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 14호] 85호 발간사 & 보도자료

발간사

 

우리는 새로운 봄이 오기 전에 의회정치의 서로 다른 두 가지 얼굴을 목도했다. 테러방지법을 저지하기 위한 야당의 무제한 토론, 즉 필리버스터는 2월 23일에 시작해서 8일간 192시간 25분 동안 진행되었다. 특정한 입법 사안을 놓고 법 제정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무제한 토론을 벌일 수 있다는 제도가 대한민국 국회에 있다는 것도 신기했지만, 온갖 비난과 욕설로 하루에도 몇 번씩 정회되기 일쑤였던 국회 의사당에서 이런 신성한 토론이 세계에서 가장 오랜 시간 동안 벌어졌다는 것도 신기했다. 의원들끼리 서로 멱살 잡으며 법안을 날치기 통과시킨 비민주적 의회정치의 몰골을 TV로만 보던 국민들이 이 낯선 필리버스터의 토론현장이 정녕 우리 국회의 모습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건 분명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것은 우리 정치사에서 매우 희귀한 사거이기 때문이다. 곧바로 필리버스터의 민주주의 정치를 물 타기하는 행동이 이어졌다. 합법적이고 절실했던 필리버스터를 놓고 곧바로 여당 의원들은 총선 홍보용 선거 전략이라고 비난하고, 종편과 우익세력들도 이에 동조하여 필리버스터 죽이기 행동에 가세했다. 고문 후유증으로 온전하지 못한 몸을 이끌며 10시간 18분 동안 필리버스터를 했던 은수미 의원을 향해 한 여당 의원은 “그런다고 공천 못 받아요”라고 비아냥거리고, 한 종편의 아나운서는 장시간 토론을 준비하기 위해 “지저귀를 찾다”고 조롱 투의 여성비하 막말을 하는 상황을 마주하면 우리는 ‘숭고한 필리버스터의 희망’은 커녕 곧바로 한국의 의회정치와 우경화된 막말 방송의 현실로 귀환한다.

 

그래도 야당 의원들의 필리버스터는 계속되었고, 시민들도 국회 앞에서 테러방지법의 저의와 예상되는 폐해들을 고발하는 시민 필리버스터를 진행하였다. 한국의 의회정치사에서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자유 직접 화법 형태의 토론의 장이 열리게 된 것이다. 그러나 여당은 총선의 물리적 일정을 이유로 들어 여야가 합의한 공직선거법을 신속하게 처리할 것을 압박하며, 필리버스터의 중단을 주장하는 여론몰이를 했고, 야당 지도부는 총선 국면에서 역풍을 우려하여 서서히 출구 전략을 고심하기 시작했다. 시민사회 단체와 야당 일각에서는 총선을 연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시민들이 열렬히 지지하는 ‘필리버스터라는 토론 민주주의’를 이어갈 것을 강력하게 요청했지만, 결국 야당은 8일 만에 필리버스터를 중단하고 공직선거법과 테러방지법의 국회통과를 막지 못했다. 테러방지법은 독소 조항 하나 고치지 못한 채 통과된 것이다. 필리버스터는 테러방지법을 저지하는 정치적 바리케이트가 되지 못하고, 단지 8일간 지연시키는 시한부 장애물 정도로밖에 되지 못했다. 의회정치 장의 현실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시도된 8일간의 필리버스터는 결국 의회정치의 장의 한계를 절실하게 확인하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의회 민주주의의 가능성과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낸 필리버스터의 국면을 지켜보면서 작년 문화예술계의 가장 뜨거운 토픽이었던 신경숙 표절 사건과 그로 인한 문학권력 논쟁들의 전개가 필리버스터의 그것과 매우 유사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허핑턴포스트에 실린 소설가 이응준의 신경숙 표절 제기 글은 한동안 깊은 동면 상태에 있던 비평의 비판적 장을 다시 일깨웠다. 비평과 비평가들은 일제히 신경숙 표절의 심각한 문제들을 다시 거론하며 논쟁의 불씨를 당겼고, 신경숙 표절의 배후에 있는 ‘창비’와 ‘문학동네’와 같은 대형 문학출판사들의 권력화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했다. 신경숙씨는 논란이 있고 한참 지난 후 지면 인터뷰를 통해 애매하게 사과했고, 잠정적인 절필을 선언했다. 창비와 문학동네는 뒤늦은 감이 있지만, 편집인과 편집위원 교체 등으로 쇄신책을 발표했다. 신경숙 표절 논쟁에서 도덕적, 윤리적 우위를 지닌 비판적인 비평과 비평가들은 이 국면에서 문학권력에 일부 변화를 일부 이끌어내고자 분투했다.

 

그러나 비평의 공세에 이기기 못하고, 스스로 자구책을 제출한 창비와 문학동네의 일부 변화의 움직임이 과연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의 표절 국면으로 대변되는 한국 문학의 당면한 많은 현실적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여전히 창비와 문학동네로 대표되는 한국문학의 지배적 장은 깨지지 않을 것이고, 오히려 오래 동안 안고 있던 폐부를 도려냄으로써, 그 권력의 재생산은 가속화될 수 있을 것이다. 의회 정치의 한계를 깨기 위해 시작된 필리버스터가 의회정치의 벽을 더 공공하게 만들었듯이, 신경숙 표절 사건에 개입하는 수많은 비평과 비평가들이 근본적인 문학의 장에 대한 자기내파를 하지 않는 이상, 표절사건에 개입한 비판적 비평들은 문학의 지배적 장을 더 공고하게 만들어 주는 양심적인 시멘트 역할에 머무를지 모르겠다.

 

『문화/과학』이 85호 특집을 ‘비평전쟁’이란 다소 도발적인 주제로 선정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신경숙 표절 논란으로 촉발된 비평의 비판적 기능과 비평가의 실천적 임무를 문학의 장에서만 머무르지 말고 문화와 비평의 장 전체로 확대하는 것이 중요해 졌다. 텍스트의 물신화와 비평 위기는 비단 문학의 장에서만 벌어진 문제가 아니라 문화의 장 전체에 걸친 문제이다. 우리는 최근 신경숙 표절 사건을 통해 촉발된 문학 장의 위기와 문학권력의 비판에 대해 지금 비평이 제대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인지, 그리고 현재 비평이 처한 일반적 위기는 무엇이고, 비평은 왜 더 이상 읽히지 않고, 본격 비평은 왜 대중에게 외면당하며, 사회적 재난과 정치적 파국에 대해 침묵하고 있는지가 궁금해졌다. 우리는 이러한 문제의식들을 ‘비평전쟁’이란 이름으로 집약했다. 비평전쟁이란 언어는 비평이 텍스트에 벌이는 전쟁, 논쟁의 반대파를 향한 전쟁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비평전쟁의 실제 의미는 비평에 대한 비평의 전쟁이라 할 수 있다. 비평의 외부를 향해, 즉 창작과 출판의 이념과 권력을 향해 치열한 논쟁을 하겠다는 것은 비평전쟁에서 국지전의 형태에 불과하다. 비평전쟁의 전면전은 지금 우리 시대 비평의 존재, 기능과 역할, 새로운 실천에 대한 자기로부터의 싸움에서 시작된다. 즉 비평전쟁은 비평에 대한 비평의 전쟁, 즉 메타비평적 투쟁을 의미한다. 이번 특집에 실린 5편의 글은 모두 신경숙 표절 사건이 계기가 되었지만, 그 방향과 결론은 기존의 비평과는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다.

 

먼저, 이동연의 「비평전쟁 시대의 메타비평 메뉴페스토」는 이번 특집의 문제의식을 대변하고 있는 글로, 현재 비평의 위치를 재정립할 것을 촉구한다. 그는 “신경숙 표절 논란에서 비평이 해야 할 일은 표절의 객관적 근거를 밝히고, 그 배후의 문학권력을 비판하는 것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 비평은 문학과 문학비평의 장에 대한 자기 내파와 새로운 대안적 장을 형성하기 위해, 상실된 비판의 복원과 상상해야 할 새로운 비평의 위상과 역할을 물어야 한다. 비평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던져야 하며, 문학 장에 대한 자기부정의 미적인 근거를 찾아야 하며, 비평의 급진적 상상력을 위한 사회적, 정치적 논쟁에 뛰어들어야 한다. 비평은 달라진 비평 장의 환경과 문화생태계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하는 인지적 지도그리기와 혐오, 증오, 분노, 배제, 공포의 감정에 휩싸인 우리 사회의 정동적 전환의 정치경제적 맥락에 대해 간파해야 하며, 재난과 파국의 지형의 토폴로지를 분석해 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말하자면 비평의 위상과 실천을 재구성하는 메타비평적 선언이 필요하다는 것인데, 그러한 메타비평의 메뉴페스토는 “전쟁과 폭력으로부터의 위협, 재난을 더 재난스럽게 만드는 통치술, 사회적 안전망이 거세된 일상의 위협들, 차별받고 배제된 사람들, 인권 없는 인권자들, 세월호를 비롯해 사회적 재난의 국면에서 잊혀져가는 피해자들, 도시의 젠트리피케이션에 희생되고, 국가의 검열로 창작의 권리가 박탈당한 예술가들의 현실”에 맞서는 싸움이다.

 

정원옥의 「권력과 문화자본으로서의 비평의 문제들」은  『문화/과학』 일부 편집위원들이 이번 특집 주제를 위해 별도의 집담회를 마련하여 토론한 내용들을 대표 집필한 글이다. 이 글은 “비판적 기능을 담당하는 비평권력이 우리 문화예술계에는 존재하지 않거나 제대로 작동되지 못하고 있다고 할 때, 비평의 기능 회복을 위한 가능성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문학, 미술, 영화, 국악 분야에서 내재된 권력과 비평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권력의 현실적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진행되고 있는 미술계, 문학계 등의 대안적 행동에 대해 주목하고, 비평의 자유로운 발언과 공론장의 가능성을 강조한다.

 

오혜진의 「퇴행의 시대와 ‘K문학/비평’의 종말」은 이번 특집 글 중에서 단연 주목할 만한 글이다. 그녀의 글은 신경숙 표절 논쟁에서 비판적 담론을 생산했던 많은 기성 평론가들과는 매우 다른 입장, 즉 비판적 여성주의, 소수자주의, 반계몽주의, 반문학패권주의의 입장에 서 있다. 오혜진은 2015년 신경숙 표절 논란에서 재론된 문학권력론은 “1990년대의 문학(장)이 신자유주의적 질서에 침윤되면서 정당한 사후평가를 받지 못한 채 폭력적으로 청산된 것들, 즉 ‘억압된 것들의 귀환’”이며, “이들이 기억하는 신경숙과 창비의 성장과정은 ‘진보적 가치’의 보루였던 한국문학이 ‘변절’ 혹은 ‘타락’한 시간과 겹친다”고 본다. 2015년 문학권력론이 다시 제기된 내면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문제는 문학권력론의 두 입장들이 “여전히 차세대 ‘에이스’ 발굴에 골몰한다는 점, 즉 세계문학‧노벨상‧영화화 등의 강박을 통한 가부장적이고 패권주의적인 욕망을 공유” 한다는 데 있다. 예컨대 ”‘장편대망론’은 바로 이러한 586세대의 낡은 공통감각이 공모해 만든 지배적 문학규율이었으며, 여기에 깃든 정치적 무의식은 명백히 1990~2000년대 문학사의 젠더화와 타자화를 통해 586세대의 노스탤지어와 정통성에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이었다.” 이런 정황에서 한국문학의 현실을 “‘수준미달’의 작가 신경숙 및 상업주의와 결탁한 창비의 ‘타락’ 탓으로 돌리는 것은 어딘지 전가의 혐의가 있”다고 판단하면서 오히려 요즘 젊은 독자들이 “엘리티즘적 계몽주의, 가부장주의, 시장패권주의, 순문학주의와 같은” 한국문학의 퇴행의 총체를 ‘K-문학’이라고 냉소적으로 명명하는 사태에 주목해야 한다고 본다. “‘K문학’은 시장패권주의와 결합된 한국문학의 부정적 성격 전반에 대한 종족화를 경유함으로써 ‘한국문학’에 대한 가장 효율적인 조롱의 기표로 활용”되고, 바로 이것이 “21세기의 독자들이 ‘개저씨’들의 K문학/비평 복권에 냉담한 이유”라는 것이다. 오혜진은 “‘타락’한 한국 문학장을 ‘계도‧정화’하기 위해 비평의 권위가 ‘회복’돼야 한다는 관점은 여전히 20세기적 계몽주의 프레임에 붙들려 있”는 것이라고 비판하며, 젊은 독자들을 위한 새로운 독자론의 구성, 문학패권주의에 반대하는 젊은 작가와 비평가들이 한국 문학 장에서 시도하는 새로운 실천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새로운 세대의 비평적 감수성을 갖고 있는 오혜진의 글을 일독하길 권한다.

 

오창은의 「비평논쟁과 재현의 정치」는 한국 문학 및 문화사에 존재했던, 비평의 논쟁사를 거론하면서 비평논쟁이 공론장으로 적극적으로 들어오기를 희망한다. 그는 1920년대 김환의 소설 「자연의 자각」을 놓고 벌인 염상섭, 김동인의 논쟁, 1970년대 미술계에서 발생한 이응로와 남관의 ‘창작과 모방’ 논쟁, 그리고 1990년대 문학평론가 김영혜와 영화평론가 유지나가 펼친 「그대 안의 블루」를 둘러싼 해석 논쟁들을 소개하면서 각각의 논쟁들에서 제기된 비평과 재현의 정치, 한국적 예술과 세계적 예술의 모순, 비평장의 폐쇄성과 전문가주의의 문제들을 지적한다. 그는 현재 비평논쟁이 위축된 이유에 대해 “문화예술의 제도화에 따른 폐쇄성의 강화”, “매체별로, 학회별로, 혹은 소속된 에콜 의 진영 안에서만 미치는 영향력”, “비평 담론의 약화와 텍스트 중심주의의 고착화”로 진단하면서, 폐쇄적 제도화와 텍스트 중심주의 비평의 폐해, 공론장의 쇠퇴를 극복할 수 있는 메타비평의 활성화를 제안한다.

 

강신규의 「하위문화 비평의 궤적과 방향: 만화·애니메이션·게임 비평을 중심으로」는 수용자의 영역에서는 활발한 한국 하위문화에 비해 그 장을 다루는 하위문화 비평이 제 기능을 하고 있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지, 그럼에도 지속돼야 할 필요성은 무엇이며, 어떻게 지속돼야 할지를 그동안 그것이 그려온 궤적을 통해 찾아보고자 한다. 그는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분야의 비평 현황을 점검하면서, 하위문화 비평의 위축을 극복하는 대안으로 “독창적 이론 및 방법론의 연구”, “비평의 역할에 대한 재정립”, “자유롭게 비평을 생산·배포·공유할 수 있는 새로운 비평 공론장의 형성”을 제안하고자 한다.

 

이번호 기획의 주제는 예술검열이다. 박근혜 정권 들어 심화되고 있는 예술검열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주로 미술계와 국악계에서 야기된 예술검열의 사태와 문화행정의 파행을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먼저, 박찬경의 「최근 미술계에서 있었던 검열사태를 보며」는 자국 스페인에서 예술검열의 혐의를 받았던 전 바르셀로나 현대미술관 관장 바르토메우 마리의 국립현대미술관의 신임 관장 임명을 놓고 미술계가 벌인 반대 행동에 참여하면서 갖게 된 예술검열에 대한 자신의 생각들을 정리하고 있다. 그가 보기에 지난 이명박 정권과 현 정권이 문화예술계에서 하고 있는 검열의 행위는 “검열 자체가 목적 이라기보다는 효과적 억제”를 목적으로 하는 “검열의 가능성을 계속 열어두기 위한 어떤 수단”으로 기능하는 권력의 관리술이다. 이밖에 예술검열 사태를 진단하는 두 개의 좌담은 특히 국악계와 공연예술계의 예술검열을 중심으로 다루었다. 「국립국악원 검열과 국악권력,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주제로 벌인 좌담과 정영두 안무가와 일본 예술가들이 함께 토론한 한국의 예술검열에 대한 토크쇼는 검열에 침묵한 국악계의 적나라한 권력의 문제와 한일 양국 예술가들이 검열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제 13회 북 클럽은 영문학자 오길영 교수의 신간 『힘의 포획』(산지니, 2015)을 선정하여 천정환 교수의 사회, 최진석 교수의 토론으로 진행되었다. 오길영 교수는 이 책에서 “근대미학이나 예술론의 한계를 살펴보려는 욕심이 있어 재현론, 반영론, 리얼리즘론 등의 쟁점들을 다시 따져보고” 종래의 재현론을 극복하는 대안을 제시하고 싶었음을 밝히고 있다.

 

이번호 문화현실분석은 최근 우리 사회와 문화의 장에서 제기된 주요 이슈들을 흥미롭게 분석하고 있다. 먼저 최소연의 「테이크아웃드로잉, 희생으로서의 예술」은 도시 젠트리피케이션 재난의 최전선에 위치한 테이크아웃드로잉의 임차인으로서 그녀가 겪은 재난과 유배의 시간들의 의미들을 생생하게 전해들을 수 있다. 그녀는 삶과 예술의 터전이었던 곳이 하루아침에 재난의 현장이 된 상황을 직접 몸으로 겪으면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나는 지금 현대판 유배를 당하고 있다. 왜냐하면 내가 내 집에 있을 수 있고, 내 집에서 나갈 권리가 있어야 하는데 지금 나에게 이 공간에서 나갈 권리가 주어져 있지 못하다.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어야 공간 혹은 장소 혹은 집이라고 얘기 할 수 있는데, 이 공간에서 나갈 수 없는 것이다. 물론, 물리적으로는 나갈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여기를 나가는 순간, 여기를 부당하게 빼앗길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면, 나는 잠시도 이 공간을 벗어날 수가 없다. 그렇게 불안정한 구조 속에 있기 때문에 여기를 유배지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 그녀는 재난의 상황을 인정하고, 이 상황을 막을 수 없다면, 당당하게 예술이 어떻게 자본의 젠트리피케이션의 희생자가 되는 지를 기록할 것을 다짐한다.

 

조선령의 「복면의 문화정치학」은 “오늘날 세계를 떠돌고 있는 여러 이미지들 중에서 유난히 눈에 자주 띄는, 설명하기 어렵고 매우 특이한 이미지 하나”가 바로 복면 혹은 얼굴가리기의 이미지임에 주목하면서. 최근 논란이 되었던 일명 ‘복면금지법’에 저항한 예술행동과 메르스 사태에서 많은 시민들이 사용한 마스크 등 우리의 일상에서 낮설지 않은 복면착용의 사례들을 분석한다. 그녀가 보기에 복면과 가면은 다른 의미를 가진다. “복면은 벌거벗은 생명의 반대편에 있는 고전적인 가면이 아니다. 오히려 복면은 가면의 안티테제이다.” “가면이 하나의 페르소나라면 복면은 그 어떠한 정체성도 없는 순수한 차단막 그 자체이다.” 그런 점에서 복면은 새로운 정체성을 부요하는 가면과는 다르게 정체성 자체를 삭제한다. 복면이 우리사회의 문화기호적 의미를 갖는 것은 그것이 생산하는 다양한 정치적, 사회적 맥락 때문이다.

 

헬조선의 문화사회적 현상을 분석하는 김학준의 「질식의 예감」은 소위 ‘국까론’이 헬조선 담론에 미친 영향을 주목하면서, “자기혐오이며 동족혐오인 국까론은 한국사회가 그 동안 발전의 감정적 원천으로 동원해온 애국심이 파탄났다는 사실을 담담히 보여준다”고 말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헬조선의 담론은 “어떤 책임도, 현실감각도, 비전도 없고”,  “명백한 죽음에의 공포가 온몸에 와 닿고 있음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질식감이, 헬조선의 진정한 멘탈리티”임을 이 글은 말하고 있다. 최근 웹툰의 문화적 붐과 그 재현적 성격을 분석한 박범기의  「웹툰, 사회적인 것을 재현하는 대중매체?」 는 최근의 웹툰의 창작 경향을 “소셜 웹툰”으로 정의하고자 한다. “적절한 환상을 만들어 그 환상 안에 자족하게 만드는 데서 나아가 직접적으로 사회의 모습을 당면하고 재현하는 작품들이 많다는 점에서 웹툰은 기존의 대중매체가 사회적인 것들을 다뤄왔던 방식과 다른 형태로 사회적인 것들을 재현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근대성 연구는 이번호부터 세월호 2주년을 맞아 ‘재난과 근대성’을 주제로 1년간 연재할 계획이다. 제일 먼저 기고한 이기훈의 「사고와 재난의 근대성 1 – 해상교통」은 식민지 조선에서 일어난 해난 사고들을 리뷰하면서 그때의 재난의 사고가 지금과 매우 흡사한 면을 부각시키고자 한다. “일제하의 해난 사고들을 통해서 한국의 근대에서 재난과 사고들의 양상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당대 사회의 안쪽을 들여다보도록 하자”는 것이 이 글과 이 연재의 목적이다.

 

마지막으로 이론의 재구성은 두 편의 글을 실었다. 먼저 정치철학연구자이자 전문 번역가인 김상운의 「평등과 차연 sive 민주주의와 타자: 랑시에르의 데리다 비판 재검토」는 글의 제목대로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자크 랑시에르의 데리다 비판을 분석한 글이다. 랑시에르는 자신의 민주주의 개념을 축으로 데리다에 대한 두 개의 글을 영어로 내놓았는데, 「민주주의는 무엇을 뜻하는가?」와 「민주주의는 도래해야 하는가? : 데리다에게서의 윤리와 정치」가 그것이다. 이 두 개의 텍스트들에서 랑시에르는 자신이 던진 질문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전개하며, 자신의 민주주의 개념을 데리다의 그것과 구별하고자 한다는 점을 이 글은 주목하고 있다. 그리고 수유너머 N 연구원인 이종현의 「시빌리테의 예술, 예술가로서의 시민」은 시민권의 새로운 구성에 천착했던 에티엔 발리바르가 예술과 정치를 사유하는 방식에 주목해 보고자 한다. 발리바르는 시빌리테를 예술과 정치의 접근지대로 파악하고 있는데, 그가  「정치의 세 개념」에서 제안하는 시빌리테는 정치의 타율성의 타율성, 즉 정치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들이 “주체를 낳는 방식, 또는 조건들이 주체에 의해 경험되는 방식”임을 강조한다.

 

『문화/과학』은 국내 유일의 문화이론 전문지로서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앞으로 새로운 변신을 꾀하고자 많은 계획을 세우고 있다. 먼저 함께 책을 만들고 있는 편집위원들의 역량을 지금보다 더 살리기 위해 다음호부터는 책임편집위원 제도를 만들어 해당 편집위원이 책 발간 일체를 책임지는 시스템을 만들고자 한다. 당장 다음 86호의 특집주제인 ‘이데올로기와 정동’은 김성일 편집위원이 맡을 예정이고, 90호까지 특집주제와 책임 편집위원을 미리 선정하여 장기기획에 돌입하였다. 그리고 실무운영 간사를 두어 편집회의 ‘북클럽’, ‘독평회’ 행사를 체계적으로 운영할 계획이고, 후원독자를 적극 확대하여 독자 대중들의 폭을 지금보다 훨씬 넓힐 것이다. 『문화/과학』 후원 독자들의 변함없는 격려와 지지를 당부 드린다.

 

반가운 소식 하나 전한다. 수유너머 N 연구원이자 이화여자대학교 탈경계인문학 HK 연구교수로 재직 중인 최진석 선생이 신임 편집위원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서울대학교에서 러시아문학을 전공하고 러시아 국립인문대학교에서 문화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최진석 선생은 비판적 문화연구의 이론적 지평을 넓히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

 

그리고 85호 발간에 앞서 올해 2월로 중앙대학교에서 정년퇴임 하시는 강내희 선생님에게 감사와 축하의 말을 편집위원들을 대신해 전하고 싶다. 아시다시피, 강내희 선생은 『문화/과학』을 창간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셨고, 오래 동안  『문화/과학』 발행인으로 계간지의 발전에 기여하셨다. 앞으로 선생님의 학문적, 운동적 여정이 더 빛나시길 바란다.

 

2016. 3.

편집인 이동연

 

 보도자료

 

수신: 문화부 학술/출판 담당기자 

발신: 계간 『문화/과학』 편집위원회, 문화연대 

      (연락처: 편집인 이동연 010-8307-0464 sangyeun65@naver.com

 

 

제목: 계간 『문화/과학』 85호(비평전쟁) 발간 보도요청 

● 85호 특집으로 신경숙 표절 사태를 계기로 비평의 위상과 역할, 실천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를 주장하는 <비평전쟁> 기획!● 비평의 위기를 극복하는 메타비평의 선언, 비평과 권력-자본의 커넥션 문제, 문학패권주의의 해체, 비평 논쟁의 역사, 하위문화 비평의 새로운 경향과 한계 등을 다룬 5편의 글 수록!

● <기획>란에 박근혜 정부 하에서 벌어진 최근 예술검열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문제제기한 원고와 좌담-토크쇼 내용을 수록!

● 문화현실분석에 테이크아웃드로잉 사태, 복면의 문화적 의미, 헬조선 현상, 소셜웹툰 인기 원인 등을 분석한 문화비평글 수록!

● 제13회 북클럽으로 충남대학교 오길영 교수의 <힘의 포획> 토론 내용 수록!

● <근대성 연구>는 1년간 ‘근대와 재난’을 주제로 연재 시작!

● 발리바르의 예술이론과 랑시에르의 데리다 비판에 대한 재조명을 다룬 이론의 재구성 2편 수록!

 

특집 주제 <비평전쟁> 소개 

 

허핑턴포스트에 실린 소설가 이응준의 신경숙 표절 제기 글은 한동안 깊은 동면 상태에 있던 비평의 비판적 장을 다시 일깨웠다. 비평과 비평가들은 일제히 신경숙 표절의 심각한 문제들을 다시 거론하며 논쟁의 불씨를 당겼고, 신경숙 표절의 배후에 있는 ‘창비’와 ‘문학동네’와 같은 대형 문학출판사들의 권력화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했다. 신경숙씨는 논란이 있고 한참 지난 후 지면 인터뷰를 통해 애매하게 사과했고, 잠정적인 절필을 선언했다. 창비와 문학동네는 뒤늦은 감이 있지만, 편집인과 편집위원 교체 등으로 쇄신책을 발표했다. 신경숙 표절 논쟁에서 도덕적, 윤리적 우위를 지닌 비판적인 비평과 비평가들은 이 국면에서 문학권력에 일부 변화를 일부 이끌어내고자 분투했다.

 

그러나 비평의 공세에 이기기 못하고, 스스로 자구책을 제출한 창비와 문학동네의 일부 변화의 움직임이 과연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의 표절 국면으로 대변되는 한국 문학의 당면한 많은 현실적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여전히 창비와 문학동네로 대표되는 한국문학의 지배적 장은 깨지지 않을 것이고, 오히려 오래 동안 안고 있던 폐부를 도려냄으로써, 그 권력의 재생산은 가속화될 수 있을 것이다. 의회 정치의 한계를 깨기 위해 시작된 필리버스터가 의회정치의 벽을 더 공공하게 만들었듯이, 신경숙 표절 사건에 개입하는 수많은 비평과 비평가들이 근본적인 문학의 장에 대한 자기내파를 하지 않는 이상, 표절사건에 개입한 비판적 비평들은 문학의 지배적 장을 더 공고하게 만들어 주는 양심적인 시멘트 역할에 머무를지 모르겠다.

 

『문화/과학』이 85호 특집을 ‘비평전쟁’이란 다소 도발적인 주제로 선정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신경숙 표절 논란으로 촉발된 비평의 비판적 기능과 비평가의 실천적 임무를 문학의 장에서만 머무르지 말고 문화와 비평의 장 전체로 확대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텍스트의 물신화와 비평 위기는 비단 문학의 장에서만 벌어진 문제가 아니라 문화의 장 전체에 걸친 문제이다. 우리는 최근 신경숙 표절 사건을 통해 촉발된 문학 장의 위기와 문학권력의 비판에 대해 지금 비평이 제대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인지, 그리고 현재 비평이 처한 일반적 위기는 무엇이고, 비평은 왜 더 이상 읽히지 않고, 본격 비평은 왜 대중에게 외면당하며, 사회적 재난과 정치적 파국에 대해 침묵하고 있는지가 궁금해졌다. 우리는 이러한 문제의식들을 ‘비평전쟁’이란 이름으로 집약했다. 비평전쟁이란 언어는 비평이 텍스트에 벌이는 전쟁, 논쟁의 반대파를 향한 전쟁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비평전쟁의 실제 의미는 비평에 대한 비평의 전쟁이라 할 수 있다. 비평의 외부를 향해, 즉 창작과 출판의 이념과 권력을 향해 치열한 논쟁을 하겠다는 것은 비평전쟁에서 국지전의 형태에 불과하다. 비평전쟁의 전면전은 지금 우리 시대 비평의 존재, 기능과 역할, 새로운 실천에 대한 자기로부터의 싸움에서 시작된다. 즉 비평전쟁은 비평에 대한 비평의 전쟁, 즉 메타비평적 투쟁을 의미한다. 이번 특집에 실린 5편의 글은 모두 신경숙 표절 사건이 계기가 되었지만, 그 방향과 결론은 기존의 비평과는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다.

 

<목  차> 

 

특집: 비평전쟁

비평전쟁시대의 메타비평 메뉴페스토  ————————————– 이동연(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권력과 문화자본으로서의 비평의 문제들——————————— 정원옥(계간 『문화/과학』 편집위원 )

퇴행의 시대와 ‘K문학/비평’의 종말———————————오혜진(문화연구자)

비평논쟁을 통해 본 신경숙 표절 사건의 역사적 성찰———————오창은(중앙대학교 교양학부대학 교수)

하위문화 비평의 궤적과 방향: 만화·애니메이션·게임 비평을 중심으로———-강신규(계간 『문화/과학』 편집위원)

 

 

기획: 예술검열

최근 미술계에서 있었던 검열사태를 보며————————–박찬경(미술가, 영화감독)

좌담, 국립국악원의 예술검열, 무엇이문제인가? ———–이동연, 유춘오(국악잡지 『라라』 편집장), 김서령(연출가)

한국예술 검열토크 —————————————————————–정영두(안무가) 외

 

문화과학 제14회 북클럽

오길영 『힘의 포획』(산지니, 2015)

패널: 오길영(충남대학교 영문학과 교수), 천정환(성균관대학교 국문학과 교수),

최진석(수유너머 N 연구원)

 

문화현실분석

테이크아웃드로잉, 희생으로서의 예술————————————— 최소연(테이크아웃드로잉 대표)

복면의 문화정치학———————————————————— 조선령(부산대학교 교수)

질식의 예감 —————————————————— 김학준(아르스프락시아연구소 연구원)

웹툰, 사회적인 것을 재현하는 대중매체?————————————- 박범기(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근대성 연구: 재난과 근대성

사고와 재난의 근대성 1 – 해상교통 ———————————이기훈(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HK 교수)

 

이론의 재구성

평등과 차연 또는 민주주의와 타자: 랑시에르의 데리다 비판 재검토———–김상운(정치철학연구자, 전문번역가)

시빌리테의 예술, 예술가로서의 시민——————————————–이종현(수유너머 N 연구원)

 

 

<84호 주요 원고 소개>

 

특집: <비평전쟁>

 

이동연의 「비평전쟁 시대의 메타비평 메뉴페스토」

이 글은 이번 특집의 문제의식을 대변하고 있는 글로, 현재 비평의 위치를 재정립할 것을 촉구한다. 그는 “신경숙 표절 논란에서 비평이 해야 할 일은 표절의 객관적 근거를 밝히고, 그 배후의 문학권력을 비판하는 것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 비평은 문학과 문학비평의 장에 대한 자기 내파와 새로운 대안적 장을 형성하기 위해, 상실된 비판의 복원과 상상해야 할 새로운 비평의 위상과 역할을 물어야 한다. 비평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던져야 하며, 문학 장에 대한 자기부정의 미적인 근거를 찾아야 하며, 비평의 급진적 상상력을 위한 사회적, 정치적 논쟁에 뛰어들어야 한다. 비평은 달라진 비평 장의 환경과 문화생태계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인지적 지도그리기와 혐오, 증오, 분노, 배제, 공포의 감정에 휩싸인 우리 사회의 정동적 전환의 정치경제적 맥락에 대해 간파해야 하며, 재난과 파국의 지형의 토폴로지를 분석해 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말하자면 비평의 위상과 실천을 재구성하는 메타비평적 선언이 필요하다는 것인데, 그러한 메타비평의 메뉴페스토는 “전쟁과 폭력으로부터의 위협, 재난을 더 재난스럽게 만드는 통치술, 사회적 안전망이 거세된 일상의 위협들, 차별받고 배제된 사람들, 인권 없는 인권자들, 세월호를 비롯해 사회적 재난의 국면에서 잊혀져가는 피해자들, 도시의 젠트리피케이션에 희생되고, 국가의 검열로 창작의 권리가 박탈당한 예술가들의 현실”에 맞서는 싸움이다.

 

정원옥 「권력과 문화자본으로서의 비평의 문제들」

이 글은  『문화/과학』 일부 편집위원들이 이번 특집 주제를 위해 별도의 집담회를 마련하여 토론한 내용들을 대표 집필한 글이다. 이 글은 “비판적 기능을 담당하는 비평권력이 우리 문화예술계에는 존재하지 않거나 제대로 작동되지 못하고 있다고 할 때, 비평의 기능 회복을 위한 가능성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문학, 미술, 영화, 국악 분야에서 내재된 권력과 비평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권력의 현실적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진행되고 있는 미술계, 문학계 등의 대안적 행동에 대해 주목하고, 비평의 자유로운 발언과 공론장의 가능성을 강조한다.

 

오혜진 「퇴행의 시대와 ‘K문학/비평’의 종말」

이 글은 이번 특집 글 중에서 단연 주목할 만한 글이다. 그녀의 글은 신경숙 표절 논쟁에서 비판적 담론을 생산했던 많은 기성 평론가들과는 매우 다른 입장, 즉 비판적 여성주의, 소수자주의, 반계몽주의, 반문학패권주의의 입장에 서 있다. 오혜진은 2015년 신경숙 표절 논란에서 재론된 문학권력론은 “1990년대의 문학(장)이 신자유주의적 질서에 침윤되면서 정당한 사후평가를 받지 못한 채 폭력적으로 청산된 것들, 즉 ‘억압된 것들의 귀환’”이며, “이들이 기억하는 신경숙과 창비의 성장과정은 ‘진보적 가치’의 보루였던 한국문학이 ‘변절’ 혹은 ‘타락’한 시간과 겹친다”고 본다. 2015년 문학권력론이 다시 제기된 내면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문제는 문학권력론의 두 입장들이 “여전히 차세대 ‘에이스’ 발굴에 골몰한다는 점, 즉 세계문학‧노벨상‧영화화 등의 강박을 통한 가부장적이고 패권주의적인 욕망을 공유”한다는 데 있다. 예컨대 ”‘장편대망론’은 바로 이러한 586세대의 낡은 공통감각이 공모해 만든 지배적 문학규율이었으며, 여기에 깃든 정치적 무의식은 명백히 1990~2000년대 문학사의 젠더화와 타자화를 통해 586세대의 노스탤지어와 정통성에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이었다.” 이런 정황에서 한국문학의 현실을 “‘수준미달’의 작가 신경숙 및 상업주의와 결탁한 창비의 ‘타락’ 탓으로 돌리는 것은 어딘지 전가의 혐의가 있”다고 판단하면서 오히려 요즘 젊은 독자들이 “엘리티즘적 계몽주의, 가부장주의, 시장패권주의, 순문학주의와 같은” 한국문학의 퇴행의 총체를 ‘K-문학’이라고 냉소적으로 명명하는 사태에 주목해야 한다고 본다. “‘K문학’은 시장패권주의와 결합된 한국문학의 부정적 성격 전반에 대한 종족화를 경유함으로써 ‘한국문학’에 대한 가장 효율적인 조롱의 기표로 활용”되고, 바로 이것이 “21세기의 독자들이 ‘개저씨’들의 K문학/비평 복권에 냉담한 이유”라는 것이다. 오혜진은 “‘타락’한 한국 문학장을 ‘계도‧정화’하기 위해 비평의 권위가 ‘회복’돼야 한다는 관점은 여전히 20세기적 계몽주의 프레임에 붙들려 있”는 것이라고 비판하며, 젊은 독자들을 위한 새로운 독자론의 구성, 문학패권주의에 반대하는 젊은 작가와 비평가들이 한국 문학 장에서 시도하는 새로운 실천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새로운 세대의 비평적 감수성을 갖고 있는 오혜진의 글을 일독하길 권한다.

 

오창은 「비평논쟁을 통해 본 신경숙 표절 사건의 역사적 성찰」

이 글은 한국 문학 및 문화사에 존재했던, 비평의 논쟁사를 거론하면서 비평논쟁이 공론장으로 적극적으로 들어오기를 희망한다. 그는 1920년대 김환의 소설 「자연의 자각」을 놓고 벌인 염상섭, 김동인의 논쟁, 1970년대 미술계에서 발생한 이응로와 남관의 ‘창작과 모방’ 논쟁, 그리고 1990년대 문학평론가 김영혜와 영화평론가 유지나가 펼친 <그대 안의 블루>를 둘러싼 해석 논쟁들을 소개하면서 각각의 논쟁들에서 제기된 비평과 재현의 정치, 한국적 예술과 세계적 예술의 모순, 비평장의 폐쇄성과 전문가주의의 문제들을 지적한다. 그는 현재 비평논쟁이 위축된 이유에 대해 “문화예술의 제도화에 따른 폐쇄성의 강화”, “매체별로, 학회별로, 혹은 소속된 에콜의 진영 안에서만 미치는 영향력”, “비평 담론의 약화와 텍스트 중심주의의 고착화”로 진단하면서, 폐쇄적 제도화와 텍스트 중심주의 비평의 폐해, 공론장의 쇠퇴를 극복할 수 있는 메타비평의 활성화를 제안한다.

 

강신규 「하위문화 비평의 궤적과 방향: 만화·애니메이션·게임 비평을 중심으로」

이 글은 수용자의 영역에서는 활발한 한국 하위문화에 비해 그 장을 다루는 하위문화 비평이 제 기능을 하고 있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지, 그럼에도 지속돼야 할 필요성은 무엇이며, 어떻게 지속돼야 할지를 그동안 그것이 그려온 궤적을 통해 찾아보고자 한다. 강신규는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분야의 비평 현황을 점검하면서, 하위문화 비평의 위축을 극복하는 대안으로 “독창적 이론 및 방법론의 연구”, “비평의 역할에 대한 재정립”, “자유롭게 비평을 생산·배포·공유할 수 있는 새로운 비평 공론장의 형성”을 제안한다.

 

<기획> 예술검열

이번호 기획의 주제는 예술검열이다. 박근혜 정권 들어 심화되고 있는 예술검열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주로 미술계와 국악계에서 야기된 예술검열의 사태와 문화행정의 파행을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박찬경의 「최근 미술계에서 있었던 검열사태를 보며」

이 글은 자국 스페인에서 예술검열의 혐의를 받았던 전 바르셀로나 현대미술관 관장 바르토메우 마리의 국립현대미술관의 신임 관장 임명을 놓고 미술계가 벌인 반대 행동에 참여하면서 갖게 된 예술검열에 대한 자신의 생각들을 정리하고 있다. 그가 보기에 지난 이명박 정권과 현 정권이 문화예술계에서 하고 있는 검열의 행위는 “검열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는 효과적 억제”를 목적으로 하는 “검열의 가능성을 계속 열어두기 위한 어떤 수단”으로 기능하는 권력의 관리술이다.

 

이밖에 예술검열 사태를 진단하는 좌담과 토크는 특히 국악계와 공연예술계의 예술검열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좌담회, 「국립국악원 검열과 국악권력, 무엇이 문제인가?」, 「예술검열 토크쇼」 

이 좌담회와 토크쇼는 국립국악원의 예술검열과 국악계 침묵의 관계를 다룬 좌담과 정영두 안무가와 일본 예술가들이 함께 토론한 한국의 예술검열에 대한 토크쇼는 검열에 침묵한 국악계의 적나라한 권력의 문제와 한일 양국 예술가들이 검열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문화현실분석> 

 

최소연 「테이크아웃드로잉, 희생으로서의 예술」

이 글은 도시 젠트리피케이션 재난의 최전선에 위치한 테이크아웃드로잉의 임차인으로서 그녀가 겪은 재난과 유배의 시간들의 의미들을 생생하게 전해들을 수 있다. 그녀는 삶과 예술의 터전이었던 곳이 하루아침에 재난의 현장이 된 상황을 직접 몸으로 겪으면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나는 지금 현대판 유배를 당하고 있다. 왜냐하면 내가 내 집에 있을 수 있고, 내 집에서 나갈 권리가 있어야 하는데 지금 나에게 이 공간에서 나갈 권리가 주어져 있지 못하다.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어야 공간 혹은 장소 혹은 집이라고 얘기 할 수 있는데, 이 공간에서 나갈 수 없는 것이다. 물론, 물리적으로는 나갈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여기를 나가는 순간, 여기를 부당하게 빼앗길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면, 나는 잠시도 이 공간을 벗어날 수가 없다. 그렇게 불안정한 구조 속에 있기 때문에 여기를 유배지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 그녀는 재난의 상황을 인정하고, 이 상황을 막을 수 없다면, 당당하게 예술이 어떻게 자본의 젠트리피케이션의 희생자가 되는지를 기록할 것을 다짐한다.

 

조선령 「복면의 문화정치학」

이 글은 “오늘날 세계를 떠돌고 있는 여러 이미지들 중에서 유난히 눈에 자주 띄는, 설명하기 어렵고 매우 특이한 이미지 하나”가 바로 복면 혹은 얼굴가리기의 이미지임에 주목하면서. 최근 논란이 되었던 일명 ‘복면금지법’에 저항한 예술행동과 메르스 사태에서 많은 시민들이 사용한 마스크 등 우리의 일상에서 낯설지 않은 복면착용의 사례들을 분석한다. 그녀가 보기에 복면과 가면은 다른 의미를 가진다. “복면은 벌거벗은 생명의 반대편에 있는 고전적인 가면이 아니다. 오히려 복면은 가면의 안티테제이다.” “가면이 하나의 페르소나라면 복면은 그 어떠한 정체성도 없는 순수한 차단막 그 자체이다.” 그런 점에서 복면은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하는 가면과는 다르게 정체성 자체를 삭제한다. 복면이 우리 사회의 문화기호적 의미를 갖는 것은 그것이 생산하는 다양한 정치적, 사회적 맥락 때문이다.

 

김학준 「질식의 예감」

이 글은 헬조선 현상에 대한 비판적 글로  소위 ‘국까론’이 헬조선 담론에 미친 영향을 주목하면서, “자기혐오이며 동족혐오인 국까론은 한국사회가 그 동안 발전의 감정적 원천으로 동원해온 애국심이 파탄났다는 사실을 담담히 보여준다”고 말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헬조선의 담론은 “어떤 책임도, 현실감각도, 비전도 없고”,  “명백한 죽음에의 공포가 온몸에 와 닿고 있음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질식감이, 헬조선의 진정한 멘탈리티”임을 이 글은 말하고 있다.

 

박범기의 「웹툰, 사회적인 것을 재현하는 대중매체?」

최근 웹툰의 문화적 붐과 그 재현적 성격을 분석한 박범기의 「웹툰, 사회적인 것을 재현하는 대중매체?」는 최근의 웹툰의 창작 경향을 “소셜 웹툰”으로 정의하고자 한다. “적절한 환상을 만들어 그 환상 안에 자족하게 만드는 데서 나아가 직접적으로 사회의 모습을 당면하고 재현하는 작품들이 많다는 점에서 웹툰은 기존의 대중매체가 사회적인 것들을 다뤄왔던 방식과 다른 형태로 사회적인 것들을 재현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문화과학사 전화: 335-0461/팩스: 334-0461   e-mail: transics@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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