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12호][칼럼]진짜 안보 망치는 병영문화 체험_오혜진

한겨레 기고

 

[2030 잠금해제] 진짜 안보 망치는 병영문화 체험

 

오혜진(근현대문화 연구자)

 

최근, 가상의 5살 아동 ‘제제’에 대한 이야기가 온 지면을 덮었지만 나는 좀 다른 아이가 신경 쓰였다. ‘국민아기’라 불리는 세 쌍둥이, 일명 ‘삼둥이’들이 공군부대에 들어가 ‘병영문화 체험’을 하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영문도 모른 채 제 몸보다 큰 군복을 입은 유아에게 “역시 군인은 용감해” “아침부터 전우애가 넘쳐나는 생활관” 따위의 자막을 입힌 화면은 예능이라기엔 너무 안 웃겼다. 아이가 “아가씨야 내 마음 믿지 말아라”라며 ‘빨간 마후라’를 부르는 장면에서는 실소했다. 어린이들과의 성적 접촉을 선호하는 성향을 ‘페도필리아’라 부른다던데, 옹알이를 갓 뗀 만 3살 유아가 ‘다나까’로 말하거나, ‘군대리아’를 즐기는 모습을 보며 흐뭇해하는 증상은 뭐라 해야 하나.

 

가부장주의와 신자유주의적 자기계발 논리의 조우야말로 최근 ‘군대’라는 콘텐츠가 자주 호출되는 이유겠다. 하나 사태는 더 심각해 보인다. 이미 보도됐듯, ‘삼둥이’의 병영문화 체험은 ‘나라사랑 꾸러기 유치원’이란 걸 만들어 유치원에서도 안보교육을 실시하겠다는 정부의 새 정책과 긴밀히 호응하기 때문이다. 초·중·고 안보교육 사업인 ‘나라사랑정신 계승발전’ 예산도 대폭 늘었다 한다. ‘건전한 안보의식 함양와 국가관 확립’이 목적이라는데, 대체 ‘안보’ 혹은 ‘건전한 국가관’은 뭔가. 그건 꼭 안보교육이나 병영문화 체험 같은 장치들을 통해 함양돼야 하나.

 

페미니즘적 시각에서 국제정치를 분석하는 신시아 인로는, 특정 유형의 남성(성)을 특권화하고 여성(성)을 선취함으로써 군사주의의 지구화가 달성된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군사화된다는 것’은 ‘군사적 가치들(위계질서, 복종, 무력 사용에 대한 신념)을 다른 무엇보다 우선시하고, 군사적 해결 방식을 각별히 효율적이라 생각하는 군사적 태도가 만연하는 것’이다. 한국은 어떤가. 국방부가 교과서 집필에도 나서겠다는 판이니 더 말할 것도 없겠다. ‘민주화 시대’ 이래, 대한민국은 아주 깊고 빠르게 재군사화되고 있다.

 

기묘한 것은, 한국은 어느 나라보다 군사정권의 암흑을 강렬히 체험했음에도 군대의 질서와 문화가 일상화하는 것에 대한 감수성이 매우 무디다는 점이다. (‘삼둥이’의 할머니도 최근 남다른 인사성을 과시하며 ‘거수경례의 아이콘’이 됐다.) 전쟁 및 분단을 겪은 한국 사회에서 ‘안보’는 무소불위의 위력을 휘두르는 절대명제였고, 이는 언제나 군사주의를 정당화해왔다. 그러나 늘 그렇듯, ‘국가안보’는 대개 외부의 적보다 국내의 ‘위험세력’을 통제하기 위한 말로 쓰인다. 국정교과서 반대자, 세월호 유가족, 심지어 동성애자들을 ‘종북좌빨’이라 부르고, 궐기한 민중에게 살상무기화한 최루액 물대포를 쏘며 적화(敵化)하는 사례들을 우리는 매일 보고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필요한 것은 ‘안보’에 대한 새로운 이해다. 과연, 삼둥이는 ‘누구로부터’ 자신과 가족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할까. 그 애들도 엄마와 아내와 딸을 당연히 ‘피보호자’로 여기게 될까. 비합리적 적대주의와 타자의 ‘여성화’를 통해 얻어지는 ‘남성다움’. 이에 대한 성찰 없이 함양되는 안보의식이란, 결국 폭력과 혐오가 판치는 ‘헬조선’의 주역들을 낳을 뿐이다. 진정한 의미의 ‘안보’란, 평화운동에 대한 관심과 젠더감수성의 함양, 그리고 ‘탈군사화’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이제 우리 아이들에게도 가르쳐주자. 물론 애들 좀 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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