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2호][칼럼]독서와 캠페인의 불편한 동거(권경우)

독서와 캠페인의 불편한 동거

 

권경우(문화평론가/nomad70@daum.net)

 

얼마 전 파주에 ‘지혜의 숲’이라는 도서관이 문을 열었다. 50만권(현재 20만권 비치)이라는 엄청난 양의 책을 소장하고 있지만, 여느 도서관과 달리 사서나 도서검색시스템이 없다. 그 대신 책을 찾아주는 ‘권독사제도’가 있고, 누구나 자유롭게 24시간 이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런데 이곳이 ‘도서관’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면서 때 아닌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새로운 형태의 실험적인 도서관이라고 긍정적인 평가를 하는 사람도 있고, ‘책의 무덤’ 혹은 ‘종이 무덤’이라는 신랄한 비판을 가하는 이도 있다.

우선 이러한 논란이 등장한 배경에는 ‘도서관’에 대한 일종의 믿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도서관이 어떤 공간인지, 도서관은 어떠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천차만별이지만, 학교교육이나 공공도서관이나 지역도서관 등을 통해 형성된 ‘도서관’에 대한 사회적 관념은 존재한다. 이러한 논란에서 위로를 얻을 수 있는 것은 그나마 비판적 논의를 통해 도서관의 개념과 정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풍성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도서관의 존재 이유는 책에서 비롯된다. 책은 독서라는 행위를 통해 그 자체의 존재 의의를 갖는다. 그렇다 보니 특정 사회에서 책을 매개로 하는 다양한 공간과 실천, 즉 서점이나 도서관, 출판사, 독자와 독서행위 등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오늘날 종이책과 전자책이 공존하고 있고 전통적 독서행위를 넘어 다양한 읽을거리로서의 텍스트가 넘쳐나는 시대에, 독서행위로서의 실천은 분명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책과 관련한 일종의 신화들이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 중 하나는 책은 무조건 좋은 것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지식과 정보, 즐거움을 얻는 도구로서의 책읽기에 대한 무비판적 지지이다. 그 과정에서 책을 읽는 것으로서 독서행위는 점점 대중의 일상과 거리가 먼 행위가 되고, 마치 사라지고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을 지키는 것과 같은 의무로서의 실천이 되고 만다.

책읽기를 권장하고 소비하는 방식은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 독후감쓰기 대회가 가장 대표적이고, 그 외에도 정부기관 등의 독서증진캠페인이나 공공도서관에서 많이 전개하고 있는 ‘한 도서관 한 책 읽기’, 시민들의 플래시몹 방식인 ‘책읽는 지하철’ 캠페인 등이 있다. 이러한 활동의 배경에는 독서행위에 대한 절대적 믿음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독서 증진을 위한 비슷한 노력은 다양한 공간과 주체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 그러한 과정이 얼마나 효과를 거두고 있는가는 차치하더라도, 프로그램의 취지나 운영 방식에 있어서는 좀 더 면밀한 점검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2000년대 중반에 ‘지하철문고’라는 것이 있었다. 지하철역에 ‘독서마당’이라는 공간을 만들었지만, 부족한 도서뿐만 아니라 이용하는 시민들의 부주의 등을 원인으로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 대부분 기증을 받아 운영하다 보니 양질의 도서가 구비되지 않을뿐더러 일단 책을 빌려간 이들이 반납을 하지 않으면서 문고가 텅텅 비게 된 것이다.

문제는 실패의 원인을 찾는 방식이다. 대부분 ‘시민의식 실종’으로 결론짓는다.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이라면 누구라도 자유롭게 책을 대출하고 반납하는 ‘자율’에 기초했지만, 실제로는 그게 잘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 그것이 문제인지는 좀 더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오히려 운영 방식과 같은 환경이나 시스템의 문제에서 원인을 찾을 수도 있다. 도서관에서 대출서비스를 이용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누구나 연체라는 것을 경험한다. 물론 그 이유는 다양하다. 하지만 대부분 게으름이나 귀찮음이 작용한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도서관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연체일수에 따른 연체료를 부과하거나 일정기간 대출정지라는 일종의 패널티를 준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연체를 한다. 하물며 아무런 제재가 없는 ‘지하철문고’는 오죽할까? 빌려갈 때는 반납을 결심했겠지만 어느 순간 잊고 만다. 다시 기억날 수 있지만 다시 급한 일에 밀리고 만다. 결국 ‘지하철문고’의 실패는 시민의식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문고 운영의 시스템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 즉 지하철문고만 만들어놓고 시민들의 양심을 ‘시험’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을 좀 더 체계적으로 준비하고 운영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러한 사례는 많다. 물론 ‘북크로싱’ 운동처럼 책을 돌려읽는 등 나름 성공적인 사례도 적지 않다. 하지만 무작정 독서문화나 독서증진 캠페인이라는 이름으로 전개하고 그 실패 원인을 시민의식에서 찾는 것은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다. 정류장이나 벤치에 책을 비치하는 것도 일종의 독서캠페인에 해당되는데, 어떤 취지와 시스템으로 접근하느냐에 따라 평가와 결과는 크게 달라질 수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시민의 양심에 기댄 캠페인이 아니라 좀 더 근본적이고 체계적인 도서관 시스템에 예산과 인력을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절실하다. 정작 예산을 감축할 때는 가장 먼저 도서관처럼 힘이 없는 분야부터 삭감하면서 마치 모든 정부기관과 지자체를 비롯한 모든 사회가 독서증진을 갈망하는 것처럼 포장하는 것은 이율배반이 아닐 수 없다. 이를 위해 도서관 역시 좀 더 적극적인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특강과 강좌 등을 유행하는 프로그램으로 채워나가는 것을 지양할 필요가 있다. 도서관은 좀 더 지역사회와 어울리는 독자적인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대중의 욕망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그 욕망을 넘어설 수 있는 기획을 생산하는 작업도 병행해야 하지 않을까? 이를 위한 전제 조건은 책의 신화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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