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2호][행사리뷰]한국문화연구학회 라운드테이블 OO사회 열풍에 대한 메타담론 (김영선)

OO사회 열풍에 대한 메타담론을 마련한 자리?
문화정치의 방식은 무엇인지에 대한 메타논의는 부재한 시간!

 

김영선 _서울과학종합대학원 연구교수, <문화/과학> 편집위원

 

우리는 어떤 사회에 살고 있나? 지금 여기 우리는 어떤 삶을 살고 있나? 역사적으로 반복되어온 질문이다. 그런데 이삼 년 새 어떤 사회인가를 질문하는 책들의 빈도가 부쩍 늘었다.

 

학벌사회, 위험사회, 하류사회, 승자독식사회, 부동산 계급사회, 희망 격차사회, 주거 신분사회, 불안증폭사회, 대출 권하는 사회(2011년 이전), 영어 계급사회, 피로사회, 신 없는 사회, 감시사회, 무연사회, 루머사회, 약탈적 금융사회, 위험 증폭 사회, 팔꿈치 사회, 허기사회, 과로 사회, 방황하는 개인들의 사회, 아파트 한국사회, 자기 절제 사회, 속삭이는 사회, 잉여사회, 절벽사회, 격차사회, 부품사회, 탈감정사회, 단속사회, 투명사회, 분노사회, 감성사회, 탈성장사회, 그리고 사회를 말하는 사회까지! OO사회로 작명된 책들이다.

 

OO사회에 대한 스토리의 시작은 자유기고가 노정태가 ‘2013년 올해의 책’을 결산하는 글(프레시안, “’혜민 스님’과 아파트를 지나, ‘꼰대’와 악수하다”, 2013. 12. 13)에서 출간부터 현재까지 그 영향력이 쭉 이어졌던 <피로사회>를 염두한 듯 “많은 저자와 편집자들이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한국 사회를 ‘XX사회’라고 이름 붙이고자 했다”고 평가한데서 비롯한 걸로 기억한다.

 

한 알라딘 MD는 트위터에 2010년 이후 출간된 각종 사회 관련 책들을 언급하고(2014. 3. 5), 기사(시사IN, “무슨 ‘사회’가 이리 많나”, 2014. 3. 13.)를 통해 “장사치의 본능”으로 “OO사회 기획 이벤트”를 예시한 후, ‘한국사회를 읽는 몇 가지 시선들’이라는 총집합 이벤트를 마련하기도 했다(2014. 3. 25). 그리고 얼마 전 출간된 단행본(『사회를 말하는 사회』)은 OO사회로 작명한 단행본들을 서평 형식으로 묶었다. 일종의 다이제스트판이다.

 

특히 한국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고스란히 발가벗긴 세월호 참사는 OO사회에 대한 논의를 재점화했다. 방향을 잃어버린 우리 사회의 좌표를 다시 묻는! 물론 우리가 어떤 사회에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은 역사적으로 반복되어 온 질문이지만 그것은 세월호 참사 이후라는 다른 지반/시간에서의 새로운 질문들일 것이다.

 

한국문화연구학회[1]가 마련한 라운드테이블(OO사회 열풍: 메타담론과 성찰의 문화사회학) 또한 지난 얼마동안 회자된 OO사회에 대한 문제제기에서 시작하고 나아가 ‘다른 지반/시간에서’ 출발한 것이라 본다. 그 가운데 라운드테이블은 단속사회의 저자 엄기호와 모멸감의 저자 김찬호를 앉혔다.

 

 

엄기호의 메시지는 이러했다. 『단속사회』는 단속이라는 말로 한국사회가 ‘사회가 아닌 상태에서의 사회’라는 역설을 드러내려는 시도였다고! 엄기호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가 ‘편’을 강요하고 ‘곁’을 내치는 사회라고 진단하면서, 편만 남고 곁은 파괴된 상태에서의 삶의 형식을 ‘단속’이라는 말로 규정했다. 단속사회의 삶의 형식은 낯선 것과의 만남이 단절돼 동질성에 기반을 둔 빗장 건 사회(gated society)의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타자와의 접촉은 위험하다고 여기고 다른 것을 철저히 차단하는 그런 단속(斷續)이다. 동시에 스스로를 단도리하는 경향으로서의 단속(團束) 또한 눈에 띤다. 당연히 침묵과 순응이 지배적인 태도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삶이 파편화되고 관계는 동질화되어 취향의 공동체만 남고 곁을 만드는 언어는 소멸해버린 사회! “이게 과연 사회인가”라는 모두에서의 반문은 지금 여기의 우리 사회를 어떻게 불러야할지 곤혹스러워 하는 우리 모두의 고민과 맞닿았다.

 

김찬호는 모두에서 『모멸감』은 김우창의 『정치와 삶의 세계』란 책에서 ‘한국사회는 오만과 모멸의 구조로 되어 있다’는 문장을 만나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메시지는 이러했다. 한국사회는 타인과의 관계를 권력이나 위계라는 프리즘으로 가늠하는 마음의 습관이 짙다고! 모멸의 구조는 일상의 개인 관계에서만이 아니라 열등 집단을 범주화해 배제하는 문화, 그리고 극소수의 ‘잘난’ 자들만 환대하는 분위기 저변에도 관통한다. 모멸의 구조는 나의 존재를 확인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누군가를 모욕하면서! 이렇게 모멸의 스펙트럼은 다양하다. 모멸감을 넘겨 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김찬호는 모멸을 만들어 내는 상황 그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 우선 제도나 구조 차원에서 시공간적으로 구획된 차별의 비인격성을 거둬내는 작업 그리고 문화 차원에서 내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안전한’ 공간을 구축하는 작업 말이다.

 

“단속사회든 모멸사회든 문화연구의 입장에서 OO사회를 언급한 것은 ‘문화정치’의 가능성을 엿보기 위함”이라는 학회 주관자의 마지막 멘트는 지나는 길에 우연히 포스터를 보고 참석한 본인이 내심 기대한 질문이기도 했다. ‘이후의 사회’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문화연구는 ‘이후의 사회’를 어떻게 모색하는지! 새로운 삶의 양식을 모색하기 위한 개입의 방식은 무엇인지!

 

그러나 학회의 라운드테이블은 학회라는 틀거리 내에서 두 책에 대한 저작 의도와 얼거리를 소개하는 데 그쳤다. 내심 기대했던 OO사회‘들’에 대한 메타논의는 부재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라는 다른 지반/시간에서의 ‘이후 사회’에 대한 논의도 부재했다. 학회 주관자의 “문화정치”라는 마지막 멘트만 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OO사회 ‘이후의 사회’를 구축하기 위한 문화정치의 구체적 형상들은 무엇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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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금번 봄 정기 학술대회 주제는 “개입하는 문화연구, 시간과 노동을 묻다”로 중앙대학교에서 6월 27일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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