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13호][칼럼]이데올로기의 귀환(이동연)

경향신문 기고문

 

[문화비평]이데올로기의 귀환

 

 

이동연(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자기 나라 역사를 모르면 혼이 없는 인간이 되는 것이고 바르게 역사를 배우지 못하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독해불가 어록 중 최고 난도를 자랑했던 이 말은 사실 국민을 상대로 이데올로기 전쟁을 벌이겠다는 통치자의 가장 무서운 속내를 드러낸 언술이었다. 마치 고대 부족사회를 통치하는 어느 족장의 주술 같은 ‘혼이 비정상’이란 말은 권력의 영구 지배는 역사의 지배에서 시작된다는 분명한 통치술을 공공연하게 드러낸 것이다.

 

그것은 결코 헛소리나 말실수가 아니다. 그것은 역사를 지배하기 위한 통치자의 집요한 신념과 자의식의 발로이다. ‘혼이 비정상’이란 비교술(秘敎術)은 곧바로 ‘역사교과서의 국정화’, ‘일본군 위안부의 한·일 간 정부 합의’라는 역사전투의 최전선으로 이행했다. 중요한 것은 바로 비정상적 언술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기획하려는 정치적 이행이다. ‘역사교과서의 국정화’와 ‘일본군 위안부의 합의’는 영구집권을 위한 역사전쟁의 서막인 셈이고, 그 정치적 의도는 ‘혼이 비정상’이란 말에 압축되어 있다.

 

“정신을 집중해 화살을 쏘면 바위도 뚫을 수 있다는 옛 말씀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올해 신년사 발언 중 한 대목이다. 판소리로 치자면 대중의 귀를 사로잡는 ‘눈 대목’에 해당된다고나 할까, ‘정신집중’은 ‘혼이 비정상’과 묘하게 짝을 이룬다. 겉으로 보기에 어이없는 말처럼 보이지만, 박 대통령 통치술의 핵심을 보여주는 말들의 연속이다. ‘정신집중이면 화살관통’이란 말은 자신이 그토록 집요하게 관철시키려 했던 노동개혁과 경제선진화 법안의 조속한 이행을 촉구하려는 결의의 수사학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이 말을 하기에 앞서 박 대통령은 “청년일자리, 기업경쟁력 약화, 인구절벽 등 당장 우리가 극복해야 할 내부과제들도 산적해 있고,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안보 역시 잠시도 마음을 놓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정신집중은 경제, 정치, 사회, 외교 등 국가적 위기 사태를 극복하려는 국민들의 총체적 마음가짐이어야 함을 요청하는 언술이다. ‘혼’과 ‘정신’은 통치자 개인의 심리 내면에 잠재된 정치적 무의식을 드러내는 기표로서, 과거 파시즘의 시대, 유신의 시대에 통용되었던 ‘국민정신개조’라는 이데올로기 통치의 귀환을 알린다.

 

지난 몇 년간 우리 사회 마음의 우울증, 혹은 신경증을 대변했던 혐오, 분노, 증오, 모멸감이라는 언어들은 이론적으로 ‘정동의 지표’로 보기 어렵다. 우익들의 인간혐오, 헬조선이란 청년들의 분노, 보통사람들이 느끼는 차별과 모멸감은 ‘마음의 리듬과 배치’, ‘몸들의 관계’로서 정동으로 해석되기에는 너무나 적대적이다. “다양한 마주침의 리듬과 양태”, “감각과 감성의 신체적 능력”, “부딪침과 부대낌”이라는 정동이론으로 과연 한국사회의 적대적 감정의 상태를 설명할 수 있을까? 정동이 몸의 잠재성과 능력이라는 약속의 의미로 사용되건, 파국의 미래를 예견하는 위협의 의미로 사용되건, 정동적 사유, 정동적 전환은 역사전쟁, 이데올로기 전쟁을 선언한 통치 권력의 지배술을 대면하기에는 너무 여유로워 보인다.

 

혐오, 분노, 증오, 모멸감은 정동의 지표라기보다는 이데올로기의 지표이다. 물론 정동이론은 이데올로기와 무관하지는 않다. 정동이론은 이데올로기를 고려하고 전제하고 우회한다. 정동이론은 이데올로기의 이후, 혹은 신자유주의 체제의 윤리적 파산 이후를 상상하는 일종의 ‘포스트-코기토’의 세계를 상상한다. 그래서 정동이론은 그러한 위협과 파국의 체제와 감정의 대안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러나 정동은 그 진정한 호소력에도 불구하고, 이데올로기 적대의 장에서 동요한다. 정동은 이데올로기를 극복하기보다는 그것에 포섭될 위험을 내재하고 있다.

 

정치경제적 전환의 시기에 이데올로기가 귀환하고 있다. 통치자부터 그 맹목적 광기의 우익집단까지 모두 이데올로기로 무장하고 있다. 광화문 세월호 단식농성장에서 벌인 일베들의 폭식투쟁, 조계사로 피신 중인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을 쫓아내라며 조계사 경내로 진입하는 어버이연합, 김제동을 종북 사회주의자로 낙인찍고, 아베께서 사과했으니 일본을 용서하고 위안부 할머니들은 “남은 여생을 편하게 지내시라”는 엄마부대 봉사단은 한심한 작자들이 아니라 이데올로기 전쟁의 전위부대이고, 분명하게도 통치자와 함께 ‘권력에의 의지’를 공유하고 있다.

 

역사전쟁, 이데올로기 전쟁 국면에서 가져야 할 것은 ‘고귀한 정동’보다는 선명한 ‘대항 이데올로기’이다.

이 글은 카테고리: 알림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댓글은 닫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