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5호][칼럼][유럽 배낭 여행기_2] 넌 놀러가서 좋겠다!(김성일)

넌 놀러가서 좋겠다!

김성일(문화/과학 편집위원)

“넌 놀러가서 좋겠다!” 이번 여름에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가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부러움과 무사안전을 기원하는 애정 어린 관심의 표현이라 미소로 응답했지만, 마냥 고마운 말로 들리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이렇게 얘기한 모든 사람들은 여행을 ‘놀러가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나는 여행만큼 최고의 공부는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배낭여행을 하는 사람들에게 “넌 여행으로 공부해서 좋겠다”는 말로 그에 대한 관심을 보인다. 그동안 떠났던 배낭여행 경험으로 판단하건데, 새로운 문화와 자연을 체험하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배낭여행은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자신을 완성시키는 공부의 본질과 가장 부합된다고 생각한다. 고로 여행은 공부 중의 으뜸이며, 그 성취감을 가장 강렬하고도 극적으로 느끼게 한 최고의 방식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많은 사람들은 왜 공부를 ‘노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자본주의의 핵심 가치이자 원리인 노동 패러다임으로 여행을 보려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에서 가치의 생산은 노동으로 가능하며, 그 측정은 노동시간을 통해 이루어진다. 따라서 가치 증식에 사활을 건 자본의 입장에서 노동을 장려ㆍ강제하고 노동시간을 관리ㆍ통제하는 문제는 체제 유지에 근본적 사안이 된다. 우화 ‘개미와 베짱이’로 대표되는 노동에 대한 칭송과 게으름에 대한 낙인이 국가 통치와 경제 운용, 교육과 주류 매체의 대표적 테마이자 규율의 준거가 된 것은 이 같은 정황을 반영한다.
방탕하거나 낭비가 심한 사람, 일하지 않는 사람을 광인으로 규정하고 감금해 강제 노역을 시켰다는 푸코의 논의는 자본주의의 노동 중심적 강박증을 극명하게 드러내준다. 이로부터 노동은 자기관리, 성공 같은 목록들로 그 의미가 강화되면서 긍정적 이미지로 그려지고 권장된다. 그에 반해 놀이는 노동에 대한 사후 보상 혹은 정상적 노동 복귀를 위한 재충전 같은 잔여적 범주로 설정되거나 게으름과 실패의 부정적 이미지로 제시된다. “숙제 다 하고 놀아라”, “열심히 일한 당신, 이제 떠나라”는 각종 언설들은 노동과 놀이의 차별적 위계를 대변하는 대표적 사례인 것이다. 따라서 놀이의 범주에 속하는 여행은 많은 사람들에게 그 자체로 가치 있는 일이거나 공부로 인식될 수 없게 만든다. 배낭여행을 떠나기 직전 내게 해주던 “넌 놀러가서 좋겠다!”는 말도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단언컨대, 배낭여행은 놀러가는 것으로 그 의미가 한정될 수 없다. 출국하기 6개월 전부터 가이드북과 인터넷을 통해 나만의 여행 루트를 짜는 일, 심사숙고하여 내게 최적인 항공권과 숙소를 선택ㆍ예약하는 일, 비행기와 기차 등을 이용해 현지에서 착오 없이 다음 목적지까지 이동하는 일, 용기 내어 현지인에게 길을 물어보거나 식당에 들어가 주문하는 일, 소매치기 당하지 않기 위해 늘 긴장하며 소지품 챙기는 일, 심신이 지치지 않도록 스스로를 계속 체크하는 일 등은 ‘노는 일’이 아니다. 공부와 일을 할 때 같은 상당한 집중력과 판단력, 긴장감과 체력이 요구된다. 그런 의미에서 배낭여행은 또 다른 삶의 열정이요 도전이며 선택과 용기가 필요한 일대사인 것이다.
이 모든 고생과 비용을 감내하면서까지 배낭여행을 가는 이유는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즉, 무탈하게 여행을 할 수 있도록 오감의 민감성을 최대로 극대화시키는 기분 좋은 긴장은 치열하게 보냈던 20대의 신체적 경험을 되살리게 하고 여전히 내가 죽지 않았음을 자각하게 만든다. 지금도 하고 싶은 일을 더 찾을 수 있고 시작할 수 있는 용기가 있음을 깨닫게 한다. 또한 작은 캐리어 하나로 70일을 버틴 경험은 오만에 찬 욕심을 버리게 하며, 여행 중 만난 현지인과 여행객의 친절과 관심은 작은 일에도 감사할 수 있도록 나를 더없이 겸허하게 만든다. 이보다 더 좋은 공부가 어디 있으랴! 이보다 더 내 자신을 성숙시키는 일이 또 있을까?
“여행의 목적은 도착하는 데 있지 않고 떠나는 데 있다”고 괴테는 말한 바 있다. 도착이 종결과 완성을 의미한다면, 떠남은 시작과 새로움을 뜻할 것이다. 800km에 걸친 기나긴 여정을 이제 막 끝내고 오브라도이로 광장(카미노 순례길의 마지막 종착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위치한 중앙광장)에 누워 대성당을 회한에 찬 눈으로 바라보는 카미노 순례자들의 모습이 인상적인 것은 그 순례가 마지막이 아님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즉, 일상으로 돌아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여정을 더욱 용기를 갖고 활기차게 보낼 것이라는 굳은 의지가 엿보인다. 이번 겨울에는 어디로 떠나서 공부를 해볼까?


(사진 1) 공항은 언제나 여행자를 흥분시키는 기묘한 공간이자, 세계를 이해하는 공부의 첫 관문이다.

(사진 2) 교과서에서 봤던 그림의 원작을 직접 보는 경이로움! 우리가 모나리자를 보는 것인지, 모나리자가 우리는 보는 것인지…

 

(사진 3) 베르사유 궁전에 딸린 정원에 인공으로 조성된 대운하! 그 거대함은 당시 절대군주의 권력을 가늠하게 만든다.

 

(사진 4)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설계도에 나와 있는 것을 직접 재현해 만든 전차. 다빈치의 상상력은 시대를 횡단하며 오늘날까지 그 울림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 5)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인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실제 모델이 되었던 콜마르의 거리.

 

(사진 6) 니스 해변에서 쉬고 있는 이름 모를 배낭여행객. 이들을 볼 때마다 느끼는 동병상련의 감정. 파이팅!

 

(사진 7) 빈센트 반 고호 작품 ‘밤의 카페 테라스’의 실제 모델이었던 아를에 위치한 카페. 원작의 실제 모델을 찾아보는 것은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사진 8) 바르셀로나에 있는 가우디 역작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내부 전경. 가우디의 열정과 건축물의 경이로움을 보며 울컥해서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의 고민을 강렬하게 했다.

 

(사진 9) 알함브라 궁전을 배경으로 그라나다의 산 니콜라스 광장에서 연주하고 있는 거리 악사들. 이들의 실력은 프로를 뺨칠 정도로 수준급이었다.

 

(사진 10) 마드리드 레티로 공원에서 일요일의 휴식을 만끽하고 있는 사람들. 주말에 유명 관광지를 벗어나 인근 공원을 가면 현지인과 같은 기분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사진 11) 대서양과 마주하며 유럽 대륙 서쪽 땅끝 마을로 불리는 포르투갈에 위치한 호카 곶. 결국 나는 파리에서 출발해 70일여 일의 긴 여정을 여기서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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