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3호][칼럼] 여유로워야 새로운 무언가를 할 수 있다(김영선)

〈일생활균형재단〉 [칼럼] 여유로워야 새로운 무언가를 할 수 있다

 

 

 

김영선(한국학중앙연구원, culmin@hanmail.net)

 

1.

새로운 무언가를 할 수 있으려면 일단 여유로워야(freedom from) 한다. 그래야 상상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고 보다 자기충족적인 삶을 꾸릴 수 있다. “여가란 상징의 세계에 들어가게 해 주고,어떤 경우에는 그런 상징의 세계를 만들어 내기도 하는 자유”라며 “그것은 사회구조적인 규범의 한계를 넘어서는 자유”이자 “상상력, 아이디어, 환상, 그림, 사랑 등이 있는 놀이의 자유”라고 말한 영국의 문화인류학자 빅터 터너(Victor Turner)의 설명은 눈여겨 볼만하다. 여기서 한계를 넘어서는 자유라는 말은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가족-사회 관계를 대상화하고, 나아가 지역공동체와 사회전체를 성찰하게 하는 여유를 준다는 의미다. 무언가를 ‘할’ 자유(freedom to)가 주어지는 가운데 자기충족적인 삶에 대한 열망과 그 열망을 피어나게 하는 실천이 뒤따른다는 것이다.

 

2.

“밥 먹고, 빨래하고, 잠자고, 일하는 시간 외에 아무런 여가시간을 갖지 못함으로써 보고 듣는 것이 없으니 점점 바보스러워져 회사로부터 더욱더 괄시당합니다.” 매일 12시간 노동을 했던 해태제과 여성노동자들이 1970년대 후반 8시간제를 주장하며 말한 이야기다. 한 세기를 건너뛴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은 달라졌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3.

장시간 노동은 “가족을 위한 최소한의 시간까지 박탈”한다. 여유가 있어야 접촉을 하고 관계를 만들고 공감을 하고 사랑할 수 있을텐데, 장시간 노동은 접촉을 차단하고 관계를 단절시키고 공감 능력까지 퇴화시킨다. 일본 국립여성교육회관이 2006년 조사한 ‘가정교육에 관한 국제비교’에 따르면, 한국의 아빠들이 아이와 보내는 시간은 2.8시간으로 이는 조사대상국 가운데 꼴찌에 해당한다. OECD 사회정책국이 2011년 발표한 국가별 ‘시간사용(time use)’ 보고서를 보면, 한국 남성이 노동에 들이는 시간은 최고인 반면, 돌봄에 들이는 시간은 최저였다.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만화 『미생』에 나오는 오과장의 아이들에게 아빠는 사실상 부재하다. 오랜만에 가족과 함께 한 제주도 여행에서 오과장이 확인한 것은 오직 ‘아이들과의 묘한 유격’, ‘묘하게 핀트가 안 맞는 대화’, ‘막상 말을 나눠보니 서로 너무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공감 부재의 모습은 장시간 노동에 휩싸인 여느 대한민국 직장인의 씁쓸함을 잘 대변해준다. 이와 상통하는 내용은 미디어의 인터뷰에서도 자주 발견된다. 오전 6시 30분까지 공사현장으로 출근하고 퇴근 후 9~11시에야 집에 도착하는 콘크리트 타설용 펌프카 운전사(38살)는 “8살 딸이 자고 있을 때 출근하고 퇴근하니, 딸과 대화를 거의 못한다”고 하소연한다(오마이뉴스, 2011. 7. 21). 너무 늦은 퇴근은 아이와 놀고 싶은 기대와 놀이 관계를 차단한다. 아이와 애착 관계를 형성할 시간은 부족하고 단지 아이의 잠자는 얼굴만 보면서 곯아떨어지는 꼴이다. “아빠는 잠자는 아빠야!”, “엄마 얼굴은 보고 그릴 수 있는데 아빠 얼굴은 보고 그릴 수 없어!”라는 아이의 이야기는 장시간 노동으로 뒤틀릴 수밖에 없는 부모-자식 간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얼마전 인구보건복지협회가 내놓은 ‘저출산 인식 설문조사’ 결과도 마찬가지다. 남성이 아이 돌보기가 어려운 이유에 대해서 응답자들은 ’아이와 노는 방법을 몰라서’(29.7%), ‘아이와 소통이 되지 않아서’(20.7%)로 답했다. 아이와의 접점을 찾는 훈련이 안 되다보니 ‘서로 너무 다른 사람’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노동과 가족의 관계를 연구해 온 조지메이슨대 교수 안젤라 해터리(Angela Hattery, 2001)의 지적처럼, 장시간 노동은 ‘아빠의 부재’로 이어지고 외부모육아(single parenting)와 유사한 ‘홀로’ 육아(solo parenting)로 내몬다. 여기에 ‘균형’(work-life balance)은 성립되기 어렵고 그것은 영원히 미끄러지는 수사에 불과하다. 이렇게 시간 박탈은 접촉 부재-관계 단절-공감 상실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고착시킨다. 장시간 노동은 가족 관계를 건강한 방식으로 이끄는데도 큰 걸림돌로 작용한다.

 

4.

여가를 역사적으로 연구해 온 아이오와대 교수 벤자민 허니컷(Benjamin Kline Hunnicutt)의 켈로그의 6시간제 연구는 앞서 이야기한 여가의 본래적 의미를 엿볼 수 있는 역사적인 사례다. 당시 노동자들은 새롭게 확보한 여가시간에 “산책하고 책을 읽고 텃밭을 가꾸고 무언가를 배우고 아이들을 돌보고 가르치고 글을 쓰고 감상하고 사랑하고 생각하고 즐기고 좋은 이웃이 되고 이야기하고 새를 관찰하는 일들을 그 활동 자체를 위해 할 수 있었다. … 누구는 클럽에 적극 참여했고 또 다른 사람은 교회에서 어떤 이는 노인 클럽에서 자원봉사를 했다. … 벌을 쳤고 곁다리로 목재용 나무도 키우는 이도 있었다.”는 기록들은 직장 일과 집안 일 모두에서 ‘벗어나’(freedom from) 무언가를 ‘할’ 자유(freedom to)의 확장을 보여준다. 우리는 위 사례를 통해 자유시간 확보가 전제되는 가운데 보다 주체적인 삶에 대한 열망과 여가다운 여가 실천이 뒤따른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최근 주간연속2교대 이후의 변화도 제한적이나마 위 사례와 상통할 것이다. 2013년3월 이후 현대자동차에서 46년 만에 밤샘 노동이 사라졌다. 이후 노동자들의 일과 삶의 변화를 추적하는 연구들이 보고되고 있는데, 요약하면 ① 크게는 수면건강이 좋아졌다. 그리고 ② TV 등의 소극적 여가활동에서 여행 및 스포츠 등의 야외 활동이 증가했고, ③ 개인적인 휴식 위주에서 가족 및 지역사회와 ‘함께’ 하는 여가활동이 늘어났으며, ④ 여가생활의 여부에 대한 고민(존재론)에서 어떻게 여가생활을 할 것인가(방법론)에 대한 관심으로 이동했다. 또한 ⑤ 일의 스트레스가 가족에 침투되는 정도가 감소했다. 주간연속2교대 이후의 변화 또한 자유시간의 사회적 의미를 엿볼 수 있는 지점이다. 물론 여가에 대한 높아진 열망과 늘어난 여가활동을 보다 주체적으로 구성해내기 위한 여가문화 프로그램이 수반되어야 할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아래 인터뷰 내용을 길게 인용해 보자.

 

“애들이 첨에는 싫어했어요. 귀찮아하더라고. … 집에 오면 항상 아빠가 있으니까. 컴퓨터도 마음대로 못 하고, TV도 맘대로 못 보고, … 살살 꼬셔서 이제 밖에 나가서 뭐도 하고 뭐도 하고 하면서 조금씩 관계가 좋아진 거죠. … 일 년 훨씬 지나보니까, 학교 갔다 와서 아빠가 없으면 전화를 해요. 오늘 어디 있는 거야? 전화를 해요. 좀, 당연히 가까운 관계인데,막, 그냥, 말뿐인 게 아니라 훨씬 더 가까워진 것 같아요.”

 

이렇게 아이의 숨결을 느끼고 아내·남편의 고민을 이해할 시간부터 풍경을 둘러보며 빛깔을 모을 시간, 관계를 만들고 공감할 시간, 상상하며 감수성을 자극할 시간, 사랑하고 연대할 시간의 가능성은 장시간 노동과 거리두는 삶, 여유로운 삶 속에서 피어난다. 그 구체적인 형상 가운데 하나는 ‘일과 삶의 균형’ 프로그램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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