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11호][칼럼]‘헬조선’의 정치적 무의식(이동연)

‘헬조선’의 정치적 무의식 (이동연)

 

‘헬조선’ 현상에 대한 최근 경향신문의 커버스토리 기사는 이 단어의 발생과 용법을 심층적으로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경향신문과 데이터 컨설팅 기업 ‘아르스 프락시아’가 함께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헬조선’ 현상은 취업난에 고통을 받는 청년들의 넋두리만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대한민국이 더 이상 사회로서 기능하지 못하고 있음을 선언하는 것이다. 특히 청년 세대와의 직접 취재를 통해 ‘헬조선’이 희망 없는 교육, 국가의 무능과 미개한 통치성, 기업의 노동착취와 연고주의의 극단을 대변하는 일종의 ‘절망의 수사학’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경향신문의 커버스토리는 ‘트위터’나 ‘일베’처럼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입장이 다른 SNS 공간에서도 헬조선은 미개하고 지옥 같은 곳으로 생각하고 있고, 하루빨리 헬조선을 ‘탈출’하고 싶다는 견해도 동일하다고 분석했다. 그리고 헬조선의 용법이 유행하게 된 배경에는 청년실업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는 점도 주시하고 있다.

 

경향신문의 커버스토리는 헬조선이 특정한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편향을 드러내는 집단들이 유포한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그것은 단지 일베의 혐오 수사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헬조선은 한 사회가 작동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시스템과 그 시스템을 유지하는 정의와 윤리의 감정이 붕괴되고 있음을 청년세대의 입을 통해 경고한 근본적인 사회 체제 위기의 담론이다.

 

헬조선으로 대변되는 청년들의 총체적 분노와 “죽창 앞에선 모두가 평등하다”는 헬조선 닷컴의 메인 페이지의 살벌한 슬로건만 보면, 조만간 대한민국에 동학 혁명과 같은 민중 봉기가 일어날 듯한 전조를 느끼게 해준다. 그러나 헬조선의 담론장은 의외로 평화롭다. 지금 여기, 지옥 같은 조선의 세상을 갈아엎겠다는 봉기의 분위기보다는 오히려 그 재난의 사태를 관망하고 즐기는 분위기가 더하다. 헬조선의 절망과 분노의 글들은 매우 직설적이고, 노골적으로 세상을 비난하지만, 그 비난은 비난에 불과할 뿐, 세상을 바꾸려는 직접 행동과는 거리가 멀다. 심지어 헬조선의 분노는 정치적으로 이완되고, 이데올로기적으로 봉합되어 이들 주체의 입장조차 무엇이 정치적 비판이고, 무엇이 탈정치적 냉소인지 구분되지 않는다. 헬조선의 분노의 눈초리는 사회 전체의 부조리, 부정의한 지배 체제에 향해 있지만, 정작 이 담론의 정치적 위치는 제로섬 게임에 빠져 있다. 이들의 분노는 영도의 글쓰기이다. 헬조선 현상은 역설적이게도 ‘헬조선’이란 작금의 세상을 뒤엎으려는 직접행동을 지연시키거나 해소시키기 위한 조작된 공론장 같아 보인다. 범용화된 현상으로서, 혹은 유포된 담론으로서 헬조선은 헬조선이라는 실재를 기각하고, 오히려 그 체제를 재생산하는 구성적 요소로 작동한다. 헬조선의 담론과 주체는 헬조선의 생산관계를 재생산한다.

 

헬조선에 대한 경향신문의 커버스토리리 기사가 아쉬웠던 것은 온라인에 기반 한 객관적인 데이터 분석에 치우진감이 없지 않아, 단어들의 표층적 연결 고리의 분석을 넘어서 단어 사이의 심층의 무의식을 해석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1970년대 영국에서도 청년계급들이 썩어 문드러진 영국사회에 대한 분노와 조롱의 문화가 있었다. 이름하야 ‘펑크문화’이다. 펑크족들은 자신들에게 실업과 절망만을 안겨준 국가를 향해 무정부주의를 외치고, 영국 왕실을 향해서는 “여왕은 죽었다”고 선언했다. 펑크족은 부모세대들을 저주하고자 부모들이 가장 싫어하는 나치의 십자상을 패용하고 다녔다. 이들의 인종차별적 행동은 정치적 신념이 아니라 오로지 부모세대들이 자신들을 미워해주길 바래서이다. 펑크의 저항의 스타일은 동시대 사회에서 버림받은 청년들로부터 큰 지지를 얻었지만, 얼마가지 않아 지배 이데올로기로 흡수되고, 상풍형식으로 변질되었다. 국가는 이들의 분노를 오히려 굳건한 국가 지배체제를 세우기 위한 교훈으로 삼았고, 패션기업들은 펑크의 저항의 형식들을 고가의 상품으로 전환시켜버렸다.

 

흥미로운 것은 지금 헬조선의 현상도 그런 모습으로 이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헬조선 닷컴의 사이트를 들어가 보면, 삼성생명, 한화건설, 유학닷컴, 잡코리아 광고가 기사와 함께 연동되어 있다. 헬조선이 비난하는 대기업, 유학지상주의, 취업만능주의의 당사자들이 헬조선을 구성하는 글과 함께 공존하고 있다. 헬조선의 담론들은 펑크문화에 대해 어느 영국의 문화연구자가 예리하게 분석했듯이, 동시대 사회의 모순들을 마술적으로 해소하려는 수사학에 불과하다.

 

정치적 무의식은 사회의 모순들을 텍스트 안에서 마술적으로 해소하려는 것이라기보다는 그 모순의 심층을 사회의 표면 밖으로 끄집어내는 잠재성을 가지고 있다. 헬조선의 정치적 무의식은 사회모순을 표상하는 텍스트 안에서만 기거하길 원한다. 그럴 경우 무의식은 대체되고 응축만 될 뿐 폭발하지 못한다. 지금 헬조선의 정치적 무의식은 불만의 도상, 분노의 기표만을 생산한다. 그것은 단지 사회적 모순에 대한 오이디푸스적 편집증만 생산할 수밖에 없다. 담론과 현상으로서 헬조선이 아닌, 정말로 지옥 같은 ‘헬조선’에 대한 정치적 무의식은 ‘헬조선’의 텍스트 밖으로 나와 폭발해야 하지 않을까?

 

 

(경향신문 2015년 9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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