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 15호][칼럼]언케니벨리 알파고(이동연)

경향신문 기고문

 

언케니벨리 알파고

 

이동연(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알파고와 이세돌의 세기의 바둑 대결이 끝난 지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인간의 창조적 직관을 뛰어넘지 못할 거라는 당초 예상을 뒤 업고 알파고가 압승을 하자 세계가 충격에 휩싸였다. 미디어는 앞 다투어 인공지능의 본격 시대가 곧 다가올 것이라는 기획기사를 쏟아냈다. 자비 없는 인공지능 알파고에 맞선 이세돌은 영화 ‘터미네이터’에 등장하는 인류의 구원자 존 콘너에 비유되고, 신의 한수로 유일하게 승리한 제4국은 절대 기계에 맞선 인간의 전설적인 승리로 칭송되었다. 인공지능과 인간의 대결에서 인간의 일말의 희망을 보았지만, 사실상 결과는 인공지능의 압승이었다. 빅 데이터와 네트워크 정보로 무장한 인공지능이 인간의 직관과 경험의 능력을 이긴 것이다. 이번 대전을 주도한 알파고 창시자, 데미스 하사비스는 알파고의 승리도 결국 인간의 승리임을 강조했지만, 인공지능, 안드로이드, 로봇에 대한 인간의 실제적인 공포가 마침내 시작되었다.

 

알다시피 알파고는 구글의 인공지능개발 자회사인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 프로그램이다. 이번에 사용된 알파고는 최고 수준의 기업용 서버 300대를 병렬로 연결한 슈퍼컴퓨터이다. 한 서버 당 3테라바이트의 디램 모듈이 들어갔으니 알파고의 연산을 지원하는 메모리 용량은 900테라바이트가 되는 셈이다. 그래픽을 담당하는 처리장치가 176개가 되고 총 106만개의 메모리 반도체가 사용되었다고 한다. 알파고의 연산속도는 1초에 10만개의 수를 계산할 정도여서, 순간 초읽기에 몰리는 이세돌이 알파고와 싸운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공평한 것이었다. 알파고는 적어도 이세돌과의 바둑대결에서만큼은 명인보다 더 명인처럼 둔 것이다. 천재적 인간의 두뇌보다 더 영민한 두뇌가 되고 싶은 알파고는 지금 인간에게는 언케니벨리하다.

 

‘언케니벨리’(uncanny valley)는 인간과 비슷해 보이는 기계와 로봇을 보면서 느끼게 되는 불편함이나 혐오감을 말한다. 가령 ‘로봇 태권브이’에 나오는 깡통로봇이나, ‘스타워즈’에 나오는 BB-8 로봇은 귀엽고 친근하지만, 인간과 거의 비슷한 피부조직에 심줄과 주름이 선명한 로봇을 만나게 되면 왠지 섬뜩한 느낌을 갖게 된다. 이것이 언케니벨리 효과이다. 말하자면 로봇이나 안드로이드가 완전히 인간의 형체를 고스란히 복제한다 해도 그것이 기계인 한에서 인간이 느끼는 불편하고 징그러운 감정은 기계와 인간 사이에 가로 놓인 까마득한 ‘감성의 골짜기’가 된다. ‘케이팝 스타’ 시즌5 심사위원 박진영은 한 참가자가 노래 말미에 감정에 복받쳐 우는 장면을 듣고 심사평에서 알파고는 사랑을 모르고, 노래하며 우는 감정을 모른다는 말을 남겼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인간의 수리적 사고능력을 앞지른다 해도, 슬픔과 기쁨의 감정을 알지 못하는 한 인간을 넘어설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인공지능은 인간의 감정을 복제하는 것을 넘어 스스로 표현할 수 있는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가상세계 안에서 인간의 감정에 반응하여 형성된 가상 인간이 실제 인간의 감정과 상호작용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좀 더 업그레이드 된 세컨드라이프, 사이버섹스 프로그램들이 그것이다. 영화 ‘블레이드러너’에서 개발된 안드로이드 ‘넥서스6’의 목표는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이다. 데커드 형사와 사랑에 빠진 타이렐사의 최고의 제품 레이첼은 어느 인간의 생애가 정교하게 입력된 프로그램 안드로이드지만, 살면서 스스로 자신만의 감정을 갖게 된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감정을 스스로 학습하여 인간처럼 행동할 때, 지금까지 ‘언케니벨리’로 표현된 넘을 수 없는 감성의 간극이 무너질지도 모른다. 언케니벨리는 어떤 점에서 인공지능이 인간을 완벽하게 따라할 수 없다는 최후의 미소이기도 하지만, 역으로 인간이 비인간의 존재에 종속될 수 있다는 공포심의 발로 일 수도 있다.

 

그런데 알파고의 언케니벨리의 효과는 감정 혹은 감각에 있지 않다. 알파고의 감정에 대한 논쟁, 그것은 하나의 속임수다. 알파고의 실험은 다른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이번 대국의 궁극적인 목표는 인공지능의 연산적 실수를 제거하는 데 있었다. 실수하지 않고 예기치 않는 사태에 대처하는 완벽한 인공지능의 일처리 능력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것이었다. 궁극적으로는 인공지능이 외과 의사 없이도 완벽하게 수술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이번 세기의 바둑대결에서 보여주고 싶어 했다. 실제로 구글은 현재 IT 기술과 의료산업을 결합하는 유비쿼터스 헬스케어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인공지능은 향후 적어도 20년 안에 사용될 디지털 바이오 의료산업의 핵심 주체이다. 언케니벨리 알파고에 대한 불편하고 으스스한 감정은 기계와 인간의 감정 대결이 아닌, 바로 인간을 대상화하는 자비 없는 자본의 비인간적 논리 그 자체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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