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10호][칼럼]복면가왕, 클레오파트라의 가면 놀이(이동연)

복면가왕, 클레오파트라의 가면 놀이

 

이동연(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매주 일요일 늦은 오후에 방영되는 문화방송의 <복면가왕>이 요즘 화제다.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화생방실 클레오파트라가 압도적인 가창력으로 모든 도전자들을 물리치고 4연승을 달리면서 그 가면의 주인공이 과연 누구인지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클레오파트라의 독주는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가, 그 가면을 벗길 사람은 누가 될 것인가를 놓고 벌이는 가면놀이가 제대로 흥미를 끌고 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그 가면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고 있다. 승리가 계속될수록 가면의 주인공에 대한 심증은 확증으로 바뀌고 있다. 4주 연속으로 상대방을 이길 수 있는 가창력의 소유자, 작은 키의 남성 보컬, 고음에서 숨길 수 없이 드러나는 특유의 보컬 음색, 목에 있는 두 개의 점, 그리고 타 방송 프로그램에서 부른 ’오페라의 유령’과의 높은 싱크로율 등 클레오파트라가 가수 김연우일 거라는 예측은 이제 이론의 여지가 없는 듯하다.

아주 분명한 예측에도 불구하고 복면가왕 클레오파트라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식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가면놀이의 독특한 심리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복면가왕의 게임은 노래 대결에서 지는 사람만 가면이 벗겨지는 룰을 가지고 있다. 클레오파트라가 노래 대결에서 이기는 한 그의 가면을 벗길 수 없다. 아무리 클레오파트라가 김연우라고 주장해도 그가 노래 대결에서 지지 않은 이상 그의 정체를 밝힐 수 없다. 한쪽은 가면을 벗기려하고 다른 쪽은 가면을 계속 유지하려고 하는 이 가면놀이는 가창을 생명으로 삼는 가수 입장에서는 결코 물러설 수 없게 만드는 게임의 규칙이다. 그리고 가면놀이는 가왕의 자리를 지키려는 자와 그것을 뺏으려는 자 사이의 ’배제와 전복’의 법칙이라는 매우 원시적인 권력 투쟁의 원리를 갖고 있다.

사람들은 클레오파트라가 김연우라는 것을 확신해도 마음 한 구석에는 그 주인공이 다른 사람이었으면 하는 반전의 기대 심리를 가지고 있다. 1999년에 미국 프로레슬링 WWE 소속 선수 오웬 하트는 항상 가면을 쓰고 링 위에 등장한다. 항상 푸른색 검은 망토와 가면을 쓰고 나왔기 때문에 그는 ’블루 블레이저’라는 애칭을 갖고 있었다. 관중들은 블루 블레이저가 등장하면 상대방 선수가 그의 가면을 벗겨주길 기대한다. 왜냐하면 상대방 선수가 그의 가면을 벗겼을 때, 간혹 다른 선수가 나타나거나, 심지어는 블루 블레이저의 반대파 선수가 얼굴을 드러내 관중들을 충격에 빠트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레슬링 게임의 승패의 여부는 가면을 벗기느냐 마느냐에 달려있다.

대중들은 문제의 가면을 벗겨내 자신이 예상한 사람을 확인하고 싶지만, 반대로 전혀 엉뚱한 사람이 나타나기를 바라는 이중의 심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똑같은 심리로 가면의 정체를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욕구와 그냥 가면이 유지되기를 바라는 욕구를 동시에 갖는다. 이것이 복면가왕, 클레오파트라 가면놀이의 이중의 심리구조이다.

대중들은 클레오파트라의 노래를 계속 듣고 싶은 마음과 그의 가면을 빨리 벗겨 정체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 두 마음은 양립할 수 없다. 노래를 계속 듣고 싶다면, 그 가면을 벗길 수 없다. 그리고 가면이 벗겨지는 순간,듣고 싶은 노래의 순간은 그 걸로 종식된다. 클레오파트라의 가면놀이는 그래서 그 결과가 자명하면서도 재미있다. 그것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더불섬’ 게임이다. 언젠가는 밝혀질 클레오파트라의 가면놀이이지만, 대중들은 반전의 순간마저 기대하면서 그 실체의 순간을 유보하는 쾌락을 즐기고 있다. 복면가왕, 클레오파트라의 가면놀이는 최근 유승민 대표의 사퇴로 마무리된 ’배신의 정치’란 이름의 권력의 가면놀이보다 훨씬 건전하고 즐겁다. ‘배신의 정치’란 가면놀이에서 결국 누구의 가면이 벗겨져 민낯이 드러난 것일까? 클레오파트라의 가면은 여전히 흥미진진하게 벗겨지지 않고 있는 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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