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10호][후기]제12회 『문화과학』 북클럽 참관 후기-현실의 ‘영웅’들을 찾아

제12회 『문화과학』 북클럽 참관 후기

-현실의 ‘영웅’들을 찾아

 

 

정 일 수

(중앙대 영문학 박사과정)

 

 

“국가들의 기억을 우리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국가는 공동체가 아니며 그런 적도 없었다. 어떤 나라의 역사가 한 가족의 역사처럼 보이더라도 사실 정복자와 피정복자, 주인과 노예, 자본가와 노동자, 인종 및 성별상의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에서 (때로는 폭발하지만 대부분은 억압되는) 이해관계의 격렬한 갈등을 감추고 있다. 그리고 이런 갈등의 세계, 희생자와 가해자의 세계에서 알베르 카뮈의 표현처럼 가해자의 편에 서지 않는 것이 생각 있는 사람의 할 일이다. … 가난한 이들의 외침이 항상 정의롭지는 않지만,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정의가 무엇인지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하워드 진)

 

 

지난 6월 12일 금요일 초저녁, 예정된 오후 일정을 미루고 광화문 광장으로 발길을 옮겼다.도착한 곳은 이순신 장군 동상 앞. 현재 이곳은 ‘세월호’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서명운동과 희생된 학생들을 추모하는 공간이다. ‘신화’속 한 영웅이 이토록 간절했던 적이 또 있을까. 영웅은 바라지도 않는다. 동상을 잠시 바라보며 역사 속에서 수많은 비극적 사건들과 그에 희생된 무고한 사람들을 생각해보았다. 영웅은 없고 비극만을 목격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을 마주한 우리의 숙명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만들어지고 다듬어지며 심지어 부활되기도 하는 것이 ‘영웅’이라면 그 영웅을 만든 비극의 희생자들은 항상 왜곡되고 뒤틀리며 지워져왔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책임은 어쩌면 현실의 목격자 우리 자신들에게 있는지 모른다. 기억의 매체와 수단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우리는 정보의 범람과 그 속도에 짓눌려 채 너무나 쉽게 망각해버리는 것은 아닐까? ‘무엇을 기억하는가’가 아닌 ‘어떻게 기억하는가’를 되묻는 것이 여전히 진행 중인 시대이다.

 

제12회 <문화과학 북클럽>이 비록 안산, 팽목항은 아니더라도 실내가 아닌 광화문 광장 한복판, 그것도 세월호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서명운동과 추모의 공간 한 가운데에서 개최된 점은 매우 긍정적이라 생각한다. 4·16 1주기 추모집회 이후 다시 찾은 이곳은 다양한 시민단체와 종교단체가 모여 진상조사를 위한 서명운동과 추모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 비극이 일어난 지 1년이 훌쩍 지났음에도 발길을 지나치지 않고 국화꽃 한 송이를 헌화하거나 서명에 참여하는 학생들과 시민들도 보였다. 오후 일곱 시부터 시작된 토론은 밤 아홉 시가 다 되어서야 마무리되었다. 북클럽의 사회는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이자 계간 『문화과학』 편집위원이신 이명원 선생께서 맡으셨다. 토론에는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실장 후지이 다케시 선생, 수유너머N연구원이자 『문화과학』 편집위원 정정훈 선생, 인문학협동조합 대외이사 강부원 선생이 참여하셨다. 북클럽에서 토론한 책은 『금요일엔 돌아오렴』, 『팽목항에서 불어오는 바람』, 『세월호를 기록하다』였다. 첫 번째 책이 유가족들의 목소리와 현장의 소리를 담았다면, 두 번째는 세월호 사건을 목격하고 분석하는 학자들의 목소리를,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세월호 사건에 대한 상세한 과정을 담은 것이다.

세월호 사건에 관하여 이 세 권의 책이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한 사회자의 질문에 먼저 강부원 선생은 이 책들이 세월호 사건의 속류 정치화에 대한 고민을 던져주면서 동시에  담론적 성찰의 도구로 기능할 수 있음을 강조하였다. 특히 세 권의 책 중에서도 『세월호를 기록하다』는 단순히 일반적인 재난 서사로 볼 수 없다고 덧붙여 설명하였는데 그 이유는 이 책이 비선형적 서사와 기록 서사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 재난 서사와는 달리 『세월호를 기록하다』는 세월호 사건에 대한 우리 사회의 잠재된 무책임을 드러내준 책이다. 강부원 선생의 이야기에 따르면 현장의 유가족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표출할 수 있는 언어를 달라고 지식인들에게 요청하였다고 한다. 언론의 의견이 아닌 자신들의 의견을 담아낼 ‘언어’가 부재함을 알게 해주는 대목이다. 그 자리에 있던 나는 유가족들의 요청사항을 듣는 순간 세월호 사건을 기록한 세 권의 책이 가진 중요성이 결코 가볍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정정훈 선생은 『금요일엔 돌아오렴』 과 『팽목항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무엇보다 혼란스러운 세월호 사건에 대하여 정리를 잘 해준 책이면서 동시에 우리가 세월호를 이해한다는 것에 대한 ‘말’과 ‘진실’ 그리고 앞으로 더 나아갈 필요성이 요구되는 ‘행위’의 어려움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어떤 무력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출구를 모색하게 해줄 수 있는 책이라고 언급하였다.이어서 후지이 다케시 선생은 『금요일엔 돌아오렴』과 『세월호를 기록하다』 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기록이 중심인 반면에 『팽목항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4·16 이후 벌어진 양상을 기록한 점을 특징으로 언급하면서 “왜 ‘우리’의 모습은 기록하지 않는가?” 라는 질문을 제기하였다. 세월호 사건을 목격한 ‘우리’의 상처를 감히 희생자와 유가족에 비견할 수는 없지만 그 충격으로 트라우마와 우울증을 겪고 있다는 점에서 목격자인 ‘우리’는 4·16의 당사자라고 다케시 선생은 주장하였다.

이어서 다케시 선생은 세월호 사건을 단지 해경과 국가의 책임이라는 틀로 바라보려는 것에 문제성을 제기하였다. 현장에 나간 해경들과 관련 공무원들이 책임의식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위치가 요구하는 제한된 ‘책임의식’만을 지녔다는 것이다. 즉 자신의 최소한의 의무만을 다하는 것을 ‘책임’으로 생각하는 자세가 어쩌면 우리 개인들과 사회 전체의 모습이 아닐까라는 반문을 던지면서 그는 지시만을 따르는 사람들은 무책임한 것이 아니라 공감능력이 부재한 것이며 이점을 세월호 사건의 본질로 보았다. 그의 주장은 ‘책임’이 아닌 다른 문제의 틀로써 이 사건을 바라볼 필요성을 우리에게 제기하였다. 사회자 이명원 선생은 다케시 선생의 논의에 덧붙여 자신의 위치에서만 책임을 다하는 자세는 곧 인간으로서의 보편적인 수준으로 가져야 할 공감능력이 부재함을 지적하면서 세월호 사건을 우리가 한 개인의 피해로 몰아가는 것은 목격자인 ‘우리’를 역사 속에서 지워버리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어서 그는 세월호 참사와 함께 드러나는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맥락들을 목격자인 우리가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였다.

정정훈 선생은 모든 기록들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을 분명하게 밝히지 못하는 현실을 지적하면서 만일 이 모든 책들의 기록이 진실이라면, “이 책들이 독자들에게 요구하는 하는 것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먼저 던졌다. 이어서 그는 책을 읽는 독자들이 겪는 감정적 효과를 통한 ‘호명효과’를 언급하면서 호명효과를 통하여 목격자 ‘우리’를 기록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이명원 선생은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두고 책의 기록된 내용들이 ‘사실’ 혹은 ‘진실’이라는 주장에 대하여 우려를 표명하였다. 사실부터 왜곡되는 지금의 현실을 지적하면서 그는 유가족들이 요구하는 진실에 대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현실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 가능할 수는 있지만, 눈물 없이 읽기 힘든 기록이 오히려 일종의 카타르시스 같은 효과를 만들어냄으로써 공감해야 할 고통의 정서가 휘발성을 가지게 되지는 않을까라는 염려를 표명하였다. 이에 대한 반론으로 정정훈 선생은 『금요일엔 돌아오렴』이 단순한 카타르시스 효과만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라고 반박하였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세월호 사건은 “결말이 없는 비극”이다. 죽은 아이의 시신이 돌아왔는데도 부모가 오히려 정부에 고마워해야 하는 이런 상황을 두고 목격자인 우리는 감히 애도할 수도 없으며 잊을 수도 없는 것이 지금의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런 비극이야말로 이 시대의 ‘우리’를 호명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이명원 선생의 지적에 대하여 나는 개인적으로 공감하는 바가 없진 않다.개인적으로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끝까지 읽지 못했던 이유가 좀 더 분명해진 듯하다. 그러나 나는 정정훈 선생의 주장을 부분적으로나마 수용하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을 아직 찾지 못하겠다. 이는 세월호 문제에 접근하기가 그만큼 어렵고도 힘들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다양한 관점의 연구가 절실히 요구된다는 점을 반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문제에 대한 설명이 복잡한 것은 그만큼 그 문제가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이라는 어느 학자의 말이 문득 떠오른다.

세월호 문제는 담론적 차원에서 계속 나아가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논의가 계속되는 가운데 다케시 선생은 우리가 세월호 문제에 대해 아무 성찰 없이 나아가는 것보다는 철저히 그 자리에 머물러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그의 논의에 따르면 역사란 무조건적인 성장 위주의 세계에서 우리의 발목을 잡아주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 이승만 정권에서는 불가능했던 6·25 전쟁 피해자 유가족의 활동이 4·19 혁명 이후에 와서 가능할 수 있었던 역사적 사례를 언급하면서 세월호 유가족과 우리에게 필요한 ‘진실’은 우리가 머물러 있는 시간 속에서 만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어지는 논의에서 강부원 선생은 정치 공학적 출구전략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소위 말하는 정치적 목적으로 선전된 ‘피로 프레임’을 경계하고 사회적 반성능력이 고갈된 현실을 직시하면서 더 나은 발전을 향해 나아가기 위한 프레임 설정이 중요함을 강조하였다.

토론의 방향은 이어서 국가에 대한 논의로 이어졌다. 강부원 선생은 생명과 안전에 대한 권리요구가 무참히 거부된 현실은 곧 우리 정부의 민낯이므로 추상적인 차원에 머물러있는 국가의 한계를 의식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우리 사회가 이제는 다시 국가 이전에 ‘공화국’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부터 시작해야 할 필요성을 언급하였다. 그의 논의에 덧붙여 다케시 선생은 국민국가가 노동력 확보를 위한 목적으로 세워진 산업자본주의의 산물이었다면 노동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 금융자본주의 사회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산물임을 언급하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돈과 폭력만이 남은 시대라고 하였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 신자유주의 시대의 민낯이 결정적으로 드러난 사례로 그는 세월호 사건과 관련하여 나타난 경찰폭력의 양상을 지적하였다.

우리 사회를 공권력이 사라진 사회로 규정한 다케시 선생의 말은 우리 시민들이 그간 우리 사회에서 벌어진 경찰폭력에 대하여 진지한 고민을 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기에 충분하였다.마이크를 이어받은 정정훈 선생은 국민을 살게 하면서 죽는 것은 그대로 놔두는 것이 근대 국가권력의 적극성과 합리성이라고 주장하였던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의 ‘통치성’ 이론을 설명하였다. 그러나 그의 주장에 따르면 심각한 점은 최근 한국 사회의 국가권력은 푸코의 이론과는 전혀 다른 현상을 보여 왔는데 이는 한국 사회의 국가권력이 소극적이고 비합리적리며 사적 합리성에 치우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하였다. 이명원 선생 역시 폭력화된 억압적 질서와 시민들의 무력감만이 남아 있는 현실을 두고 이제는 국가도 사라지고 사회도 사라진 것이 아닐까라는 첨언으로 우려를 표명하였다. 강부원 선생은 이어서 세월호 유가족들이 중간 매개체 없이 정부와 직접 대면하는 것을 방관하는 것은 우리 시민사회가 유가족과 후대에 죄를 짓는 것이며 ‘시민’이라는 것의 최소한의 의미가 바로 협력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우리 사회 시민들은 이제부터라도 유가족들과 협력하여 소극적인 정부와 투쟁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추가로 다케시 선생은 우리 사회에 대하여 물질적 이득에 눈이 먼 손쉬운 재개발 문화를 예로 들면서 “머물지 않으려는 시민 의식”에 대하여 질타하였다. 이와 같은 현상의 역사적 원인으로 그는 한국전쟁으로 파괴된 이후 재건된 한국 사회 특유의 이민사회 분위기를 언급하면서 “전후(戰後) 한국사회는 국가보다는 사회를 먼저 만들었어야 하는 것이 아니었을까요?” 라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그가 말하는 ‘국가보다는 먼저 사회’라는 말을 듣고 나니 나는 마치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 살고 있는 듯한 암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국가 체제라는 지금의 현실에서 다케시 선생의 말은 언뜻 이상적인 수사처럼 들렸다. 그러나 세월호 유가족들 곁에 함께 머물러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우리 사회는 사회적 연대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라는 다케시 선생의 의견을 듣고 나서야 마음 한 구석에서 작은 희망을 보았다.정치적 입장을 벗어나 ‘안전할 권리’라는 공통된 목표야말로 시민 사회의 연대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가장 보편적 가치가 아닐까? 시민사회가 여전히 각자도생의 길을 가려는 움직임이 안타깝다. 건강한 시민 사회야말로 건강한 국가의 초석이자 국가체제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교과서적인 진부한 이야기임을 안다. 하지만 우리가 그 ‘진부함’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새롭고 독특한 것만을 추구하면서 간과한 것들이 또한 얼마나 많은가? 다케시 선생의 논의를 이어받아 우리 사회는 지속적인 투쟁을 위하여 지속 가능한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는 정정훈 선생의 주장과 국가라는 환상, 지도자라는 환상, 물질(돈)환상 등 많은 환상들이 붕괴되어가고 있는 이 시점이 바로 우리의 현재라고 주장한 이명원 선생의 발언으로 토론회는 마무리 되었다. 마지막으로 이어진 청중 토론에서 한 청중은 국가체제를 단지 환상으로 바라보고 시민 사회만을 강조하는 것은 오히려 국가에 대한 패배주의에 젖어들게 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힘이 없는 것은 권리가 아니다”라는 스피노자의 논의를 빌려 그는 ‘발언권’을 예로 들면서 말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이 발언권이 아니라 발언자의 주장을 우리 사회 모두가 들을 수 있어야 진정 발언권이 실현된 사회라고 주장하였다. 그런 점에서 시민 사회는 국가체제에 대하여 패배주의로 일관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국가와 투쟁을 벌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일 것이라 생각하며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제12회 째를 맞이한 계간 『문화과학』의 북클럽. 잦은 초대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학업이라는 궁색한 핑계로 참석 못한 것이 부끄러웠다. 개인적으로 이번 북클럽을 참관하며 느낀 점이 많았다. 많은 학자들의 진지한 토론 간 세월호 사건에 대하여 내 자신이 미처 생각지 못한 지점들을 알 수 있었고 무엇보다 세월호 사건 목격자로서 현실을 살아가며 고수해야 할 우리 자신의 위치에 대하여 고민해볼 수 있었다. 임금의 명령임에도 지는 싸움에는 결코 출전하지 않았던 장군 이순신. 그의 동상 앞에서 진행된 북클럽 토론 내내 나는 영웅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신화가 된 한 영웅의 동상을 앞에서 역사적 비극 속에서 왜곡되고 잊혀져가며 사라져간 수많은 백성들도 떠올려 보았다. 이제껏 나의 현실에 영웅은 존재한 적이 없었던 듯하다. 적어도 내 시대에 영웅은 없다고 입 밖으로 내뱉곤 했다. 하지만 오늘 나는 자신의 위치에서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고 자신의 사회적 위치가 규정한 범위를 넘어서서 책임의식을 가지고 이웃과 연대하며 싸우는 존재들도 있음을 깨달았다. 그들은 항상 소수이다. 현실의 ‘영웅’들이 우리 사회에 결코 적지 않음에 오늘도 작지만 강한 희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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