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8호][칼럼]‘어벤저스’ 속에 그려진 서울의 생얼(이동연)

‘어벤저스’ 속에 그려진 서울의 생얼

 

이동연(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어벤저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이 개봉 4일 만에 300백만 관객을 돌파하며 외화 중 역대 최고의 흥행몰이를 하고 있다. 천만 관객을 기록했던 ’아바타’, 인터스텔라’, ‘겨울왕국’보다 훨씬 압도적인 흥행 속도여서 역대 최고의 흥행 외화로 등극하는 것은 시간문제가 되었다. 이 영화가 한국에서 흥행 대박이 날 거라는 것은 이미 모두가 예상한 바이다. 미국 할리우드 영화 제작 사상 서울이 처음으로 주요 촬영 장소로 선정된 데다, 그것도 미국 역대 흥행 3위, 2012년 상반기 국내 영화 흥행 1위였던 ’어벤저스’ 시리즈이기 때문이다.

‘어벤저스: 에이지 오브 울프론’의 국내 촬영은 작년 3월 30일부터 16일간 서울과 경기도 일대에서 진행되었다. 감독인 조스 웨던은 제작노트에서 미래도시를 상상할 수 있는 로케이션을 찾다가 서울을 촬영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실제 영화 속에 배경이 되는 세빛섬,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 강남대로 등은 첨단 미래도시의 이미지를 배경으로 하기에 손색이 없어 보인다.그리고 마포대교, 청담대교 신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도심 속 초고층 빌딩을 배경으로 확 트인 상공에서 스펙터클한 액션 장면을 담아내기에는 한강만큼 매력적인 곳도 없을 것이다. 조스 웨던 감독도 마포대교 뒤로 보이는 여의도 빌딩 능선은 블록버스터 액션 영화를 찍기에 최고의 장소라고 말한 바 있다.

미래도시를 대변하는 영화 속의 서울은 중세도시를 대변하는 이탈리아의 아오스타벨리와는 대조적인 이미지로 재현된다.아오스타벨리는 영화 도입부에 등장하는 거대한 협곡 속의 요새 소코비아라는 가상 국가로 그려진다. 그래서 미래도시 서울이 번잡하고 차가운 반면, 아오스타벨리는 수려하고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하다. 두 장소는 영화의 사로 다른 의도를 충실하게 반영했다. 그래서 문제는 미래도시냐, 중세도시냐가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서울의 모습, 그리고 미국의 블록버스터 영화제작자가 바라보는 서울의 모습이 어떠한가에 있다.

‘어벤저스’에 담긴 서울은 정말 제대로 그려진 것일까? 몇몇 평론가들과 네티즌들은 서울의 본 보습이 영화 속에 충분히 담기지 못했다고 불평을 늘어놓는다. 서울의 고궁, 한옥과 같은 고풍스러운 역사문화유산이 영화 속에 재현되었다면 서울의 이미지가 더 호소력이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 말이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 서울의 정형화된 모습은 블록버스터 액션 영화가 상상하는 미래도시에 부합한다. 고층빌딩과 차로 빼곡한 도심, 바쁜 지하철 안,  첨단 IT 시설과 포스트모던한 공공 조형물이 있는 서울이야 말로, 외국인이 생각하는 서울의 정형화된 이미지이다. 물론 고궁과 한옥도 있지만, 그것은 서울 전체 모습의 일부에 불과하다. 영화 속 서울의 풍경은 스튜디오에서 충분히 만들어 낼 수 있는 컴퓨터 그래픽 같다. 서울에서 실제 촬영을 했지만, 정작 영화 속 서울은 거대한 세트장 같다.

내가 보기에 바로 그런 점이 역설적이게도 ’어벤저스’가 서울을 아주 잘 담은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어벤저스’에 그려진 서울은 서울의 모습 그대로이다. 우리는 다소 컴퓨터 그래픽 같은 서울의 이미지 속에서 실제 살고 있다. 세트장 같은 고층 빌딩,역사적 배려가 없는 그냥 세련되기 만한 첨단 공간들, 숨 막히는 지하철, 삶이 배제된 낡은 철재공장 지대가 우리가 살고 있는 서울이다. 영화 속 서울의 배경이 어색해 보이는 것은 과도한 컴퓨터 그래픽 기술 때문이 아니라, 서울의 공간 자체가 컴퓨터 그래픽 같은 비현실적 모습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어벤저스’의 서울은 솔직하고 잔인하다.

영화에서 인상적인 두 장면이 기억난다. 하나는 캡틴 아메리카가 서울 강북의 어느 판자촌에서 한강을 바라보는 장면과 다른 하나는 토르가 마지막 장면에 도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이라고 말하는 장면이다. 캡틴아메리카의 시선 속에는 수천억을 들여 만든 세빛섬이 초점화되어 있다. 그리고 토르가 말한 ’안전’은 지금 서울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이다. ‘어벤저스’의 촬영 제작 지원에 들어간 39억의 공공재원이 전혀 아깝지 않은 것은 서울의 관광효과 때문이 아니라, 두 영웅의 시선과 발화가 서울의 민망한 ’생얼’을 제대로 드러내 준 것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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