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 16호][칼럼] 여성살해를 쓰다(권명아)

한겨레 기고문

[야! 한국사회] 여성살해를 쓰다

권명아(동아대 국문과 교수)

강남역 살인 사건은 자신을 생존자로 규정한 여성들의 추모 릴레이가 없었다면 그저 신문 사회면 귀퉁이를 장식한 기사로 남았을 것이다. 이 사건의 개념 규정에 대한 논란도 뜨겁다. 개념의 정확한 규정도 중요하지만, 혐오, 차별 선동, 죽음과 살해로 이어지는 소수자 차별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와 연구가 더 시급하다. 여성 혐오를 비롯한 소수자 혐오가 신자유주의적 현상이라고 하지만, 특정 사회의 차별 구조와 역사가 혐오의 구체성을 좌우한다. 일례로 오언 존스의 를 보면 영국 사회에서는 ‘차브 혐오’라는 하층 계급 혐오가 지배적이다. 또 일본의 경우 차별 선동을 주도하는 ‘재특회’가 상징하듯이 인종 차별이 지배적이다. 인종 차별이나 계급 차별이 지배적인 사회에서 여타의 소수자 차별이 별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계급 차별이 지배적인 경우, 성차별이나 지역 차별이 계급 차별의 지배적 규정하에 작동한다는 의미이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 사회는 성차별이 지배적이다. 성차별에는 여성 차별과 성소수자 차별이 모두 포함된다. 성소수자 차별이 최근 들어 차별 선동의 대상이 된 것은 성소수자들이 한국 사회에서 이제야, 겨우 자기 정체성을 드러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 차별이 유례없이 난폭했다는 증거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이번 강남역 살인 사건에 대해 젠더 규정보다, 사회구조와 계급 문제가 우선적이라고 조언한 여러 ‘진보’ 집단의 충고는 ‘원론’으로만 옳다. 현실과 역사가 없이 원론만 반복하는 ‘진보이론’은 곤란하다. 물론 젠더 규정과 계급 규정을 둘러싼 이런 마찰은 한국에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에토스를 지닌 집단 사이의 이런 마찰을 정동 연구자 벤 하이모어는 자신의 판단 감각을 의심하지 않는 “거드름을 피우는 에토스”의 산물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정치적 중요성, 긴급성, 정동의 강렬도에서 서로 다른 에토스를 지닌 집단들 사이에서 이런 마찰이 발생할 가능성은 항상 있다. 젠더 이론이나 페미니즘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강남역 살인 사건 이후 여성 살해와 성폭력 범죄가 이어지는 것은 한국 사회가 이제야 이 사건들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그간 여성 살해는 너무 만연해서 주목되지 않거나 주목되어도 사회병리 현상이라는 담론구조로 환원되었다. 이런 담론구조를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여성 연예인에 대한 담론구조이다. 한국에서 연예산업이 활성화된 1990년대 이후에 국한해도 여성에 대한 폭력과 차별과 노예화는 선정적이고 성애화된 담론구조와 우울증과 같은 병리 담론 사이를 반복했다. 일반 여성에 대한 폭력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로 간주하여 주목되지 않았다면 여성 연예인은 이례적인 주목 대상이 되어 이중의 폭력에 노출되었다. 그리고 이런 이중 폭력은 끝없이 이어진 여성 연예인 자살로 나타났다. 자살이 궁극적으로는 사회적 타살이라는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한국에서 소수집단의 자살은 혐오의 구조적 결과라는 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통계로도 기록되지 않는 성소수자의 자살은 뿌리 깊은 혐오와 차별의 결과이다.

‘장자연 유서 파동’이 상징하듯이 ‘살해된’ 여성이 남긴 필사의 기록은 쉽게 부정되었다. 죽은 여성의 이야기는 음모론과 유서 진실 공방과 선정적 스캔들과 병리학 서사로 계속 환원되었다. 여성 살해의 구조는 바로 이 담론 생산구조이기도 하다. 강남역에 쓰인 추도와 생존자의 서사는 그런 점에서 이 오래된 반복을 깨뜨린 사건적인 것이다. 그리고 이 사건은 보이지 않는 심연에서 필사의 저항을 계속해온 여성, 그리고 소수자 집단의 저항의 역사 속에서 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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