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20호][칼럼] 촛불혁명, 공인된 권리선언을 남기자 (정정훈)

경향신문 기고문

[기고]촛불혁명, 공인된 권리선언을 남기자

정정훈(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

    1789년 7월11일, 미국 독립선언문의 초안을 작성했던 미국 정치가 토머스 제퍼슨은 프랑스대혁명의 와중에서 런던으로 긴급하게 편지 한 통을 쓴다. 수신인은 이후 프랑스대혁명의 정당성을 치밀하게 논증하는 글인 <인권>을 쓰게 되는 토머스 페인이었다. 제퍼슨은 이 편지에서 국민의회가 지금 “낡은 정부를 무너뜨리고 이제 새로운 정부의 기초를 다지기 시작”했는데 그를 위한 가장 중요한 과업으로 “자연적이고 소멸될 수 없는 인간의 권리 선언”을 정초하고 있다고 쓰고 있다.

바로 이 선언이 1789년 8월에 반포된 그 유명한 프랑스인권선언, ‘인간과 시민의 권리에 관한 선언’이다. 이 선언은 이후 공화국 프랑스의 구성과 운영의 원리를 정초하는 문서로 자리 잡게 된다.

물론 ‘인간과 시민의 권리에 관한 선언’에 대한 비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선언만큼 프랑스대혁명의 근본 의미를 명확하게 밝혀놓고 있는 문서도 없을 것이다.

프랑스대혁명은 1789년 시작되어 1875년 제3공화국 헌법제정으로 비로소 종결되는 100년의 장기혁명이었다. 그 장기혁명의 근본 의미는 무엇일까?

그것은 모든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신념을 국가구성의 원리로 삼았다는 점이다. 프랑스대혁명 이전 인간의 권리는 출생에 따라서 불평등하게 배분되어 왔다.

그 혁명은 국가의 출현 이후 수천년을 이어왔던 신분제, 즉 인간의 불평등 위에 구축된 정치질서를 혁파한 혁명, 철옹성과도 같은 기득권을 누려왔던 이들의 완고한 저항을 타도한 혁명이었다. ‘인간과 시민의 권리에 관한 선언’은 시민들의 힘을 통해 혁명의 정신과 결과, 곧 모든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국가의 토대에 기입한 공적 문서였다.

2017년 대한민국에 몰아치는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에 맞선 시민들의 촛불은 아직도 타오르고 있다.

지난해 늦가을 시작되어 봄을 바라보는 이 시점에 이르기까지 계속되고 있는 촛불항쟁의 의미는 무엇일까? 단지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으로만 그 의미를 축소할 수 있을까?

한반도에서 모든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보장하는 국가체제로서 민주공화국을 만들고자 했던 시도는 적어도 1945년 해방과 더불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1960년 4·19혁명, 1979년 부마항쟁과 1980년 광주항쟁, 1987년 6월항쟁과 7·8·9월 노동자대투쟁, 2008년 촛불집회를 지나 2017년 광화문 대로를 가득 채운 지금의 촛불항쟁은 바로 1945년 이후 시작된 자유와 평등의 민주공화국 수립을 위한 과정의 분기점들이다. 민주공화국을 향한 우리의 역사 역시 투쟁으로 점철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역사적 투쟁의 성과를, 승리의 결과를 어떤 방식으로 남겼을까? 우리의 현대사는 아직 인권과 민주적 권리를 시민의 힘으로 공인한 권위 있는 공적 문서를 갖지 못했다. 1960년 4월의 승리도, 1987년 6월의 승리도 자유와 평등에 기초한 권리를 아로새긴 공적 문서를 남기지 못했다.

매주 100만명이 넘는 인파가 모여 민주주의와 시민의 권리를 외친 집회는 우리 현대사만이 아니라 세계사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보기 드문 혁명적 사건이다. 지금 우리는 이 나라를 모든 인간의 자유와 평등이 보장되는 민주공화국으로 만들기 위한 장구한 투쟁의 결정적 국면에 서 있다. 이 국면에서 무엇을 남겨야 할까?

지난 18일 2000명에 가까운 시민들이 장충체육관에 모여 ‘촛불권리선언을 위한 시민대토론회’를 열었다.

촛불집회 이후 대한민국, 모든 시민의 자유와 평등이 보장되는 민주공화국으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민주적 시민헌장, 혹은 권리선언의 내용을 토론하는 자리였다고 한다. 이 토론의 과정과 결과가 2017년 촛불시민혁명의 의미와 정신을 제대로 밝히는 시민들 공적 선언으로 자리 잡기를 기대한다. 시민의 행동과 실천으로 세우는 민주공화국의 기초를 시민들이 선언하는 공인된 권리선언을 우리도 이제 가질 때가 되지 않았는가? 그러한 승리의 권리선언이 2017년 촛불시민혁명이 남겨야 할 중요한 성과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이 글은 카테고리: 알림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댓글은 닫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