능은 정상적으로 수행되었고, 마치 그것만이 유일한 목적인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안전과 공공의 복리를 위해 주권을 위임했던 국가가 지배와 이윤추구의 수단으로 기능할 뿐이라면, 우리가 계속해서 국가를 신뢰하고 권한을 부여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그리하여 세월호 참사는 시민의 안전과 복리를 위해 존재하는 국가라는 환상과 믿음이 붕괴된 자리에 급진적인 인민주권의 상상력을 소환하고 있다. 이것이 ‘세월호 특별법’을 둘러싸고 정부여당과 보수단체가 물러설 수 없는 저지선을 구축하는 이유일 터다.

 

‘세월호 특별법’의 정치학

 

세월호 유가족과 대한변호사협회가 함께 작성한 ‘세월호 특별법’의 취지는 책임자 처벌보다 진상규명에 더욱 무게를 두고 있다. 이는 세월호 참사가 특정 개인이나 기관의 문제가 아니라 총체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라는 점을 누구보다 유가족들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비단 특정 개인이나 기관을 수사할 목적이라면 특검제도의 도입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러나 특정 사안의 수사에 초점을 맞추는 특검제도만으로는 구조적 병폐를 진단하고 재발방지책을 마련하는 광범위한 진상조사가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 유가족들의 입장이다. 오히려 철저한 진상규명이 이루어지기도 전에 특정기관이나 개인에 책임을 전가하고 수사를 종결할 위험마저 상존한다.

따라서 유가족들은 충분한 조사기간과 수사권한을 포함하는 특별법의 제정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바로 이 하나의 요구,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보장해달라는 요구가 정부여당과 유가족 간에 팽팽한 쟁점을 형성 중이다. 세월호 참사의 배경에는 해경과 해양수산부를 포함해 수많은 정부기관이 얽혀 있다. 구조 과정에서의 미흡한 대처를 고려할 때 국정 최고책임자인 대통령과 청와대 또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에 유가족들은 총체적인 진상규명과 성역 없는 수사를 위해 국가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수사권이 요구된다고 주장한다. 악의적인 루머와 달리, 유가족들이 원하는 것은 막대한 경제적 보상도 애도의 눈물도 아니다. 오직 재발방지를 위해 진상규명에 필요한 법의 제정과 법률에 의거한 공정한 수사를 요청하고 있을 뿐이다.

이 과정에서 유가족들이 보여준 차분한 냉철함은 오히려 지켜보는 우리를 놀라게 한다. 그들은 슬픔과 절망에 잠겨 우울증에 빠진 수동적 피해자도 아니고, 걷잡을 수 없는 원한과 분노에 사로잡혀 마구잡이로 정념을 분출하는 광적인 유가족도 아니다. 유가족들은 슬픔과 분노를 끌어안은 채,미래의 아이들과 다른 부모들이 자신과 같은 고통을 겪지 않길 바라며 재발방지를 위한 정치적 요구를 조직하고 있다. 김영오 씨의 목숨을 건 단식이 비단 연민이 아닌 숭고함과 연대감을 불러일으킨 것은 그런 이유이리라. 이제 유가족들은 전능한 지도자의 자비와 결단을 구하기 위해 박근혜 대통령을 찾는 것이 아니다. 행정수반이자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대통령의 역할에 충실할 것을 엄중히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기성질서의 수호자들이 ‘세월호 특볍법’ 제정을 두고 헌정체제를 뒤흔든다며 날뛰는 데에는 나름 충분한 이유가 있는 셈이다. 최고위 공무원일 뿐인 대통령에게 카리스마적 지도자의 가치를 부여하고 정념을 투사하는 이들에게는 성역 없는 수사의 원칙이 지도자를 겨냥한 정치적 음모로 비춰진다. 그리하여 유가족들의 정당한 요구에 대해 진정성의 잣대를 들이밀고 끊임없는 분탕질로 ‘세월호 특별법’이 지닌 정치적 의미를 희석하려 든다. ‘세월호 특별법’의 취지는 단지 권력자의 얼굴을 교체하는 것이 아니라 인민의 안녕과 공공성 회복을 위해 구조적 시스템을 개혁하자는 것이다. 국가는 고유한 본질을 지닌 자율적인 실체가 아니며, 인민의 의지에 따라 사회적 기초 위에 구축된 제도적 시스템일 뿐이다. 그것은 세월호 참사를 통해 목도했듯 인민의 통제를 벗어날 때 스스로 자립적인 실체로 군림하는 괴물이 된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은 이처럼 전도된 권력관계를 바로세우는 의미 있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경희대원보 201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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