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 18호][칼럼] 이데올로기 노이즈 (이동연)

[경향신문] 기고문

[문화비평]이데올로기 노이즈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지난주 수요일 청계광장에는 ‘국회개혁 1000만명 서명 목표달성 선포 및 헌법 청원 국민대회’라는 우익 연합 단체의 집회가 있었다. 비가 내린 탓에 광장 주변에 빼곡하게 깔아놓은 의자에는 거의 사람들이 앉지 않았지만 주변 빌딩 입구와 커피숍에는 우비를 쓴 노령의 참가자들로 북적거렸다.

제목만 보면 얼핏 진보 시민 단체의 집회처럼 보였지만, 이 집회를 주최한 단체는 ‘국회개혁 범국민연합’이라는 우익단체였다. 물론 이 단체가 우익단체라는 것은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주변에 해병대 마크의 모자를 쓴 할아버지들이 돌아다니는 데다, 무대의 중앙에는 대형 태극기가 펄럭인다. 대통령 박근혜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여소야대의 정치를 엎어버리고 싶어 했을까, 이들이 국회개혁을 위해 요구하는 구호들은 매우 격렬하고 노골적이다.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우익단체들의 시위는 이제 더 이상 낯설지가 않은 풍경이다. 서울시청 앞, 청계광장, 동아일보 사옥 앞,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 등 서울 도심의 공공장소에는 어김없이 우익단체들의 장기집회가 자리 잡고 있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광화문광장 농성장은 우익단체가 사방으로 포위한 듯해 마치 외로운 섬처럼 느껴질 정도다.

도심 속 시위와 농성의 주체 세력은 이제 우익단체로 넘어간 지 오래다. 이들의 집회는 대한민국의 모든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갈등에 개입하고 실력행사를 하고자 한다. 집회의 규모와 횟수, 타이밍, 그리고 동원된 물량 등을 감안하면 분명히 누군가의 사주와 후원 없이는 불가능할 정도로 빈번하고 직설적이다.

도심을 지나치는 사람들에게 이들 우익단체들이 펼친 조악한 플래카드 속 구호와 무차별 소음은 정치적 표현을 떠나 심각한 시각적 청각적 공해를 생산한다. 거대한 스피커로 2시간 동안 감각을 마비시킨 지난 수요일 청계광장의 우익 집회 역시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그리고 집회장소 근처 동아일보 사옥 앞에는 다음과 같은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사드 반대, 김정은 도우미 이적 행위”, “의를 위하여 목숨 바치겠습니다, 종북, 동성애, 세월호, 19대국회 척결”, “혈서 쓰며, 사드 반대 선동 폭행 소요 주동자들과 성주군수 체포하라”. 조악한 디자인의 플래카드에 태극기의 도상과 동성애 반대 문자가 평행을 이루는 서울 도심 속의 시각적 풍경은 이데올로기의 갈등을 논의하기에 앞서 참을 수 없는 소음과 시각적 공해로 시민들을 질식시킨다.

우익단체들의 잦고 공공연한 집회에 각인된 애국적 이데올로기적 행동들은 갈수록 과격해지고 합리적 논리를 상실하면서 하나의 괴물 같은 노이즈로 변형되고 말았다. 수백 명의 노인들이 군복을 입고 선글라스를 낀 채 도심을 활보하며 행인들에게 언성을 높이고, 적나라한 집단 구호로 도심을 장악하는 풍경은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주장을 넘어서 혐오스러운 노이즈가 됐다. 자신들의 존재를 과시하고, 과격한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이들은 신경증에 가까운 소음을 생산한다. 이들은 자신의 주장에 대한 정당성을 학보하기 위해 공공의 장소에서 공공연하게 분노와 증오의 감정을 쏟아붓는다.

과잉된 정동의 가면을 쓴 이데올로기 노이즈는 과잉된 이데올로기 적대를 가장한다. 이데올로기 노이즈는 과잉된 언어, 주장, 행동, 스타일, 이미지의 형태로 분출되고, 공격적, 배타적, 일방적, 냉소적 성향으로 한국 사회의 갈등과 분열을 증폭시킨다.

이데올로기 노이즈의 형태는 내용적 층위에서는 노동자와 자본가, 진보와 보수, 청년세대와 기성세대, 여성과 남성, 냉전과 탈냉전의 적대관계를 재생산하는 양상을 띤다. 하지만 표현적 층위에서는 그 적대가 과잉된 감정의 분출로 인해 집단적 형태로 응축되면서, 감정이 이념을 압도하는 통제 불가능한 소음처럼 나타난다.

지금 우익은 ‘상상된 애국심’으로 똘똘 뭉친 신념의 공동체라기보다는 재벌과 권력의 비호 아래 자기 권한의 존재감을 과시하고, 사적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동원된 소음 공동체 같아 보인다. 우익단체들에게 전달된 당근은 더 큰 당근을 얻기 위해 더 큰 노이즈를 생산한다.

이데올로기적 갈등을 냉전 시절로 회귀시켜 사태를 분탕질하는 우익의 신경증적인 노이즈는 가부장주의, 애국주의라는 이펙터를 달고 도심을 무법천지를 만든다. 이제 우리가 싸워야 할 것은 우익의 이데올로기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참을 수 없는 소음으로 퍼뜨리는 우익의 윤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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