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8호][칼럼] ‘그냥’이 맞서다(권명아)

[야! 한국사회] ‘그냥’이 맞서다

 

권명아(동아대 국문과 교수)

 

결국, 그것을 봤다고 친구가 말한다. 1년이 지나서야 겨우 끝까지 볼 용기가 났다고 한다. 나는 사실 아직 그것을 보지 못했다. 그것은 아이들이 마지막 남긴 동영상 기록이다. 그 죽음을, 비참을, 슬픔을 그 자체로 보는 것은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촉발한다. 인류가 존재한 시초부터 상징과 제의를 통해 그냥 그대로의 슬픔에 직면하는 고통을 완화해온 것도 그런 이유다. 상징도 제의도 없이 슬픔을 그냥 마주하는 일은 무시무시한 일이다. 그런데 그냥 그러고 있어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냥 와서 피켓만 들고 있다구요. 그냥 이것만 한다구요.”

아직 돌아오지 못한 아이, 은화의 엄마는 그냥 그러고 있다고 내내 말한다. 그냥 그렇게 서 있는 엄마를, 슬픔을 그냥 마주해야 하는 고통을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고통의 크기를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냥’이라는 말의 의미를 이해하기 어려운 사회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유족들이 그냥 슬픔을 감당하고 있는 게 아니라, ‘뭔가 거저먹으려 든다’고 매도한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밥을 그냥 준다고 할 때는 도둑이거나 ‘종북’으로 모욕 주기에만 바쁜 실정이다. ‘그냥’은 이유를 따지고 도구적 계산을 앞세우는 입장에서 볼 때 텅 빈 무엇처럼 보인다. 그 텅 빔을 마주하는 건 또 다른 의미의 무시무시함이다.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뒤 1년, 한국 사회는 서로 상반된 맥락에서, ‘그냥’을 마주하는 섬뜩함에 사로잡혀 있다.

한국어에서 그냥은 공짜나 ‘거저’와 같은 뜻이 아니다. 한국어를 연구하는 학자들에 따르면 그냥은 단지 부사로서만이 아니라 맥락에 따라서 복합적인 의미를 지니는 담화 표지의 기능을 한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그냥’은 여러 사건을 거치면서 공짜라는 뜻으로 왜곡·축소되었다. 한국 사회는 ‘어떤 목적이나 조건 없이, 있는 그대로’, 그냥 인간이나 세상을 이해할 능력을 상실했다. 있는 그대로, 그 자체의 모양을 이해하고 대면하는 것이야말로 무엇으로도 환원되지 않는 존재의 가치를 살피는 일이다.

슬픔과 밥이 ‘그냥’의 쓰임과 관련이 깊다는 것은 예사롭지 않다. 밥과 슬픔을 계산하지 않고 함께 나누는 게 당연했던 삶의 흔적이 언어의 쓰임에 남아 있다. 공짜가 아닌 그냥 나누는 밥,계산될 수 없는 슬픔, 이는 인간 사회의 근원적인 영역이자 어떤 이유나 조건도 없이 모두에게 허용된 ‘공통의 것’이다. 그러니 그냥은 없고 공짜만 있는 사회란 공통된 것은 없고, 차별만 존재하는 사회이다. 근본은 없고 계산만 남은 사회이다. 결국 이 계산은 ‘목숨 값’이라는 무시무시한 조어를 낳는다.

  ‘그냥’의 세계를 매도하고, ‘그냥’을 나누려는 모든 움직임을 공짜나 거저 혹은 얼마인가의 맥락으로 환원해버리는 일은 세월호 이후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심각한 상징적 폭력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징적 폭력에 맞서 많은 사람들이 ‘그냥’의 세계를 살려내고 있다. 별다른 이해관계도 없는 무수한 이들이 그림, 사진, 플래시몹 등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을 동원해서 슬픔과 분노를 나누었다. 상징도 제의도 박탈당한 채, 거꾸로 상징 폭력에 시달려야 하는 사람들의 슬픔과 분노를 나누며 그렇게 사람들은 예술을 만들어왔다. 예술이 ‘무사심성’을 바탕으로 한다는 건 바로 이런 뜻이다. ‘공짜인가 아닌가?’만 묻는 상징 폭력에 맞서 ‘그냥 그렇게’ 하기를 계속하는 일,그것이야말로 세월호 이후 우리 앞에 도래한 ‘예술’의 세계이다. 함께 슬퍼하기를 거부하는 정치공동체(국가)와, 공짜냐 아니냐만 묻는 경제 집단을 넘어, 오늘 우리는 모두의 이름으로 그냥 그렇게 문득 출현한 새로운 ‘공동체’를 만나고 있는 것이다.

 

(『한겨레』 칼럼,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86989.html. 2015.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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