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1호][칼럼]청춘 착취 자본주의(최철웅)

청춘 착취 자본주의

 

최철웅 | <문화/과학> 편집위원

 

 

지난 4월 개봉한 영화 <10분>은 ‘출근’하는 것 자체가 목표가 되어버린 이 시대 청년들의 애환을 현실적으로 그려낸다. 이 시대 여느 이십대처럼 방송사 PD시험을 준비 중인 호찬은 시험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지방이전을 앞둔 한 공공기관의 6개월 인턴사원으로 입사한다. 잠시 거쳐 갈 뿐이라며 대놓고 농땡이를 치는 동료 인턴과 달리 호찬은 성실하게 업무를 도우며 직원들에게 인정을 받는다. 그러던 어느 날, 정직원채용공고가 나자 사무실 직원들은 이미 내정된 것이나 다름없다며 호찬에게 응시를 권한다. 호찬은 고심 끝에 어려운 집안 형편을 고려해 방송국 PD의 꿈을 접고 안정된 직장생활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다. 그런데 갑자기 연줄을 댄 다른 지원자의 채용이 결정되고, 호찬은 다시 인턴 사원의 자리로 돌아간다. 직원들은 함께 분개하고 노조지부장은 노조차원에서 문제제기 하겠다며 호언장담한다. 그러나 새로운 직원은 친화력 있게 다른 직원들과 어울려 가고, 사무실 직원들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호찬에게서 등을 돌린다. 호찬은 모욕감과 인간적 배신감을 느끼지만, 사회생활의 생리가 그런 것 아니냐는 싸늘한 공기만이 사무실을 휘감고 흐른다.

감독이 자신의 인턴 경험을 토대로 연출한 덕에 영화는 이십대 청춘의 고민과 직장생활의 현실에 대해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전형적인 특징들을 잘 포착해낸다. 영화를 보는 내내 직장생활의 경험과 취업을 준비 중인 후배들의 모습이 중첩된 것은 그 때문이리라. 꿈과 현실 사이의 괴리, 정규직과 비정규직간의 견고한 벽, 지시는 하지만 책임은 지지 않는 직장상사, 현실이라고 위안하기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직장인의 삶…. 당대의 청춘들은 수많은 경계지대들 또는 사이공간에서 살아가고 있다. 졸업과 취업 사이, 기대와 현실 사이,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 등. 그 경계지대란 생애주기 상의 불확정적 시기이기도 하고, 심리적 공간 내에서 체감하는 격차이기도 하며, 제도적으로 물질화된 권력의 차별이기도 하다. 경계선 상의 삶은 미래의 가능성에 활짝 열려있다기보다, 불안정하고 불안한 삶의 반복을 의미할 뿐이다. 오늘은 자원봉사자로, 내일은 인턴으로, 그리고 그 후엔 실업자로 ‘돌고 도는’ 삶의 패턴. 그 모호한 경계지대를 자본과 권력은 ‘청춘’의 고유한 열정, 가능성, 경험 등의 수사로 메우면서, 부당한 착취와 정책적 무능력의 현실을 은폐한다.

 

인턴, 자원봉사자도 노동자도 아닌

 

원래 의료계의 실무수습제도를 뜻하던 인턴십 제도는 언젠가부터 고등교육과 취업을 매개하는 필수적인 고용패턴으로 인식·운용되고 있다. 현재 공공기관은 물론 비정부기구와 사기업 모두 인턴십을 필수적인 채용과정으로 도입하거나, 인턴 경험을 우대사항으로 평가하는 추세다. 기업들이 경력직 노동자들을 우선적으로 채용하면서 청년층 고용률이 떨어지자, 2008년 말 이명박 전 대통령이 ‘청년 인턴제’를 도입하여 “중소기업과 공공기관에서 근무하면서 취업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다”라고 말한 것이 그 출발점이었다. 2010년부터는 대기업에까지 청년인턴제가 확산되며 신입사원 공채를 대신하게 되었고, 인턴 경쟁률도 덩달아 치솟았다. 인턴이 되는 길은 더욱 좁아졌지만, 인턴이 되고 나서도 확실하게 보증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모두가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것도 아니며, 최저임금이나 시간외수당을 못 받는 경우도 허다하다. 단순한 복사와 허드렛일부터 정규직이 감당해야 할 수준의 업무까지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지만 노동자인지 교육생인지도 애매하다. 인턴제의 가장 큰 특징은 모호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턴십의 모호한 포괄성은 다양한 형태의 파행적 운용을 야기하고 있다. 가장 악독한 사례는 정규직 전환보장이나 보수도 없는 무급인턴의 경우이다. 일부 언론사나 큐레이터 등 고학력 구직자들이 몰리는 곳에선 “완벽에 가까운 영어실력, 주5일 3개월 이상 근무” 등 높은 조건을 내걸고 무급인턴을 모집해 빈축을 사고 있다. 이력서에 넣을 근사한 한 줄의 경력을 위해 무보수노동마저 감내해야 하는 청년층의 곤궁을 가장 ‘효율적으로’ 착취하는 방식이 아닐 수 없다. 무급인턴의 경우 자원봉사와의 경계도 모호하다. 한국의 근로기준법 제2조 1항 1호는 근로자를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자’로 정의한다. 따라서 비단 ‘교육’만 받는 것이 아니라 정직원과 다를 바 없는 업무를 수행한다면 노동자로서의 임금과 제반권리를 보장받아야만 한다. 일반적으로 이윤창출을 목적으로 삼는 사기업은 자원봉사자를 업무에 활용할 수 없다. 기업이 노동시장에서의 불평등한 지위를 활용해 무급으로 노동자를 착취하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것이다. 자원봉사자도 노동자도 아닌 애매한 지위의 인턴들은 아무런 권리도 보장받지 못한 채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있는 셈이다.

자원봉사와 무급인턴을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곳이 공익을 내세운 각종 비정부기구들이라는 점도 아이러니한 광경이다. 최근 출판도시문화재단이 열린도서관 ‘지혜의 숲’을 개관하면서 ‘권독사(책과 독서를 권하는 사람)’라는 명칭의 자원봉사자를 모집하면서 논란이 되었다. 권독사는 독자의 관심과 기호에 따라 도서나 출판사, 학자들의 코너를 소개하고, 책이 꽂힌 위치까지 알려주는 역할을 수행한다. 독서의 즐거움을 전파한다는 명목 하에 전문적인 사서가 수행해야 할 작업을 자원봉사자들이 대신하는 셈이다. 2011년에는 희망제작소가 무급인턴을 모집하자 노동력 착취가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고, 박원순 서울시장은 “우리는 월급은 주지 못하지만 꿈‧비전‧사랑을 준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각종 영화제나 지역축제들에서 현장관리와 진행을 수백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담당하는 것은 이제 상식적인 관행이 되었다. 부당한 관행일지언정 모두가 동참하는 게임에서 굳이 추가적인 비용을 지불할 의사는 누구에게도 없는 셈이다.

 

너의 노동력을 공짜로 팔지 마라!

 

박원순 서울시장의 발언에서 드러나듯 자원봉사와 무급인턴 고용을 정당화하는 논리는 ‘돈 대신 경험을 제공한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이들이 보기에 세상은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공익적 가치를 추구하는 이들로 넘쳐나며, 그들이 마음껏 청춘의 열정과 시민적 덕성을 발휘하도록 돕는 것이야말로 대안적 사회의 밑거름이 된다. 이러한 활동들은 실제로는 소외된 노동에 불과할지언정 당사자들에겐 자발적이고 소외되지 않은 선물로서 경험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 경험이란 것이 대개 실무와 무관한 허드렛일에 불과하고, 전문적인 인력에 의해 수행되어야 할 업무를 값싸게 활용하는 방식이란 사실은 애써 감춰진다. 물론 일부 지원자들은 정신적 만족감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며 기꺼이 무상의 노동을 제공할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이들은 청년층 내에서도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계층에 속할 가능성이 높다. 국제기구나 해외기업의 인턴십 등 스스로 교통비와 생활비를 기꺼이 부담하면서 명성 높은 기구의 글로벌 인턴십을 향유하는 이들이 그런 예다. 인턴제가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인턴 내에서도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자원봉사나 무급인턴 활동은 공익적 목적과 자발적 동기에 의해 수행된다 하더라도 직간접적으로 해당기업이나 기구의 이윤창출과 비용절감에 기여하게 된다. 주관적으로는 시민적 미덕을 발휘하고 있을지언정 객관적으로는 소외된 노동을 통해 잉여가치의 추출에 연루되는 것이다. 게다가 임시적인 무급의 노동을 통해 탈숙련화를 조장하고, 무상으로 노동을 제공할 여유가 없는 이들의 삶을 위협하게 된다. 앞서 언급한 열린도서관의 자원봉사자들은 본의 아니게 전문 사서들의 일자리를 침식하는 결과를 빚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턴의 제반권리나 보상에 다들 눈감는 것은 채용자나 지원자 모두 인턴을 ‘거쳐 가는’ 자리로 간주하는 탓이 크다.

실업난이 지속되는 한 정규직을 인턴으로 채용하고, 유급인턴을 무급인턴으로 대체하려는 기업들의 행태는 더욱 일반화될 것이다. 이는 결국 제한된 일자리를 놓고 구직자들이 ‘바닥으로의 경주’를 펼치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잃을 것이 없는 기업은 공짜 노동을 요구하는 것을 넘어 ‘경험’을 제공해준 대가로 오히려 인턴십의 비용을 청구할 수도 있으리라. 미국 사회를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인턴십 프로그램의 실태를 광범위하게 조사하고 비판한 로스 펄린의 저서 『청춘 착취자들Intern Nation』의 한국어판 부제는 ‘너의 노동력을 공짜로 팔지 마라!’이다. 이 책이 던지는 메시지는 간명하다. 노동과 관련한 일체의 부당한 관행과 평가절하를 ‘함께’ 거부하지 않는 한, 우리는 이력서의 한 줄을 채우기 위해 ‘돌고 도는’ 인생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는 것.

 

 

[경희대 대학원보, 2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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