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9호][칼럼]걸그룹의 문화경제학_이동연

걸그룹의 문화경제학

 

이동연(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풍뎅이, 립서비스, 원피스, 7학년1반, 베드키즈, 단발머리, 딸기우유, 러블리즈, 그리고 레드벨벳. 이 단어들은 2014년 데뷔한 걸그룹의 이름이다. 2014년에 데뷔한 걸그룹은 어림잡아 40팀 가까이 된다. 같은 해 데뷔한 남자 아이돌 그룹이 20여 팀인 점을 감안하면 걸그룹의 수는 압도적이다. 이 글을 읽는 30-40대 남성들 중에서 앞서 열거한 걸그룹의 이름을 반 이상 알고 있다면 그 사람은 분명 부인 몰래, 혹은 가족 몰래 숨죽이며 걸그룹 팬질 삼매경에 빠진 ’삼촌팬’일 것이다. ‘소녀시대’의 ’지’ 열풍 이래 조심스레 형성된 삼촌팬은 ’크레용 팝’에 이르러 당당히 커밍아웃하더니, 지금은 ’에이 핑크’, ‘걸스데이’, ‘AOA’ 등 잘 나가는 걸그룹의 전위대로 공공연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들은 마치 국정원의 슬로건처럼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하는 케이팝 걸그룹의 든든한 정보원들이다. 요즘 걸그룹 전성시대는 삼촌팬들의 성원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걸그룹들은 정말 삼촌팬들만을 위해 존재할까? 그렇지는 않다. 걸그룹은 연예기획사를 위해, 방송미디어를 위해, 부모를 위해, 그리고 자기 자신을 위해 존재한다. 한국의 아이돌, 혹은 걸그룹 형성원리를 잘 모르는 분들은 이렇게 많은 걸그룹이 어떻게 데뷔가 가능한지, 도대체 이들이 뭘 먹고 사는지 의아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걸그룹이란 세계 안에는 이 시장 생태계를 유지시키는 나름의 문화경제학이 있다. 정확한 통계는 아니지만, 해외를 포함해 케이팝 아이돌이 되고 싶은 지망생 수는 대략 3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한 메이저 연예기획사는 연간 5만 명 정도의 아이돌 지망생을 직간접적으로 테스트한다고 한다. 이러한 아이돌 지망생 중에서 걸그룹이 되고 싶은 10대 소녀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이는 예중이나 예고에 진학하려는 학생들 중에서 여학생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과 연관된다. 걸그룹 지망생 부모는 딸의 진학을 위해 예능교육을 시키는 마음으로 시작한다.

 

따지고 보면, 이렇게 많은 걸그룹들 수는 결코 많은 게 아니다. 설사 무명이라 해도 그녀들은 수천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걸그룹으로 데뷔했다. 이들이 처음 걸그룹 지망생일 때는 모두 SM, YG, JYP와 같은 메이저 연예기획사에서 데뷔하고 싶지만, 현실은 절대로 그렇지 못하다. 메이저 연예기획사 연습생을 전전하다 결국 나이가 더 먹기 전에 한 단계 아래의 기획사를 찾아 데뷔하고, 그마저도 안 되면 데뷔만 시켜주면 감사한 마음으로 이름 없는 연예기획사를 찾는다. 이른바 과잉된 걸그룹 지망생이 케이팝 시장의 과잉 공급 사태를 야기한 것이다.

 

걸그룹이 과잉 공급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모두 쓸모없는 것은 아니다. 걸그룹들은 이미 데뷔시절부터 상위그룹-중간그룹-하위그룹으로 구별되고 그 위계에 맞게 활동의 무대가 결정된다. 메이저 기획 출신 상위 그룹들은 데뷔전부터 화제를 뿌리며 각종 방송 프로그램에 단골로 출연하다 해외 진출로 향하지만, 중간그룹들은 한 두 번의 방송출연 이후 인기가 없으면 곧바로 각종 생계형 이벤트 시장에 뛰어든다. 그리고 하위그룹들은 방송 데뷔만 해도 감사하고, 매우 낮은 인지도를 이용해 처음부터 각종 지방의 축제 이벤트 행사장에 투입된다. 데뷔한 걸그룹이 인기가 없어도 상관없다.  데뷔를 기다리는 걸그룹들이 줄 서 있기 때문이다.

 

걸그룹은 시장의 사용가치의 논리에 의해 데뷔와 해체를 반복한다. 사용가치가 없는 걸그룹은 곧바로 시장에서 퇴출된다. 걸그룹의 스타일도 마찬가지다. 요즘 데뷔하는 걸그룹들이 모두 똑같아 보이지만, 그 안에도 다양한 스타일의 차이가 있다. 스타일은 대중들의 욕망을 위해 다양한 형태로 배치된다. 걸그룹의 사용가치는 곧바로 욕망의 교환가치로 전환한다. 걸그룹 ’7학년1반’은 ”오빠바이러스”라는 노래로 젊은 삼촌팬의 혼을 빼놓지만, 평균 나이 34세의 줌마 걸그룹 ’소녀시절’은 ”여보야 자기 사랑해”라는 뽕끼나는 노래로 장년팬을 유혹한다. ‘스칼렛’은 엉덩이, ‘EXID’는 위아래 운운하며 난잡한 섹시미를 과시하고 싶은 반면, ‘러브리즈’나 ’라붐’은 앙증스러운 귀여움으로 어필하려 든다. ‘섹시’와 ’큐트’라는 걸그룹의 상반된 코드는 모두 계산된 걸그룹의 상품형식이다. 그래서 문화경제의  교환가치 논리대로 하면, 걸그룹을 욕망하는 것은 삼촌팬도, 대중도 아니다.그것은 시장 그 자체, 생존하고 싶은 걸그룹 그 자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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