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20호][칼럼] “문 후보님, 초대합니다.” (오혜진)

한겨레 기고문

[2030 잠금해제] “문 후보님, 초대합니다.”

오혜진(문화연구자)

    좀 쉬라는 방학이지만, 최근 국문학계에는 작은 ‘파란’이 일어나 학계 안팎의 사람들에게 꽤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다. 이번 겨울에 특별히 기획한 학술행사들이 각계 시민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으며 유례없이 흥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0일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에서 개최한 ‘반동의 시대와 ‘성전쟁’’ 포럼에는 무려 250여명의 청중이 모였고, 13일부터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가 서울시청년허브에서 열흘간 진행하고 있는 ‘페미니스트 시각으로 읽는 한국 현대문학사’ 강좌에는 매일 근 100명의 수강생이 열띠게 참여하고 있다. 어찌 된 일일까?

두 행사의 이례적인 선전은 우선, 기존 학술대회 및 강좌의 주제와 형식을 넘어서고자 한 데 있다. ‘반동의 시대와 ‘성전쟁’’ 포럼은 그간 학계에서 ‘여성적 주제’라며 부분적으로 취급하거나 ‘가십’이라고 사소화해온 젠더와 섹슈얼리티 문제를 현재 한국 사회의 구체적 현안과 결부시켜 광범위한 대중의제로 이끌어냈다. 이 포럼에서는 신예 연구자들의 시각으로 최근 온라인게임의 ‘여성 대상화’, 페미니즘 서적 붐, 박근혜 ‘여성/대통령’ 창출에 깃든 아시아적 독재와 젠더, 힐러리를 매개로 한 글로컬 페미니즘, 욕망과 폭력의 영역을 오가는 미성년 섹슈얼리티, 여성을 섹슈얼리티로 환원하는 것을 ‘미학적인 것’으로 승인해온 한국문학 전통, 한국문학장에서 젊은 페미니스트 독자들이 새롭게 펼치는 문화정치 등을 다뤘다.

당연히 질의응답 시간의 분위기도 확 바뀌었다. 평소 저녁식사 시간이 지나도록 마이크를 놓지 않던 (남성) 권위자들의 훈화말씀이 사라진 대신, 최근의 현안과 쟁점을 민첩하게 장악하고 있는 젊은 시민들의 예리한 질문들이 쏟아졌다. 현장에서 채 답을 내지 못한 이 토론은 현재 온·오프라인에서 계속 진행 중이다.

‘페미니스트 시각으로 읽는 한국 현대문학사’ 강좌의 흥행도 놀랍다. 이 강좌가 내세운 것이 ‘페미니즘 문학사’가 아니라 ‘페미니스트 시각’이라는 점에 주목해보자. 이 강좌의 목표는 기존의 제도화된 여성문학사의 지식을 전달하는 데 있지 않다. 최근 리부트된 페미니즘적 정동과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한국 현대문학사의 외연과 내포를 새롭게 구성하는 것이야말로 이 강좌가 노린 바다. 방법은 두 가지다. 기존에 제출된 페미니즘적 연구와 비평의 재맥락화, 그리고 ‘페미니즘 문학사’의 ‘버전 업’을 위한 새로운 주제와 방법론, 텍스트들의 (재)발견. 무엇보다 그걸 여성 연구자와 비평가들만의 고립된 숙제로서가 아니라, 대중적으로 확장된 젊은 여성 지성들과의 대화를 통해 해보자는 것이다.

물론 이 시도에 대한 적절한 평가에는 좀더 시간이 필요하겠다. 하지만 적어도 이 기획이 현재 표절과 문학권력, 성폭력 사태 등에서 보듯, 새롭게 갱신된 민주적 감수성으로부터 가장 낙후된 영역으로 간주되고 있는 한국문학장의 역동적 변화와 관계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게다가 쓰라린 ‘여성 대통령’ 시대를 거쳐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대선 후보조차 ‘페미니스트’가 되겠다고 선언하는 형국이니, 이제 정말 때가 왔다. 서로 다른 경험과 입장과 관심사를 가진 다양한 젊은 연구자들과 독자들이 만들어내는 이 ‘페미니즘 스펙트럼’이 한국 지식문화장의 뉴웨이브를 비추는 다채로운 빛이 되길 기대해본다. 그러니 일단 이번주 평일 저녁 7시30분, 서울시청년허브로 오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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