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11호][신간안내] 『문화/과학』 83호

83호를 발간하며

만약 중고등 교육과정 교과목 중 ‘페미니즘’ 혹은 ‘젠더학’ 같은 게 생긴다면, 그 교과서에 2015년 여름은 분명 ‘역사적인’ 순간으로 기록될 게다. 그 교과서가 미국 것이라면, 해당 지면에는 환호하는 시민들의 모습과 함께 ‘동성결혼 합법화’라는 전기적(轉機的) 사건이 서술되겠지만, ‘헬조선’이라는 별칭을 가진 남한의 것이라면 사정은 매우 다르다. 그 역사는 ‘여성혐오의 시대’ 혹은 ‘역풍(backlash)의 시대’라는 장 제목 하에 유명 연예인과 칼럼니스트의 여성혐오 발언, 온라인공간에서 촉발된 여성혐오적 신조어들, 퀴어퍼레이드에 반대한다며 도로에 드러눕는 일부 개신교도들, 줄이어 고발되는 남성 진보인사들의 데이트폭력, 메르스갤러리와 미러링(mirroring),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 해시태그 운동, 여성을 성기로 환유하는 랩 가사가 특정 음악의 관행으로 일컬어지는 사태, 성추행을 거듭해도 처벌되지 않는 교수와 정치인들, OECD 가입국가 중 수위를 기록한다는 여성대상 강력범죄율 같은 세목들로 꼼꼼하게 채워질 것이다.

물론 가까운 시일 내에 그런 과목들이 생길 것 같지 않고, ‘국사’ 교과서에서라면 더더욱 이런 일들이 ‘(대문자)역사 서술’의 대상으로 언급될 리 없으니 이 모든 생각은 그저 ‘망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페미니즘이 골몰하는 주제들이 한갓 ‘추문’이나 ‘스캔들’로 치부돼온 유구한 역사를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페미니스트들이 기획‧참여한 각종 매체들의 ‘여성혐오’ 혹은 ‘페미니즘’ 특집 및 단행본들이 이례적으로 쏟아진 최근의 현상은 어쩌면 ‘절규’에 가까운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도 이 사태를 제대로 의미화하지 않을 것이기에, 누군가는 ‘지금-여기’를 기록하여 인식과 성찰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긴급함과 절박함이야말로 이들로 하여금 그토록 열렬히 말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므로 ‘다시’ 페미니즘을 생각하자는 제안은 지루한 성 대결의 반복이나, 모든 사태를 생물학적 성(性)의 문제로 설명하는 것쯤으로 간주돼서는 곤란하다. 아니, 페미니즘은 그런 것과 무관하다. 페미니즘은 언제나 누군가에게는 이념이자 운동, 혹은 존재방식 그 자체를 결정‧지탱하는 인식론이었으며, 급격히 보수화하고 있는 오늘날 한국사회의 폐색과 퇴행을 막기 위한 유력한 가능성이자 대안적 패러다임이기도 하다. 『문화과학』 83호의 특집을 ‘페미니즘 2.0’으로 정한 것도, 그 ‘탐험’ 혹은 ‘모험’에 가까운 성찰과 실천에 기꺼이 동참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을 말할 수 있고,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을까. ‘페미니즘’ 자체가 혐오나 희화화의 대상으로 전락했을 만큼 극도로 폐색된 담론지형 내에서 우리는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예컨대, 우리가 상상한 ‘페미니즘 2.0’의 언어는 이런 것이었다. 눈앞의 혐오와 폭력에 붙들려 ‘계몽’과 ‘(반)비판’만으로 에너지를 소진하거나 퇴행하지 않을 것, 페미니즘을 부분운동으로 국한‧고립시키는 기왕의 오해와 거리를 두면서 페미니즘 논의를 일신 혹은 (재)활성화시킬 것, 페미니즘의 역사성과 정치적 가능성을 급진화할 것, 페미니즘을 둘러싼 국내 안팎의 현상과 담론, 이론과 실천들을 두루 다룰 것, 현재 페미니즘 지형에 상관적으로 개입하고 있는 여러 흐름의 참여적 가능성 및 그 조건으로서의 미디어환경을 고민할 것. 요컨대, 우리는 ‘페미니즘 2.0’이 기존 페미니즘의 문제의식과 성과를 유지‧계승하면서도, 새로운 흐름을 일으킬 수 있는 ‘확장과 전환, 참여와 가능성’의 이름이기를 바랐다. 물론, 페미니즘의 이런 노력은 한 번도 멈춘 적 없기에, ‘페미니즘 2.0’은 기실 ‘페미니즘 54978.0’쯤으로 읽혀도 무방하다.

그런데 ‘페미니즘 2.0’을 이렇게나 많은 조건과 단서들을 충족시켜야만 하는 ‘완전체’로 상상한다면, 발화할 용기는 좀처럼 나지 않았을 것이다. 더군다나 ‘문화이론전문지’라는 『문화과학』의 확고한 정체성도 때로는 방해가 된다. 이번에는 아직 이론화되지 않은, 혹은 이론화를 거부하는 페미니즘의 역동(dynamics)을 포착하는 게 더 시급했다. ‘페미니즘 2.0’ 기획이 완전무결한 이론에의 강박을 버리고 ‘질문’과 ‘감행’의 언어이기를 택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하여 『문화과학』 83호 ‘페미니즘 2.0’ 특집은 페미니즘의 여러 부면을 고유의 관점에 따라 조망‧분석한 네 편의 글들로 구성됐다. 이 기획의 총론으로 읽혀도 좋을 손희정의 「페미니즘 리부트―한국영화를 통해 보는 포스트-페미니즘, 그리고 그 이후」는 2015년을 ‘페미니즘이 리부트(reboot)된 획시기적 시간’으로 과감하게 규정하며, 기존 페미니즘과 ‘포스트-페미니즘’ 간의 접속과 단절의 문제를 다룬다. 이 글에서 ‘포스트-페미니즘’이란, ‘페미니즘은 이미 성취됐다’라는 성급한 진단과 함께 신자유주의에 투항함으로써 오히려 반페미니즘적 효과를 촉발하는 일련의 경향을 가리키는데, 그것이 기존 페미니즘으로부터의 수혜를 통해서 가능했다는 점은 논자에게 ‘가능성’이자 ‘한계’로 읽힌 듯하다. 여성캐릭터의 범람과 소멸, 소비자로서의 ‘여성관객’이 지니는 정치적 가능성과 신자유주의적 여성성 등 이 글에서 제시하는 1990~2010년대 한국영화(사)의 주요 화두들은 바로 그런 의미에서 독해된 문제적 징후들이다. 무엇보다 오늘날 페미니즘이 “신자유주의적 소외와 파편화 과정”에 동참하게 된다는 우려 섞인 통찰은 이 글에서 가장 섬세한 음미를 요청하는 대목이다.

근현대 동아시아 젠더(사) 연구자인 류진희의 「‘무기 없는 민족’의 여성이라는 거울―해방 전후 탈/식민 남성성과 여성혐오를 단서로 하여」는 ‘여성혐오와 군사주의’라는 주제의 역사성을 추적한다. ‘여자도 군대 가라’라는 식의 언사나, 최근 부상하는 남성성이 군사독재시절의 그것이라는 점은 애당초 (탈)식민과 건국의 과정에서 여성이 타자화돼온 역사와 긴밀하게 관련된다는 것이 이 글의 기본적인 문제의식이다. ‘문약(文弱)’과 ‘문청(文靑)’은 식민과 냉전의 동아시아적 전개과정에서 (탈)식민 남성 스스로 제출한 트라우마적 자기표상이었다는 통찰과, ‘모던 걸’ 혹은 ‘국치랑(國恥娘)’이라는 여성혐오적 호명을 통해 여성을 ‘식민화’와 ‘반건국’의 표상으로 고정시키려 했다는 분석은 오늘날의 여성혐오에 각인된 역사적 (무)의식이 무엇인지 짐작케 한다. 여성혐오의 숨겨진 역사적 계기와 결절들을 탐색한 이 글의 문제의식이 ‘신자유주의적 경쟁의 심화에 따른 남성의 패배의식’만을 여성혐오의 근본원인으로 지적해온 기왕의 논의를 일신하는 데에 중요한 참조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전 세계적 퀴어이슈에 대한 폭넓은 연구를 지속해온 한주희의 「퀴어정치와 퀴어지정학」은 한국과 미국에서 전개된 (안티)퀴어운동의 보편적이면서도 특수한 정치적‧문화적 양상을 추적한 이채로운 글이다. 이 글은 일부 교회 지도자들이 주도한 한인 이민자 커뮤니티의 동성애혐오운동이 지닌 정치적 함의를 섬세하게 읽어냄으로써 디아스포라 정치, 입법투쟁의 의의와 한계, 초국가적 군사주의를 공유하는 한국과 미국의 지정학적 프레임, ‘포용과 융합’이 아닌 ‘거부와 변환’의 정치 등을 퀴어정치의 중요한 변수로 도입하여 고려할 것을 제안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이 비단 미국의 퀴어정치 담론지형 내에서만 유효한 것이 아니라, 그와 마찬가지로 개신교 우파와 충돌하면서 성장해온 한국 퀴어정치의 곤경과 전망을 사유하는 데에도 필수적이리라고 판단된다.

페미니즘 진영에서 제출된 정치경제학 비판을 재독해한 정정훈의 「페미니즘 이후의 정치경제학 ‘비판’을 다시 생각한다―맑스주의 정치경제학비판의 전화라는 문제설정 속에서 페미니스트 자본주의 분석을 읽기」는 페미니즘과 맑스주의의 주제를 분리적으로 사고하는 오래된 통념을 뒤집기 위한 비판적 시도다. 이 글은 페미니스트 정치경제학이 근본적으로 맑스주의의 근본논리인 잉여가치론과 재생산노동에 대한 비판적이고도 급진적인 해석이라는 점을 마리아 미즈, 실비아 페데리치, 캐서린 문과 이진경의 논의를 경유해 요령 있게 정리해낸다. 위계화된 성적 분할과 여성의 탈역량화(depowerment)야말로 “자본주의체제 자체의 재생산을 떠받치는 은폐된 근간”이라는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페미니즘 정치경제학 비판의 핵심이다. 한국 자본주의의 발달과정이 기실 기지촌성매매나 기생관광업, 농촌 하층여성의 노동력 동원 등 성별 권력관계에 근거한 여성노동의 은폐와 가치절하에 의해 가능했다는 점은 이를 단적으로 증명하는 의미심장한 사례일 것이다.

‘문화현실분석’ 역시 ‘페미니즘 2.0’ 특집의 연장으로, 최근의 페미니즘 이슈와 관련된 현상 및 담론, 텍스트들을 분석한 다섯 편의 글을 실었다. 2015년 5월에 열린 제17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오픈토크 후기인 조혜영의 「낙인, 선언 그리고 반사―“#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는 최근 트위터에서 벌어진 ‘페미니스트 선언’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다룬다. 페미니스트 선언의 개인적 동기와 역사적 함의 및 그 정치적 가능성을 두루 살피면서도, 소셜미디어가 진정한 ‘광장’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 ‘선언의 선명성’을 위해 강요되는 문제의식의 단소화 등은 계속 생각해봐야 할 과제로 남아 있는 듯하다.

근현대 대중서사의 젠더정치를 연구해온 조서연은 「‘진짜 사나이’와 ‘여자군인’, 신자유주의시대의 젠더화된 군사주의―MBC 예능 <진짜 사나이-여군 특집>에 대하여」라는 글에서 대중미디어의 ‘여군 재현’에 잠복해 있는 군사주의와 신자유주의적 자기계발 논리의 조우를 포착해낸다. 특히 <진짜 사나이―여군 특집>이 “병역이라는 ‘의무’의 도덕화” 논리를 그대로 체현하면서도 정작 ‘왜 총을 들어야 하는지’, ‘군사훈련을 통해 획득되리라고 예상되는 가치는 왜 필요한지’ 등의 근본적인 문제를 묻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초남성적 공간에서의 여성재현’은 필연적으로 젠더의 수행적 특성을 드러내게 된다는 지적은 깊이 새길 만하다.

‘커밍아웃’을 매개로 동성애(자)의 재현과 가시화의 문제를 다룬 김경태의 「벽장 밖으로 나온 동성애자들, 브라운관에 갇히다」와 서동민의 「‘동성애자 친구’가 범람하는 시대에 나는 왜 커밍아웃하지 못하는가」는 함께 읽히면 더욱 좋겠다. 김경태가 TV드라마의 동성애 재현을 매개로 ‘사회순응적 커밍아웃’으로 인해 휘발되는 커밍아웃의 정치성을 문제 삼는다면, 서동민은 그럼에도 여전히 ‘가시성’에 천착함으로써 존재를 증명해야만 하는 성소수자의 곤경을 역설한다.

최근 범람하는 ‘쿡방’의 소구력과 문화정치적 함의를 분석한 류웅재의 「쿡방의 정치경제학―주체의 자기통치의 관점에서」는 ‘쿡방’이 기존 힐링 및 자기계발 문화의 산물이면서 동시에 그보다 훨씬 더 직접적인 ‘삶정치’의 문제와 연관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쿡방’이 신자유주의적 경쟁사회에서 개인의 정서를 위무하고 삶의 안정성에 천착하는 데에만 그칠 것이 아니라, ‘음식’을 둘러싼 생산양식과 다양한 사회적 관계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될 때에야 보다 유의미한 문화적 콘텐츠로 기능할 수 있으리라는 제언이다.

 

이번 83호의 또 다른 ‘기획’에서는 최근 문학장을 비롯한 지식인 공론장 전반의 쇄신에 대한 논의로 확장되고 있는 ‘신경숙 표절논란’을 다뤘다. 이와 관련해 문화연대는 <최근의 표절사태와 한국 문학권력의 현재>, <신경숙 표절사태와 한국문학의 미래>라는 제하에 두 차례의 긴급토론회를 한국작가회의와 함께 개최한 바 있는데, 이번에는 첫 번째 토론회에서 발표됐던 세 편의 글을 수정‧보완해 실었다. 이명원의 「신경숙의 표절의혹을 둘러싸고―사실, 진실, 맥락의 문제」, 오창은의 「베껴쓰기, 혹은 필사(筆寫)의 파국―신경숙 표절사건과 한국문학의 폐쇄성 비판」, 심보선의 「생태계로서의 문학 VS 시스템으로서의 문학」이 그것이다. 이명원과 오창은이 각각 ‘돈과 패거리권력’ 혹은 ‘출판상업주의와 문학권력의 폐쇄성’을 이번 사태의 근본원인으로 지적한다는 점에서 유사한 입장을 취한다면, 심보선은 이번 일을 계기 삼아 ‘한국문학의 신격화’와 ‘비평만능주의’를 탈피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신경숙 표절논란’에는 이밖에도 많은 논점들이 잠복해 있을 테지만, 일단 이번 호의 논의는 이렇게 출발시킨다. 독자들의 생산적인 제언을 기대한다.

이번 크로스서평 코너에서는 『맑스와 마음의 정치학』(심광현)과 『예술인간의 탄생』(조정환)이라는 두 책의 저자에게 교차서평을 부탁해 실었다. 조정환은 심광현의 저작을 ‘현재의 자본주의적 주권체제를 극복하고 코뮌적 ‘생태문화사회’라는 새로운 사회로 이행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려는 진지한 지적 시도’로 읽으면서도, ‘비환원주의적 시차적 접근법’, ‘코뮤니즘’ 개념의 이해, ‘마음의 정치’로의 귀결 등에 대해서는 비판적 의견을 개진한다. 반면, 심광현은 현대 자본주의의 모순적 발전으로부터 ‘새로운 인간상(다중-예술가)’을 이끌어내려는 조정환의 시도에 공감하면서도, ‘예술인간의 탄생’이라는 명제의 추출과정, ‘금욕주의적 자기배려’가 대중의 ‘삶미학’으로서 가지는 타당성, ‘이미지노동’ 개념의 이해 등에 의문을 제기한다. ‘크로스서평’이라는 이 특별한 시도를 통해 독자들은 오랫동안 서로의 저작을 탐독해온 두 저자의 공통 관심사는 물론, 첨예한 입장 차이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세월호참사 500일을 전후한 지금, 세월호참사 1주기에 『금요일엔 돌아오렴』 ‧ 『세월호를 기록하다』 ‧ 『팽목항에서 불어오는 바람』이라는 세 권의 책을 매개로 제12회 북클럽에서 오간 말들을 읽는 마음은 착잡하기만 하다. ‘기록, 애도, (무)책임, 연대, 국가‧사회‧언론, 머무름과 나아감’ 등의 키워드들을 벌써 500일 넘게 되뇌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뼈아프다. 특히 “상황이 바뀌면 자기가 있는 곳에서 떠나는 것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는 점에서 한국사회는 ‘이민사회’와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는 후지이 다케시의 말이 인상 깊다. 우리는 내년에 또 광화문광장에 모여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번 ‘동아시아문화연구’ 코너에는 박자영 편집위원의 번역으로 지난해에 발표된 왕후이(汪暉) 교수의 「두 종류의 신빈민과 그들의 미래―계급정치의 쇠락과 재형성, 신빈민의 존엄의 정치」를 수록했다. 논자는 21세기 중국에 새롭게 출현한 도시의 뉴 푸어와 ‘농민공(農民工)’이라고 불렸던 비정규노동자를 각각 ‘신빈민’과 ‘신노동자’로 지칭한다. 이 두 집단의 출현배경과 상호관계에 대한 분석을 통해 노동자국가의 실패와 대표성의 문제를 구명하는 이 글은 “새로운 평등정치”를 사유하는 모든 이들에게 중요한 참조가 될 것이다.

‘이론의 재구성’ 코너에는 로베르토 에스포지토의 「면역적 민주주의」를 김상운 선생의 번역 및 「면역, 공동체, 민주주의 : 로베르토 에스포지토」라는 해제와 함께 소개한다. 면역과 공동체, 민주주의의 문제를 통어하는 에스포지토의 사유는 최근 메르스 사태로 촉발된 바이러스와 면역체계, 의료생명과 정치의 관계를 사유하는 데 유력한 이론적 지반이 될 것이다.

끝으로, ‘공간성, 육체성, 정동’ 등의 키워드들을 중심으로 한국 문학 및 영화를 연구해온 박현선 선생이 본지 편집위원으로 합류한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한다. 박현선 선생의 폭넓은 관심사와 날카로운 문제의식 덕분에 더욱 깊고 풍요로워질 『문화과학』을 기대해본다.

 

여느 때보다도 뜨겁게 불탔던 2015년 여름이 이렇게 지나간다. 돌아오는 가을에는 ‘폭력’과 ‘혐오’ 대신 ‘성찰’과 ‘연대’라는 새로운 주체화의 열정이 만발하기를. 제발.

 

2015년 8월 서울에서

편집위원 오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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