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4호][칼럼]70일간의 유럽배낭여행기_남이 가지 않은 곳 찾아 가기 (김성일)

70일간의 유럽배낭여행기

남이 가지 않은 곳 찾아 가기

 

김성일(편집위원)

 

2012년 중유럽과 동유럽을 중심으로 진행된 76일간의 배낭여행을 끝낸 후 귀국 비행기 안에서 다음 여행지로 남유럽을 결정했다. 당시 만났던 여행객들로부터 스페인과 할슈탈트(Hallstatt, 오스트리아)를 가장 많이 추천받았는데, 할슈타트는 일정에 있었으나 스페인은 없어 언젠가 장기간에 걸쳐 집중적으로 여행하리라 다짐했던 것이다. 귀국 비행기에서 결심한 ‘언젠가’가 2년 뒤인 올 해가 될 줄은 당시로서는 예상치 못했다. 70일이 넘는 장기간 여행은 다시 가지 않겠다던 당시의 생각은 올 초 여행 준비를 하면서 여지없이 깨졌다. 일생에 있어 흔하지 않는 유럽여행이기에, 나에게 허락된 시간에 굳이 여지를 둘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라나

그래서 여름방학이 시작되는 6월 23일에 출국해서 2학기가 시작되기 전 날인 8월 31일에 귀국(70일)하기로 일정을 잡았다. “방향을 남쪽으로 틀어라!”는 여행 모토 하에 올 초부터 프랑스 29일, 스페인 29일, 포르투갈 9일, 비행기 왕복 3일 일정의 여행 계획을 본격적으로 짜기 시작했다. 무릇, 여행의 즐거움에는 여행 자체 외에 여행지에 있을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이리저리 루트를 짜는 ‘수고스러움’이 포함된다. 즉, 내가 가고 싶은 곳을 중심으로 동선을 만들고 숙소를 선택하며 교통편을 예약하는 전 과정에서의 노고는 기분 좋은 설렘을 동반한다. 따라서 여행은 이미 계획 짜기 단계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론다

리스본

몽 생 미셸

그러나 연초에 시작된 계획 짜기의 흥겨움은 출국 일자가 다가옴에 따라 걱정과 두려움으로 변한다. 출국 일자가 가까워짐은 여행지에서 갖가지 돌발 사태를 겪을 일도 점차 다가오고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안 심리는 출국 전날 정점에 이르는데, 엄습해오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공항 가는 길은 언제나 유쾌하지 못하다. 그러나 공항에 도착해 비행기 표를 받고 출국 심사를 통해 탑승 게이트에 이르면 “한번 부딪혀보는 거야!”는 응원의 목소리로 스스로를 달래며 유럽행 비행기에 발을 내딛는다.

바르셀로

발렌시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이와 같이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시작된 70일의 대장정은 무사히 끝을 맺었다. 여행 첫날 파리행 비행기의 4시간 지연 출발, 파리 지하철 발매기에서 나비고(교통카드)를 잘못 뽑아 40유로를 통째로 날린 일, 스트라스부르 도착 당일 밤 갑작스런 비바람으로 인해 호텔가는 길을 잃을 뻔한 일, 아비뇽행 기차를 잘못타서 하마터면 엉뚱한 곳으로 갈 뻔한 일, 보르도행 기차가 중간에 멈춰져서 영문도 모른 채 다른 기차로 갈아타고 갔던 일, 바르셀로나 산츠역에서 사람이 너무 많아 필수예약구간을 다 예매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렀던 일, 세비야의 40도에 달하는 폭염 속에서 그늘 하나 없는 길을 따라 스페인광장까지 걸어갔던 일, 포르토로 가던 중 뜻하지 않게 기차를 갈아탄 일 등 소소한 사건들이 있었지만 ‘멘붕’에 가까운 일이 벌어지지 않은 순탄한 여행이 되었다.

생 테밀레옹

세비야

스트라스부르

지난번의 중유럽ㆍ동유럽여행과 이번 여행을 통해 찍은 사진은 총 8000여장이 된다. 이 사진들을 많은 사람과 공유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여행책’을 쓰는 것이리라. 서점에 전시된 기존의 수많은 여행책과 차별성이 있어야 하기에, 이번 여행에는 나만의 여행이 갖는 독특한 스타일을 찾으려 했다. 그 독특함은 한국 사람들이 잘 가지 않은 곳을 여행하는 데서 찾을 수 있었다. 여행을 하면서 만난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이 가는 루트는 거의 동일하다. 영국 런던으로 인(in, 입국)해서 유로스타를 타고 프랑스 파리로 들어온 다음 네덜란드(암스테르담), 벨기에(브뤼셀), 독일(프랑크푸르트, 뮌헨, 베를린), 스위스(인터라켄), 이탈리아(로마, 베네치아, 피렌체),스페인(바르셀로나, 마드리드)에 이르는 시계 방향으로 가는 루트가 대부분이다. 물론, 이러한 루트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거의 모든 한국 사람들이 이 루트를 벗어난 나라나 도시는 거의 가지 않는다는 데 있다. 즉, 표준화된 위의 루트 외에 자신이 가고 싶은 도시를 중심으로 자신의 스타일에 맞는 루트를 만들지 않는다.

아비뇽

안시

에트르타

오비두스

그런 의미에서 나의 여행은 거점 도시(숙박하는 도시)와 당일치기로 갖다올 소도시를 묶어 다닌다는 점에서 특별함이 있다. 물론, 내가 방문한 소도시들로 가이드북에 다 나와 있긴 하지만, 그곳까지 애써 찾아가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구상하고 있는 여행책은 거점 도시와 함께 묶어 여행할 소도시를 소개하면서 정형화된 배낭여행 루트를 벗어나 스스로 일정을 짜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다. 가령, 파리에 대한 소개는 생략하고 당일치기로 갖다올 수 있는 샤르트르(Chartres)ㆍ루앙(Rouen)ㆍ투르(Tours)를 묶는 일정 짜기, 세비야에 대한 소개보다는 말라가(Malaga), 코르도바(Cordoba), 카디스(Cadiz)를 묶는 일정 짜기를 통해 보다 느긋하게 근교 소도시의 풍취를 느낄 수 있게 하고 싶다. 이번 여행에서 예상치 않게 발견한 ‘예쁜’ 소도시가 있다면, 샤르트르, 콜마르(Colmar), 안시(Annecy), 그로노블(Grenoble), 아를(Arles), 생 테밀레옹(St. Emilion), 지로나(Girona), 알리칸테(Alicante), 카디스, 쿠엥카(Cuenca), 라 코루냐(La Coruna), 오비두스(Obidos), 에보라(Evora)이다.

지로나

콜마르

쿠엥카

인생에 정답은 없듯, 배낭여행에도 정답은 없다. 즉, 자신의 스타일로 가는 게 배낭여행이다.그런 의미에서 책으로 구상 중인 내 여행 스타일 또한 무조건적으로 좋은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배낭여행이 내가 가고 싶은 곳을 자유롭게 선택하는 것이라면, 도식화된 작금의 여행 루트는 가고 싶은 곳을 사전에 차단하는 효과를 발휘한다는 점에서 색다른 여행 짜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 색다름은 남이 가지 않는 곳을 가는 것이리라. 인적이 드문 한적한 소도시의 골목길을 거닐 때의 평온함은 귀국 후 바쁜 일상에 쫓겨 사는 나에게 산소 같은 신선함을 주며 또다시 새로운 여행을 꿈꾸게 한다. 다음 여행지는 북유럽이다. 그게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포루토

하디스

라 코루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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