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4호][신간안내]경성에서 서울까지(오창은 외)

[책과 삶]후배문인들이 그린, 염상섭의 ‘서울 문학지도’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 경성에서 서울까지
오창은 외 지음 | 서해문집 | 224쪽 | 1만3000원

 

책 제목인 <경성에서 서울까지>의 뒤에 ‘소설가 횡보씨의 시간 여행’이란 부제가 붙어 있고,다시 ‘근대문학유산을 따라 걷는 도시 에세이’란 설명이 따른다. 소설가 횡보씨란 횡보 염상섭(1897~1963)을 가리킨다. 192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경성, 서울을 배경으로 작품을 썼던 토박이 작가 염상섭의 소설을 통해 시간 여행을 시도한다. 식민지배로 절망과 도탄에 빠진 구한말 조선의 모습, 양면성을 지닌 근대 문명을 바라보는 식민지인들의 기쁨과 좌절,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사이에서 방황하는 지식인들의 내면 풍경, 그리고 전쟁의 긴 그림자를 거쳐 자본의 욕망이 싹트는 럭키 서울에 이르기까지 작가 염상섭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본 근현대 경성과 서울의 모습이 들어 있다. 이 작업에는 문학평론가 오창은·고영직, 시인 정우영·이민호 등 한국작가회의 근대문학유산사업추진단 소속 작가들이 참여했다.

식민지 수도 경성의 변화는 일제가 한양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남산에 건립한 조선신궁에서 시작된다. 1925년 완공된 조선신궁과 이어지는 명동, 경성역(서울역), 옛 세브란스병원(연세대우빌딩) 등은 일제의 권력을 보여주는 공간으로 염상섭의 장편 <사랑과 죄>의 주요 무대다. 소설에서 이 공간은 민족주의자, 사회주의자 청년들이 암울한 현실에서 분투하는 배경이 된다. 필자 오창은은 “일제가 조선신궁을 건립했듯이 해방 이후 한국은 일제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남산에 백범 김구, 성재 이시영, 안중근 의사를 기념하는 공간을 조성했다. 그러나 오히려 ‘과거를 기억하는 공간’을 조성함으로써 굴종의 역사가 반복되는 비극을 막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북촌과 남촌, 서촌도 일제강점기에 형성된 공간이다. 북촌이 패망한 조선의 잔재를 간직했다면 남촌은 일본인들의 주요 활동무대, 서촌은 일제에 맞섰던 자주적인 사람들의 공간으로 작동했는데 염상섭의 대표작 <삼대>에서 그 모습을 찾을 수 있다. 필자 이민호는 <삼대>의 김병화와 홍경애, 조덕기와 필순 등이 자신들의 타자적 상태를 벗어나 자유로운 인간으로 부활하는 공간으로서 서촌을 바라본다.

책에서 찾아간 염상섭 문학에 등장하는 서울시내 장소들(왼쪽)과 최근 광화문 교보생명빌딩 앞으로 이전된 염상섭 동상.

해방 이후 서울의 활기와 혼란은 <효풍>의 무대인 명동 거리에서, 6·25전쟁의 공포와 그 속에서도 유지되는 일상은 <취우>의 무대인 용산과 삼각지에서 드러난다. <효풍>을 분석한 필자 고영직은 가수 현인이 영어로 불러 인기를 모은 노래 <유아 마이 선샤인> <대니 보이>의 멜로디가 흐르는 해방공간의 ‘럭키 서울’을 회고하면서 현재 중국·일본 관광객들이 가득한 소비공간 명동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간다. <취우> 편을 집필한 정우영은 용산 전쟁기념관을 둘러보면서 호전주의와 군국주의의 기미를 읽는다. 그는 “6·25전쟁의 폐허와 비참을 소설로 기록했던 염상섭이 전쟁을 ‘기념’하는 이곳을 보면 피를 토할 일”이라고 일갈한다. 시대별 문학기행의 끝에는 소설가 김재희가 쓴 작가 염상섭 일대기가 실려 있다.

 

저자들이 시도한 것은 비단 염상섭의 문학을 재현하는 게 아니다. 정치적·경제적 공간으로서 경성, 서울이 변화해온 물리적 역사에다가 염상섭이란 한 작가가 수십년에 걸쳐 그려낸 도시의 변화, 여기에 후세의 문인이자 서울사람인 필자들이 바라본 현재의 도시를 삼중으로 겹쳐놓는 것이다. 이 책은 지난해 횡보 염상섭 50주기를 맞아 한국작가회의와 경향신문사, 서울시가 공동 주최한 ‘2013 염상섭 문학제’의 일환으로 집필됐다.

<경향신문> 2014년 7월 19일자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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