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20호][칼럼]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그리고 굿즈 (서동진)

한겨레 기고문

[크리틱]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그리고 굿즈

서동진(계원예술대교수)

    나이 먹은 탓인가. 걸핏하면 심화가 치밀어 오른다. 눈이 침침하고, 자고 나면 흰 머리가 희끗하고, 매일 다르게 눈 밑이 처지는 꼴을 봐서는 분명 짜증을 달고 살 나이가 되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것도 그런 나이에 따른 짜증인지 모를 일이다. 걸음을 했댔자 찾는 책도 없어 걸음을 마다하던 서점엘 우연히 들렀다, 그만 또 짜증이 났다. 사달의 원인은 서점 입구에 자리한 가판대 때문이었다. 거기엔 서로 다른 장정과 표지를 한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나란히 펼쳐져 있었다. 처음 책이 나올 때의 표지를 복원한 판본부터 그간 이런저런 곳에서 낸 갖은 모양의 책들이 주르르 낯을 내밀고 있었다.

한 권의 책이 아닌 같은 내용의 여러 권의 책이 함께 자리할 때, 그것은 더 이상 책이랄 것도 없을 것이다. 굳이 말하자면 이런 건 책이 아니라 수집할 물건이거나 가방 속에서 삐죽이 얼굴을 내민 ‘간지’ 나는 소지품 정도일 것이다. 명품 시계나 값진 헤드폰은 어쩐지 천박해 뵈지만, 시집은 주인의 안목이나 취향을 자랑스레 내비치는 표지일지 모른다. 이렇게 더 이상 책이 아니게 된 책을 가리킬 적절한 말을 찾자면, 그건 아마도 시쳇말로 ‘굿즈’일 것이다. 책이 정신도, 지식도, 관념도, 감정도, 이념도, 뭐랄 것 없는, 그저 탐나는 물건으로 변신하였을 때, 오늘날 사람들이 굿즈란 말로 암시하려는 것과 맞아떨어질 것이다.

책이 멋있어지는 건 나쁜 일이 아니다. 근사하고 품위있게 가죽 장정된 책을 소장하던, 먼 옛날 유럽 부르주아들처럼 우리라고 아름다운 책을 가지지 못할 이유는 없다. 그렇지만 상품이면서 상품 아닌 듯이 존립했던 책의 운명을 생각하면, 굿즈가 된 책은, 어딘지 가지 않아야 할 세계에 발을 디딘 듯한 쓰린 기분을 자아낸다. 굿즈로서의 책은 모든 것을 상품화하는 세계를 증언하는 얼룩일 것이다. 물론 책이 한 번도 상품이 아닌 적은 없었다. 베스트셀러를 만들어내는 데 선수인 출판사와 출판기획자도 있고 그들은 시장에서 어떤 책을 원하는지 점쟁이처럼 예언할 것이다. 책은 가격이 매겨진 채 팔려나가고 수완 좋은 저자들은 두둑한 인세와 보너스를 챙길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책은 상품이면서도 또한 상품이라고 우길 수만도 없는 상품이었다. 가격이 얼마이건 어느 출판사에서 나왔건 어떤 표지로 꾸며졌건 어느 서점에서 산 것이건 책은 마치 그것이 전하는 생각과 이야기로 인해 그런 상품적 가치를 넘어서는 가치를 지닌 무엇의 화신인 듯 여겨지곤 했기 때문이다.

옷이니 액세서리니 따위를 파는 유명 상점이나 소문난 카페, 식당의 한구석에서 마주하는 책들은 잔인한 냉소를 머금고 있다. 그것은 말과 글이란 것이 세상을 드러내고 밝히며, 나아가 그것을 부정하는 몸짓을 자아내는 데 별 역할을 못함을 슬며시 증언한다. 솜씨 좋게 추출한 커피와 이름도 기억하기 어려운 과자 조각을 우물대며 집어든 카프카 소설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인테리어 소품이거나 문화적 위신을 과시하기 위해 동원된 작은 징표이거나, 그다지 비싸지 않은 값으로 쇼핑의 욕망을 채워줄 물건일 것이다. 모든 글과 말은 모종의 이념을 비춘다고 생각하며 책을 읽어온 내게, 이런 세상은 낯설고 무섭다. 그래서 부아가 치밀고 억울한 기분이 들고, 뭐 그런 것이다. 하지만 진짜 화가 나는 것은 그를 통해 치를 대가이다. 그 대가란 다른 세상이 도래할 가능성이다. 책이 굿즈가 되었을 때, 다른 세상은 저 멀리 달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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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이 [뉴스레터20호][칼럼]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그리고 굿즈 (서동진) 에 응답

  1. 님의 말:

    안녕하세요. 저는 영화 동주를 감명깊게 본 이후에, 서점에서 ‘굳즈’같은 서적을 보고 감탄하여 구매한 사람입니다. 저는 사람이 ‘지 잘난 맛에 산다’는 말을 믿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글을 읽고 쓰는 것도 결국 ‘지 잘난 맛’에 사는 하나의 방법이겠죠. 일부 사람들은 센스있는 아이템을 구입하고 소유하고 자랑하면서 ‘지 잘난 맛’에 또 살아 갑니다. 결국 누구의 어떤 행동이 더 우위에 있고 열위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 댓글을 달게 됐습니다.

    더욱이 해당 책의 경우 오래되어 저작권이 없는 와중에, 마침 윤동주 선생에 대한 시대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으므로, 출판사 입장에서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그것을 저는 감각있게 이용했다고 생각해요. 그 덕분에 보다 많은 사람들의 책장에 그 분의 책이 꽂혔으며, 보다 많은 이들이 실제로 그 분의 책을 읽게 됐을 거라고 믿습니다. 반대로, 이 책은 하나의 판형만 존재해야 한다고 강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죠.

    글의 가치는 오직 사람들이 읽어 줄때에만 발하는 것 아닐까요. 달라 진 것이 있다면 글을 읽기까지의 과정에 단순히 그 책에 대한 끌림 이상으로, 그 디자인도 크게 한 몫 했다는 것이죠.

    마지막으로 묻고 싶습니다. “모든 글과 말은 모종의 이념을 비춘다”고 하셨는데, 교수님의 글은 어떤 이념을 비추고 있는 건가요? 문화 소비에 어떠한 우월한 방식이 있다는 이념처럼 보입니다. 게다가 저작권이 끝난 책의 출판을 누군가 규제할 수 없는 현실과 동떨어진 주장인 것 같아 아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