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13호][칼럼]기억하는 사람들의 힘(권명아)

한겨레 기고문

 

[야! 한국사회] 기억하는 사람들의 힘

 

권명아(동아대 국문과 교수)

 

 

최근 ‘위안부’와 관련한 논의는 외교적 차원이나, 담론 차원에서 기존의 국제적 연대와 연구, 실천의 역사를 모두 파괴하고 있다. ‘승리’를 위해 모든 것을 파괴하는 것, 그것이 전쟁이 아니라면 달리 무엇일까? 외교적이든, 담론 차원이든 이런 전쟁 논리에 대항하기 위해 무엇보다 지난 발자취를 기억하고 보듬고 살피는 일에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1990년대 학계에서는 학살과 전쟁의 기억을 기념하는 작업에 대해 다양한 논쟁이 있었다. 국가주의적 우상화에 대한 비판뿐 아니라, 국가 폭력에 의한 희생과 항쟁을 기념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비판과 공론화가 가능했다. 이런 역사에 비춰 보면 현재 기념과 기억의 문제에서는 국가와 민간 영역이 역전된 상황이다. 평화비(소녀상)는 민간 영역에서 설립한 것이다. 국가 기념물이 만들어지고 대중화되어 ‘특권화’되는 과정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지난 20여년간 ‘위안부’ 문제에 대한 기억과 기념은 국가가 아닌 일반 시민의 국제적 연대를 통해서만 겨우 가능했다. 게다가 이런 국제적 연대를 통해 만들어진 기념물은 단지 ‘소녀상’으로 특권화되어 있지 않다.

 

오키나와 본섬에서 좀 떨어진 도카시키나 미야코 섬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는 ‘아리랑비’가 있다. 미야코의 아리랑비는 어린 시절 ‘위안부’ 여성을 만났던 기억을 간직한 요나하 히로토시의 개인적 추도 작업에서 시작되었다. 전후 갑자기 사라져버린 그녀들의 생사가 궁금했던 소년 요나하는 그녀들을 만났던 기억의 터에 돌을 놓아 추도했다. 개인적인 추도는 한·일 양국 연구자들의 공동 조사로 이어졌고, 2008년 미야코 지역의 위안소 지도와 지역 주민의 증언을 담은 보고서가 발간되고, 기림비 제막도 함께 진행되었다.

 

‘아시아태평양 전쟁’ 당시 성폭력의 피해자가 되었던 아시아 여성을 기리기 위해 11개 언어로 만들어진 비문은 베트남전 시기 한국군에 의한 성폭력 피해 여성을 추도하는 의미로 베트남어가 추가되어 12개가 되었다. 이 작업에는 미야코 평화운동가와 여성들, 일본과 한국의 연구자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함께 참여했다. 이 작업에 참가한 시미즈 하야코와 우에사토 기요미는 지금도 미야코에서 평화운동을 지속하고 있다.

 

아시아 전역에서 전쟁으로 인한 여성의 성노예화를 비판하고 피해자를 기리는 상징과 기념물을 만드는 일은 이런 시민들의 국제적 연대를 매개로 한 평화운동의 힘으로 이뤄졌다. 일본이나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의 여러 ‘국가’들은 오히려 시민운동과 평화운동이 지속해온 기억과 추도 작업을 무력화하기에 급급했다.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들을 기억하고 추도하는 일은 무책임한 국가에 대항하여 싸워온 아시아 시민들의 반전 평화 운동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지난 한-일 외무장관 회담과 소녀상 철거를 둘러싼 일련의 사태는 아시아의 반전 평화 운동의 역사를 무력화하는 총체적 위기로서 인식하고 대응할 필요가 있다. 전쟁의 기억을 이어나가는 것과 함께 아시아의 평화 운동의 역사를 기억하고 이어가는 일 역시 절실한 상황이다.

 

전쟁은 모든 것을 빼앗지만, 기억은 빼앗긴 것을 되찾으려는 인간 존재의 원초적 힘이다. ‘소녀상’을 철거할 수 있다는 발상은 누구의 동의 없이도 삶을 박탈하는 전쟁을 제멋대로 할 수 있다는 전쟁 논리를 고스란히 닮았다. ‘소녀상’이 가부장적 순수성의 이념을 특권화할 위험성이 있다면, 더 다양한 기림비와 평화비를 만들자. 파괴가 전쟁 국가의 몫이라면, 생성과 일굼은 전쟁논리에 저항하기 위한 인간 존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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