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8호][세미나후기] 일상의 재구성, 담론의 재구성(김일림)

일상의 재구성   담론의 재구성

김일림 (<문화/과학> 편집위원)

 

세미나의 포문을 연 ‘정동의 정치학’

 

“문화연구는 죽었다. 그러나 다시 문화연구다.”

묘비가 세워진 자리에서 성찰과 희망이 움텄다. 그 현장은 부산이었다. <문화과학>과 부산대 인문학연구소가 공동 주최한 세미나 <한국문화연구, 지금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가 지난 4월3일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부산대 인덕관 대회의실에서 열렸다.김용규 부산대 영문과 교수가 좌장을, 김성환 부산대 인문학연구소 교수가 사회를 맡은 이 세미나에는 약 50여명 이상이 끝까지 자리를 지켜서 문화연구에 대한 진지한 관심을 보여주었다. 이 날 부산에서 이동연, 정원옥, 김성일 편집위원은 각각 ①<문화연구의 종말과 생성-비판이론과 담론의 재구성을 위하여>, ②<학제간 연구를 통한 ‘문화연구자’양성기획의 현주소>, ③<이론적 실천과 현실개입의 추이를 통해서 본 한국 문화연구의 궤적>을 발표했다. 토론자로 참석한 김태만(해양대 동아시아학과), 임영호(부산대 신문방송학과), 홍성민(동아대 정치외교학과), 조선령(부산대 예술문화영상학과) 교수는 진지한 문제제기를 통해서 풍부한 논의를 이끌었다.

이동연 편집인은 1992년 <문화과학> 출범 당시 애초 표방하던 기치가 문화연구가 아니라, 과학적 문화론이자 유물론적 문화론이었음을 언급하고, 그럼에도 <문화과학>과 문화연구가 ‘이론’을 토대로 접점을 이뤘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나아가 이론에 대한 무관심이 피부로 다가온 2005년 이후, 문화연구의 지형이 달라졌음을 토로했다. 이데올로기 비판이나 주체성의 정치학은 더 이상 문화연구에서 논해지지 않고, 제도의 확장이 역설적으로 문화연구의 종말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이에 그가 대안으로 내세운 것은 정체성의 정치학에 대한 현재적 재구성이다. 문화연구는 정치를 이야기하기보다 문화 안에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다.따라서 다시 정치경제학으로 회귀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메타 이론을 구성할 필요가 있으며, 그것은 바로 인간의 감성적 활동에 주목하는‘정동의 정치학’, ‘욕망의 정치학’, 그리고 ‘감성의 정치학’이다. 90년대 정체성의 정치학이 다루지 않았던 비물질적 노동, 인지의 문제를 문화연구의 새로운 이슈로 다뤄야 한다는 논지다.

 

문화연구와 학문제도의 모순

 

   문화연구학과 박사인 정원옥 편집위원은, 문화연구자를 양성하는 대학의 시스템에 대한 고민을 생생하게 논했다. 기업화된 대학과 운동의 좌표 상실은 표리일체이며, 이러한 현실에서 문화연구학과 학생의 대부분이 전공의 모호성과 소수성의 경험으로 정체성에 혼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특정 분과학문 체계에 비전문가로서 개입해야 한다는 한계, 그리고 모든 분야의 교수와 심사위원이 참여하는 논문 심사 과정에서 서로 다른 심사기준이 문제되는 현실 등이 그러하다. 예컨대“이 논문을 문화연구 논문으로 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기준조차 합의가 필요한 상황인 것이다. 전임교원의 부재, 불투명한 진로 역시 문화연구학과가 당면한 문제였다.

과연, 대학 내에 문화연구학과가 존재해야 하는가.

토론자로 참석한 김태만 교수 역시 같은 문제의식을 표명했는데, 문제의식의 출발점은 미묘하게 달랐다. 취업률이나 사회적 효용성에 기초하여 대학이 평가당하는 현실에서 대학의 문화연구학과는 구조 조정의 잘못된 근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선구적인 문제의식에서 만들어진 문화연구학과가 역설적으로 대학평가에 잘못된 근거로 악용될 소지가 있는 상황에서, 이제, 문화연구는 학제로서 성공 가능한가를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화연구는 애초 대학 밖에서 이루어졌어야 하지 않을까. 아니, 보다 근본적으로 ‘문화’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서울 몇몇 대학의 문화연구학과 실태만으로, 한국 전체의 문화연구학과가 실패했다고 매도하지 말라는 의견까지. 다양한 관점이 교차했다.

이와 관련하여 임영호 교수는 “문화연구의 중요한 출발점은 간학제인데,  이게 제대로 실행이 안 된다. 같은 아파트에 400여 가구가 함께 사는 거다. 소통을 안 하니까. 학제적 접합 노력을 한 적이 별로 없다. 위기라고 하면서 학제화를 추구하는 게 문제였다”라고 피력했다. 좌장을 맡은 김용규 교수는 한국의 학문 환경에 그 원인을 두었다. “정통 학문이 아니면 뿌리 내리기 힘든 것이 한국이다. 비교 문학도 한국에서는 뿌리 내리지 못했다. 문화연구 역시 그렇다”면서, 문화연구학과의 위기가 비단 신자유주의적 환경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발표자와 토론자가 다소 의견이 달랐을지언정, 그들이 일관되게 주목한 것은 ‘우리의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을 자성적으로 논한 것은 김성일 편집위원이었다.

우리의 ‘근대성’을 되돌아보자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문화연구를 하는 사람으로서, 무엇을 할 것인가?”

김성일 편집위원은 위와 같은 의문을 품고 한국 문화연구의 궤적을 되짚었다. 80년대의 중심을 이루었던 마르크스 레닌주의, 90년대에 한국 사회에 등장한 프랑스 후기 구조주의,그리고 신자유주의 비판까지. 그는 이론적 검토와 함께 서울문화연구소에서의 경험을 예로 들면서, 당시의 삶이 즐거웠고 뿌듯했으며,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고 밝혔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그는 “문화백수로 있으면서도 좌절하지 않았던 그 기분이 지금 신진 연구진에게 있는가? 또 지금 40-50대들의 자리를 충원할 수 있는 새로운 인력들이 있는가?”라는 의문을 던졌다. 이 시점에서 다시 대두되는 것이 대중문화의 정체성이다. 이제 ‘좋아하는 것’과 ‘비판적으로 회고하는 것’을 구분하고, 지적인 상상력으로 과거를 돌아보자고 주장했다.

김태만 교수가 김성일 편집위원에게 던진 문제제기는 현실적이고 날카로웠다. ①서울 중심으로 사고하는 것이 아닌가? 지역성 자체가 사고 영역에 내재하지 않는다. ②문화운동(연구)의 정치적 무력함은 문화연구와 실천의 무력함인가? ③문화연구자의 고령화는 문화연구의 제도화가 아닌가? ④토착적 이론 형성과 이의 세계로의 발산에 대한 입장. 즉, 서구 이론 수입을 넘어서 토착 이론을 형성해야 할 필요성이 있지 않은가?

   이에 김성일 편집위원은 먼저 지역성, 교류의 필요성을 공감하고, 토착 이론 형성과 새로운 문화연구를 근대성 모색에서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근대의 형성 고찰이 한국적 이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대체로 김태만 교수의 지적에 동의했지만, 적어도 자신의 삶 속에서 이론과 실천은 괴리된 것이 아니었고, 늘 함께였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편 조선령 부산대 교수는 운동권의 종말과 대중문화의 도래가 동시에 이루어진 것에 주목하면서“문화연구를 80년대의 문화예술운동의 테두리에서만 사고하는”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를 표했다. 문화는 단지 이데올로기의 표현만이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이므로, 문화에 대한 내재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문화는 하나의 자료로서 접근하면 안 된다. 적어도 문화연구자는 그 내재적 작동방식을 보아야 한다. 결론을 예증하는 사례로 격하시키면 안 된다”는 요지다.

 

‘문화연구’의 현실 참여 vs. ‘문화연구자’의 현실 참여

 

임영호 교수는 암묵적으로 동일시되고 있는 ‘문화연구’의 현실 참여와 ‘문화연구자’의 현실 참여를 구분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동시에 한국의 문화운동은 실천이 강하지 못 했다고 평했다. 스튜어트 홀의 경우, 정치적인 참여는 접었지만, 그의 이론은  수십 년 동안 매우 시의적이고 구체적으로 현실에 개입했다. 대처리즘 등장을 예고했고, 새로운 권위주의적 대중주의 등장 예견했다. 임영호 교수는 스튜어트 홀을 통해서 이론과 실천의 밀접한 관계를 보았다. 일관된 이론의 힘, 현실 국면 분석이 문화연구의 현실참여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묘비가 세워진 이 자리에서, 그가 생각하는 문화연구의 역할은 무엇인가.“스튜어트 홀은 문화연구를 정의 말라, 학제화하지 말라, 체계화하지 말라고 했다. 문화연구는 이론적인 체계화, 학제화가 아니라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홀은 식민지 좌파 흑인으로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이론을 체계화의 대상이라기보다 현실에서 문제를 얻는 해답을 얻는 도구로 사용한다. 이론을 벗어던지고 알몸이 되었을 때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걸 못했다는 점이 이번 세미나 주제에서 중요한 문제이다.”임영호 교수가 주목한 것도 결국 ‘우리의 현실’이다.

이론의 계보를 따라가고, 마르크스의 결정론을 부정하기 위해 비결정론을 보지만,‘왜’ 그런가는 설명 안 한다는 것이다. 70-80년대 마르크스를 읽었으나 소외를 피부로 못 느꼈다면, 지금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소외를 피부로 느끼는데 그것을 아무도 이야기 안 한다는 지적이다.

홍성민 교수의 주장 역시 같은 맥락이다. 그는 어려운 이론에서 벗어나서 일상의 쉬운 언어로 회귀할 것을 주장했다.“일단 우리 문제를 던져놓자. 공부 안 한 사람이 알아듣게 하자”는 것이다. “1968년에 들어서 유럽 사회는 내셔널 프리덤 말고 일상생활에서 나를 지배하는 뭔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욕망으로부터의 자유. 생활세계에 대한 지배성 각성. 한국사회는 아직 68 정도 수준의, 시빌 저스티스 등이 아직도 해결 안됐다. 내셔널 문제도 아직 해결 안 된 것이다. 들뢰즈, 푸코 등이 아직 와 닿지 않는다. 이론과 현실의 괴리라고들 하는데 사실 그 문제가 아닌가?”지금도 여전히 안보논리와 경제논리가 확고한 현실에서, 우리 피부에 와 닿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화연구는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런 모색 과정 자체라고 생각한다. 무언의 침묵을 깨자”, “제도를 부정할 것이 아니라 제도의 안팎에서 문화를 연구하는 그 전체상이 바로 문화연구다”라는 코멘트로, 김용규 교수는 이날 세미나를 정리했다.

공유되고 연대되어야 할 현장성

 

부산 세미나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토론자들의 진지한 문제제기와 참여자들의 열기였다.김용규 교수의 말을 빌리자면 “문화연구와 <문화과학>의 보다 나은 발전을 위해”<문화과학>을 매개로 많은 비판이 나왔다. 그 비판에 애정과 진지함, 그리고 학문적 고뇌가 담겨있었음은 물론이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것은 부산 세미나장에서 <문화과학>이 이방인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날 발표를 한 <문화과학> 편집위원들은 누구보다 치열하고 풍부한 현장 경험자들이었다. 그들의 현장성은 왜 공유될 수 없었는가.‘문화연구’의 현실 참여와 ‘문화연구자’의 현실 참여를 구분할 필요성에 대한 논의, 그리고 ‘이론’과‘현실’의 스펙트럼을 넓히고 정교화 하는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문화과학>이 이방인이었던 이유는 단지 지역성의 문제로만 귀결되지 않을 것이다. 공유되어야 할 문제의식, 현장, 이론, 일상의 문제다. 피부에 와 닿는 문제. 그래서 다시 제기되는 것은 연대와 공유다. 김용규 교수의 말을 또 한 번 가져오자면“먹고 사는 문제가 곧 문화의 문제다.” “70대 하층민은 왜 계속해서 새누리당을 뽑는가? 왜 부산에서는 새누리당을 오래 지원하는가?”를 다뤄야 한다.

결국 인간의 문제다.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 감성, 정동을 토대로, 현실을 사유하고 성찰하고 문제의식을 가다듬자는 것이다. 이동연 편집인은 “15년 넘게 문화운동을 해왔는데,현실과 이론의 문제로 들어가면 정세적인 문제에 대해 분석할 필요성을 현장에서 많이 발견하게 된다. 한국적 상황에서 이론 지향이라는 지적에 대해 공감한다. 동시에 이론은 노동,폭력, 권력의 문제를 야기하는 구조를 발견하고 폭로하고 제도적 방기를 드러내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노동 운동, 임금 운동에 대해서도 문화연구가 할 일은 많다. 그래서 담론을 재구성하자는 것이다”라고 마무리했다.

요컨대 문제는 우리의 현실, 일상의 재구성으로 귀결된다. 일상은 대개 거대한 비일상과 맞닿아있기 때문이다. 개나리를 떠올리게 하던 노란색 스카프가 세월호 이후에 정치적 의미가 된 것처럼. 그래서 부산 세미나에서 길어 올린 키워드를‘일상의 재구성   담론의 재구성’으로 갈무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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