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 18호][칼럼] ‘망국병’과 여성 혐오(권명아)

[한겨레] 기고문

[세상 읽기] ‘망국병’과 여성 혐오 

권명아(동아대 국문과 교수)

 

옛날 신문에는 광복절과 삼일절에 “정조 삼팔선이 무너진다!”, “망국병 퇴폐풍조, 여성의 풍기문란” 같은 특집 기사가 자주 실렸다. “정조 삼팔선이 무너진다!”는 광복 30주년 특집 기사 제목이다. 여성의 ‘정조 문제’는 ‘호국’과 ‘망국’의 표상이 되었고 성적 퇴폐나 문란은 사회 위기의 대표 징후로 여겨졌다. 국가와 사회의 ‘정상성’은 여성 신체에 대한 성적 표상과 결합하여 그 의미나 가치가 만들어졌다. 성적 차이와 무관해 보이는 이런 개념들은 실은 성차에 근거한 사회의 가치 체계에 의해 구성된다. 모든 개념과 가치는 젠더와 무관하지 않다.

광복절이나 삼일절은 망국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국가의 미래와 사회의 초석을 논하는 기념과 의례의 날이다. 여성의 정조 문란과 퇴폐를 망국의 원흉으로 지목하고 ‘허영녀’의 개념 없음을 한탄하는 건 이런 의례에 항상 동반되었다. 지배 엘리트들이 모여서 정조 삼팔선이 무너진다며 분노하고 좌절하고 망국의 한을 곱씹는 모습은 희극적이다 못해 슬프다. 냉전 한국의 남성성은 거대질서에는 무기력한 대신 그 좌절을 내부의 소수자에게 폭력적으로 전가하는 방식으로 형성되었다.

열강이 지배하는 국제 관계 속에서 국가 주권을 세우지도 못하고, 새로운 사회에 대한 다른 전망도 상상력도 상실한 냉전 한국의 통치성은 거세된 남성성을 통해 지탱되었다. 거세된 남성성은 다른 사회에 대한 이념과 상상력이 부재한 자리를 피지배 집단에 대한 폭력적 통제와 규율로 대체하면서 냉전의 통치성을 정당화했다. 무기력한 폭군이라는 이중적인 얼굴을 지닌 냉전 남성성은 국경일마다 상징적이고 의례적인 ‘여자 패기’를 반복하면서 강화되었다. 고질적인 여성 혐오의 역사적 원천은 바로 여기에 있다.

또한, 망국이나 사회 위기라는 개념이 여성 신체를 매개로 의미가 만들어졌기에 여성 혐오가 작동할 때 단지 성차의 문제(여성이라서)만이 아니라, 망국적 문제나 사회적 문제라는 다른 차원이 여성 혐오에 결부되는 것이다. 따라서 여성 혐오에 근거하여 실제의 성차를 지닌 존재를 공격하고 차별 선동이 이뤄질 때 이들은 대체로 ‘국가와 민족의 이름으로’ 혹은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는 이념과 가치를 내세우거나 자기 정당화의 근거로 삼는다.

올해 광복절에도 어김없이 광복 기념 ‘여자 패기’는 이어졌다. 역사에 대한 무지를 드러낸 대통령의 광복절 기념 축사에 대한 공분은 여성 연예인 티파니 두드려 패기로 전가되기도 했다. 대통령이라는 ‘거대권력’에 맞서지 못하는 무기력과 좌절이 만만한 다른 내부자를 찾아 공격적으로 이동하고 증오를 이전시키는 방식은 냉전 남성성이 기생하는 여성 혐오를 반복한다. 다른 한편 박근혜 대통령 집권 이후 정권 비판과 여성 혐오적인 풍자가 뒤섞이면서 권력 비판의 이름으로 여성 혐오가 정당화되고 있다. 냉전 남성성과 여성 혐오의 연계는 대안 이념이 부재한 보수파의 통치전략과 연결되는 경향이 강했으나, 이제 이 대열에 진보진영도 합류하게 되었다. ‘민주화 이후’의 진보진영이 냉전기 보수 집단의 통치성의 근간인 여성 혐오를 반복하는 건 흥미롭다.

국가와 사회에 대한 구체적인 비판이나 새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는 상상력과 대안적 이념이 부재한 채 만만한 대상을 향한 조롱과 풍자, 씹기의 쾌락으로 무기력을 정당화하는 여성 혐오의 역사는 무한 반복되고 있다. 한국사의 ‘유구한 여성 혐오 전통’을 살펴볼 때 ‘허영녀와 김치녀의 망국병’을 한탄하고 공격하며 무능을 정당화하는 여성 혐오 생산자들이야말로 ‘망국’의 원천이었다. 광복 71주년을 맞이하여 역사를 살펴볼 때 무엇보다 명확한 역사적 진실은 여성 혐오가 ‘망국’의 원천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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