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1호][신간안내]한국의 ‘대중’은 스스로 생각하고 잡히지 않는 존재(김성일)

“한국의 ‘대중’은 스스로 생각하고 잡히지 않는 존재”

 

 

‘대중의 계보학’ 김성일 교수
인터뷰: 한겨레 이유진기자

 

김성일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객원교수는 “대중이 새롭게 출현할 분화구는 사회의 모순이 응집된 곳이며, 지배 권력과 자본의 영향력이 흔들리는 가장 약한 지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촛불이 문제가 아니다. 앞으로 나올 다양한 실천 양식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대중의 집단행동엔 정답이 없다. 분명한 건, 엘리트 집단이 핵심 주체가 아니기 때문에 누가 종결을 선언할 수도 없고, 끝도 없는 싸움이 될 거라는 거다.”

최근 <대중의 계보학>(이매진)을 펴낸 사회학자 김성일(46)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객원교수를 22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경희대에서 만났다. 이 책에서 그는 1920~30년대 근대적 대중의 형성부터 2002년 이후 광장의 시민까지 ‘대중의 계보’를 추적했다. “미셸 푸코식의 ‘계보학’이라면 더 면밀하게 분석해야 했다”고 하지만, 개화기 이후 한국 사회가 근대사회로 이행하면서 형성된 대중을 시대별로 검토한 흔치 않은 시도다.
책을 보면, 대중은 “근대사회가 출현하면서 등장한 역사적 집단”이다. 더욱이 한국 대중은 ‘사건’으로 등장한다. ‘오노 사건’, ‘노사모’ 활동, 길거리 응원전, 미선이 효순이 촛불 집회, 이라크전 파병 반대운동, 대통령 탄핵반대 촛불집회,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집회, 최근 세월호 참사까지 새로운 결집방식과 자율적 실천들을 낳았다.
근대 이후 하향식 ‘국민’ 형성됐지만
지식 민주화로 깨어있는 대중 출현
한국의 대중은 늘 저항적이지만도 않고, 권력에 자발적으로 동의하는 대중독재(임지현) 현상으로만 분석되지도 않는다. 엘리트에게 ‘계몽’되거나 ‘지도’되는 집단이 아니다. 제국의 지배를 뚫고 지구적 차원으로 변혁을 일으키는 주체인 ‘다중’(네그리·하트)도 아니다. 김 교수는 “대중의 지성화”가 존재한다며 “그 자체로 자기 동일성을 끊임없이 해체하고 비껴가는 탈주를 감행한다”고 분석한다.
“한국 대중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역능’이 있다. 하지만 이런 능력이 집단적 마녀사냥의 주술로 사용되기도 한다. ‘쓰레기가 되는 삶’(바우만)을 대량생산하는 신자유주의의 강력한 고발로서 정치적 기획을 위한 대중 연구가 시작돼야 할 이유다.”
김 교수는 한국의 대중은 운동경기부터 정치주장까지 행위목표를 정확하게 설정한 뒤 주체의 의지를 발동해 다양하게 ‘욕망의 선’을 탔다고 본다. 대중은 스마트폰으로 소소한 일상을 공유하고, 정치개혁을 요구하는 함성에서 맹목적이고 배타적인 심리가 결합된 포퓰리즘까지 “신출귀몰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대중’의 계보도는 크게 세가지로 나뉜다. 저항하는 대중, 포섭·동원되는 대중, 감성적인 대중이다. 저항하는 대중은 갑오년 동학농민전쟁, 만민공동회, 3·1운동, 사회주의 운동 등 민권에 대한 열망과 앎의 주체로서 등장한 흐름을 가리킨다. “일상에서 지식을 습득해가는 근대의 대중”이자 지식의 민주화로 “깨어 있는 대중”의 탄생이었던 셈이다. 이 계보는 4·19 혁명, 1970~80년대 노동운동, 5·18 광주민주항쟁, 6·10 항쟁 등으로 이어진다. 포섭·동원되는 대중은 박정희 정권 때 ‘국민’과 ‘민족’이라는 집합주체로 불렸던, 하향식으로 호명된 수동적 집단이다. ‘국민 개조’ 프로젝트가 등장했고, 대중은 총동원 체제 안으로 포섭되었다. 한일협정 때문에 정치적 위기를 맞자 박 정권이 민족 정체성을 내세우며 현충사 복원사업, 이순신 동상 건립, 신사임당 재발굴 등으로 정권 정당화·방어논리로서 ‘민족’ 담론을 구사해 대중 현상을 강화했다. 아이엠에프 구제금융은 정부정책과 재벌의 문제였음에도 금모으기를 하면서 국난 극복의 주체로서 대중이 동원됐다. 감성적인 대중은 대중문화를 향유하는 소비대중의 흐름과 맞닿아 있다.
김 교수는 “한국 사회는 지금 모순이 첨예하게 대립하면서도 해결이 불가능해 그 어느 때보다도 폭발적인 대중 결집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해 국민들이 ‘국가’를 호명하는 것도 그는 “새로운 질문”이라고 했다. 지식인들은 권위주의와 획일화, 억압으로서 ‘국가’, 파시즘의 가능성이 있는 ‘민족’을 비판적으로 검토해왔지만 지금 대중이 호출하는 ‘국가’, ‘민족’이란 그 범주에서도 벗어난다는 것이다.
“지금 한국의 대중한테는 ‘국가’라는 게 초월적인 소외의 장소가 아니라 함께 대응하고 아파하고 나눌 수 있는 소재다. 대중에게 ‘국가’나 ‘민족’은 멀리 있지도, 억압적이지도 않은 존재가 될 수 있다. 국가를 연성화된 것으로 인식해 위임된 권력에 도전할 수도 있는 것이다.”
특히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이후 대중의 양상이 많이 바뀌고 있다고 그는 풀이했다. 명분을 갖고 운동의 지도부가 끝내자고 지시하는 옛날 방식이 아니라 “각자 생각하고 움직여 삶 속에서 꾸준히 밀고 가는 것”으로 변했다는 얘기다. 따라서 이런 변화를 “대중의 새로운 반응”이라고 보고 있다.
“대중은 엘리트의 말을 듣지 않으며 벗어나고 넘나든다. 국가, 언론, 시민운동도 대중을 받쳐주지 못하는 상황 아닌가. 답답하지만 문제의식이 살아있으니 직접 찾아보고 지식을 구성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대중은 미지수 엑스(X)로 존재하지만 멈추지 않는 ‘흐름’이자 ‘현상’이다.”
연구실을 나서자 봄날 캠퍼스에서 더운 기운이 훅 끼쳐왔다. 교문 앞에 한 남학생이 한손에는 초, 다른 손에는 마이크를 들고 “세월호 참사를 이렇게 그냥 잊을 수 없다”고 외쳤다. 그 앞에는 ‘대중’이 앉아 있었다. 30여명이었다. 그들은 또 어디로 흘러가게 될까. 몇명이 될까.

 

 

한겨레 5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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