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2호][칼럼]예술과 노동의 사회적 배제에 대하여(이동연)

예술과 노동의 사회적 배제에 대하여

 

이동연(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1. 한예종 청소아줌마와 극작가 최고은

 

예술가 지망생이라면 모두가 선망의 대상이라고 하는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내게는 항상 마음의 짊으로 다가오는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아침마다 낸 연구실을 청소하시는 아줌마이다. 아침 8시에서 8시30분쯤이면 연구실을 청소하시는 아줌마들을 가끔가다 일찍 출근할 때, 뵙곤 하는데 항상 웃으시는 얼굴로 맞아주시는 걸 보면, 감사하고 죄송할 뿐이다. 매년 2번씩 진행되는 어려운 복도 및 교실 청소들과 학교 곳곳을 쾌적한 환경으로 변모시켜주시는 분들이 매월 손에 쥐는 돈은 정말 얼마 되지 않는다. 작년 늦게까지 최저임금에 시달리던 학교의 청소노동자들은 연말에 일당 5700원으로 인상된 급여를 받게 되었지만, 여전히 그들에게 월급은 쥐꼬리에 불과하다. 올해 다시 노종쟁의가 일어났고, 학교 본부 측은 용역업체와 상의하여 최근 다시 합리적인 수준에서 인상된 시급을 지급하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당연한 것이지만, 청소아줌마들은 학교 측에서 제공한 휴게실에서 차도 마시고 담소도 나누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며 즐거워하기도 하다. 올 신학기에 서울시대 13개 대학에서 청소노동자들의 임금을 인상해달라는 연대 시위가 있었을 때, 한예종 청소노동자들도 동참했다. 입학식 날 자신들의 요구를 주장하기 위해 극장 앞에서 피켓시위를 하는 와중에도 학생들과 교수들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으려고 최대한 예의를 갖추다 입학식 시작하기 전에 서둘러 단체행동을 마무리하는 걸 보면서 이분들의 순수함 마음에 달리 보답할 게 없어 송구스러웠다.

 

다른 한 사람은 몇 년 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연극원 극작과 졸업생 최고은과 다른 하나는 항상 내 연구실을 청소해 주시는 아주머니이다. 최고은은 2011년 1월에 생활고에 시달리다 지병이 도져 사망하고 말았다. 당시 건강이 좋지 않았던 최고은은 별다른 수입이 없어 충분한 식사를 제때에 하지 못하고 작품 활동에 매진하다 건강이 악화되어 젊은 나이에 인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당시 최고은은 하숙집 주인아줌마에게 남긴 쪽지 편지에는 밀린 월세값을 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쌀이나 김치를 구하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전도유망한 시나리오 작가로의 꿈을 제대로 펼치지 못한 채 그녀의 고단한 삶은 죽음을 피해가지 못했다.

 

나는 학과가 달라 최고은을 직접 가르치지는 않았지만, 평소 문화예술 정책에 대해 이런저런 대안을 제안하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같은 학교의 선생으로서 마음 한 구석에 그녀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놓을 수 없다. 장래 예술가들을 길러내기 위해 이 학교에 재직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들의 진로의 막막함을 방치한 것은 아닌지, 평소에 생계는 오로지 창작과 무관한 것이라고 말한 것은 아닌지,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선망의 대상으로 한예종에 입학했다가 막상 졸업 후에는 일할 곳이 없어 알바에 인턴에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예술가들의 어려움이나 일한만큼 충분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한예종의 청소아줌마들의 어려움이나 어려운 것은 매한가지인 게 작금의 현실이다. 노동 시간이나 강도를 감안하면, 사실 청소아줌마들의 현실이 더 열악할 수도 있다. 한편으로는 하고자 하는 일의 특성이나 사회적 역할과 위상의 현실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다면, 모든 노동자들의 노동의 특성과 가치를 완전히 일률적으로 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작고한 최고은이나 그녀의 후배들과 한예종 청소아줌마들을 하나의 정동적 주체로 묶을 수 있는 것은 바로 그들의 일과 대우에 대한 자존감이다. 시급만이 아닌 일하는 사람으로서의 정당한 대우, 편견 없는 시선, 그리고 충분히 쉴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것의 자존감은 각자의 창작을 위해 복지를 요구하는 예술가들의 자존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작은 공간이나마 휴게실에서 쉴 수 있다는 환경이 한예종 청소아줌마들의 자존감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이다. 우리사회에서 배제된 자들의 요구는 안정적인 일자리와 임금만이 아니라 사회적 주체로서의 자존감에 대한 인정이다.

 

3. “워킹푸어”로서 예술노동자

 

가난한 예술가들은 우리사회의 대량의 비정규직자들의 삶과 다르지 않다. 영화 산업 기층 스태프, 드라마 보조작가, 비정규직 예술강사, 비주류 언론 기자, 문화재단 인턴사원들은 이른바 노동시장에서의 “워킹푸어”(working poor) 계급들의 생존조건 엇비슷하다. “워킹푸어 working-poor(근로빈곤층)는 하루하루 열심히 일하고 있지만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을 말한다. 1990년대 미국에서 처음 등장한 이 말은 ‘극심한 소득 양극화를 상징’하는 말이 됐다. 이후 신자유주의 경제질서가 빠르게 확산되면서 워킹푸어 문제는 미국, 일본, 유럽 국가 등 대다수 국가의 ‘공통적인 고민’이 되고 있다.” 청년 세대는 ‘워킹푸어’이자 ‘88만원 세대’다. 죽어라 일해라 88만원의 처지에서 벗어날 수 없는 세대다.

 

기층 예술가들의 일년 연봉은 얼마나 될까? 2012년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문화예술인실태조사’에 따르면 문학·미술·연극·영화의 종사자 가운데 ‘월평균수입 100만원 이하’가 66.5%에 달했다. ‘월수입이 아예 없다’고 답한 예술가도 무려 26.2%였다. 최근 생계고에 시달리다 자살한 배우 우봉식, 정아율씨의 죽음으로 대중연예인들의 생활실태가 수면위로 드러나기도 했다. 2009년 대중문화 산업에 종사하는 연예인들의 연평균 수입은 2,499만원으로 일반 직장인들의 연평균 수입 2,530만원보다 적은 수치이다. 이 역시 고소득을 올리는 유명연예인의 수입을 제외하면 일반 연예인들의 받는 연봉은 이 보다 훨씬 낮다.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의 자료를 보면 연평균 1000만-1500만원 소득자가 전체 연기자의 75%에 이른다. 탤런트, 개그맨, 성우, 연극인, 무술연기자 등 총 5000여명이 소속된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한연노)에서 70% 이상의 조합원은 연봉 1000만원 미만의 생계형 배우들이다.

 

순수예술이든, 대중예술인이든 예술가의 사회적 처우가 심각한 상황은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어찌되었든 한국에서 예술인복지법이 만들어졌고, 이제 본격적으로 시행되는 시점에 이르렀다. 그런데 앞서 설명했던 대로 왜 예술가들은 예술인복지법이 시행되었는데도, 절망할까? 이 이유에 대해서는 나중에서 자세하게 설명하겠지만, 이 법이 갖는 가장 큰 문제점은 예술가들의 복지를 접근하는 관점에 대한 확고한 인식, 혹은 이념이 없다는 데 있다. 한 마디로 예술가의 복지를 마련하는 그 근거와 이유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의식이 부재하다는 데 있다. 이 법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따지기에 앞서 이 법이 앞서 언급한 예술가들의 불행한 사망으로 인한 사회여론의 악화를 우려한 정부와 해당 입법 의원들의 졸속 추진과, 이 법의 제정 취지에 무감하거나 심지어는 예산증액을 우려하는 경제 관료들의 부정적인 인식의 산물에서 비롯된 것임을 충분히 감안해도, 재정운용과 사실상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예술인의 복지에 대한 뚜렷한 목적의식 정도는 분명하게 제시되어야 했다.

 

결국 이 문제의식은 예술인 복지의 기본 인식이 돈과 생존만의 문제가 아니라 예술가의 존재적 가치에 대한 문제에서 비롯되어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하는 것이다. 예술인 복지에는 두 가지 차원의 관점이 공존한다. 하나는 보편적 복지라는 관점이고 다른 하나는 특수한 복지라는 관점이다. 보편적 복지로서의 예술인 복지는 예술가가 굳이 예술가이기 때문에 복지의 혜택을 누려야한다는 관점에서 벗어나 노동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갖는 복지의 보편성을 강조할 수 있다. 이럴 경우 굳이 예술인복지법이 필요하지 않다. 예술가들도 일반 노동자들과 동일한 관점에서 노동에 대한 보편적인 복지혜택을 누리면 된다. 근로자로서 4대 보험이 적용되고, 실업상태에서 실업수당을 받으면 된다. 문제는 현재 한국사회에서 예술가들의 노동에 대한 명확한 정의와 기준이 제시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는 예술인복지법에서도 이 법의 기본이 되는 예술가들의 노동에 대해 정의하지 않고 있다. 차라리 예술가들이 일반 근로자에 준하는 노동의 정의에 해당된다면, 예술가들은 예술인복지법보다는 근로기준법에 따르는 것이 더 유익할 수 있다.

3. 배제된 자들과 그들의 귀환

 

‘워킹푸어’로서의 예술가들의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결국 예술과 예술가 외부의 사회적 현실을 먼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워킹푸어’ 예술가나 프리카리아트 일반 노동자나 모두 사회적으로 배제된 자들이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는 전통적으로 자본가 노동자 계급으로 이분화 할 수 없는 다양한 모순의 분화현상이 일어났다. 대표적인 현상이 경제적, 사회적 양극화이다. 자본가 계급들은 그들대로 독점과 합병을 계속하며 계급의 양극화를 이루고 있고, 그 전쟁에서 패배한 일부는 처절한 내몰림을 당한다. 노동자 계급은 계급대로 분화되어 소수의 중산층화가 다수의 불안정 고용상태와 충돌을 일으킨다. 대규모 공장노동자들도 안정적인 생활을 하다 하루아침에 정리해고 당해 길거리로 내몰린다. 또한 청년노동자계급들의 경우 소수를 제외하고는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몇 천원의 시급을 받는 알바일 밖에 없다. 통계청의 2013년 3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2013년 청년 고용률은 38.7%이라고 한다. 2006년 43.2%, 2007년 42.1%, 2008년 41.3%, 2009년 39.4%, 2010년 39.3%, 2011년 39.4%, 2012년 40.1%로 29년 만에 최저 수준이라고 한다. 이렇듯 진학률은 늘었는데 갈 수록 취업률은 줄어들고 있다. 고졸취업자나 대학에 입학한 청년들이나 모두가 일자리를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데 정작 취업률은 줄어들고 있다. 경기침체가 장기화되고 일자리 증가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사회로의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는 청년들은 불안을 떨칠 수 없다. 열정이라는 명분으로 흔히 청년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형태가 종종 벌어지기도 하지만 이제는 열정조차도 다 소진되어버리지 않았나 싶다. 우리는 이런 청년계급들은 임시직 프롤레타리아트를 의미하는 ‘프리카리아트’로 부르고 있다.

 

사회적으로 배제된 자들은 비단 노동자, 청년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대규모 사업장에서 전문기술자로 일하다, 학습지 방문교사로 일하다, 기타를 만들다가, 천혜의 바위, 구럼비를 벗 삼아 소박하게 살다가, 송전탑이란 위험물 없이 농사를 짓고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사회로부터 배제당하는 사람들은 지금도 거리에서 현장에서 해결의 끝을 알지 못하고 싸우고 있다. 한진중공업 파업 해결을 위해 혼자 영도조선서 85호 크레인에 올라가 300일이 넘게 고공농성을 벌였던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 2800일 넘게 공장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거리에서, 이미 폐쇄된 공장주변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는 콜트-콜텍 기타노동자들, 대한문에서거리농성도 쫒겨 났고, 47억 원 손배소송에 시달리는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노동자들… 이들은 모두 자신들의 일터에서 쫓겨난 사람들을 위한 투쟁의 주체들이다. 이들은 현장에서 처절한 사투를 벌이고 있지만, 정작 그들이 돌아갈 공장은 없고, 쉴만한 물가가 없다. 그들의 투쟁은 끝이 보이지 않으며, 답이 없는 싸움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왜 지금 끝이 없는 싸움을 하는 것일까? 콜트-콜텍 노동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들을 정리해고 했던 박용호 사장에게 사과를 받아야 한다. 그것이 지금 유일한 싸움의 이유이다. 오로지 사과를 받아내기 위해, 숭고한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우리 사회에서 배재된 자들은 아직도 미련하게 현장을 지키고 있다. 그러나 단지 그런 이유때문만일까? 배제된 자들의 현장을 탐사했던 고병권은 그의 최근 책 『살아가겠다』(삶창, 2014) 책 서문에 이렇게 적고 있다.

 

희망이 덧없다는 것. 이는 절망한 이들의 말이 아니라 결코 절망할 수 없는 이들의 말이다. 자신이 사막에 있다는 사실에 압도된 사람들일수록 오아시스에 대한 희망을 빨리 만들어낸다. 그래서 얼마 가지 않고서도 수십 번의 오아시스를 보지만 모두가 신기루이다. 희망이란 이상한 것이다. 그것은 미래에 대해 품는 것이지만, 마래로 갈수록 덧없어 지는 것이기도 하다. 반대로 현재에 가까워질수록 실질적인 것이 된다. 희망을 내일에 거느니 오늘에 걸고, 희망을 거기에 거느니 여기에 걸겠다. 희망은 지금 사막을 뚜벅뚜벅 걷는 내 다리에 달려있다.

 

“불가능성의 가능성”, “희망없음의 희망”이라는 이 역설적인 말에서 우리는 배제된 자들이 귀환하는 순간을 기록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마치 프로이트가 말한 “억압된 것의 귀환”이 함의하듯이, 억압이 응축되고 대체되었다가 언젠가는 폭발하고 마는 순간을 의미하기도 한다. 300일 넘는 고공투쟁을 지지하는 희망버스의 ‘희망’이 작은 승리를 이끌어냈고, 희망이 전혀 보이지 않는 콜트-콜텍 노동자들은 어느덧 기타를 만드는 노동자에서 기타를 연주하는 노동자로 변신했고, 급기야는 연극 <햄릿>의 연기에 도전하는 배우가 되었다. 손해배상가압류 조치에 손발이 묶인 파업노동자들에게 기금을 모아주는 “‘손배가압류 없는 세상을 위한 손잡고”가 한달 만에 9억 4천만 원을 모금했다. 이 모금운동의 활성화에는 솔선수범해서 기금을 쾌척한 기수 이효리씨의 역할이 컸다. 미래가 없는 예술가들의 삶과 그들에 대한 사회적 지지와 연대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이러한 행동들이 바로 예술과 예술가들의 “불가능성의 가능성”, “희망없음의 희망”을 기대할 수 있는 순간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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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화사회연구소, <청년의사회적일자리형성을위한문화분야커뮤니티일자리모델연구>, 2013. 12월보고서참고.
2) <머니투데이>, 2014년3월11일자참고.
3) <해럴드경제>, 2014년3월11일자참고.
4) 문화사회연구소, 같은책,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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