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과학] 73호 (2013 봄) – 특집: 어소시에이션과 문화자립

문화/과학 73호 앞표지

2013년 봄 73호

‘무엇을 할 것인가’와 ‘그래도 무언가라도 해보자’ 사이의 플랫폼―73호를 펴내며ㆍ권명아

│특 집│ 어소시에이션과 문화자립
문화적 어소시에이션과 생산자-소비자연합 문화운동의 전망ㆍ이동연
자본주의적 공간 형성에 대한 단상: 독점과 일상생활의 변화를 중심으로ㆍ강정석
협동조합운동의 흐름과 비판적 점검ㆍ하승우
사회적 경제에서 사회적인 것의 문제ㆍ김성윤
공동체를 위한 당사자 운동 ―‘예술인소셜유니온’의 과정과 전망ㆍ나도원
새로운 문화정치의 장, 자립문화 운동 ―문화귀촌, 청년의 소셜 네트워크, 메이커 문화ㆍ송수연

│논쟁_제3회  [문화/과학] 북클럽논쟁 │
광주, 여성 _패널: 정경운 / 김 원 _사회: 권명아

│소특집│한국사회 대선 이후
역사는 반복된다. 모두 비극으로 ―2012년 대통령 선거 경제담론의 리토르넬로ㆍ김덕민
황무지 위에 선 진보좌파,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2012년 대선과 진보좌파의 미래ㆍ서영표

│표지 이미지│
이윤성_ At the last jujilment, 디지털 프린트, 2010

│이미지 에세이│
김기수_ 일몰2, 캔버스 위에 유채, 2012 / 터널, 캔버스 위에 유채, 2012
힐스테이트, 캔버스 위에 유채, 2012 / 분수, 캔버스 위에 유채, 2012
이근해_ 4대강을 위한 위령비―무통별곡, 시멘트 위에 조각-플라스틱 인형, 2011
무애동문―우리가 남이가, 시멘트 위에 돼지 피-플라스틱 인형, 2011
염, 에이취디 3채널 비디오, 2013

│문화현실분석│
SNS 혁명과 그 후…ㆍ권경우
강호동 없는 텔레비전의 불가능성: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인적 독점에 관하여ㆍ홍성일

│이론의 재구성│
(불)가능한 권리와 인권의 정치ㆍ정정훈

│해외 문화연구 동향│
당대 첩보드라마에 드러난 신앙과 문화적 징후ㆍ니웨이(倪偉) | 손주연 역

│근대성과 문화연구│
박정희 정권의 금지곡을 둘러싼 ‘감시와 처벌’ㆍ송현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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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과학] 73호를 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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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호를 펴내며

‘무엇을 할 것인가’와 ‘그래도 무언가라도 해보자’ 사이의 플랫폼

 

2013년 2월 20일. a는 새벽에 일어나 서울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요 몇 달 새 5시간 내외로 겨우 선잠을 자고, 벌떡 일어나 무언가를 해내고 있다. 아니 요 몇 년간 제대로 숙면을 취한 기억이 없다. 매일매일 무엇인가를 기획해보고, 과연 그게 될 것인가 공상을 하다가는 넋이 빠져서 잠이 드는 날들이다. 오늘은 새로운 결속체를 만들어보자는 제안을 받고 서울로 팀원들과 함께 새벽부터 길을 나섰다. 모임에 참가한 사람들 중 누군가는 협동조합을 만들어보자고, 서울시 담당자와 잘 나가는 협동조합 사람들을 미리 만나 나름 부푼 꿈을 안고 나타났다. 또 누군가는 그래서 도대체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이냐고 모인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또 누군가는 제도 안에서 잘 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 보조 장치를 자꾸 만들고,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노력하느니, 차라리 제도 안에서 아무 것도 안하고, 다른 것이 되어서 각자 자기 삶을 사는 게 더 나은 게 아니냐고 독백을 읊조린다. “도대체 무엇을 하고 싶은가요?” “무엇을 할 것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

‘기차가 플랫폼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a의 머리는 어느 새 혼자 꿍꿍 창문을 처박고 있다. 너무 피로하다. 꿈속의 질문들, “무엇을 할 것인가”라고 자꾸 되묻는 얼굴들. 기차 안의 사람들은 스마트 폰을 꼭 움켜쥔 채 모로 새로 기울어져 잠들어 있다. 그들의 기울어진 꿈속에는 어떤 말이 울리고 있나? 왠지 그들의 잠은 평온한 것만 같아 화가 난다. 그러나 구겨진 짐처럼 좌석에 내던져진 그들의 몸은 자기들의 고단한 꿈자리를 온 몸으로 항거하는 것만도 같아서, 화가 났던 스스로가 문득 부끄러워진다. 짐을 챙기고, 플랫폼으로 내려선다. 가방 끈을 추스르고 추운 새벽 집을 향해 광장으로 나선다. 새벽 광장 커다란 액정 화면에서 대통령 취임, 복지국가, 대통합, 인선…자막이 스쳐간다. 거대한 영상, 흘러다니는 자막 밑으로 사람들이 하나둘 스쳐지나간다. 때론 무심하게, 누군가는 뚫어지게 화면을 응시하며 멈춰 선다.

또다시 새벽 버스에 몸을 실으며, 다시 잠에 빠지며, 내일은 또 무언가 다른 것을 시작하게 될 것이라는 예감에 부르르 새벽 공기에 몸을 턴다. 꿈결에, ‘그래 무엇이 될지 몰라도, 해볼거야.’ 신음 같은 잠꼬대를 하며 텅 빈 새벽 버스에서 홀로 잠이 깬다.

2013년 [문화/과학] 73호에 담긴 오늘날 한국의 상황을 나는 이런 짧은 장면을 화두로 삼아 이야기해보고 싶다. 두 번 연속 보수정당이 집권하고, 신자유주의의 파국을 예고하는 것 같은 경제 불황은 생존의 불안한 터널의 종착역을 가늠할 수 없게 한다. 국가를 변혁하거나 진보 진영을 재구축하자는 거대한 공동체에 대한 담론이 여전히 팽배하지만, 한편으로는 이와는 다른 새로운 ‘공동체’(commune)를 구축하려는 시도들도 지속되고 있다. 대선의 패배와 진보 운동의 몰락 앞에서 누군가는 환멸을 곱씹고 과연 무엇을 할 것인가를 되새기고, 또 누군가는 ‘무엇을 할 것인가’보다는 ‘그래도 무엇인가 하겠다’는 결단이 더 소중하다고 논한다. 이번 [문화/과학] 73호 글에 실린 다양한 현실 분석과 진단에서도 이러한 입장 차이들이 두드러지기도 한다.

‘다중’과 ‘봉기’에 대한 일련의 이론적 실천적 논의들이 그간 계속 진행되어 왔듯이 세상을 근본적으로 변혁하는 혁명과 그러한 혁명적 주체화를 위한 정치적 실천과 이론화의 문제는 여전히 중요하지만, 이와는 조금은 다른 지점에서, 삶 속에서 돌발적이고 우연적으로 출현하는 봉기와 결단의 주체성 또한 현실적으로든 이론적으로든 더욱 중요한 문제로 대두하고 있다. 대선 패배와 진보 진영의 한계를 비판하는 많은 논의를 보며 이러한 생각을 다시금 해본다. 기존의 진보 진영에 대한 비판은 더욱 날카롭고 정교하게 제기되어야 하겠지만, 진보 진영의 무기력과 한계에 대한 환멸을 곱씹는 것보다는, 오히려 이와 단절하여 새로운 말과 태도를 갖는 것이 더 중요한 시점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73호의 특집 <어소시에이션과 문화자립>과 작은 특집인 <한국사회 대선 이후>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토대로 기획되었다. 이외에도 73호의 글들은 진보 진영의 기존의 정치적, 담론적 실천의 한계를 점검하고, 새로운 이론과 실천을 모색해보는 차원에서 구성되었다. 이러한 차원에서 73호 [문화/과학]의 구성과 의미를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새로운 편집위원 체제로 [문화/과학]이 세상에 발걸음을 내딛은 후 이제 3번째 호가 나오게 되었다. 지난 시절의 [문화/과학]의 발간사들을 살펴본다. 세계 자본주의의 변화와 국내외 정세, 따끈따끈한 문화분석으로 촘촘하게 지면이 채워졌던

지난 호들을 살펴본다. 어떤 면에서는 문화와 정치 양 측면에서 어느 정도 낙관적이고 활기가 가득한 시절이었다고 새삼 회고해본다. 이에 비해 지금, 여기를 살펴보는 73호의 글들은 다소 비관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정치나 문화, 혹은 문화정치의 측면에서 활로나 낙관적 전망보다 비관적 전망이 좀 더 무겁게 드리워져 있다. 또 [문화/과학]의 입장이 강하게 전면화되고 통일적으로 드러났던 이전의 지면들보다, 73호에는 보다 다양한 입장과 경향이 복합적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변화의 요인은 여러 가지를 들 수 있을 것이다. 현실적인 정세의 변화도 매우 중요할 터이고, 문화연구나 문화정치의 지형도나 현실적, 이론적 파급력의 변화도 한몫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문화/과학] 자체의 편집 방향이나 기획 방향의 변화도 중요하게 이러한 변화를 내적으로 추동하는 요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 듯하다. 그리 긴 시간도 아니고, 집중적이고 통일된 논의나 결론을 본 것은 아니지만, 편집위원 체제가 개편된 후 [문화/과학]은 내적으로 어떤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편집위원 전체의 의견이 결집된 것이거나 명문화된 것은 아니지만, 73호에도 반영된 어떤 경향적 흐름을 간략하게 개인적 차원에서 분석해보고자 한다. 먼저 현실분석에 있어서 이론의 집중도가 강했던 경향에서 현장의 목소리와 흐름을 분석하는 경향성을 높이려 한 측면이 이번 호에 가장 두드러지게 반영된 편집 방향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전체 특집인 <어소시에이션과 문화자립>의 경우도 이론적 입장 표명이나, 경향을 총괄하여 지도를 그려나가거나, 특정 입장에서 배치하는 방식보다는 다양한 흐름의 경로들을 듣고 따라가고 그 가능성과 모색의 의미를 성찰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전체 총론이라 할 이동연의 「문화적 어소시에이션과 생산자-소비자연합 문화운동의 전망」은 그 대표적인 사례라 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변화가 그저 다양한 목소리를 다채롭게 채록하는 방식으로 나아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진보 좌파의 한계와 나아갈 길을 탐색한 서영표의 「대선과 진보정치의 미래」에서도 지적되고 있듯이 중요한 것은 분명한 입장 취함이지만, 동시에 배타적인 반정립만으로는 진보좌파는 막다른 골목에서 탈출할 가능성이 없다. 그런 점에서 뚜렷한 입장을 취하면서도 기존의 진보좌파가 보여준 배타적이고 나르시시즘적인 자기정당화나 진영 논리와는 다른 방식의 새로운 어소시에이션을 구축하는 것이 [문화/과학]이 고민하는 새로운 결속을 위한 입장 취함이기도 하다.

특집인 <어소시에이션과 문화자립>은 총 6편의 원고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이동연의 「문화적 어소시에이션과 생산자-소비자연합 문화운동의 전망」은 그간 진보적 문화운동의 한계를 비판하고 문화복지 담론의 딜레마를 점검하면서 생산자-소비자 어소시에이션을 구체적인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동연이 제시하는 생산자-소비자 어소시에이션의 구체적 함의는 다음과 같다. 즉 “서로 영역별로 분리된 생산자연합의 연합이 필요할 뿐 아니라 그 생산의 흐름을 이어갈 수 있는 소비자 연합의 형성이 필요하다. 인디음악, 독립영화, 대안미술공간, 대안공연예술, 인디게임과 같은 대안적인 창작콘텐츠들을 소비자들에게 적절하게 제공해줄 수 있도록 공동의 목적을 가지고 재-연합하는 계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소비자연합은 생산자연합에 비해 불안정하고 일관된 요구를 유지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특별한 문화적 취향을 보유한 소비자들의 연합이 생산자연합의 연합과 만날 수 있는 문화적 계기와 호혜적 교환의 플랫폼이 마련된다면 적극적인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 또한 이를 위해서는 “먼저 대안문화 시장을 형성하기 위한 생산자연합의 연합을 설득력 있게 제시할 수 있는 이론적 구성이 선행되어야 하고, 개별 문화예술 장르 단체들을 중심으로 이 문화운동의 목적과 내용을 설명할 수 있는 내실 있는 제안서 구성이 필요하며, 함께 이 문제를 놓고 토론할 수 있는 담론적 공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서로 다른 창작콘텐츠들을 하나의 유통구조로 통합할 수 있는 연합의 연합, 즉 통합적 조직형태를 구상해야 한다.”고 구체적인 제안을 해주고 있다. 이동연이 글을 마치며 논하고 있듯이 생산자 소비자 어소시에이션을 구축함에 있어서 “온라인 문화협동조합의 형태는 사실 궁극적으로는 그 자체로 목적이 될 수는 없다. 그것은 대안문화 시장을 창출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필요한 기능을 행사할 뿐이다. 생산자-소비자연합 문화운동의 궁극적인 형태는 연합의 연합에서 다시 연합의 재분화로 나가야 한다. 각기 자율적인 문화예술의 영역들이 더 많은 발전을 위해 자기 진보를 이루어야 하고 소비자들은 더 강력한 연합의 능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러한 대안적 어소시에이션을 상상하기 위해서는 현재 한국사회에서 활발하게 진행되는 협동조합 논의에 대한 점검 또한 필요하다. 이에 대해서는 하승우의 논의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진행된다.

문화적 자립 운동은 한편으로는 독점에서의 자립과 자립을 위한 연대라는 두 과제를 동시적으로 감당해야만 한다. 협동조합(하승우)과 사회적 경제에 대한 논의(김성윤)가 자립과 연대의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한 글이라면, 강정석의 글은 문화 독점의 현실과 역사를 분석한 글이며, 나도원과 송수연의 글은 현재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문화 자립운동의 현장을 전하는 글이다.

강정석의 「자본주의적 공간의 형성에 대한 단상: 독점과 일상생활의 변화를 중심으로」는 서울의 공간적 재구축의 역사를 롯데백화점과 아파트촌과 대형마트를 중심으로 분석하고 있는 글이다. 강정석은 이를 통해 “결국 서울 곳곳의 거대한 공간적 ‘스펙터클’은 가라타니 고진이 제시했던 ‘자본-국가-네이션’이라는 선진자본주의국가 삼위체가 공간적으로 표상된 결과인 것이다.”라고 분석한다. 또 이러한 공간의 독점에 균열을 낼 수 있는 실천의 전술을 세르토와 하비의 논의를 통해 구체적으로 제안하고 있다. 강정석은 하비의 ‘반란적 건축가’ 개념을 빌어서 “자기 주변의 환경을 바꾸고, 타인의 환경도 함께 바꾸며, 더 나아가 모두를 위한 공공성을 추구하는 환경을 스스로 건축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강정석에 따르면 “반란적 건축가가 만들어야 할 건축물은 외형적인 구조물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더욱 중요한 것은 사람과 사람이 화폐를 매개로 하지 않고 만날 수 있는 특정한 기회와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를 위한 실천적 행위가 일어날 때, 우리는 자본의 거시적․미시적 체계로부터 비로소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하승우의 「협동조합운동의 흐름과 비판적 점검」은 한국사회에 최근 불고 있는 협동조합 설립 운동에 대해 정치적 운동으로서 갖는 의미와 한계에 대해서 비판적이면서도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하승우의 논의에 따르면 다른 지역과 달리 한국에서 협동조합은 정치적 의미를 배제하고 출발함으로써 그 출발에서부터 한계를 지니게 되었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하승우는 협동조합이 새로운 결사체로서 지니는 대안적이고 정치적인 의미들을 몇 가지 차원에서 자세하게 논하고 있다. 하승우에 따르면 “협동조합운동은 지역운동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조합원들이 사회적 주체로 등장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지원한다. 협동조합은 사업체이자 결사체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하승우는 “협동조합운동이 그런 개입과 조직의 전략을 고민할 때 기본으로 삼아야 할 것은 자본주의 마케팅이나 다른 사회운동의 전략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의 원칙이다.”라고 논하면서 협동조합의 기본 7원칙을 근본에서부터 다시 자기의 원칙으로 삼는 것만이 한국에서 협동조합이 지역운동이자 자립적인 정치운동으로서 자리매김될 것이라고 제안한다. 하승우가 제기하는 협동조합의 7원칙은 자립과 어소시에이션을 구축하는 과정에서도 사실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된다. 일독을 권한다.

김성윤은 「사회적 경제에서 사회적인 것의 문제」에서 “우리는 근 몇 년에 걸쳐 거의 유일한 대안(적 생산양식)으로 부상하고 있는 ‘사회적 경제’ 담론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한다. 다양한 분석을 통해서 김성윤은 사회적 경제 부문이 “자유롭고 평등한 생산자의 협동 사회라는, 복지를 동반한 공화적 제도”인 것은 분명하지만, “전반적인 사회적 변화, 즉 사회의 전반적 조건의 변화”를 수반하지 않는 이상 자본주의 사회를 개조하는 것은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적으로 진단하고 있다.

나도원은 「공동체를 위한 당사자 운동―‘예술인소셜유니온’의 과정과 전망」에서 “자본에 예속되어 굴복하지 않고 자유의 예술로 극복하기 위해선 주체의 형성이 필요하다. 사회도 공동체 형성과 지역의 활기에 기여하는 예술이 도시․문화․환경생태의 자산이며, 예술인 문제는 청년․비정규․여성문제와 결부되어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특히 예술인소셜유니온을 예술가 집단만의 문제로 한정해서 생각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임을 지적하고 있다. 즉 “비정규직 문제가 만연해있고 여성․청년노동 문제가 심각한데, 이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분야가 예술이다.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직업은 대개 지금의 예술인 현실과 비슷한 국면으로 변화할 것이며, 앞으로의 노동형태는 현 체제로는 근로자로 포함되지 않는 형태가 많아질 것이다.”라고 진단한다. 그런 점에서 예술인복지법이나 예술가소셜유니온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예술인은 누군인가라는 “정체성 혼란은 ‘미래형’이며, 바로 그렇기에 안전띠를 마련해놓아야 한다. 문제제기를 통해서 구축할 새로운 제도는 비정규 노동자의 권익과 제도 바깥의 노동활동을 보호하기 위한 선례가 된다.”는 중요한 제안을 하고 있다.

송수연은 「새로운 문화정치의 장, 자립문화운동―문화귀촌, 청년의 소셜 네트워크, 메이커 문화를 중심으로」에서 “자립문화운동은 자율적이고 자립적인 생활을 위한 문화적 접근과 환경을 조성해 가는 과정이다”라고 정의한다. 따라서 “자립문화운동에서 중요한 것은 노동시간의 단축과 함께 자기 노동의 시간(소외되지 않는 노동)을 확보하는 것이어야 한다. ‘자기 노동의 시간’은 한나 아렌트가 말한 ‘소외되지 않는 노동’이자 가타리의 ‘자기 생산 능력’이다. 자기 노동을 위한 시간의 확장은 잉여스럽기까지 한 활동을 촉매하고 이는 결국 다른 생활양식에 대한 선택이자 선언으로 이어질 수 있다. 다음으로 개인의 자립이 갖는 문화적(지적, 감성적, 윤리적, 신체적) 역량은 사회적으로 풍부한 생태계를 형성하고 유지할 때 지속될 수 있다. 이는 자립이 연대를 통해 확산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라고 분석한다.

73호의 작은 특집은 <한국사회 대선 이후>라는 주제로 김덕민의 「역사는 반복된다. 모두 비극으로―2012년 대통령 선거 경제담론의 리토르넬로」와 서영표의 「황무지 위에 선 진보좌파,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2012년 대선과 진보좌파의 미래」 두 글을 수록했다. 김덕민은 진보 진영의 한계와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진단한다. “우리는 이번 선거에서 현재 한국에 있는 민주진보 진영과 좌파운동의 무능을 적나라하게 목격하였다. 특히, 좌파운동은 민주진보 진영의 신자유주의적 전환에 따른 위기 상황을 돌파하지 못했다. 이는 신자유주의 자체가 가지고 있는 폭력성 때문만은 아니다. 물론 신자유주의가 새로운 규율을 도입하면서 엄청난 압력을 행사하고 좌파운동을 궤멸상태로 몰아붙인 것은 사실이나 이에 대응하지 못한 이유는 좌파운동 또한 신자유주의적 전환과 신자유주의의 위기 과정에서 자신들만의 프로그램을 보여주지 못한 것에 있다. 과거의 운동 관습과 관성을 답습하고, 새로운 운동을 이야기한다고 했지만 알고 보면 예전 프로그램의 (일부 추가적인 카테고리를 추가한) 복사판이었다. 한국적 상황에 대한 구체적 분석도 없으며, 과거의 역사에 대한 올바른 평가도 없었다.”

진보 진영이 한국적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을 갖고 있지 못하고, 과거의 역사에 대한 올바른 평가도 없었다는 진단은 여러 면에서 논의가 이어져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진보’의 미래는 한국사회의 역사와 구체성에 대한 보다 정밀한 분석과 해석의 시각, 그리고 이에 대한 새로운 담론이 없이는 생각하기 어려운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냉정한 분석은 서영표의 글에서도 이어진다. 서영표는 다음과 같이 현재 진보 진영의 한계를 진단한다. “진보정당‘들’은 스스로를 무장해제하고 의석 확보에 모든 것을 거는 제도정당으로 ‘타락’했거나 아무런 힘도 없는 식물정당으로 전락했다. 시민운동은 저명한 시민운동가 몇 명을 정치인으로 만들기 위해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운동적 성격을 던져버렸다. 앞뒤 돌아보지 않고 문재인에게 모든 것을 걸음으로써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잘못과 민주당의 한계를 모조리 공유하는 낡은 세력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러한 진단 하에 서영표는 진보운동의 과제로서 다음과 같은 세 가지를 제안한다. 첫 번째 과제는 동북아시아 평화와 번영을 위한 입장과 행동을 가진 진보좌파의 재건이다. 두 번째 과제는 경제적 부와 권력의 세습반대를 통해 넓은 연대의 틀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세 번째 과제는 “동북아 평화세력”으로서 그리고 “세습 반대 운동”의 주체로서 한반도 통일을 위해 실천하는 통일세력으로 스스로를 구성하는 것이다.

이번이 3회째가 되는 <문화과학 북클럽 논쟁>은 광주전남여성단체연합에서 펴낸 [광주, 여성](후마니타스, 2012)을 선정했다. 구술 채록의 1차 편집자인 정경운 교수와 구술자 전문가 김원 교수가 토론자로 참여하였다. 토론자인 김원 교수가 논하듯이 구술사는 ‘밑으로부터의 역사’, ‘공식적인 역사로부터 배제된 개인의 체험’을 현재의 기억에 근거해서 다시 불러오는 역사 서술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자료 안에 있는 ‘사실적인 진실성’이나 ‘서사적 진실성’이라는 것이 구술사를 통해 의미 내지는 맥락에 따라 재구성되고 또 섞여서 기록이 된다. 따라서 구술 자료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이 새로운가?’보다는 ‘왜 이 시점에 이런 방식으로 이야기되고 있는가?’에 대한 문제가 중요하다.

<문화현실분석>에는 권경우의 「SNS혁명과 그 후…」와 홍성일의 「강호동 없는 텔레비전의 불가능성: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인적 독점에 관하여」라는 두 편의 글이, <근대성과 문화연구> 코너에서는 송현민의 「박정희 정권의 금지곡을 둘러싼 ‘감시와 처벌’」이 수록되었다. <해외 문화연구 동향>에는 니웨이의 「첩보드라마 분석」이 <이론의 재구성>에는 정정훈의 「(불)가능한 권리와 인권의 정치」 등 다채로운 글을 수록한다.

권경우는 「SNS 혁명과 그 후…」에서 SNS 혁명 이후를 사유한다. 즉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홀로 있는 시간’, 즉 잃어버린 고독의 회복이 아닐까?”라는 질문이 그것이다. 권경우는 이제 “스마트폰을 떠나도 견딜 수 있는 삶을 창조하는 것”이 오히려 중요한 시점이지 않을까 질문한다. “그것은 SNS 공간을 넘어 오프라인 공간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과정에도 우리의 시선을 두고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때로 개별적 기억의 순간일 수도 있고, 때로는 집단적 경험의 공유일 수도 있다. 자신의 노출이나 타자의 목소리를 통해 자신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존재함으로써 타자를 인식하는 것이다. 고독은 어쩌면 SNS의 ‘빈 공간’을 채워주는 역할을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날 SNS 혁명 이후에 고독은 발견 그 자체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그것은 새로운 혁명의 지향성을 지녀야 한다.”는 흥미로운 분석을 제시한다.

홍성일은 「강호동 없는 텔레비전의 불가능성: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인적 독점에 관하여」에서 “외환위기 이후 급격하게 우리 사회가 재편되는 과정에서 노동의 성격 역시 변화하였으며, 이와 같은 노동의 성격 변화가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기획, 제작에도 반영되었고, 그 결과물이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일반화로 나타났다.”는 매우 흥미로운 분석을 시도하고 있다. 루저의 캐릭터가 전면에 등장하고 이들 사이의 유사 가족화가 심화되며, 매회 새로이 닥쳐온 고난을 해결해나가는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중심 포맷은 외환위기로 촉발된 구조조정의 일반화, 중산층의 붕괴, 사회적 양극화에 상처 입은 일반 시청자들의 불안한 정서를 아우르며 이를 조작하는(manipulate) 노동의 형식이었던 셈이다. 이는 동시에 프로그램의 시청자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데, 시청자들의 팬덤화, 이를 통한 적극적 시청 행위의 재강화는 프로그램의 소비 활동일 뿐만 아니라 그것이 다시 프로그램 속으로 재투입되어 프로그램 제작에 반영되고 있다는 측면에서 프로그램 자체를 생산하는 감정노동으로 작동한다.

송현민은 「박정희 정권의 금지곡을 둘러싼 ‘감시와 처벌’」에서 박정희 정권의 검열을 분석하면서 다음과 같은 질문과 대답을 구성한다. “그렇다면 푸코나 부르디외가 비판하는 검열의 최종 목적, 혹은 박정희가 꿈꾸었던 검열의 최종 목적은 무엇일까. 그것은 귀여움의 대상으로의 전락과 양육하고 사육하는 권력, 즉 ‘케어’(care)하는 사목적 권력이다. 귀여움이란 전형적으로 강자가 약자에 대해서 느끼는 감정이다.”

니웨이(倪偉) 교수의 글을 번역 소개한 손주연에 따르면 “드라마의 제작과 소비에서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중국의 경우 매체가 당대 중국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가시화되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감지한 ‘상하이 문화연구 그룹’은 문화가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기 위한 문화연구를 계속해 나가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연구자 중 한 사람이 바로 니웨이(倪偉) 교수다.” 상하이 화둥사범대학(上海華東師範大學)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푸단대학(復旦大學) 중문학부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니웨이 교수는 중국 근현대문학과 문화연구에 종사하고 있다. 이 글에서 필자는 2009년부터 중국 대륙에서 인기를 끈 첩보드라마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전파>(永不消失的電波), <암산>(暗算), <잠복>(潛伏), <낭떠러지>(懸崖) 등을 통해 드라마에서 운위되고 있는 신앙의 문제와 그 심층에 놓여있는 문화적 징후들을 짚어내고 있다.

정정훈의 「(불)가능한 권리와 인권의 정치」는 일련의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그 질문은 다음과 같다. “인권의 정치란 ‘인권’의 (불)가능성을 작동시키는 정치, 그럼으로써 현행화된 인권들을 혁신하는 정치를 뜻하는 것이 아닐까? ‘인권’의 불가능성을 가능화하려는 영속적 시도, (불)가능한 권리로서 ‘인권’을 인권들로 가능하도록 만들어가는 무한한 운동의 과정이자 결코 종결되지 않는 역동성이야말로 인권의 정치를 특징짓는 근본적 차원이 아닐까? (불)가능한 권리들에 대한 집요한 고집, 제도화되고 법률화된 인권들로 회수되지 않는 ‘인권’의 잔여들에 대한 안티고네적 집요함이야말로 인권의 정치의 가장 핵심적 성격이 아닐까? 왕의 법이 금지한 오빠의 매장을 그 법보다 더 상위에 있다고 믿는 법에 호소하여 끝까지 요구하였던 안티고네의 고집. 자신의 생명조차 포기하면서도 현실을 지배하는 법들보다 더 근본적인 법적 정의의 실현을 호소하였던 그녀의 집요한 고집이야말로 (불)가능한 것을 가능화하려는 무한한 시도로서 인권의 정치에 고유한 이미지, 인권의 정치를 형상화하는 어떤 이미지가 아닐까?” 이러한 질문의 끝에서 정정훈은 “우리는 인권운동의 종별적 특성이 바로 인권의 정치를 실천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신자유주의 체제 하에서 자본과 국가의 폭력 앞에 박탈되고 파괴되는 인간의 권리를 방어하고 재구축하기 위한 투쟁의 현장들에 항상 인권운동이 있어왔다.”는 재인식에 도달한다. 그리고 이러한 운동이야말로 안티고네적인 집요함의 사례가 아닐까 하는 제안을 해주고 있다.

 

2013년 2월

편집위원 권명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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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북클럽: 1960년을 묻다

계간 『문화/과학』제 4회 북클럽

1960년을 묻다_박정희 시대의 문화정치와 지성

안녕하세요.계간 『문화/과학』 편집위원회는 제 4회 북클럽 행사로 권보드래/천정환 저 『1960년을 묻다_박정희 시대의 문화정치와 지성』(천년의 상상, 2012)을 선정하여 토론을 준비했습니다.

이 책은 박정희 체제의 시발점이 되는 1960년대의 이데올로기와 문화정치, 그리고 지식인 사회와 교양의 성격을 분석하여 오늘의 박근혜 시대를 이해하는 데에도 큰 현재적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관심있는 독자분들의 많은 참석 바랍니다.

사회: 천정환(『문화/과학』편집위원,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참석자

권보드래(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김항(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교수)

조태성(서울신문 문화부 기자)

 

-일시: 2013년 3월 15일(금) 오후 7시-9시

-장소: 서울문화재단 대학로연습실

주최: 계간 문화/과학 편집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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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북클럽 논쟁: 광주, 여성

 

 

계간 『문화/과학』제3회 북클럽

혁명과 반혁명의 역사와 현실에서 젠더와 지역의 역학이 주체형성에 작용하는 메커니즘은 과연 무엇인가?

이런 질문에 답하는 일은 단지 역사적 과제만이 아니라 당면한 현실과 미래를 위한 사유와 실천의 근원적인 난제로 남아 있습니다.

구술연구는 이러한 난제에 접근하는 하나의 방법론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기도 합니다. 아직도 여전히 ‘알 수 없는 타자’처럼 간주되는 지역화되고 젠더화된 그 목소리들을 과연 “우리”는 들을 수 있을까요?

제 3회 문화과학 북클럽은 이러한 질문을 함께 나누기 위해 『광주, 여성』을 선정하였습니다.

 

사회: 권명아(동아대 교수, 국문학, 문화/과학 편집위원)

패널: 정경운(전남대 교수, 서사학)

김 원(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정치학)

일시: 2013년 1월 15일(화) 오후 7시-9시

장소: 후마니타스 책다방(2호선 6호선 합정역 6번 출구 제일은행 방면 150미터 서울치과의사 빌딩 1층)

주최: 계간 『문화/과학』편집위원회

문의: 『문화/과학』편집위원 권경우(010-9080-2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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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과학 72호: 재난과 자본주의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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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북클럽 논쟁: 무한히 정치적인 외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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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호 표지

남궁호석, 실타래 / 돼지 껍데기 위에 타투 잉크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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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호 목차

『문화/과학』의 ‘새 발걸음’―71호를 발간하며ㆍ이동연

│특집│ 문화행동
027 오늘날 문화행동의 개념화와 역사적 유산의 재전유ㆍ이광석
064 민주주의, 그 새로운 무한정성 ―월가 점거 운동에 대한 하나의 보고ㆍ고병권
085 예술, 행동하라! ―사회운동과 예술행동의 연대기ㆍ이원재
106 양날의 칼: 포퓰리즘, 민주주의, 문화행동ㆍ문강형준
125 무대에서 뛰놀다 세상을 구하러 나서기까지: 연예인 행동주의와 신자유주의의 문화정치ㆍ최철웅

│논쟁_대중음악산업│
145 대중음악산업의 현 쟁점과 대안 찾기
_발표: 이동연ㆍ안정일ㆍ서정민갑
_토론: 박준흠ㆍ김민규ㆍ단편선
_사회: 김창남

│근대성과 문화연구│
223 ‘다방’, 그 근대성의 역정ㆍ이기훈

│표지 이미지│
남궁호석_ 실타래/ 돼지 껍데기 위에 타투 잉크/ 2012

│이미지 에세이│
양아치_ 언제나 서울 황금산/ 드로잉/ 2011
최빛나_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 디지털 이미지/ 2012

│문화현실분석│
179 실제 사건을 다룬 영화의 현실 효과에 대한 단상 ―<도가니>와 <두 개의 문>을 중심으로ㆍ강정석
208 “분노하라”와 대중드라마가 주는 함의: <추적자>가 드리우는 한국사회 속 현실 환기효과와 재현과 그늘 사이에서ㆍ이기형

│해외문화연구 동향│
241 상하이 노동자신촌: 사회주의와 존엄이 있는 ‘생활세계’ ― 『상하이국자』의 샤오우의 질문에 답함ᆞ · 뤄강(羅崗)

│인물비평│
267 안철수 읽기 · 안병진

│이론의 재구성│
285 인간’과 장치: 푸코 통치성의 문제설정 · 임동근
300 문화연구와 해석의 정치 · 이동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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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호를 발간하며 _『문화/과학』의 새 발걸음

현실사회주의의 붕괴와 소비자본주의의 도래로 혼란에 빠져 있던 한국사회 진보이론이 변혁의 국면과 이행을 놓고 서로 치열하게 논쟁을 벌이던 시절, ‘유물론적 문화론’을 제창하고 1992년에 창간된 『문화/과학』이 어느덧 스무 살의 성년을 맞고, 새로운 편집 체제로 또 다른 20년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20년간 『문화/과학』이 제출한 수많은 이론과 현실운동의 프로그램들은 한국의 진보이론 진영에서 아주 특별한 실천적 지위를 확보했다. 『문화/과학』의 이론적 실천은 문화공학, 문화사회론, 사회미학, 생태문화코뮌 네트워크로 진화하면서 항상 우리 사회 현실 문화운동의 최전선에 서있었다.

새로운 개념이 만들어질 때마다 현실을 인식하는 문제의식이 조금씩 달랐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문화/과학』이 제안한 이론적 실천들은 현실 문화운동의 급진적 전화를 상상하는 데 있어 언제나 유효했다는 점이다. 『문화/과학』은 창간 때부터 포스트주의의 문화적 확장이라느니, 진보적 관점이긴 하나 최신 서양 이론의 수입상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비판을 일각에서 받았지만, 실제 『문화/과학』의 실천적 효과는 이론의 장보다는 현실 문화운동의 장에서 더 크게 작용했다. 『문화/과학』은 맑스가 『독일이데올로기』에서 말했던 것처럼 “인간이 말하고 상상하고 관념화시킨 것으로부터 출발한다거나 혹은 말해지고 상상되고 표상된 인간으로부터 출발하여 그로부터 육체를 가진 인간에게 도달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현실적으로 활동하는 인간으로부터 출발”하고자 했다. 문화와 과학, 이론과 현실, 노동과 감성, 예술과 테크놀로지, 문화운동과 사회운동의 형식 이분법을 넘어서 그것들을 견고하게 절합하고자 했던 『문화/과학』은 유물론적 정치 이론의 빅뱅 시대에 문화의 급진적 상상력을 진보 운동의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실험하고자 했다.

정치적 민주화 이후 변혁 이념의 탈색과 대중들의 소비 욕망의 증대, 그리고 청년 독립문화의 생성으로 대변되는 이른바 1990년대 문화의 시대를 거쳐, IMF, 한미FTA, 4대강, 용산참사, 쌍용차 사태로 대변되는 2000년대 본격 신자유주의 체제를 가로질러가면서 『문화/과학』 편집위원들은 지난 20년 동안 독특한 정세분석과 그에 따른 이론적 개념들을 제안하고 더불어 현실 문화운동의 실천 지반을 만들고자 분투했다. 이제 『문화/과학』은 20년간의 이론적 유산들을 미래의 진보이론 구성에 아낌없이 투자하고자 창간을 주도했던 편집위원들이 일선에서 물러나고 『문화/과학』의 또 다른 20년을 이끌어갈 새로운 편집위원들로 새로이 구성되었다. 현재 인문․사회․예술 분야의 진보이론 진영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26명의 30-40대 소장학자들이 참여하는 『문화/과학』의 신임 편집위원회 체제는 진보․보수 이론을 떠나 한국의 공식 학술지와 독립 계간지 전체 역사를 통틀어 가장 광범위하고 간학제적인 연구자 그룹을 구축했다.

물론 『문화/과학』의 이러한 대규모 편집위원 체제가 『문화/과학』 전임 세대들의 탁월한 이론적 역량의 계승을 그대로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것이 한국사회 진보적 담론의 장에서 주도세력으로 등장했음을 자임하는 것도 더더욱 아니다. 『문화/과학』의 물적 토대와 제작 여건은 출판 환경이 그나마 좋은 전통적인 계간지 진영과 비교해 보면, 여전히 열악하고 독립적이다. 『문화/과학』의 신임 편집위원들은 단지 『문화/과학』이 지난 20년간 해왔던 일관되고 꾸준한 이론적 실천과 그 태도를 지지했을 뿐이며, 출판자본이 독점화되고, 학술담론이 국가기관 연구체제에 종속당하는 작금의 상황에서 벗어나 전공과 이해관계를 넘어 한국사회의 진보이론의 재구성에 동참하는 뭔가 대안적인 연구자 그룹을 만들고 싶은 순수한 열정을 서로 확인했을 뿐이다.

『문화/과학』 신임 편집위원들은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나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알지만, 지난 7개월간의 편집 준비모임과 편집위원회 회의를 통해서 새로운 형태의 진보적 연구자 그룹으로서의 가능성을 발견했으며, 이제 우리들만의 정세인식과 현실분석, 그리고 이론적 공유 과정을 통해서 천천히 우리의 목소리, 우리의 입장을 책으로 담으려 한다. 무엇을 할 것인가? 아직 이론적으로 체계화되지는 않았지만 이제 신임편집위원들이 제안한 핵심적인 문제의식을 격식 없는 선언의 형식으로 공유하고자 한다.

문화의 이론적 실천의 재구성!

문화의 이론적 실천은 사회운동의 현장에서 문화운동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담론들을 구성해야 한다. 우리는 대추리 미군기지 이전 반대, 한미FTA 반대, 용산참사, 희망버스, 콜트․콜텍 등 신자유주의 체제에 저항하는 사회운동의 현장에서 문화의 직접행동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알고 있다. 사회운동의 현장에 개입하는 직접 문화행동의 조직을 위한 기획들은 『문화/과학』의 장구한 이론적 실천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이 될 것이다.

특히 『문화/과학』은 광기 어린 신자유주의의 재생산체계, 특히 오늘날 지배체제를 재생산하는 전초 기지가 되고 있는 현재의 한국 고등교육(대학)과 대중문화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자세를 갖고자 한다. 『문화/과학』은 또한 이름이나 지향에 걸맞은 ‘미디어 전략’을 통해 (전통적이고 엘리트적인) 계간지 체제를 넘어서는 담론적 장을 추구한다.

‘문화’의 주술을 넘어선 문화정치의 실험!

오늘날, 현실에 처한 (문화연구의) 이론적 실천은 새로운 단계의 자본주의(≒신자유주의)가 강요하는 노동과 인간소외, 그리고 ‘자아’의 새로운 상황에 대하여, 그리고 외부 없는 글로벌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가져다주는 계급계층․가족․젠더․지역․민족의 새로운 문화정치의 상황에 대해 고찰하고 대안을 마련하고자 하는 것이어야 한다. 『문화/과학』의 연구와 글쓰기가 어떤 이론과 ‘주의’의 교조를 증명하는 데 바쳐지거나, 이론주의․과학주의 등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며, 전 시기 『문화/과학』의 실천적 모색을 높이 평가하고 그 긍정적인 면을 계승하여, 비평․이론․담론 투쟁을 통해 문화정치에 개입해야 한다.

『문화/과학』은 유물론적 정치이론의 빅뱅 시대에 급진정치의 이론적 실천을 제기했다. 예술세계와 생활세계를 포괄하기에 이미 균열을 내포하고 있는 ‘문화’는 급진정치의 가능성이자 동시에 덫이다. 여전히 예술적 수월성과 문화민주주의를 양극 삼아 한껏 신비화된 ‘문화’는 현대의 주술이다. ‘문화복지’며 ‘문화토건’이며 정치의 문화화라는 궁여지책이 횡행하는 우리 사회에서 궁극적인 문제는 문화를 옹호할 것인가, 비판할 것인가의 양자택일이 아니다. ‘문화’라는 현대의 주술이야말로 급진정치의 덫이다. 『문화/과학』의 과제는 ‘문화’라는 주술의 탈신비화, 그로부터 급진정치의 가능성을 복원하는 데 있다.

문화의 독점에 저항하는 급진적 문화행동의 이론화!

우리 시대 가장 비참한 상황은 우리의 모든 일상이 문화자본의 독점에 의해 완전히 잠식당했다는 점이다. 문화의 모든 영역들은 문화자본을 독점한 자들의 1인 독식체제로 재편되고 있고, 이로 인해 문화시장의 수직계열화는 개인들의 문화적 수용 선택의 기회를 박탈하고, 감정과 표현의 방식을 상품형식에 맞게 표준화시킨다. 문화의 독점은 문화를 즐기는 다수의 대중들을 소외시킨다. 맑스의 『경제철학 수고』에 나온 노동소외를 빗대어 말하자면 문화 독점의 시대에 문화는 문화자본가들에게는 기적을 생산하지만, 대중들을 위해서는 궁핍을 생산할 뿐이다. 문화는 미를 생산하지만, 대중들을 위해서는 기형성을 생산할 뿐이다.

재난과 파국의 시대, 자살과 죽음의 시대, 독점과 배제의 시대에 문화의 이론적 실천, 현실 문화운동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이 재앙을 견뎌낼 우리들만의 자립적 문화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것이 요구된다. 새로운 삶의 희망을 찾는 생태문화적 코뮌네트워크의 구성, 문화의 독점에 저항하는 급진적 어소시에이션 운동, 문화의 자기 통치성을 위한 소수 집단적 문화그룹들의 창출을 통해, 그리고 그것들을 이론화하는 지적 실천을 통해 삶의 대안을 찾아보자.

동아시아에서 해방의 기획을!

세계사적 체제변환에 따라 국경을 넘어선 사람들의 지적 협동과 운동적 실천이 매우 긴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특히 구미중심주의가 균열되는 것과 보조를 같이하여 비서구의 중요성이 날로 부각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 동아시아의 중요성 역시 강화되는 추세에 있는데, 『문화/과학』이 추구하는 비판적 문화연구가 어떻게 제국주의와 식민지 체험으로 애증의 역사를 누적하고 있는 이 권역에서 창조적인 지적 협동을 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는 중요해 보인다. 한국과 중국, 일본과 같은 동아시아 역내의 주요 국가들이 시장의 상호의존과 국가이익을 둘러싼 패권적 합종연횡을 거듭하고 있는 이때에 아래로부터의 자유와 해방의 기획은 『문화/과학』의 미래 전망과 관련해서도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내셔널리즘과 자본, 미디어가 전파하는 역내 국가에 대한 증오와 견제의 시선을 멈추고 충돌과 갈등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동아시아의 현장 속에서 새로운 이해와 연대의 틀을 구성할 필요성이 대두된다. 동아시아는 글로벌과 일국의 자본 및 권력이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는 권역 가운데 하나이다. 이들 자본/권력이 변모시키는 현실과 그 폐해를 일국의 경계를 넘어서 권역적으로 다루는 시선이 요구된다. 이 시선은 권역에서 합종연횡하며 때로는 긴장관계를 연출하는 자본/권력의 제 형태를 포착하고 또 이를 거스르는 목소리와 움직임을 간취하여 대안적인 운동과 삶의 틀을 구성하는 데 더없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이와 더불어 권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비판적 문화연구 관점의 공유와 재전유는 서구 중심의 이론과 실천 조명에서 벗어나 새로운 이론과 입장의 구성에 기여할 것이다.

 과학기술혁명의 시대, 정보운동의 실천!

오늘날 자본주의 체제에 저항하며 연대하는 문화조차 그 지배문화를 구성하는 것과 똑같은 기술이 매개하고 있다면, 기술을 바꾸지 않고, 기술문화에 대한 비판과 대안 없이, 어떠한 사회 변혁이 가능할 것인가? 신권위주의와 정보자본주의가 합쳐진 돌연변이적 한국 상황에서, 뼛속까지 삼투하여 그 영향력을 발휘하는 뉴미디어 정보통신 테크놀로지의 힘에 비해 이를 저항과 역능의 에너르기로 전유하는 데 우리는 대체로 무관심하거나 무지했다. 『문화/과학』은 이제 새롭게 부상하는 뉴미디어와 정보문화 영역에 대한 대안적, 전복적 전유를 시작할까 한다. 그 어느 때보다 새로운 정보자본주의 아래 기획되는 정보 문화적 포획 기제들, 즉, 인지․정동․놀이․잉여노동에 근간한 새로운 가치 포획 체제, 생정치적 권력과 자본 감시, 재벌에 의해 새롭게 구축되는 정보독점의 지형에 적극 개입하려 한다. 우리는 마찬가지로 이에 대한 사후 해석의 강단 학문적 관심을 경계한다. 오히려 정보․ 미디어적 실천을 독려하기 위한 이론적 실천 작업을 수행할 것이다. 점점 스마트해져가는 정보권력의 질곡과 파국을 알리고 이의 재생산에 흠집을 내려는 급진적 분석과 시도에 긍정한다. 주류화하는 정보권력에 대응해, 민주적 전자 소통로와 소통공간의 창출, 아방가르드적 대안 미디어와 정보매체들의 발굴, 비판적 기술철학과 대안적 기술 체계론의 마련, 아래로부터의 ‘정보문화사’와 저항적 정보문화이론의 구성으로 답하려 한다.

노동해방, 성해방, 인간해방이라는 오래된 명제를 다시 나눠가지기를!

많은 사람들이 출산을 거부하고, 삶을 지속하기를 포기하는 현실은 여전히 인구통계학적 프레임으로만 포착된다. 이른바 출산율 저하와 자살률 증가는 한국사회에서 오랫동안 진행된 성과 노동에 대한 국가관리 및 통제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이다. 한국사회에서 노동과 성은 모두 생산성 제고를 위한 도구로서 국가의 통제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국가 통제 메커니즘에서 각 개인은 하나의 인간으로 간주되는 것이 아니라 생산성 향상을 위한 도구로 간주되었다. 또 그 도구는 노동과 성이라는 각기 분할된 쓸모를 할당받았다. 그리고 이러한 분할이 이른바 남성젠더와 여성젠더라는 젠더 구별을 자연스럽게 만들었다. 그런 점에서 실상 한국사회에서 노동과 성의 ‘해방’이란 이러한 국가 통제에 대한 저항이었으며, 동시에 성해방은 노동해방 문제와 분리될 수 없으며, 그 역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점에서 이론상으로는 페미니즘과 사회주의의 ‘연대’는 역사적 필연이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러한 ‘연대’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으며, 오늘날에도 그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이러한 연대의 시작은 그런 점에서 한국사회 현실에 대한 역사적 전망을 나눠가짐으로써 가능한 것이리라. 『문화/과학』의 새로운 출발점에 서서 노동해방과 성해방이라는 참으로 오래된 명제를 인간해방이라는 또 다른 오래된 명제를 토대로 서로 나눠가지는 연대의 새로운 미래가 가능하기를 기대해 본다.

소수자들의 삶과 일상에 대한 기록과 연대!

자본주의의 심화가 우리 사회의 개별 주체성에 중대한 변화를 초래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 변화의 핵심에는 다양한 소수자 주체의 등장과 증가가 있다. 노동주체는 더 이상 노동자로만 환원될 수 없으며, 새로운 다양한 소수자 주체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비정규직, 청(소)년, 성노동자, 장애인, 성적소수자, 외국인노동자, 결혼이주여성, 노숙자, 미혼모 등등. 이제 우리는 이미 등장한 다양한 소수자들의 삶과 일상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으며, 그러한 관심은 단순한 확인을 넘어 관찰과 기록, 연대의 지점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것은 주체성에 대한 좀 더 세밀한 접근과 분석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며, 동시에 사회체제 분석 및 사회변혁에 대한 새로운 전망을 세우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러한 기획은 궁극적으로 ‘문화혁명’을 꿈꾸는 우리로서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지점이다. 결국 주체성의 문제를 어떻게 사유하는가는 현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이자 미래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 근거가 될 것이라 믿는다.

우리의 대안의제들과 정세분석은 이제 매호 발간되는 『문화/과학』의 특집에 반영될 것이다. 『문화/과학』의 신임 편집위원들이 만든 첫 번째 특집 주제는 ‘문화행동’이다. 2000년대 들어 신자유주의 체제의 전면적 지배에 저항하는 수많은 사회운동의 현장에서 낯설었지만, 특별했던 것은 ‘사회운동’과 ‘문화운동’의 즐거운 연대였다. 문화운동이 사회운동에 대한 사후적 개입이 아닌, 사회운동이 문화운동에 대한 정언적 명령이 아닌, 사회운동과 문화운동의 비환원적 생산적 연대는 동시적이고 직접적인 관계를 형성했다. 우리는 이러한 문화운동의 현장성을 ‘문화행동’이란 이름으로 의미부여하고자 한다.

특집에 실린 5편의 글은 우리 시대 ‘문화행동’의 이론적 구성과 국내외 실천 사례들을 보여준다. 먼저 이광석의 「오늘날 문화행동의 개념화와 역사적 유산의 재전유」는 문화행동의 이론적 궤적을 20세기 초반 유럽의 아방가르드 운동에서부터 1960-70년대 상황주의, 그리고 1990년대 이후 한국의 문화운동에 이르는 역사적 운동 속에서 찾고자 한다. 그는 문화행동은 “일상 속에 편재화되어 가는 일상 권력에 대한 대중들의 비판적 미디어-예술-온라인 영역 간 횡단을 통해 스스로 창의적 주체가 되어 벌이는 적극적인 문화정치적 개입 행위”로 설명한다. 이러한 정의를 기반으로 이 글은 문화행동의 몇 가지 실천적 지점들을 주목하고자 한다. 최근 운동의 현장에서 발견되는 거리정치, 게릴라적 미디어 실험, 예술행동주의의 흐름들이 역사적 아방가르드의 미학적 개입과 실험정신을 공유한다는 점, “저항 운동의 경험들이 새로운 미디어 플랫폼과 대안적 문화, 예술운동과 합쳐지고 상호간 결합하면서 좀 더 실험적이고 융․복합적인 형태로 거듭나고 있다”는 점, 파견미술, 공장 전시․공연, 스쾃운동, 참사현장 전시, 희망버스, 플래쉬몹 등에서 알 수 있듯이 “현장성과 장소 특수성에 기반한 문화행동의 가능성”을 주목해야 한다는 점, 그리고 “자본주의의 상품미학과 자본의 스펙터클화를 막을 수 있는 유연한 힘”은 바로 문화행동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작년 반세계화, 반금융화 운동의 최전선에서 뜨거운 주목을 받았던 뉴욕 월가에서의 “점령하라!” 운동을 직접 현장에서 참여관찰하면서 일련의 투쟁 연대기를 기록한 고병권의 「민주주의, 그 새로운 무한정성―월가 점거 운동에 대한 하나의 보고」는 신자유주의 체제 하에서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삶의 불가능성, 혹은 “체제의 불가능성을 둘러싼 독해의 역전”을 시도한다. 그는 월가 주변 주코티 공원에서 벌어진 “점령하라!” 운동을 목도하면서 “우리가 지금 벽처럼 마주하고 있는 ‘불가능’을 자각할 때만 어떤 ‘가능’이 열린다는 걸 월가 점거를 보면서 실감했다.” 이 글은 현실에서 불가능의 높은 벽에 부딪친 민중들이 스스로 자신들이 발화주체가 되기 위해 “당신이 원하는 삶의 형태로 당신 투쟁의 형태를 만들라”는 민주주의의 직접행동을 몸소 체험하는 과정을 주목한다. 그리고 “점령하라” 운동을 교훈삼아 한국의 도심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현장 점거운동들이 “생명과 무기, 삶과 투쟁의 하나라는 사실”을 각인하기를 바란다.

2000년대 이후 한국 사회운동에 개입했던 수많은 문화행동의 사례들을 설명한 이원재의 「예술, 행동하라!―사회운동과 예술행동의 연대기」는 사회운동의 위기를 기존 시민운동 패러다임의 한계, 관료화된 대중조직 운동의 몰락에서 찾고 있다. 실제 수많은 문화행동의 현장에 참여했던 그는 그 대안으로 직접행동을 원리로 한 예술행동주의를 제안한다. 다양한 예술행동의 사례를 분석하면서 “예술행동은 사회적 변화와 대안을 제시하는 과정에 있어 예술이 상상할 수 있고, 감당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자기 실천”이며, 이를 위해 “예술행동은 좀 더 급진적으로 상상하고, 구체적으로 실천하며, 적극적으로 연대”하며, “일상성의 확장을 통해 더 다양하고, 구체적이며, 지속가능한 사회운동”으로 진화해야 한다고 이 글은 주장한다.

지금까지의 문화행동에 대한 글들이 대체로 진보적 운동의 진영 안에서 벌어진 것들을 분석했다면, 남은 두 개의 글들은 대중적인 문화행동이란 이름으로 파생되어 발생한 사례들을 비판적으로 다루고 있다. 문강형준의 「양날의 칼: 포퓰리즘, 민주주의, 문화행동」은 최근 문화행동에서 드러나는 특정한 대중화 경향에 관심을 두면서, 그것이 논쟁적인 포퓰리즘과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그는 촛불집회와 나꼼수, 삼국카페 등의 현상을 다루면서 포퓰리즘과 민주주의의 긴장관계를 주목하고 있는데, 그에 의하면 그 긴장관계는 “대의/재현 민주주의 ‘이론’이 ‘실천’의 영역 속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됨으로써 발생”하는 문제이다. 필자는 ‘촛불’과 ‘나꼼수’ 요구의 결과가 결국은 제도 정치 내에서 일정한 지분을 요청하는 것으로 귀결된다는 점은, 포퓰리즘적 스타일이 오늘날 탈정치화된 민주주의의 자장 안에서 움직이고 있음을 반증해 준다고 주장한다.

최근 뜨거운 이슈 중의 하나인 연예인들의 행동주의를 분석한 최철웅의 「연예인 행동주의와 신자유주의의 문화정치」는 최근 주류 미디어가 신자유주의적 “사회적․정치적 맥락을 사상한 채 단지 연예인 행동주의를 과장되게 칭송하거나 냉소적으로 회의하는 데” 그치고 있음을 비판하면서 “연예인 행동주의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며, 어떠한 정치적 함의를 가지는가”를 분석한다. 그는 ‘소셜테이너’라는 명칭 자체가 정치적 의식을 거세한 용어라는 점에서 “우리 사회가 처한 모종의 정치적 곤경 또는 무의식을 드러낸다”고 꼬집으면서 연예인 행동주의는 분명 세상을 변화시키지만 정치를 변화시키지는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문화/과학』은 신임 편집위원회 체제에 걸맞게 이번 호부터 편집구성을 새롭게 시도했다. 지난 호까지 고정 꼭지로 배치되었던 ‘문화비평’과 ‘사회운동’ 분야를 정리하고, 대신 논쟁, 문화현실분석, 인물비평, 이론의 재구성, 해외 연구동향을 새롭게 신설했다. 또한 원고 꼭지수를 줄이고, 개별 원고의 분량을 늘려 글의 호흡을 길게 가져가도록 했다.

논쟁에 실린 첫 번째 토픽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음악저작권 문제를 중심으로 대중음악산업의 현황과 대안을 다루었다. 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가 주최한 월례포럼의 토론 내용을 녹취한 논쟁의 원고는 대중음악산업의 지속가능한 발전과 음악의 종 다양성 확보를 위해 독립 지원기구의 설립, 음악저작권 징수 및 분배 체제의 변화, 그리고 비주류 독립음악의 활성화 가능성을 중점적으로 다루었다.

문화현실 분석에는 최근 주목을 받았던 영화와 드라마를 분석한 두 편의 글을 실었다. 강정석의 「실제 사건을 다룬 영화의 현실 효과에 대한 단상」은 최근 한국영화에 큰 이슈를 몰고 왔던 <도가니>와 <두 개의 문>을 선택하여 영화가 현실의 재현을 넘어 사회적 효과를 어떻게 획득하는지를 분석한다. 그는 이 글에서 영화적 현실 효과의 원인은 단선적이지 않고 오히려 다층적 프레임들의 ‘중층결정’의 산물로 볼 것을 강조한다. <도가니>와 <두개의 문>과 같이 실제 사건을 다룬 영화조차도 단순히 현실을 반영하는 것만은 아니며, 특정한 영화가 불러일으키는 사회적 효과는 다양한 참여 주체들이 구성한 수많은 프레임들이 겹쳐지는 과정을 통해 발생하는 것임을 지적하고 있다.

올해 인기 드라마 중의 하나인 <추적자>를 분석한 이기형의 글(「“분노하라”와 대중드라마가 주는 함의: <추적자>가 드리우는 한국사회 속 현실」)도 드라마의 텍스트 재현과 텍스트의 사회적 환기효과 사이의 관계를 다룬다. 그는 “<추적자>가 견인하는 상당한 대중적인 관심의 중심에는 무엇보다도 일그러진 정치와 사회적 현실에 대한 강렬한 환기와 연상 효과와 더불어, 가상적인 텍스트이긴 하나 이 텍스트가 매개하는 당대의 일그러진 사회정치상과 거기에 연동하는 대중의 감정구조(structure of feeling)가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근대성과 문화연구 꼭지는 앞으로 매호마다 우리 근대 문화사에서 발견되는 흥미로운 문화적 토픽들을 발굴해서 재미있는 읽을거리를 제공해줄 것이다. 그 첫 번째 순서로 근대 시절 대중들의 중요한 사교공간이었던 다방에 대한 역사적 의미를 다룬 이기훈의 글(「‘다방’, 그 근대성의 역정」)을 싣는다. 이기훈은 식민지 시절 다방이라는 근대적인 장소가 어떻게 한국사회에 도입되었고, 그 언어의 의미 변화가 무엇을 지시하는지, 대중들은 다방의 공간에 어떤 의미를 부여했는지를 분석한다.

『문화/과학』의 새로운 편집체계에서 야심차게 준비한 인물비평은 한국 지식 담론에서는 활발한 글쓰기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문제적 인물에 대한 문화비평을 고정적으로 싣고자 한다. 작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부터 올해 총선과 대선 국면에 이르기까지 대중들의 뜨거운 지지를 받고 있는 안철수의 존재와 그 현상을 분석한 안병진의 「안철수 현상에 대한 단상: 서구적 자유주의형 리더」는 안철수 현상이 대의제에 대한 오래된 믿음의 질병에 도전하는 특별함을 가지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이 극복이 더 세련된 대의제로 귀결될지 아니면 다른 차원의 민주주의로의 길을 조금 더 열지는 미확정”이지만 분명한 사실은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한 안철수 현상은 기존의 전통적 보수나 진보의 ‘믿음의 질병’과 투쟁한다”는 점을 역설하고 있다.

『문화/과학』은 앞으로 치열한 이론적 실천의 시각을 견지하면서 동시에 학술적 가치가 높은 글들을 비중 있게 다룰 계획이다. 이론의 재구성에는 푸코의 에토스라는 문제설정을 통해 통치성을 재독해하는 임동근의 글(「‘인간’과 장치: 푸코 통치성의 문제설정」)과 문화연구에서 해석의 정치성을 재고할 것을 주장하는 이동연의 글(「문화연구와 해석의 정치성」)을 싣는다. 임동근은 ‘인간-종’, ‘권력과 장치’의 문제설정을 통해 푸코의 통치성의 의미를 간파하고자 하는데, 그에 의하면 “푸코의 통치성이라는 문제설정은, 사물이 되었지만 사람이기도 한 인간과 권력 기계의 움직임들을 익힌 다음에, 허전하고 비어있는 주체의 자리에 ‘자기’라는 덩어리를 집어넣으며 이론 밖으로 나갈 것을 권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동연의 글은 영화 <파주>를 꼼꼼하게 분석하면서 문화연구에서 그동안 간과했던 텍스트의 정치적 무의식을 독해하는 실천이 결국은 현실의 중층적인 정치 지형들을 꼼꼼하게 파악하는 데 있어 긴요한 지적 작업임을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중국 상해지역에서 활동하는 대표적인 문화연구자 중의 한 사람인 화동사범대학교의 뤄강 교수의 글(「상하이 노동자신촌: 사회주의와 존엄이 있는 ‘생활세계’」)을 번역해서 싣는다. 『상하이국자』(上海國資)라는 경제 월간지와 뤄강이 대담하는 형식으로 구성된 이 글은 1940년대 이후 상해의 사회주의 개조와 건설의 역설적 역사를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흔적을 ‘노동자신촌’에서 발견하고 ‘사회주의 도시’로서의 상하이의 역사를 재건하기 위한 돌파구로 노동자신촌에 주목하면서, 작금의 상해 공간과 주체의 친자본주의화 문제를 간접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문화/과학』 71호는 새로운 진보적인 문화이론의 실천을 기획하는 신임편집위원들의 첫 이정표이다. 무엇보다도 지난 20년간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600회가 넘는 장구하고 치열한 편집회의를 통해 수많은 이론을 생산했던 강내희, 심광현 선생님을 비롯한 『문화/과학』 전임 편집위원들께 진심으로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이 분들의 순수한 열정과 노고가 있었기에 『문화/과학』의 신임편집위원들이 이렇게 탄탄한 진용을 갖출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문화/과학』은 앞으로 ‘재난과 자본주의’, ‘독점을 넘어서는 문화자립의 비판적 성찰’, ‘동물과 생태’, ‘동아시아의 정보자본주의’와 같은 토픽들을 놓고 내부 세미나를 통해 한국의 진보이론 진영에 생생하고 건설적인 화두를 던질 계획이다.

『문화/과학』 신임 편집위원회의 이론적 분투를 지지하고 격려하는 독자들이 더 많이 생겨나길 고대해 본다.

 

2012년 8월

편집인 이동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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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호 편집중: 특집 – 문화행동

71호를 편집중에 있습니다.

특집으로 “문화행동”이 준비되고 있습니다.

아래는 가안으로 잡힌 원고 제목들입니다:

  • 문화행동주의의 이론적 검토: 아방가르드, 상황주의, 정치미학주의
  • ‘점령하라’ 시위와 신자유주의
  • 사회운동과 문화행동의 연대: 평택대추리에서 희망버스까지
  • 문화행동과 포퓰리즘 비판: 촛불, 나꼼수, SNS에 대한 비판적 검토
  • 소셜테이너의 행동주의와 상품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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