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17호][칼럼] 사드, 포켓몬, 로컬 호러(권명아)

[한겨레 기고문]

[세상 읽기] 사드, 포켓몬, 로컬 호러

권명아 (동아대 국문과 교수)

 

정체불명의 악취가 해안을 따라 이동하고, 해운대 백사장에서 대규모 개미떼가, 바다에서는 거대한 갈치가 죽은 채 발견되었다. ‘부울경’(부산·울산·경남) 지방에서는 대지진 전조에 대한 ‘괴담’이 날마다 업데이트 중이다. 몇 번의 지진을 겪으면서 정부나 지자체의 무대책에 경악한 부울경 사람들은 이제 스스로 정보를 수집한다. 대지진 괴담은 이런 현실적인 이유에서 만들어진다. 아무 정보도, 대책도 없이 날아온 사드 배치에 대해 성주 주민들은 공포를 호소하며 저항하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을 비롯한 지배 엘리트에게 성주 주민들은 한갓 괴담에 시달리는 비합리적인 사람들로 보인다. 역설적이지만 지방 사람들이 실감하는 현실적인 공포를 한갓 비합리적인 괴담으로 재현하는 게 바로 ‘외부 세력’이다.
‘몽매한 지방 사람들’에게 혀를 차는 사람들이 온갖 ‘시골 괴담’에 입맛을 다시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좀비와 함께하는 부산행 열차나, 곡성과 온갖 ‘시골’의 괴담을 중계하는 로컬 호러가 사드와 함께 도래하는 이 동시대성은 흥미롭다. 로컬 호러 장르는 신냉전 질서 속에서 지방에 대한 통치가 재편되는 방식을 잘 보여준다. 냉전시대 대표 장르인 007시리즈에서 ‘자유진영’의 적인 동유럽의 주민들은 기괴하고 비합리적인 ‘괴물’로 표상되었다. 진영 분할을 적대 기반으로 했던 냉전 체제와 달리 신냉전 체제에서 적대는 내부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파리와 올랜도 테러를 거치면서 기존의 ‘외부’에 의한 테러와 국내 테러, 증오 정치의 관계가 긴급한 화두가 된 것은 이런 이유다. 국지전과 국내 테러와 증오 범죄는 신냉전 체제의 주요 특성이다. 적대가 국지화되면 지방은 점령, 착취, 고립의 악순환에 빠진다. ‘외부 세력’이라는 서사는 이런 신냉전과 국지전의 맥락에서 논의할 필요가 있다. 저항이 ‘외부 세력’에 의한 것이라는 서사에서 지방의 ‘저항’ 가능성은 삭제된다. 기괴하게 순박하고 ‘자업자득’의 맹목을 반복하는 ‘시골 주민’과 저항하는 외부 세력이라는 서사는 정치와 문화 전반에서 생산되는 로컬 호러가 공유하는 문법이다.
지방에 대한 탈정치화는 한국적 로컬 호러 장르로 생산·재생산된다. <국제시장>이나 <인천상륙작전>처럼 냉전 복고를 지방색과 결합한 서사 유형이 한국형 스릴러나 호러와 각축전을 벌인다. 로컬 호러에서 지방은 장소를 불문하고 비합리와 괴기로 넘쳐나는 오지로 재현된다. 이 전형성은 기괴하다. 소녀들은 모두 귀신들리거나 살해당하거나, 볼모 잡힌다. 주인공은 모두 소녀의 보호자이고 소녀를 구하기 위해 ‘시골’의 귀신이나 비합리와 싸운다. 로컬 호러에서 지방은 제국주의자들의 꿈의 장소였던 문명 바깥의 식민지를 똑 닮아 있다. 지방과 탈문명화된 자연과 소녀를 동일성으로 배치하는 방식은 제국주의적 인종주의 서사의 젠더 분할을 전형적으로 답습한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의 포켓몬 고 소동은 냉전과 신냉전 사이의 지방의 장소성을 흥미롭게 연출했다. ‘냉전 방어막’은 글로벌 ‘몬스터’에 의해 침투되었다. 다른 한편 냉전 방어막과 글로벌 측량술로 포섭되지 않은 자리에서 우연한 ‘해방 공간’이 펼쳐지고, 그 해방 공간은 금세 관광 열기로 불태워졌다. 신냉전 시대 지방의 생기는 사드와 포켓몬과 로컬 호러의 중첩 속에서 증오와 쾌락과 저항의 회로를 오가며 중계되고 전송된다. 신냉전의 국제질서에 대한 불안은 로컬 호러에 등장하는 기괴한 시골 사람들에 대한 조롱으로 자리를 바꾼다. 이미지의 쾌락이 현실 정치의 공포를 잠식한다. 로컬 호러 장르로 전송되지 않는 거기에, 당신이 경험한 적 없는, 공포에 맞서 삶을 구하는 저항의 생명 신호는 두근두근 울려 퍼진다. 전송의 ‘외부’가 저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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